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은 호국보훈의 달입니다. 올해도 문재인 대통령은 국립서울현충원에서 열린 66회 현충일 행사에 참석해 추념사를 했습니다. 추념사는 한반도 평화와 번영, 한미회담의 성과 그리고 얼마 전 군에서의 성추행 사건과 부대 급식문제 등의 내용을 담았습니다.
문재인 대통령이 취임 후 지금까지 모두 5차례의 현충일 추념사를 했는데 어찌 된 영문인지 6·25남침에 대한 언급이 단 한 번도 없었습니다. 이것은 마치 어버이날에 어버이에 대해 말하지 않고 어린이날에 어린이에 대해 얘기하지 않는 것과 와 무엇이 다를까요? 참으로 기이한 일입니다.
그러다 보니 현충일에 보훈의 중요성을 강조하면서도 아직까지 단 한 번도 거론조차 되지 않은 분들이 있습니다. 바로 6·25전쟁 당시 북한에 억류된 국군포로, 그리고 민간인 납북자들입니다. 그렇다면 문재인 대통령은 왜 6·25남침을 말하기 꺼려 하고 국군포로와 민간인 납북자 문제에 대해 입을 닫고 있는 것일까요?
문재인 대통령은 취임 이후 지금까지 모두 5번의 현충일을 맞이했습니다. 그때마다 국립서울현충원에 참석해 추념사를 했어요. 올해는 특히 국가보훈처 창설 60주년이 되는 해이기도 합니다. 문 대통령은 “진정한 보훈은 애국심의 원천이다” 이렇게 언급하면서 앞으로도 독립운동의 사료 수집과 함께 국가유공자를 끝까지 찾아내 보훈하겠다고 약속했습니다.
이미 돌아가신 분들의 업적을 기리고 보훈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북한에 억류됐던 국군포로들, 그리고 북한에 강제로 납치된 민간인 납북자들의 생사를 확인하는 일, 이거 매우 중요한 일 아니겠습니까? 1953년 정전 당시 유엔군사령부가 집계한 국군포로는 8만2000명에 달합니다. 그런데 포로 교환으로 돌아온 인원은 고작 8300여 명뿐입니다. 민간인 납북자는 8만에서 10만 명에 이르는 것으로 추산되고 있구요.
올해 현충일 추념사에서 대통령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국가가 나와 나의 가족을 보살펴줄 것이라는 믿음이 있을 때 우리는 국가를 위해 몸을 바칠 수가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국가가 국민을 보살펴줄 것이라는 믿음이 필요한 거죠. 그런데 지금 북한에 생존해 있는 국군포로들, 민간인 납북자들이 있는데 대한민국은, 대통령은 그분들에 대해 왜 아무런 말이 없는 걸까요? 그것은 바로 북한 김정은의 눈치를 보는 문재인 정부의 굴종적인 대북정책, 대북인식 때문입니다.
문재인 대통령은 어떠한 상황에서도 남북문제는 대화로 풀어야 한다, 이렇게 주장합니다. 그러다 보니 북한과 대화를 하기 위해 북한이 껄끄럽게 여기는 국군포로, 납북자 문제는 아예 입도 뻥긋 못하게 되는 것이죠.
하지만 그런식으로 북한 눈치만 보면서 했던 남북회담 결과가 지금 어떻게 나타나고 있나요? 북한이 개성 남북공동연락사무소를 하루아침에 폭파시키고 삶은 소대가리 운운하면서 문재인 정부를 비웃는 거 아닙니까?
문재인 대통령의 다섯 차례 현충일 추념사에서는 ‘6·25 남침’이라는 표현도 아예 찾을 수도 없습니다. 작년 현충일 추념사에서 딱 한 번 ‘북한군의 남하’라는 표현을 썼어요. 아니 북한군의 남하라니요... 북한군이 남쪽으로 그냥 산보를 나왔었나요? 정말 김정은 눈치를 본다 해도 이건 너무 한 거 아닙니까?
이처럼 ‘북한군의 남침’이라는 표현마저도 제대로 쓰지 못하고 북한의 전쟁 도발이라는 역사적 책임을 간과하다 보면 앞으로 어떤 일들이 벌어지게 될까요?
북 눈치보다 책임 방기하면 발생할 일
첫째, 6·25전쟁의 책임자가 없어집니다. 훗날 전범의 책임을 물을 수 없게 되는 거죠. 용서를 하고 싶어도 용서의 대상이 없는 것입니다. 6·25전쟁은 역사속에 그냥 남과 북의 쌍방과실이며 민족의 슬픈 사건으로만 기록되는 겁니다.
전쟁을 일으키고 유태인을 학살한 나치의 만행을 끝까지 찾아내고 심판하는 유럽의 나치 전범재판소의 정의실현과는 너무나 비교가 됩니다. 전범자들에 대해 철저하게 심판한 독일이 오히려 통일을 이룩했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둘째, 문재인 정부가 그토록 하고 싶어하는 종전선언도 사실상 불가능합니다. 전쟁이 언제 어떻게 시작됐는지에 대한 인식 없이 전쟁을 끝내자는 서명식만 한다고요? 22개 나라에서 참전한 유엔군은 왜 참전했으며 돌아오지 못한 포로들과 실종자들 처리는 어떻게 되는 겁니까? 이런 중요한 문제를 그냥 역사 속에 덮어두는 것은 말이 안 되는 것이죠.
셋째, 6·25전쟁은 미제국주의의 침탈에 맞서기 위한 민족해방전쟁이라는 북한의 주장에 힘을 실어주게 됩니다. 김일성이 1949년부터 스탈린과 모택동을 비밀리에 접촉하면서 치밀하게 준비했고 전격적으로 남침했다는 역사적 사실이 다시 은폐됩니다. 이것은 명백한 역사 왜곡입니다.
넷째, 자국민을 보호하고 끝까지 책임진다는 국가적 책임의 포기입니다. 지금 북한에 몇 명의 국군포로가 생존해 있는지도 모르면서 보훈의 책임을 다하는 국가라고 할 수 있나요?
문 정부의 이런 미온적인 태도와는 달리 법정에서는 희망적인 소식도 전해지고 있습니다. 지난 3월에는 김영수 서울중앙지법 민사 단독 판사는 아주 의미 있는 판결을 내렸습니다.
6·25전쟁 납북자의 딸이 북한 김정은을 상대로 제기한 손해배상 청구소송에서 “피고인들은 원고에게 5000만원을 지급하라”며 원고 승소 판결을 내렸습니다.
물론 이 판결 내용이 실현되기 위해서는 여러 가지 현실적인 장애물이 있기는 합니다.
하지만 이 판결문에서 “북한은 헌법 체계상 국가로 볼 수 없어 대한민국의 재판권 행사가 가능하다. 북한의 불법행위가 인정된다”고 밝혔기 때문에 앞으로 6·25 국군포로와 납북자 문제에 대한 법적인 접근의 실마리를 주고 있습니다.
지난해 7월에도 국군포로 한모 씨와 노모 씨는 북한과 김정은을 상대로 한 손해배상 청구소송에서 최초로 승소한 일이 있었습니다. 김영아 서울중앙지법 판사는 북한을 민법상 ‘비법인 사단’으로 판단해 위자료 지급 의무가 있다고 판결했어요. 바로 이런 것이 진정한 보훈, 진정한 역사 바로 세우기 아닌가요?
이와 함께 매우 중요한 법안이 하나 있습니다. 일반인들에게는 많이 알려지지 않은 법안인데요. 바로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 기본법’입니다. 일명 ‘과거사 정리법’이죠.
이 법안 제 2조 5항에 따르면 “해방 이후 대한민국의 정통성을 부정하거나 대한민국을 적대시하는 세력에 의한 테러, 인권 유린과 폭력, 학살, 의문사 피해에 대해서는 진실을 규명한다”라도 돼 있습니다. 이와 함께 손해배상을 받을 수 있도록 정해 놓았습니다.
6·25 전쟁 때 북한군에 의한 각종 학살과 납치, 폭력에 대해 손해배상을 받을 수 있는 것입니다. 전쟁 이후에도 남파 간첩이나 좌익무장 폭력세력에 의해 입은 피해를 배상 받을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 법은 지금까지 주로 진보진영에서 국군과 경찰의 공권력 행사 차원에서 일어났던 각종 민간인 피해자들에게 배상해 주기 위한 근거 법안으로 활용돼 온 것이 사실입니다.
그러나 이제는 6·25전쟁에서 북한군에 의한 피해, 좌익 단체들에 의한 피해를 떳떳하고 분명하게 밝힐 필요가 있습니다. 정부가 소극적이라면 시민단체와 정치권이라도 나서야 합니다.
소설 <1984>의 작가인 조지 오웰은 말했습니다. “과거를 지배하는 자가 미래를 지배한다. 현재를 지배하는 자가 과거를 지배한다.”
정말 그렇습니다. 그래서 현재의 권력을 잡은 권력자들은 그렇게 열심히도 과거의 역사를 자신들 입맛에 맞게 해석하려고 애를 쓰나 봅니다. 때로는 역사 바로 세우기라는 이름으로 또 때로는 적폐청산이라는 이름으로 말이죠.
그러나 권력자들이 함부로 과거 역사를 왜곡시키지 못하게 해야 합니다. 문재인 대통령도 진정한 보훈은 보훈처를 장관급 기구로 격상하고 예산을 늘리는 데만 있는 것이 아니라 역사적 사실을 정면으로 직시하고 나라를 위해 희생한 국민 한 사람 한 사람을 기억할 때만 가능하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6·25전쟁 때 북한에 억류된 국군포로와 민간인 납북자들의 진실이 밝혀지고 그분들과 그 가족들을 보훈하고 위로할 수 있는 날이 하루빨리 오기를 기대해 봅니다.
※이 칼럼은 ‘낭만보수 영우본색’ 유튜브에 함께 소개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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