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단] 사회·정치적 양극단화와 언론의 책임 
[논단] 사회·정치적 양극단화와 언론의 책임 
  • 미래한국 편집팀
  • 승인 2024.09.10 02:2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우리만큼이나 정치적 양극단화가 심각한 미국 학계에서는 정치적 양극단화가 ‘사회적 정체성’화 됐다는 주장이 힘을 얻고 있다.

스탠포드 대학의 정치학자인 아옌가 교수 연구팀은 정책 선호에서는 민주당과 공화당 지지자들의 차이가 과거보다 커졌다고 볼 만한 근거는 약한 반면, 경쟁 정당에 대한 ‘적대감’은 과거보다 크게 높아졌다는 것을 밝힌바 있다. 이것은 정치적 양극단화가 더 이상 정책 입장의 차이가 아닌 ‘정체성’에 기반한 갈등으로 발전했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다. 

가령 미국 유권자들이 경쟁 정당의 지지자들에 대해 가지는 적대감은 타 인종에 대한 적대감보다 훨씬 높다. 또 미국에서 매년 결혼하는 커플들 중 동일한 정당을 지지하는 커플이 과거보다 크게 늘어났다는 연구결과도 있다. 이는 정치적 양극단화가 일상생활의 영역으로까지 확장되었다는 것을 시사한다. 

모든 사회적 논의에서 진영논리가 팽배한 한국 사회에서도 정치적 양극단화가 사회적 정체성으로 고착화되고 있는 듯하다. 정치적 양극단화가 내집단(in-group)과 외집단(out-group)간의 갈등으로 정체성화 하여 더 이상 이성적인 합의에 이르는 것이 불가능한 수준으로 악화되고 있는 것이다. 양극단화 된 미디어가 정치적 양극단화의 주요 원인 중 하나일 가능성이 높다.

전세계적으로 확대일로에 있는 극단적인 정치적 양극단화의 주범으로 미디어가 지목되면서 학계에서는 각 국가의 미디어 지형에 대한 관심이 증대되고 있다. 

한국의 미디어 지형은 어떨까. 한국의 미디어 지형은 유럽이나 미국과는 다른 몇 가지 특징을 보인다. 우선 KBS라는 공영 방송이 존재하며, 모든 가정으로부터 시청료를 징수하고 두 개의 채널을 통해 방송을 송신하고 있다. 여기에 수신료를 징수하지는 않으나 방송문화진흥회가 대주주로 있어 준공영방송의 성격을 가진 MBC도 적자폭이 커 수신료 징수를 허가해 줄 것을 요구한 바 있다. 

이는 철저하게 기부에 의존하는 미국의 공영 방송인 PBS 등과는 판이하게 다르고 오히려 유럽의 미디어 시스템과 유사한 점이 있다. 그러나 유럽과는 달리 한국의 공영방송은 정치의 영향을 크게 받는다는 비판의 중심에 서 있다. 실제로 진보든 보수든 정권이 바뀔 때마다 임기를 채우지 못하고 두 공영방송의 경영진이 교체되고 복수의 노조가 존재하여 정권이 바뀔 때 마다 특정 노조가 ‘어용화’하는 악순환이 계속되고 있다. 

유럽과는 달리 한국의 공영방송은 정치의 영향을 크게 받는다는 비판의 중심에 서 있다.
유럽과는 달리 한국의 공영방송은 정치의 영향을 크게 받는다는 비판의 중심에 서 있다.

사회통합 기능 못하는 공영방송

한국 뉴스 소비자들의 언론에 대한 평가는 세계 최하위 수준이다. 로이터저널리즘연구소가 2020년 발표한 세계 주요 40개국의 언론 신뢰도 조사결과 한국은 이 조사에 포함된 2016년부터 5년째 줄곧 최하위를 차지했다. 더 충격적인 결과도 있다.

지난 2016년 필자가 수행한 조사에서는 분석에 포함된 모든 언론사에 대한 평가가 삼성 등 대기업보다 낮은 것으로 나타났다. 시민들은 언론보다 언론의 감시 대상인 대기업을 더 신뢰한다는 것이다. 민주화 이후 30여 년이 흘렀으나 자유 언론을 향한 유권자들의 신뢰는 오히려 그 이전보다 낮아진 것이다. 한국 언론의 역설적 상황이다. 

무엇이 이 역설을 설명할까? 바로 언론의 정치적 양극단화다. 언론사의 성향에 따라 평가가 첨예하게 갈리다보니 다수의 유권자로부터 신뢰받는 매체가 존재하지 않는 것이다. 

공영방송은 정치권력에 크게 좌우된다. 반면 로이터저널리즘연구소의 조사결과에서 드러나듯 한국 유권자들은 특히 자신의 성향과 유사한 성향의 뉴스를 선호한다. 이러한 상황에서 유튜브상에서 이념적으로 강경한 성향의 채널들이 난립하게 된 것도 놀라울 것이 없다.

앞으로의 상황이 희망적이라 전망하기도 어렵다. 정보통신기술의 발달로 소셜미디어 등 인터넷을 통해 정치적 메시지가 활발하게 유통된다. 이러한 온라인상의 메시지들은 논리적인 논쟁보다는 자극적인 어필이 다수를 차지한다.

지금도 진보와 보수 진영 모두 가장 극단에 유튜브 채널들이 위치했다. 진보 정부가 집권하다 보니 많은 유튜브 채널들이 보수 유권자에게 어필하는 이념 마케팅에 몰두한다. 

 세계에서 초고속 인터넷이 가장 발달한 한국과 미국 등에서 정치적 양극단화가 특히 극심한 것도 우연은 아닐 것이다. 실제로 렐키스, 수드, 아이옌가 (Lelkes, Sood, Iyengar)(2015)는 미국 주 단위 데이터를 분석하여 초고속 인터넷망이 보급된 속도와 정치적 양극단화의 정도 사이에 상당한 상관관계가 있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뉴스 소비행태는 이미 매우 양극단화 되어 있고 하나의 ‘사회적 정체성’으로 발전한 단계로 보인다. 따라서 이러한 미디어 정체성이 ‘에코 체임버(echo chamber)’ 효과를 통해 정치적 양극단화를 강화하여 사회 통합을 요원하게 만드는 악순환의 고리를 만들어 내고 있다.

각종 언론 매체들도 이러한 뉴스 소비자의 속성을 꿰뚫고 점점 양극단화 된 선택지를 제시하고 있다. 그 과정에서 우리 언론에 대한 신뢰는 세계 최하위권으로 추락하고 말았다. 


※ 본 기사는 <언론중재연구원> 2021. 여름호에 발표된 한규섭 서울대학교 언론정보학과 교수의 논문 내용을 요약한 것임을 밝힙니다.

본 기사는 시사주간지 <미래한국>의 고유 콘텐츠입니다.
외부게재시 개인은 출처와 링크를 밝혀주시고, 언론사는 전문게재의 경우 본사와 협의 바랍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