[예술 세계] 이탈리아 미래주의 
[예술 세계] 이탈리아 미래주의 
  • 오재학   전 주호치민 총영사
  • 승인 2024.09.05 17: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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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후된 이탈리아의 두려움과 조바심에 인한 반동

미래주의는 마리네티(Filippo Tommaso Marinetti)가 1909년 ‘라 가제따 에밀리아(La Gazzetta dell’Emilia)’에 미래주의 선언을 출판하고 이어 프랑스 잡지 ‘르 피가로(Le Figaro)’에 광고를 냄으로써 공식 출범했습니다. 르네상스 이래 이어져 온 신고전주의적(Neo-classical)가치와 도덕적 댄디즘(moral dandism), 그리고 죽음에 매몰된 ‘데카당스(decad-ence)’ 타파를 주장했습니다.
회화 및 조각, 건축, 의복, 실내장식, 영상, 음악 등 다양한 분야에 걸쳐 실험적인 작업을 시도했고 대표작가로는 회화 분야에서 보치오니(Umberto Boccioni), 카라(Carlo Carra), 발라(Giacomo Balla), 세베리니(Gino Severini)가 동참하고 음악분야에서 작곡가 루솔로(Luigi Russolo) 건축분야에서 산텔리아(Antonio Sant’Elia)가 참여했습니다. 여성으로는 마리네티 부인 카파(Benedetta Cappa)가 함께 합니다. 

이들은 역동성(dynamism)과 속도(speed),신기술 및 기계주의에 대한 확고한 믿음을 가졌고 근대 이후 천주교적 전통에 얽매이던 낙후된 이탈리아 사회, 문화에 대한 반동으로 나타납니다. 18세기 이후의 이탈리아는 알프스 이북의 유럽과 달리 산업화가 뒤처져 경제가 낙후되었습니다. 

이탈리아는 이를 극복하기 위해 공업화를 신속하게 추진했고 이것이 신세대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게 됩니다.

미래주의자들은 당시 이탈리아 미술이 전통적 가치와 균형 의식 때문에 퇴보했다고 판단하여 의복과 요리에 이르기까지 미래주의적 시도를 함으로써 전통미술에서 볼 수 없었던 여러 해프닝을 벌이며 과거 미적 취향과 예술에 반기를 들었습니다.
이들은 산업도시와 자동차,기차 등 산업혁명의 상징들을 작품에 담게 됩니다. 특히, 사모드라케(Samodrake)의 여신상보다도 달리는 기차가 더 아름답다고 주장할 정도로 속도와 역동성을 중시했습니다.

 미래주의 화파를 언급하려면 먼저 어떤 연유로 14-16세기에 르네상스 운동이 이탈리아에서 꽃피게 되었는지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A)로마유산과 동로마제국 지식전파
먼저 찬란한 로마제국의 다방면에 걸친 유산을 빼놓을 수 없습니다. 동로마제국이 1453년 오스만 터키 제국에 의해 멸망 당하면서,수많은 지식인, 기술자, 예술인들이 이탈리아로 이주합니다. 그리고 피렌체(Firenze)의 메디치(Medici)가문은 이러한 로마유산을 지속적으로 보전.확대를 추진(특히 예술분야) 르네상스 대부흥을 견인합니다. 
(B)봉건제도 부재와 자유사회 분위기
당시 이탈리아에서는 봉건제도가 존재하지 않았고 통일국가없이 수많은 도시국가로 분열된 상태로, 중앙집권적 정치제도가 없었습니다. 특히 영국과 프랑스간의 100 년 전쟁(1339-1453)은 르네상스와 같은 문학과 예술,기술 부흥을 불가능케 하였고 오직 이탈리아에서 자유분방한 사회분위기가 성숙할 수 있었습니다. 
(C)지중해 중심의 막대한 부의 축적
이탈리아 반도에선 12세기부터 이슬람세력을 축출하고 중계무역을 통해 신흥중산층이 대두하면서 예술인과 철학자, 인문학자, 수학자, 천문학자, 지리학자 등 지식과 예술인을 우대하는 풍조가 크게 유행합니다. 이것이 르네상스 운동의 기폭제가 됩니다.
(D)교황(Pope) 귀족가문의 지원
아비뇽(Avignon)포수 이후 교황권이 안정되고 메디치(Medici), 스포르자(Sporza)가문 등 유명 신흥부호의 예술부흥 지원정책으로 문학과 미술 등 예술부흥 운동이 커다란 동력을 얻게 됩니다.
(E)흑사병 창궐
흑사병 창궐로 인해 유럽전역에 전대미문의 일대 변혁이 불어 닥칩니다. 도시화의 급진전으로 피해가 확산되었고 특히 일반인보다 성직자가 더많이 사망하게 되면서 신의 존재에 대한 의구심이 증폭하면서 인간성 회복과 인문(인본)중심 사고방식이 그 세력을 급격하게 확장하게 됩니다.
미래주의의 탄생 배경을 살펴봅니다.
(A)이탈리아 낙후성
르네상스 예술 시대(14~16세기) 예술의 중심이 피렌체(Firenze), 베네치아(Venezia).로마(Roma)등 이탈리아 도시들이었으나 18세기부터 로코코(Roco-co)의 중심인 파리(Paris)로 예술중심이 이동합니다.

[일어나는 도시] 보치오니,1910
[일어나는 도시] 보치오니,1910

신고전주의(Neo-classicism)와 낭만주의 (Romanticism), 사실주의 (Realism), 인상주의 (Impressio-nism) 등의 예술사조가 프랑스에서 변성하고, 이탈리아는 뒤쳐지게 됩니다.
(B)분열·통일지연

이탈리아는 도시국가 난립으로 통일(1870)이 여타 유럽국가들에 비해 늦어집니다. 옛날 로마시대에는 ‘카푸트 문디(Caput mundi :세상의 우두머리)’ 라고 불리며 으뜸국가로 등극하고 또한 “모든 길은 로마로 통한다”고 할 정도로 세계 최강국으로 군림하였으나 이후 크게 쇠퇴합니다. 산업화에서도 뒤쳐지고 늦었다는 두려움으로 빨리 따라잡아야 한다는 조바심에 빠지게 됩니다.
(C)니체(Nietzsche)의 초인사상
사상적 측면에서 초인적 발상을 수용하고 미래를 향한 힘찬 발돋움을 주장합니다.
(D)동시사진 실험
동물 생태학 연구자들에 의한 동시사진·연속사진이 발달하고 인간시선이 아닌 동물적 역동성을 발견하게 됩니다.
(E)입체주의(Cubism)의 태동
아폴리네르(Appolinaire)를 통해 입체주의가 전파되고 분석적 입체주의 (analytical cubism)를 수용하게 됩니다.
(F)보어(Niels Bohr)의 양자론
절대적 진리가 사물·가치관 등에 따라 변한다 생각하고 누가(who), 언제(when), 어디서(where) 보느냐에 따라 달라진다는 관점이 유행하게 됩니다.
(G)앙리 베르그송(Henri Bergson)의 창조적 진화
우리 삶의 연속성을 재발견합니다. ‘생의 약동(엘랑 비탈:elan vital)’과 함께, 과거·현재·미래는 단절되지 않고 지속된다 믿고 세계는 고정적, 절대적인 것이 아니라, 상대적으로 움직인다고 보게 됩니다. 역동성(dynami-sm)과 변화(change), 직관(intuition)이 강조됩니다. 이들은 과거유산을 모두 파괴하여 새롭고 진취적인 문화를 창출해야 한다고 강조하며 전통적 싯귀나 비유법, 형용사, 부사 등도 파괴해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파괴주의 미학을 추종한 이들은 제1차 세계대전이 발발하자 즉각 입영하였는데,보치오니(Boccioni)는 1916년 말에서 낙마하여 사망하고 건축가 산텔리아(Sant’Elia) 역시 트리에스테(Trieste)방어전에서 전사합니다. 햔
한편 러시아에서도 미래주의 경향이 나타났는데 러시아 아방가르드 운동은 미래주의적 성격에 기초하여 태동하게 됩니다. 산업화가 덜된 이탈리아와 러시아에서는 기계문명을 예찬하는 미래지향적(future-oriented)예술사조가 나타난 반면 산업화.도시화에서 앞선 영국과 프랑스에서는 오히려 과거 회귀적인(past -oriented)미술공예 운동이나 비공업적인 제3세계에서 대안을 찾는 원시주의(primitivism)경향이 나타났는데 이는 예술사의 커다란 아이러니였습니다. 
마리네티(Marinetti)가 제창한 미래주의 선언의 요체는 아래와 같습니다.
(a)힘, 위험에 대한 사랑을 노래한다
(b)공격적 행동, 불면증, 경주자의 활보, 목숨을 건 도약, 주먹치기를 찬양한다.
(c)속도의 아름다움, 경주용 자동차를 선호한다.
(d)공격성이 있는 작품이 아름답다.
(e)군국주의, 애국심과 자유의 파괴적 몸짓, 아름다운 이념, 여성에 대한 조롱을 찬미한다.
(f)모든 박물관, 도서관, 아카데미를 파괴하고, 도덕주의, 페미니즘, 기회주의, 실용주의에 맞서 싸운다.

[공간에서의 독특한 연속성],보치오니 1914
[공간에서의 독특한 연속성],보치오니 1914

미래주의 선언이 일견 이해되는 부분도 있으나 전쟁과 군국주의, 여성 조롱의 찬미 등에 이르면 일반 대다수의 분노마저 자아냅니다. 미래주의 선언은 화려하게 서막을 올렸으나 수많은 논란을 야기하기도 했습니다.
미래주의자들은 예술이 과거를 파괴하고 속도와 기계의 역동성이 주는 유쾌함을 찬양토록 유도했습니다. 이들의 격렬함은 미완성 상태의 이탈리아 국가발전과 이탈리아 문화를 짓누르는 과거의 위대한 유산에 대한 부담, 그리고 현대문학, 예술사조의 상충적인 다양한 경향들을 갑자기 직면한 데서 오는 마음속의 혼란 등에 대한 조바심에 비례하고 있습니다. 
이들은 새로운 세계관을 제시함으로써 혼란을 극복코자 했으며 특히 피카소 등 입체파의 한계를 초월코자 했습니다. 그들은 입체파가 형태의 분석에만 몰두하는 형식주의라고 비난했습니다. 미래파는 입체파의 정적 이미지를 벗어나, 현대생활의 역동성이 드러나는 정서를 강조했고, 빠른 속도로 달리는 자동차, 기차, 경주용 자전거, 무희들, 움직이는 동물… 같은 대상을 속도감 있게 표현하는 것을 선호했습니다.
마리네티(Marinetti)의 미래주의 선언이 무솔리니의 파시즘(fascism)에 기여한 것은 용납할 수 없는 일이나 예술에 대한 새로운 시각을 제공했다는 점에서 결코 과소평가할 수 없습니다. 특히,시각예술(visual art)분야에서의 공헌도는 상당했습니다.
미래주의 덕분에 신화나 자연이나 인물에서 찾던 아름다움을 차가운 기계의 이미지에서도 찾을 수 있게 되었고 속도감과 운동성을 표현키 위해 회화에 시간적 요소를 도입케 되었습니다. 미래주의 선언은 이후 나타난 새로운 아방가르드(avant-garde)선언-다다이즘(dadaism), 초현실주의(Surrealism)- 출현의 단초가 되었습니다.

(6)미래주의의 고유한 특징(chara- cteristics)은 아래와 같이 요약할 수 있습니다
(A)과거와의 단절(breach with past)
(B)대담한 색상(bold colour)
(C)역동적인 선과 형태(line/shape)
(D)장식의 배제(rejection of decoration)
(E)기계, 속도, 산업화(machine.speed.industrialization)
(F)폭력의 미화(praise of violence)
(G)기술, 자동차, 현대적 상징(tech-nology.cars.symbol of modern-ity)
미학적(aesthetic)관점에서 보면,    “그들은 새로운 시대의 미(beauty)는 현대문명을 창조해가는 기계의 아름다움(beauty of machine)”이라고 주장합니다. 속도를 찬양하며 소음, 힘, 운동, 충돌, 모험, 젊음을 지향합니다. 속도와 운동을 하나의 캔버스에 담고자 했는데 신인상주의(Neo-impress-ionism)와 입체주의(cubism)에 영향을 받았습니다. 
그들의 사상은 고대 헤라클레이토스(Herakleitos)이래 배제되어온 변화와 생성에 대한 새로운 시각이며 전통적.공간적 사유에서 시간적 사유로의 전환을 의미했습니다. 미래파가 구상한 우연성의 미학은 다다이즘(Dad- aism)을 거쳐 현대미술의 새로운 경향으로 나타났는데 존재에 대한 시간적 사유는 동일성 대신 차이성을 화두로 삼는 현대철학과도 상통합니다.
이러한 경향이 추후 뒤늦게 미래주의에 합류한 데페로(Fortunato Depero), 프람폴리니(Enrico Pram-polini)등에 이르러서는 Kinetic art(윰직이는 조각), Cinetism(과학과 예술의 결합)으로 발전하게 됩니다.
미래주의는 1916년에 이르러 거의 그 수명을 다하게 되는데 그들의 역동성(dynamism)과 동시성(simultan-eity) 개념은 추후 러시아(Russia)의 곤차로바(Natalia Goncharova), 라료노프(Mikhail Larionov), 말레비치(Kasimir Malevich) 등과 영국의 소용돌이 화파(vorticism)에 큰 영향을 미치게 됩니다.
미래주의가 물의를 일으킨 원인과 이에 대한 반발을 살펴봅니다. 
미래주의는 폭력과 갈등을 조장하고 전통적인 가치 부정과 문화유산의 파괴 등 공격적이고 퇴행적인 활동을 주장함으로써 일반인의 분노를 유발시키고 사회 체제를 논쟁의 도가니로 몰아넣게 됩니다. 제1차 세계대전의 잔혹성을 접하게 된 예술가들은 미래주의의 전위적(avant-garde)관념을 타파하고 전통적 가치로 돌아가려는 경향을 보여, “질서로의 회귀(return to order)”현상이 도래하게 됩니다.
이에 따라 미래주의가 표방했던 파시즘적 주장(fascist dogma), 즉 공격적 팽창주의(aggressive expansio-nism)와 이탈리아 문화 우월주의(Italian cultural supremacy)도 막을 내리게 됩니다.
파시즘이 이탈리아에서 시작되고 이것이 미래주의 출현의 단초가 된 배후에는 아래와 같은 이유가 있습니다.
파시즘은 이탈리아 민족주의 (Italian nationalism)와 국가 우월주의(ultra-nationalism)가 조합되어 나타납니다. 노동조합 지상주의(syndi-calism) 혁명적 민족주의(revolution-ary nationalism), 실지 회복주의(irre-dentism:잃어버린 해외 이탈리아 영토 회복)등을 내세워 이탈리아 국민들의 자존심을 회복코자 했습니다. 
미래주의자들은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등 모든 부문에서 뒤떨어진 이탈리아가 앞으로 전진하기 위해서는 과거와의 확고한 단절을 통해서만 소기의 목적을 달성할 수 있다고 믿었습니다. 통상 미래주의 사고방식을 상징하는 영어표현은 ‘가능성과 확률’을 의미하는 형용사로 대변되는데 그들의 미래 시나리오(future scenario)는 plausible.possible.probable 의 3단어로 요약될 수 있습니다. 3단어 모두 비슷한 의미를 지니고 있습니다.
미래주의자들의 사고방식을 5가지로 집약하여 표현하기도 합니다..
(A)forget about predictions(예언/예측을 하지 말라)
(B)focus on signals(신호에 집중하라)
(C)look back to see forward(미래를 보기 위해 뒤를 돌아보라)
(D)uncover patterns(패텬/유형을 벗겨 버리라)
(E)create a community (공공체를 창출하라)
한편 미래주의가 영향을 미친 주요 예술사조는 다음과 같이 정리되고 있습니다.
(가)지대한 영향을 미친 화파
-정밀주의(Precisionism)
-광선주의(Rayonism)
-소용돌이 주의(Vorticism)
-과거주의(Passeism)
(나)일정한 부분에서 영향을 미침
-아르데코(Art Deco)
-구축주의(Constructivism)
-초현실주의(Surrealism)
-다다이즘(Dadaism)

미래주의 주요 예술가들의 생애를 들여다 봅니다..

톰마소 마리네티
톰마소 마리네티

(A)톰마소 마리네티(Filippo Tom-maso Marinetti)
1876년 이집트의 알렉산드리아(Alexandria)에서 출생한 시인·편집인·미술평론가·소설가로서, 미래주의 운동의 선구자가 됩니다. 프랑스에 삶의 기반을 두었으나 이탈리아로 자주 여행을 다녔습니다.
1907~1908년 유토피아적이고 상징주의적인 예술·문학 공공체였던 크레테이유 수도원(Abbaye de Creteil)과 깊은 관련을 맺었습니다. 1909년 출판된 미래주의 선언의 저자이며 1919년 파시스트 선언의 공동저자입니다. 1909년 프랑스 ‘르피가로(Le Figaro)’ 잡지에 ‘미래주의 창립선언(Manifeste fondateur de Futur-isme)’을 게재, 미래주의 선봉에 섰으며 무정부주의에서 파시즘에 이르기까지 모든 정치적 스펙트럼에 영향을 미쳤습니다. 그는 후일 무솔리니(Benito Musso-lini)를 적극 지지합니다.
1911년 이탈리아-터키 전쟁 발발시 그는 종군기자로 리비아에 갑니다. 이어,1912~1913년에는 제1차 발칸전쟁을 취재합니다. 이 기간 중 미래의 이상도시로 상정한 런던에도 자주 갑니다. 제1차 세계대전 중인 1915년 다른 미래파 회원들과 함께 트렌티노 지역에 주둔했습니다.
마리네티의 미래주의 선언이 파시즘에 동조한 것은 용납되기 어려우나 예술에 대한 새로운 시각을 제공했다는 점에서 과소평가 될 수 없습니다. 특히 시각예술 분야 발전에 커다란 공헌을 하였습니다. 그들로 인해 신화·자연·인물에서 찾던 아름다움의 근원을 차가운 기계의 이미지에서도 찾게 되고, 속도감과 운동성을 표현키 위해 회화에 시간적 요소를 도입하게 되었습니다. 
미래주의 선언은 후일 새로운 아방가르드(avant-garde)선언으로 이어지게 됩니다. 다다이즘(Dadaism).초현실주의(Surrealism)가 대표적인 실례입니다. 마리네티의 주요 예술(문학)작품으로는 파괴(destruction), 향연을 베푼 왕, 반중립 상태, 미래주의와 파시즘, 요리 선언,감촉주의 선언, 세상의 유일한 위생법, 전쟁, 미래파 연극 등이 있습니다.
(B)움베르토 보치오니(Umberto Boccioni/1882~1916)
1882년 레조디 칼라브리아에서 출생한 화가이며 조각가로 어린시절 제노바(Genova), 파도바(Padova)등으로 이주했으며, 1897년 로마 미술 아카데미에 입학하고 1901년 세베레니(Gino Severini)와 함께 발라(Giacomo Balla)의 작업실을 방문합니다. 1906년 파리로 이주, 인상주의(Impressionism), 특히 후기 인상주의 미술을 공부합니다.
1907년 밀라노로 이주, 색채 분리주의 화가들과 교류하고 1910년 미래주의 선언의 주동자인 Marinetti를 만납니다. 1910년 2월 카라(Carlo Carra), 루솔로(Luigi Russolo), 발라(Giacomo Balla), 세베리니(Gino Severini)와 함께 미래주의 선언(Manifesto dei Pittori Futuristi)발표에 동참합니다. 제1차 세계대전에 참전해 1916년 기병대 훈련도중 낙마사고로 사망, 미래주의가 내리막길을 걷는데 결정적 요인을 제공합니다. 
그는 조각이라는 시각예술에 ‘움직임(movement)’을 어떻게 구현할 수 있는가에 심취해 시간과 장소, 색채감 등을 통합하는 작품에 몰두했습니다. 보치오니는 “감성적 효과를 위해서 여성과 남성의 옷을 벗게 하는 예술은 죽은 예술”이라고 주장, 누드나 전통적인 인체표현 조각에 반대합니다. 그는 조형적 역동성(plastic dynamism)이라는 책을 출간해 미래주의 조각에서 중요한 속도와 역동성을 이론적으로 설명했습니다. 창의력에서 직관을 중시한 철학자 베르그송의 영향을 크게 받은 예술가였습니다. 
주요 작품으로는 공간에서의 역동성(unique form of continuity in space), 안티그라치오소(Antigrazioso), 공간에서의 병(bottle in space), 수평적 질감(horizontal volume), 현대 아이돌(modern idol), 탄력(elasticity), 자전거의 역동성(dynamism of bicycles)등이 있습니다.

움베르도 보치오니
움베르도 보치오니

(C)쟈코모 발라(Giacomo Balla/ 1871~1958)
1871년 토리노(Torino)에서 출생한 화가이며, 미술교사·시인으로서, 빛과 움직임, 속도 묘사에 열중했습니다. 그는 “달리는 말은 다리가 4개가 아니라 20 개이고 그 동작은 삼각형을 이룬다(A running horse has not 4 legs,but 20,and their movements are triangular)”라고 주장했습니다.
17세기 바로크(baroque)예술가들은 운동을 숙달된 붓터치를 이용해 윤곽을 깨뜨리는 방식으로 처리했으나 발라는 동작을 분석해 그 스펙트럼으로 운동을 표현합니다. 공간을 정지시키고 시간을 확장합니다. 동작을 더욱 분할하고 형태를 면으로 추상화시킵니다. 속도란 움직임인데 움직이는 물체는 흔들리므로 형태와 윤곽이 불분명합니다. 그 흔들림의 상태를 반복된 형식으로 그리는 데는 입체파처럼 형태를 면으로 단순화시킬 필요가 있습니다. 
또한 움직이는 물체는 색채가 불분명하므로 떨리는 색채표현은 점묘파(Pointilism)의 채색법이 효과적입니다. 움직임이 커질수록 형태와 색채는 더욱더 분해되어 추상화됩니다. 미래주의자들은 카메라의 동작분석에 크게 영향을 받고 시간이 지나면서 역동적 디자인을 개발 차원 높은 수준의 표현방식으로 속도를 형상화합니다.
발라는 특히 다음과 같이 역동성과 형태를 강조합니다. “우리는 역동적 디자인을 발명해야 하고 그와 함께 삼각형, 원뿔, 나선형, 타원, 원통의 형태를 표면화해야 한다” 주요 작품으로는, 자동차의 속력, 추상적 속, 소리, 바이올린 연주자의 손, 발코니를 뛰어다니는 소녀, 길거리 등불, 사랑의 숫자(numbers in love), 달리는 자동차 등이 있습니다.
(D)카를로 카라(Carlo Carra/ 1881~1966)
1881년 콰르넨토(Quargnento)에서 출생한 화가·평론가·작가·시인으로서, 형이상학적(metaphysical)회화에 몰두했습니다. 1906년 밀라노의 브레다 미술학교(Breda Academy)에서 수학했고, 1909~1915사이 미래파로 활동했습니다. 그 후 키리코 (Giorgio de Chirico)의 영향으로 형이상학적인 그림을 그리고 미술평론가로도 활동합니다. 말년에는 명상적 낭만주의 그림을 그립니다.
1899~1900 기간 중 파리로 이주해 만국박람회 기간 중 장식을 기획하고 프랑스 미술을 접하게 됩니다. 1910년 보치오니(Boccioni), 루솔로(Russolo), 발라(Balla)등과 함께 미래주의 선언에 동참합니다. 1913년 “소리·소음·냄새의 회화(The painting of Sounds,Noises,and Smells)”라는 선언을 통해 공감각(synaesthesia)에 대한 관심을 표명합니다. 그는 13세기 그림, 어린이 회화, 앙리 루소(Henri Rousseau)그림 등에 심취하여 일상적인 대상을 주제로 한 정물화에 몰두했습니다.
제1차 세계대전 중 형이상학적 그림에 심취해 불안감을 유발하는 도상을 수용,아이러니나 허무주의 성향이 배제된 작품을 그립니다. 그는 형이상학적 회화를 신비적, 고대적 양식으로 전환해 순수미술과 원시주의(primiti-vism)미술을 통합코자 노력했습니다. 또한, 예술과 정치의 만남을 지향하는 미술이론을 창안해 이탈리아 전통에 뿌리박은 조형적 가치로 복귀할 것을 주장했습니다. 
주요 작폼으로는, 발코니의 여성, 형이상학적 뮤즈(metaphysical muse), 계시록의 기수(horseman of apocalypse), 애국적 선언, 롯의 딸들, 어부들, 해안의 소나무(il pino sul mare), 서양기수(Western horseman)등이 있습니다.
(E)지노 세베리니(Gino Severini/ 1883~1966)
1883년 코르토나(Cortona)에서 출생, 평생 동안 파리와 로마를 오가며 활동했고,제1차 세계대전 이후 10년간 신고전주의와 ‘질서로의 복귀’ 기치를 내걸고 그림을 그립니다.
스라(Georges Seurat)의 영향으로 점묘주의(pointillism)에서 출발했고, 1909년 보치오니(Boccioni)등의 미래파 운동에 참여, 밀라노에서 미래주의 선언에 가담하고 미래파 국제화단의 발전에 공헌했습니다. 그 후 피카소(Picasso)의 입체주의 영향을 받기 시작, 점차 미래주의를 버리고 신고전주의적 작품, 추상적 구상, 정직성이 강한 프레스코화, 추상화 등으로 선회합니다.
이런 경향은, “입체주의로부터 고전주의까지(du cubism au classicisme)”을 발표한 1921년까지 작품 기조를 이루었으나, 1914년경 다시 추상적 구성을 시도하면서 바뀌게 됩니다. 1939년에는 일종의 절충적 작품을 선보이고, 그 후 추상적 화풍으로 변모합니다. 
1922년 피렌체에서 프레스코화를 제작, 벽화 모자이크에도 관심을 가졌고, 마티스(Henri Matisse)의 영향으로 장식미술 경향도 추가됩니다. 1935년 로마 콰드리에날레(quadrienale)상을 받고 1950년 베네치아 비엔날레 1등상을 수상, 말년에는 추상화가로 전향하게 됩니다. 
주요 작품으로는, 발타바린 상형문자, 여행의 기억, 적십자 열차, 푸른 발레리나, 피갈(Pigalle) 무희, 모성애(maternity), 거울과 오달리스크(odalisque with mirrors)등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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