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년 전 인터넷상으로 한 그림을 접하게 되었다. 딸과 아들을 안고 우는 한 부부의 모습이었는데 이 그림의 내용을 알게 된 후 잠을 자지 못했다. 탈북한 북한의 생체실험연구원이 증언하면서 그린 그림이었는데, 북한의 젊은 기독교 가정을 대상으로 생체실험을 진행하는 도중 엄마는 어린 딸에게, 아빠는 어린 아들에게 자신들의 마지막 숨을 불어 넣어주는 모습이었다.
여전히 계속되는 북한인권 참상
필자 역시 세 번의 북송 경험과 네 번의 탈북 과정 속에서 마취 없는 강제낙태를 비롯한 갖은 고문과 여러 강제노동에 시달렸지만, 단지 기독교인이라는 이유로 5살, 3살 된 어린 아이들이 부모와 함께 죽임 당하는 모습은 차마 눈 뜨고 볼 수가 없었다.
생후 하루도 안 된 갓난아이들과 태아를 혼혈 또는 기독교인이라는 이유로 살해하고, 김씨 일가를 모독한 죄로 학살하며, 한국 문화를 접했다는 이유로 고문과 처형하는 등 지금도 말도 안 되는 죄목으로 대량학살이 이어지고 있다. 탈북한 지 강산이 두 번 바뀔 시간이 흘렀어도 북한의 인권 박해는 증가하고 있다.
계속되는 아사 발생도 묵과할 수 없다. 중국과의 국경지역 전역을 봉쇄한 북한에서 탈출하기란 하늘의 별 따기다. 오래 전 중단된 배급 대신 북한 주민들은 밀수를 통해 장마당에 풀어지는 식료품 때문에 그나마 연명할 수 있었다. 그러나 코로나 시국에는 두만강, 압록강에 늘 있어왔던 밀수도 중단됐다. 밀수가 중단되어 식량 출구가 막히자 북한 내 곳곳에서 아사가 발생했다는 소식이 들린다.
김정은은 “제2의 고난의 행군”이라는 단호한 방침을 제시했고 함께 이 고난을 견뎌내자고 했다. 하지만 그 고난도 뭐가 있어야 견딜 수 있다. 아무 것도 없는 북한의 주민들은 힘없이 죽어 나간다. 코로나는 끝났지만, 국경지역은 한때 왕성했던 밀수 오솔길만 남겨놓고 꽁꽁 걸어 잠겼다. 간간이 탈북자들이 보내던 피땀어린, 생명줄 같은 돈 마저 보낼 수 없게 됐다. 마치 도살장에 가둬 놓은 짐승들처럼 오도가도 못하는 북한 주민들을 누가 살릴 것이고 누가 기억할 것인가.
지난 국회에서 지성호 국민의힘 의원의 노력으로 ‘한국판 홀로코스트 박물관’이라고 할 수 있는 ‘국립북한인권센터’ 건립 예산안이 통과됐다. 정부는 2024년인 올해 46억 원, 이후 3년간 260억 원을 투입해 2027년 북한인권센터를 완공할 계획이라고 한다. 사실 박근혜 정부 때부터 추진해오던 일이었지만 특이한 한국의 정치적 영향으로 정권이 두 번 바뀌고서야 진행된 것이다.
북한인권 박물관이 세워져야 하는 이유는 너무나 분명하다.
김일성 정권 때부터 아들 김정일, 현재 그의 손자 김정은 정권까지 학살된 북한 주민은 총 700여 만 명이다. 유대인 학살 600만을 뛰어넘는 기록이지만 대책도 없고, 관심도 적다. 우리와 똑같은 민족이고 헌법상 대한민국의 영토로 명시되어 있지만 그 땅에 사는 주민들의 생명권은 철저히 무시되고 있다. 너무도 당연한 그들의 기본 인권에 대한 관심은 정권에 따라 상향과 하향을 거듭하다가 이제 지쳐가는 것 같다. 국부 이승만 대통령이 외쳤던 북한해방 통일이 무색할 만큼 오늘날 남한사회의 북한인권에 대한 관심 부재는 여전하다.
“북한동포들이여, 희망을 버리지 마시요! 우리는 여러분을 잊지 않을 것이며 모른 체 하지도 않을 것입니다!…”
국부의 이 외침은 공산주의자 김일성에게 빼앗긴 땅과 동포들을 끝까지 놓치지 않고 되찾겠다는 의지가 다분히 담겨 있다. 나는 북한을 ‘빼앗겼다’는 표현을 많이 사용한다. 우리의 동포인 북한 주민들을 노예로 삼고 모든 땅에서 소득과 모든 좋은 것은 김일성 자신의 것으로만 가져가는, 그래서 그 땅 아이들의 생각과 감정과 심지어 눈물까지도 빼앗아 가 자신의 것으로 삼는 곳에서 그들은 살아(죽어)가고 있다.
국부 이승만이 되찾고자 했던 그 땅과 사람들을 이제 우리 세대가 되찾아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북한인권 실태를 그냥 보고만 있으면 안 된다. 나치 독일에 의해 자행된 유대인 대학살의 희생자들을 추모하기 위해 만든 홀로코스트 박물관에는 해마다 군 입대를 앞둔 고등학생들이 반드시 방문해 추모한다고 한다. 또한 모든 학생, 그리고 공무원도 꼭 정기적으로 방문한다고 한다.
이스라엘 국립 추모시설인 야드바셈(Yad Vashem) 박물관 입구에는 “용서하되, 잊지 말고 기억하자!” 라고 새겨져 있다. 이스라엘은 자신들이 당한 인종 대학살을 후대에 보여줌으로써 참혹한 역사를 기억하고 다시는 그들이 그러한 참사를 당하지 않도록 막는다. 국가로서 나라와 국민을 지키고 보호하려는 마땅한 취지다.
한국은 헌법이 대한민국 영토가 북한까지라고 명시하지만, 이를 지키려는 노력은 보이지 않는다. 한민족 학살은 현재 진행형이다. 다음 세대에게 자국민의 학살을 분명히 알리고, 북한 땅과 동포들을 되찾아 온전한 나라와 국민을 지키도록 하는, 그리고 희생된 북한 주민들을 향한 우리의 추모와 마음이 담긴 북한인권센터는 반드시 세워져야 한다.
탈북자들의 목소리가 반영되어야
2023년 4월 8일 뉘른베르크 전범재판 수석 검사였던 벤쟈민 페렌츠가 103세 일기로 세상을 떴다. 나치 전범에게 책임을 물었던 뉘른베르크 재판 당시 27세의 젊은 검사였던 페렌츠는 이후 평생 동안 헤이그 국제형사재판소(ICC) 창설의 선구적인 역할을 했다. 또한 페렌츠는 이스라엘과 서독 간 배상 협상에 참여해 홀로코스트 피해자와 생존자의 배상급을 지급하는 데 기여했다.
뉘른베르크 재판에서 페렌츠는 유대인을 대량 총격으로 살해한 지휘관들을 기소하는 역할을 맡았는데 그가 유죄판결을 내린 22명의 나치 전범 중 4명이 처형되었다. 유대인 학살 책임을 묻는 과정에 유대인이 참여하는 것은 당연하다. 마찬가지로 유대인 홀로코스트를 세상과 후대에 알리는 것도 그 주체는 당연히 유대인들이다. 자신들의 아픔과 과거에 대해 알리고 이에 대한 보상과 재판 등 모든 과정 가운데 유대인이 참여하지 않을 수 없다.
북한인권 문제도 그렇다. 탈북자가 북한의 인권 실태를 직접 알리고 세상이 기억하게 하여 다시는 이 땅에 그러한 인권 침해가 발생하지 말아야 할 이유를 이야기하는 것은 마땅하다. 또한 그보다 더 사실적이고 생생할 수는 없다. 따라서 정부가 건립하는 ‘국립북한인권센터’는 북한에서 인권 침해를 받다가 탈출한 탈북자들의 적극적인 참여를 중심으로 구축을 해야 마땅하다. 전시기획과 시설 관리에 있어서까지 그 모든 운영에는 탈북자들의 목소리가 반영되어야 한다. 또한 추후 정부나 정치적 분위기가 바뀌어도 결코 휘둘리지 않을 운영 체계를 구축해야 한다.
3년 후 세워질 국립북한인권센터는 당연히 탈북자가 있어야 할 자리임과 동시에 탈북자의 정체성을 확인하는 곳이라고 해도 무관하다. 경제적 성공, 높은 학력, 행복한 가정, 안전한 일자리 등 모두가 탈북자들에게 중요하지만, 결국 이 모든 것도 북한에 남겨진 가족들을 언젠가 다시 만나기 위함이다.
북한인권센터는 이 사실을 상기하도록 해주는 곳이 되어야 한다. 그리고 아픔을 이야기하며 그 아픔을 딛고 일어날 수 있게 하는 곳이 되어야 한다. 남겨두고 떠나 온 고향과 가족을 다시 되찾을 그 날을 손꼽아 기다리는 탈북자들의 간절한 마음이 담긴 북한인권센터가 되기를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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