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osner의 <법경제학>은 미국을 비롯한 여러 나라의 법률가들이 가장 널리 읽는 책 중의 하나다.
이 책은 1973년 초판이 발간된 후 2014년 9판까지 발행되었는데 처음 출판되었을 때 경제학을 광범위한 법률 문제에 적용한 체계적 분석으로 큰 관심을 모았다.
많은 학자가 법경제학의 발전에 크게 기여였지만 Posner만큼 다양한 법률 분야에 업적을 남긴 경우는 찾아보기 힘들다.
저자인 Posner는 1939년 뉴욕에서 출생하여 예일대에서 영문학을 전공하였다. 그후 하버드대 로스쿨을 졸업한 후 스탠퍼드대 교수를 거쳐 최근까지 시카고대 로스쿨 교수를 역임하였다.
1981년부터 2017년까지 미연방 항소법원 판사로 재직하였다. 미연방 법원 판사는 대부분 종신임에도 그는 2017년 갑자기 은퇴하였는데 최근에야 알츠하이머병 때문으로 밝혀졌다.
그는 40권에 가까운 책을 비롯하여 많은 논문을 저술하였고 미국에서 가장 많이 인용되는 법률가로 알려져 있다.
Posner는 <법경제학> 서문에서 경제학이 다양한 법률 문제를 분석하는 강력한 수단이라는 점을 분명히 하고 있다. 경제학은 어떤 사건이나 충격이 경제나 관련 시장에 초래하는 결과를 예측하고 그러한 결과가 사회적으로 바람직한지 판단한다.
법경제학은 이러한 경제학 분석 방법을 이용하여 어떤 법리나 법 규정이 관련 당사자에 어떤 영향을 주고 그 결과 어떠한 결과가 초래될지 예측한다.
나아가 그렇게 초래된 결과가 사회적으로 바람직한지 판단하며 사회적으로 바람직한 결과를 초래할 수 있는 법리나 법 규정이 무엇인지 모색한다.
<법경제학>은 경제학자들에게 법률의 경제적 구조를 이해하는 데 도움을 주지만 법률가들에게 법체계와 법 제도의 일관된 논리를 파악하는 데 큰 도움을 준다.
법률가들에게 경제학을 다양한 법률 문제에 적용하여 분석하는 일은 쉽지 않다. 경제학이 수학모형을 이용하여 분석할 때가 많고 지나친 엄밀성으로 인해 구체적 법률 문제와 거리가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법경제학>은 복잡한 수학모형을 이용하지 않더라도 현실의 법률 문제에 대한 경제분석을 어떻게 잘 할 수 있는지 보여준다. 그래서 경제학이나 수학을 모르더라도 책이 논리를 이해하는 데 그리 어렵지 않다.
법경제학에 관한 뛰어난 책은 많이 있는데 Posner의 <법경제학>만큼 거의 모든 법률 분야를 분석한 책은 찾아보기 힘들다. 민법과 형법, 상법과 금융시장에 관한 법률, 경제규제법, 세법, 민·형사소송법, 헌법.
국제법을 비롯하여 마약범죄, 예술품절도, 성범죄, 대리모, 국기모독, 사면권, 민주주의 이론, 테러 등 광범위한 법률문제를 분석하고 있다.
Posner가 이러한 분석을 통해 보여주려고 하는 것은 여러 법률 분야에 형성된 법리의 근저에는 대부분 경제적 계산이 자리 잡고 있다는 점이다. 한 나라의 법체계는 다양한 분야로 구성되어 있고 분야마다 고유한 법리가 있다.
상호연관성이 없을 것으로 보이던 법리를 경제학을 통해 살펴보면 이들을 관통하는 논리를 발견할 수 있다는 것이다.
Posner는 이를 부(富)의 극대화라고 여기고 있다. 영미법에서 보통법으로 일컫는 민법과 형법 분야의 법리는 대부분 부의 극대화를 고려한 것으로 해석된다는 것이다.
그리고 제정법이나 헌법은 그렇지 않은 경우가 많은데 그렇더라도 여전히 근저에는 경제적 고려가 스며들어 있고 경제분석으로 보면 잘 이해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경제학이 다양한 법리를 이해하고 이를 개선하는 데 유용하다는 것이다.
경제적 고려 없는 입법은 정의와 효율성 모두 놓쳐
학문으로서 법경제학은 미국의 다양한 법률 분야에 영향을 줬고 법학 교육도 크게 변화시켰다. 거의 모든 미국의 로스쿨이 법경제학 과목을 개설하고 있으며 미국 법원의 판결도 법경제학의 연구 성과를 일부 반영하고 있다.
하지만 법률을 효율성이라는 측면에서 분석하는 것은 아직 많은 법률가를 불편하게 하고 있다. 정의와 효율성은 서로 다르며 규범으로서 법이 효율성을 추구하지 않기 때문이다.
효율성을 추구한다는 명분으로 법이 개인의 행위를 제한하거나 강제하게 되면 개인의 자유와 재산권이 위험에 빠져 효율성이 오히려 크게 줄어들 수 있다.
정의의 실현이나 약자의 보호에 경제적 비용이 발생한다는 것은 분명하다. 권력자가 경제적 고려 없이 정의나 약자 보호를 명분으로 무분별한 입법을 하게 되면 경제가 어려움에 빠져 정의의 실현이나 약자의 보호에 필요한 재원의 마련이 어렵게 된다.
그렇게 되면 정의와 효율성을 모두 놓치게 된다. 실현할 수단이 없어 말의 성찬에 그친 정의만큼 공허한 것은 없는 것이다.
Posner의 <법경제학>이 우리 사회에 주는 메시지는 분명하다. 우리 사회는 민주화 이후 법치의 확립이라는 과제를 안고 있다. 하지만 어떤 법이어야 하는가에 대한 고민 없이 집권 세력의 이념을 강제하기 위한 수단으로 법이 제정되는 경우가 많다.
그 결과 소수를 약탈하여 다수에게 분배하는 약탈적 입법이 쉽게 제정되고 있다. 이것은 법치가 아니라 법이 합법을 가장하기 위해 이용되는 것에 불과하다. 우리 사회가 장기적으로 번영하려면 성장과 복지의 두 바퀴가 잘 굴러가야 한다.
그러려면 입법이나 판결이 효율성을 추구하는 것은 아니더라도 경제적 고려를 반영하여야 한다. 그래야 장기적으로 복지를 위한 재원이 마련될 수 있다. 나아가 법이 추구하는 정의의 실현이나 약자의 보호도 가능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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