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단] 한 국가와 문명이 가진 흥망성쇠의 문법
[논단] 한 국가와 문명이 가진 흥망성쇠의 문법
  • 신중섭  강원대 윤리교육과 교수
  • 승인 2024.09.05 17: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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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서양의 침체와 동양(중국)의 부상은 국가 또는 문명의 흥망성쇠와 관련해 학문적 관심이 되었다. 서양이 앞서가던 중국을 어떻게 따돌리고 세계를 주도하는 문명권으로 부상하게 되었는가가 관심사였다. “어떻게 서양이 동양을 지배하게 되었는가?”라는 질문을 제기하게 된 것이다. 이 질문은 “왜 근대 서양에서 과학혁명이 일어났는가?”와 쌍둥이 질문이다. 기술에서 서양보다 앞서 있던 여러 지역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하필이면 왜 서양에서 과학혁명이 일어났는가가 학문적 탐구의 대상이 되었던 것이다. 

우리는 인류 역사에서 대분기를 몇 차례 경험했지만 그 가운데 가장 큰 대분기는 서양 근대 문명의 발생이다. 서양 근대 문명의 발생은 인류 문명사에서 가장 큰 변화를 초래했다. 여러 가지 지수에서 수직 상승이 일어났다. 인구, 수명, 건강에서 이전과는 전혀 다른 변화가 발생했던 것이다. 이것을 앵거스 디턴은 ‘The Great Escape’라고 했다.  

아편전쟁은 혁신에 성공한 서구가 가진 제도의 힘이었다.디턴은 구체적인 사실을 분석함으로써 ‘The Great Escape’가 가져다준 혜택을 여러 관점에서 입증했다. 그는 이런 분석을 통해 인류 문명이 점점 더 발전하고 앞으로도 더 발전할 것이라는 낙관적인 전망을 설파했다. 그러나 그는 ‘The Great Escape’로 인한 성장은 필연적으로 국가 안에서의 불평등과 국가 간에 불평등을 초래했다는 사실도 잊지 않고 지적했다. 

아편전쟁은 혁신에 성공한 서구가 가진 제도의 힘이었다.

사회와 문명의 몰락 

법칙디턴의 ‘The Great Escape’을 읽으면서 내 머릿속을 스친 생각은 지금 우리가 관심을 가져야 할 것은 ‘The Great Escape’ 뿐만 아니라 니얼 퍼거슨의 ‘The Great Degeneration, Civilization: The West and the Rest’와 이안 모리스의 ‘Why the West Rules - For now’이다. 퍼거슨과 모리스는 서양 문명이 중국을 추월한 이유와 왜 서양이 중국에 추격을 당하고 앞으로는 중국이 미국(서양)을 앞설 수도 있는가를 분석했다. 국가나 문명의 발전 방식과 몰락 방정식을 학문적으로 탐구한 것이다. 그들이 제시한 방정식은 다음과 같다.

“1500년경 유라시아 대륙 서쪽 끝 몇몇 작은 국가들은 과연 어떤 연유로 다방면에서 훨씬 복잡한 사회를 이루고 있던 유라시아 대륙 동쪽 국가들을 포함해 전 세계를 지배하게 된 것일까?이 질문에 다른 질문들이 꼬리를 물고 이어졌다. 만약 과거 서양의 패권을 제대로 설명할 수 있다면 미래도 예측할 수 있을까? 이것이 정말 서양 패권 시대의 끝이자 동양 패권 시대의 시작일까? 다시 말해 우리는 서구 유럽에서 르네상스와 종교개혁에 이은 과학혁명과 계몽주의를 동력으로 대서양을 건너, 오스트레일리아, 뉴질랜드를 지나, 마침내 산업혁명과 제국의 혁명시대를 거치면서 절정에 달한, 인류 대부분을 지배했던 문명의 황혼을 목도하고 있는 것일까?” 

이런 질문을 제기하고 퍼거슨은 서양과 세계의 나머지 국가들을 구분 짓는 제도, 관련 개념, 행위가 복합된 여섯 가지 비장의 무기 곧 경쟁, 과학, 재산권, 의학, 소비사회, 직업윤리를 설정했다. 그 뒤 퍼거슨은 대분기의 원인을 탐색하면서 인간 조직을 두 단계로 구분한 경제학자 더글러스 노스, 존 월리스, 배리 와인개스트를 인용했다. 
첫 번째 단계는 자연 상태 즉 ‘제한적 접근 패턴’이란 이름을 붙인 단계로 다음과 같은 특징을 갖는다. △ 느린 경제성장 △비교적 적은 수의 민간조직 △국민의 동의 없이 운영되는 작은 중앙정부 △개인 및 왕가의 혈통에 따라 조직되는 사회관계가 그것이다.  

두 번째는 ‘개방적 접근 패턴’으로 그 특징은 다음과 같다.△빠른 경제성장 △다양한 조직을 갖춘 풍요롭고 활기찬 시민사회 △크고 분화된 정부 △법치주의처럼 비개인적인 힘에 지배되는 사회적 관계, 안정적인 재산권과 공정성, 이론뿐일지라도 보장되는 평등.

영국을 시작으로 서양의 여러 나라들은 이런 단계를 거쳐 대분기를 맞이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퍼거슨은 오늘날 서양 문명의 퇴보를 서양 제도의 쇠퇴로 설명하면서 오랫동안 봉인되어 있던 블랙박스 4개 곧 민주주의, 자본주의, 법치주의, 시민사회를 분석했다. 모리스가 말하는 ‘사회 발전’은 ‘기본적으로 일을 처리하는 사회적 능력, 자신들의 목표에 맞게 물리적, 경제적, 사회적, 지적 환경을 형성해내는 사회의 능력’을 의미한다. 

모리스는 ‘사회발전지수’를 ‘에너지 획득, 조직화, 전쟁 수행 능력, 정보 기술’을 통해 측정했다. 그는 2000년에 얻을 수 있는 사회 발전의 최고치를 각각 250점, 전체 1000점으로 설정했다. 모리스는 혁신이 초래하는 결과를 다음과 같이 기술한다. 모리스가 말하는 혁신은 디턴의 ‘성장’ 개념과 유사하다. “혁신은 변화를 의미하며 기쁨과 고통을 동시에 초래한다. 사회 발전은 승자와 패자를, 부자와 가난한 자라는 새로운 계급을, 남녀노소 사이에 새로운 관계를 창출한다. 

후진성의 이점이 이전에 주변부에 머물렀던 이들에게 새로운 힘을 부여하면서 완전히 새로운 중심부를 만들어 내기도 한다. 사회 발전은 점점 더 커지고 복잡해지고 관리하기 힘들어지는 사회에 의존한다. 그러므로 역설, 즉 사회 발전이 바로 사회 발전을 저해하는 바로 그런 힘을 창출한다는 역설이 발생한다. 그런 힘이 통제를 벗어날 때 그리고 특히 변화하는 환경이 불확실성을 증가시킬 때, 기원전 2200년경처럼 혼란과 파괴, 붕괴가 따를 수 있다.”

노벨경제학상 수상자인 앵거스 디턴 미국 프린스턴대학교 교수
노벨경제학상 수상자인 앵거스 디턴 미국 프린스턴대학교 교수

발전의 한계, 뚫지 못할 때 망한다

모리스에 따르면 역사는 새로운 문제를 야기하고 그 해결을 요구하는 세계에 적응해가는 거대하고 복잡한 과정이다. 사회 발전은 그 발전을 가로막는 새로운 힘을 생성한다. 사람들은 역설에 직면해 그것을 해소하지만 어떤 역설은 진정으로 변혁적인 전환에만 굴복하는 단단한 천장을 형성한다. 천장을 만나면 사회는 그것을 돌파하기 위해 무엇을 해야 할지 알지 못한다. 단단한 천장에서 발전과 붕괴의 양 갈래 길을 만난다. 

사회가 천장에 봉착하면 꼼짝하지 못하고 몇 세기를 지속하기도 한다. 그 사회가 단단한 천장을 돌파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내지 못하면 모리스가 ‘묵시록의 다섯 기수’라고 부른 기후변화, 기아, 질병, 이주, 국가붕괴가 나타난다. 특히 나머지 4개가 기후변화의 시기와 일치하면 사회 발전은 수 세기 동안 지체되거나 암흑기에 접어든다. 

과거의 한 문명과 한 나라의 흥망성쇠를 이야기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다. 과거에 일어난 흥망성쇠를 분석해 역사를 인과적으로 설명하는 것은 역사가들의 흥미로운 주제였다. 그러나 오늘날의 한 문명이나 나라의 흥망성쇠를 예측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흥해가는 나라와 망해가는 나라를 특징짓는 요인들은 존재한다. 그 요인들을 어떻게 국가 운영에 반영하는가는 학문적 논의가 아닌 정치적 결단의 문제이다.

디턴이 에필로그에서 말하고 있는 ‘후진성의 이점’을 우리는 더 이상 누릴 수 없게 되었다. 우리나라에서도 ‘빈곤과 물질적 결핍에서 벗어나는 원동력인 경제성장’이 흔들리면서 불평등이 확장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성장의 동력을 찾으려는 노력보다는 성장 둔화를 극복할 수 없는 현실로 인정하고, 불평등 해소를 무조건 선으로 인정하는 우리의 현실에 디턴은 여러 가지 시사점을 주고 있다. 이제 우리는 분배에 대한 욕구를 자제하고 성장의 리듬을 회복해야 한다. 

주변부에 내재한 뜻밖의 기회, ‘후진성의 이점’


저명한 고고학자이자 역사가인 이언 모리스 교수는 <왜 서양이 지배하는가>에서 동양과 서양이라는 구분이 생겨난 기원전 1만4000년부터 서기 2000년까지 유라시아 양 끝에서 유래해 경쟁한 사회들의 발전 과정을 객관적 분석틀을 통해 과학적으로 파헤친다.  

그에 의하면 사회 발전 수준이 변화하면 사회 발전이 요구하는 자원도 변하게 마련이다. 그러면 한때 중요하지 않았던 지역들이 자신의 미진했던 부분에서 오히려 유리한 요소를 찾아낼 수도 있다는 것. 이것이 ‘후진성의 이점’이다. 

17세기 이전까지 서유럽은 서양의 주변부에 불과했다. 메소포타미아 지역에서 태동한 서양의 핵심부는 지중해 지역으로 자리를 옮겨 1000년이 넘는 세월 동안 서유럽을 미개한 지역으로 남겨뒀다. 그러나 15세기 콜럼버스와 바스코 다가마를 필두로 한 탐험가이자 식민주의자들이 아메리카 대륙을 발견하자 상황은 역전되었다. 

교역과 경제의 중심지는 지중해에서 대서양으로 자리를 옮겨갔고, 대서양 경제가 새로이 부상하게 된 것이다. 더불어 후진 지역에 위치해 에스파냐 절대왕정과 같은 간섭에서 자유로웠던 네덜란드나 잉글랜드의 상인들은 오히려 그 후진성으로 말미암아 부를 좇아 무역과 금융 사업에 몰두할 수 있었다.  

과학혁명으로 인해 기술이 충분히 축적되어 있었고, 스텝 지대를 통해 침입하던 이민족을 걱정하지 않아도 되며, 대서양 경제를 창출해 부를 축적할 수 있었던 서유럽은 산업혁명이 일어나기에 최적의 조건을 갖추고 있었다고 저자는 결론 내린다. 11세기 송나라가 칭기즈칸에 의해 도륙되지 않았더라면 발견할 수 있었을지도 모르는 화석연료의 활용법, 즉 증기기관을 통해 화석연료를 운동에너지로 전환하는 방법은 서양의 사회발전지수를 극도로 증가시켜 서양을 세계의 지배자의 자리에 올려놓았다. 그러나 동양은 산업혁명을 맞이할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았다. 원인은 지리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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