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땜질’ 연금개혁이 놓치고 있는 것들
‘땜질’ 연금개혁이 놓치고 있는 것들
  • 한미희 미래한국 기자
  • 승인 2024.09.07 23: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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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익률 제고 없는 연금개혁은 맹탕
- 기초연금 분리하고 직역 연금 통합해야
- 퇴직연금과 국민연금 연계하면 소득대체율 60%가능

지난 9월4일, 윤석열 정부의 연금개혁안이 발표됐습니다.
예상대로 개혁의 핵심은 연금 재정의 안정화에 있었습니다. 가능한 연금 기금의 소진을 늦춰보자는 것입니다. 방법은 내는 돈과 받는 돈을 다 올리고, 의무가입 연령을 연장하며, 인구 구조와 경제 여건에 따라 보험율과 대체율이 변하는 자동조정장치와 세대별 차등 보험료율을 적용하는 것입니다.

재미있는 사실이 있습니다.
이러한 연금개혁 안에는 ‘한국이 세계 최초’로 도입하는 것도 있다는 점입니다. 바로 세대별 차등 보험료율입니다. 연금에 근본적인 ‘제도 개선’이 아니라 ‘땜질 처방’의 의혹이 강하게 제시되는 이유이기도 한 것이죠. 과연 이런 방식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까요? 이번 연금개혁에는 빠진 본질적인 문제들이 있습니다.

연기금 수익률 제고 빠진 개혁은 '허당'

국민연금의 수익률 제고가 빠진 연금개혁은 의미가 없다는 지적이 있습니다. 연금이 장기적으로 높은 수익률을 기록하면, 보험료율 인상을 최소화하면서 국민의 노후자금 고갈 시기를 획기적으로 늦출 수 있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보건복지부는 기금 수익률이 1%포인트만 늘어나도, 소진 시기를 최대 7년가량 늦출 수 있다는 분석을 내놓은 바도 있습니다. 지난 국회에서 정치권의 연금 개혁 논의가 지지부진한 가운데, 국민연금이 4.5%에서 9%대 고수익률을 기록하자 여야 모두가 박수를 보낸 것은 이 때문입니다.

이를 위해서는 국민연금의 전문성과 독립성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기금운용본부의 지배 구조 자체를 개혁해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됩니다. 기금운용본부를 한국투자공사(KIC)처럼 별도 기구화하고 운용 수익률을 높이는 데만 주력할 수 있게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국민연금의 수익률이 높아지면 기업들의 부담률도 그 만큼 줄어듭니다.


손석호(한국경영자총협회 사회정책팀장)

"2021년 기준 전체 사업장의 95.8%, 근로자 수로는 절반이 약간 넘는 956만 명이 30인 미만 소규모 사업장에 속해 있다. 사용자가 고용과 투자를 유치하며 국민연금 보험료율 인상을 추가로 감내하기에는 현실적으로 어려움이 크다.

국민연금의 재정안정은 기업 활력을 높여 경제를 성장시켜 임금이 상승되고 보험료 수입도 증가하면서 이루어진다. 연금개혁 방안으로 검토되는 보험료율 인상은 이러한 선순환 구조를 깨지 않는 범위에서 이뤄져야 한다.

현재 국내 기업들은 높은 임금수준과 법정 퇴직급여를 전적으로 부담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OECD 최고 수준의 법인세와 상속・증여세 등세부담, 매년 관행적으로 요율이 인상되는 건강보험을 비롯한 5대 사회보험료 부담, 그리고 각종 환경부담금과 장애인고용부담금 등 91개에 달하는 준조세 성격의 정책부담금을 감내하고 있다.

이러한 기업 부담을 방치한 채 당장 국민연금의 추가 지불 여력을 만들어 내야 한다면, 결국 고용이 줄고 투자는 위축돼 그 피해가 국민경제전체에 미치게 될 것이다."


국민연금은 현재 1100조원을 넘어 일본 공적 연금(약 2188조원), 노르웨이 국부 펀드(약 1993조원)에 이어 세계 3대 연기금입니다. 올해 5월 국민연금은 수익률 목표를 5%대로 설정했습니다. 지난 10년 평균은 4.99%였는데 같은 기간 캐나다 연기금은 9.58%에 달합니다.

캐나다 연기금은 해외 투자 비율이 80%가 넘고 대체 투자 비율이 전체 자산의 50%가 넘는 등 글로벌 분산 투자를 전략적으로 잘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네덜란드 연기금도 해외와 대체 투자에 각각 95%, 32.5%를 집행합니다. 하지만 국민연금은 51.5%, 15.9%에 그치고 있습니다. 이 비율을 높이려면 다국적 최고 전문가를 영입해 전문성을 높이는 수밖에 없다는 지적입니다.

사적연금 내실화, 실질소득대체율 60%

국민연금의 소득대체율을 40%로 유지하더라도 사적연금을 내실화할 경우 실질소득대체율을 60% 이상으로 끌어올릴 수 있다는 주장이 있습니다. 국민연금 소득대체율을 인상할 경우 미래세대가 져야 할 부담이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므로 공적연금은 기초생활 보장에 충실하도록 설계하고 그 이상의 노후소득 보장은 '낸 만큼 받아가는' 사적연금이 하는 것이 효과적이라는 것입니다. 이를 위해서 퇴직연금의 중도인출을 엄격히 제한하고 사적연금의 수익률을 제고하는 투자상품들을 개발하자는 것이죠.


정원석(동아대 경제학과 교수/ 전 보험연구원 연구위원)

"사적연금을 활성화하는 방안이 필요하다. 국민연금 제5차 재정계산에 따르면 국민연금 개혁은 결국 더 내야 하는 방향으로 진행될 것으로 예상되며, 국민연금의 부족분을 사적연금을 활용해 보충할 방안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

사적연금인 퇴직연금과 연금계좌(개인연금)가 국민연금의 부족분을 보충하는 노후소득원으로 역할을 하기 위해서는 가장 먼저 은퇴 시점에 사적연금 적립금이 충분히 적립되어야 하며 이 적립금이 연금으로 지급되어야 한다.

사적연금 활성화 방안을 위해서는 해외사례를 참고하여 퇴직연금의 중도 인출 조건 강화, 저소득층 납입에 대한 보조금(환급형 세액공제)지급 등을 고려할 필요가 있다."


연금제도를 통합하자

공무원연금과 사학연금, 군인연금 등 특수직역 연금 수급자는 국민연금 수급자보다 5배 이상 많은 연금액을 수령합니다. 국민연금과 공무원연금 등 특수직역연금 간 수급액 차이가 큰 것은 각 연금제도 수급자의 평균 가입 기간과 가입 중에 낸 보험료, 지급률 등에서 차이가 크기 때문입니다.

물론 국민연금과 공무원연금 등을 단순 비교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는 지적이 있습니다. 하지만 공적연금간 지나친 격차는 형평성 문제를 야기하는 만큼 전문가들은 불평등한 연금구조를 개편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합니다.


양태건(한국법제연구원 연구위원)

"연금 개혁은 소폭의 ‘모수적 개혁’에 그치고 말 것이 아니라 중장기적 발전을 함께 이루는 ‘구조적 개혁’을 마련하여 실행한다면 부담을 장기간에 걸쳐 분산시키는 데에도 도움이 될 수있다.

이런 관점에서 공적연금 체계의 구조적 개혁은 본격적으로 다층 체계의 정합성을 확보하면서 각 층의 기능을 강화하는 쪽으로 이루어져야 한다. 공적연금 체계 구조 개혁을 전방위적으로 추진하는 가운데 그 일환으로서 국민연금과 직역연금의 제도적 통합을 동시에 추진하여 제도개혁의 성과로 먼저 이를 내세울 수 있다면 향후 공적연금제도 전체의 신뢰 제고 및 국민연금 개혁에 대한 반발을 약화시키면서 유의미한 광폭의 제도개혁을 성공적으로 이끌어 낼 수 있다."


국민연금 ‘사각지대’, 사회적연대로 돌파해야

국민연금은 사회보험이지만 사각 지대가 있습니다. 전 국민에게 지급을 보장하지 않습니다. 가입자가 최소 120개월(10년)을 내야 받을 수 있고 조건에 따라 가입 여부, 소득수준(납부금액), 가입기간이 달라지고 이는 나중에 노후소득(급여액) 수준 차이로 이어집니다. 노동시장에서의 지위에 따라, 또 성별·세대에 따라 격차가 확연합니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보사연)의 ‘공적연금 재구조화 방안 연구’(2022년) 보고서를 보면, 연금 ‘구조개혁’에서 다뤄야 할 쟁점 중 하나는 “국민연금의 사각지대 및 가입종별 간 기여 격차 문제는 어떻게 할 것인지”입니다. 사각지대 지원 방안은 대표적으로 가입기간을 추가로 인정해주는 '크레딧제도'가 논의됩니다.


남찬섭(동아대학교 사회복지학과 교수)

"국민연금은 1988년에 시행된 이래 재정안정화 입장이 우세하다. 그러나 앞으로는 사회연대적 입장에 근거한 개혁을 추진함으로써 사회보장제도로서의 기능을 회복해야 한다.

국민연금 사각지대의 대부분이 비정규직과 영세자영업자들이라는 점을 고려할 때 두루누리 사업(사회보험료 지원사업)의 지원대상을 현행 10인 미만 사업장에서 30인 미만 사업장 등으로 확대할 필요가 있으며, 특수고용노동자의 사업장가입자 전환과 영세자영업자에 대한보험료 지원 강화 등도 추진될 필요가 있다.

또한, 현재 시행 중인 출산과 군복무, 실업을 사유로 한 크레딧 제도를 확대하여 국민연금 사각지대 해소뿐만 아니라 가입기간 연장에도 기여할 수 있게 해야 한다. 특히 군복무 크레딧과 실업 크레딧의 확대는 최근 청년층에게서 발견되는 변화된 공정성 의식에 부합할 가능성이 있고 이는 연금불신을 감소시키는 데에도 도움이 될 수 있으므로 고려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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