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통제에도 꺾이지 않는 중국 반도체, 한국의 대응은?
美통제에도 꺾이지 않는 중국 반도체, 한국의 대응은?
  • 권도한 미래한국 기자
  • 승인 2024.09.03 18: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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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국의 제재 효과에 의문이 제기
- 미국 수출 통제가 중국 반도체 내수 호황 불러
- 한국, 미중 틈새 시장 노려야

미국과 중국이 반도체를 둘러싼 패권 경쟁을 지속함에도 불구하고 미국 반도체 기업 엔비디아가 올해 중국 시장에 120억 불(한화 약 17조 원) 규모의 AI 반도체를 판매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왔다. 반도체 컨설팅 회사인 SemiAnalysis의 추산에 따르면 엔비디아는 향후 수개월 동안 중국 시장을 겨냥해 제조한 ‘H20’ 반도체(개당 12000달러)100만개 이상 출시할 예정이다. 미국이 첨단기술 분야에서 대중국 견제를 강화하고 있지만, 제재 효과에 대한 의문이 제기되고 있는 이유다.

· 중 기술패권 경쟁의 한복판에 있는 엔비디아는 주요 시장인 중국을 잃지 않기 위해 미국 정부의 수출통제 조치에 맞서 제재 우회로를 적극 모색하고 있다. 엔비디아는 바이든 행정부의 202210월 수출통제 조치로 최고 성능인 ‘A100’‘H100’칩의 중국 수출이 금지되자 중국 수출용으로 사양을 다소 낮춘 ‘A800’‘H800’ 칩을 만들었다. 이후 202310월 수출통제조치가 강화되며 이마저 제한되자 ‘H100’ 칩의 연산 능력 대비 5분의 1 수준인 ‘H20’ 칩을 마련하여 중국 시장으로의 AI 반도체 공급을 지속하고 있다.

중국의 반도체 굴기를 제한하려는 미국의 수출통제가 오히려 중국산 반도체의 기술 개발을 가속한다는 경고도 제기되고 있다. 중국은 정부 주도로 자체적인 반도체 공급망 구축을 위해 전방위적인 노력을 하고 있으며, 일부 진척을 보이고 있다. 일례로 엔비디아의 대중국 반도체 수출은 지속되고 있으나 전체 매출에서 중국 시장이 차지하는 비중은 기존의 20%대에서 242분기에는 10%대로 대폭 감소했다.

반면, 중국 정부의 전폭적인 지원을 받는 화웨이의 지역별 매출 비중을 살펴보면, 해외 수출 비중이 줄어든 것에 비해 자국 내 매출 비중은 52%(18년 기준)에서 67%(23년 기준)로 증가했다. 중국 정부의 지시로 국가기관 등에서 화웨이의 반도체, 소프트웨어, 모바일기기 등을 적극 구매하고, 알리바바, 텐센트, 바이두 등의 중국 빅테크 기업들도 첨단 반도체 주문을 화웨이로 이전한 결과이다.

미국의 수출 통제가 중국 기업 내수 확대로

중국의 AI 반도체 스타트업에도 막대한 투자가 이어지고 있다. 글로벌 스타트업 투자 정보를 집계하는 Tracxn의 통계에 따르면 AI 반도체 스타트업에 대한 글로벌 투자자금 중 46.6%는 미국 기업에, 44%는 중국 기업에 투자됐다. 중국이 AI 반도체 주권을 확보하기 위한 자본력 싸움에서 미국에 밀리지 않기 위해 사력을 다하고 있음을 짐작할 수 있다. 중국 기업들이 아직은 엔비디아의 수준에 비견하는 AI 반도체를 설계하지는 못하지만, 화웨이, 바이두 등의 빅테크 기업들은 현행 미국의 수출통제대상이 될 수 있는 수준의 고성능 칩을 설계한 경험이 있으며, 엔플레임, 비런테크 등 스타트업들도 각종 AI 분야에서 활용되는 AI 반도체를 개발하는 중이다. 아이러니하게도 미국의 반도체 수출통제 덕분에 중국 반도체 기업들은 안정적인 국내 수요기반을 바탕으로 나름의 기술 발전을 가속하고 있다.

이에 맞서 미국은 중국이 자체적으로 반도체를 제조하지 못하도록 보완적 조치로써 반도체 제조 장비에 대한 수출통제도 강화하고 있다. 202210월 반도체 수출통제 조치 발표 이후 202310월 통제 대상인 반도체 제조 장비의 폭을 대폭 넓히고, 반도체 제조 장비 강국인 네덜란드와 일본을 수출통제에 동참시켜 대중국 압박을 강화했다. 하지만 중국은 네덜란드 반도체 기업 ASML의 노광장비 등 첨단 반도체 장비에 대한 접근이 차단되자 레거시 반도체에서 우위를 점하는 전략으로 대응하여 미국의 제재에 쉽게 굴하지 않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레거시 반도체는 통상 28 나노미터 이상의 구형 범용 반도체를 가리키며 높은 기술수준을 요구하지는 않으나, 자동차·군사장비·전자기기 등에 광범위하게 사용되어 국가안보와 밀접하게 연관된다.

글로벌 연구 조사 기업 Gartner27년에는 전 세계 레거시 반도체설비 중 중국의 비중이 1/3 이상을 차지할 것으로 전망하여, 미국 내 중국의 레거시 반도체 무기화에 대한 우려가 증가하고 있다. 중국은 미국의 제재에 맞서 막대한 자금력과 정부의 의지를 바탕으로 AI 반도체, 제조 장비 등 반도체 생태계 전반에서 국산화를 지속 추진하며 미 · 중 간의 반도체 전쟁은 쉽게 종식되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 중 간 반도체 전쟁은 한국 반도체 산업에 리스크 요인임과 동시에 기회를 제공한다. 중국의 반도체 제조 장비 내재화는 한국 반도체 제조 장비 수출에 직격탄이 될 수 있다. 한국 반도체 제조 장비 수출에서 중국이 차지하는 비중은 44%(23년 기준)에 육박하는데, 이중 완제품 형태로 수출하는 증착, 웨이퍼 운송용 기기, 검사장비 등은 중국이 적극적으로 국산화에 주력하는 분야이다. 이외 한국의 반도체 제조 장비 주요 수출 대상국인 미국, 대만, 싱가포르는 완제품이 아닌 부분품 형태가 절반 이상이기 때문에, 완제품 수출의 신규 고객사를 확보하는 것이 필요하다.

미국이 중국의 반도체 굴기를 꺾기 위해 제재 수위를 강화할 수 있는 점은 또다른 리스크 요인이다. 블룸버그 등의 외신은 바이든 행정부가 이르면 다음 달부터 중국으로의 AI 반도체 칩과 제조 장비에 대한 수출통제 기준을 강화하는 방안을 고려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현재 엔비디아가 중국에 수출하는 ‘H20’ 반도체 칩의 수출이 금지될 수 있으며, 화웨이를 포함한 120개 이상의 중국 기업이 미국의 무역 블랙리스트인 엔티티 리스트(Entity list)에 추가될 가능성이 있다. 또한 한국 등 가치공유국의대중국 반도체 수출을 제한하기 위해 해외직접생산품규칙(Foreign Direct Product Rule, FDPR)을 적용할 가능성도 있다.

 

한국, 미중 틈새 시장 노려야

한국 기업의 반도체에도 미국의 설계 기술, 핵심 설계자산(IP) 등이 활용되어 한국이 FDPR 대상국으로 지정되면 한국 반도체기업에 제한적이나마 영향을 미칠 수 있기에 향후 동향에 대한 면밀한 모니터링이 필요하다.

한편 폭발적으로 증가하고 있는 중국의 AI 반도체 투자는 한국 반도체 파운드리(위탁생산) 기업에게 새로운 고객사를 확보할 수 있는 기회로 작용할 수 있다. 특히 중국은 반도체 밸류체인 중 팹리스(설계) 분야에서 우리나라보다 앞서고 있으며, 반도체팹리스 기업의 수도 3400여개에 육박하여 우리나라의 200여개 보다 월등히 많다. 반면 반도체를 위탁생산할 수 있는 업체는 한정적이며, SMIC, 화홍반도체 등의 자국 기업이 있지만 기술 역량과 반도체 생산 경험은 우리나라 기업 대비 뒤처진다.

따라서 AI 반도체의 수출통제로 인한 중국의 AI 반도체 투자 확대는 한국 반도체 파운드리 기업의 수요 확대에 긍정적 영향을 미칠 수 있다. AI 반도체에 대한 수요 분화와 맞물려 중국 기업의 투자가 어느 분야에서 이루어지는지 파악하고 한국 기업이 진출할 수 있는 틈새시장을 공략하는 것이 필요하다.

미 정부의 대중국 반도체 수출통제 조치에 맞선 미국과 중국 기업들의 대응은 글로벌 불확실성 시대에 유연한 대응 전략의 중요성을 시사한다. 수출통제 조치라는 불가항력적인 대외조건에 따라 엔비디아는 중국 수출 전용 제품을 출시했고, 화웨이는 자국 내 매출 비중을 늘리며 유연한 대응 전략을 마련했다. 이처럼 한국 반도체 제조 장비 기업은 중국 이외의 신규 고객사를발굴할 필요가 있고, 파운드리 기업은 높아지는 중국 내 수요를 적극 공략할 필요가 있다.

또한 이들의 사례는 비단 반도체 기업뿐만 아니라 어느 때보다 불확실한 글로벌 비즈니스 환경에 놓여 있는 모든 한국 기업들에게 필요한 생존전략을 일깨워준다. 고난을 극복해 오히려 기회로 삼는다는 이환위리(以還爲利)’라는 말처럼 어려운 환경 속에서도 기민한 대응을 통해 틈새를 공략한다면 이는 또다른 도약의 기회가 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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