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언] 5가지 미디어 문화 정책 과제
[제언] 5가지 미디어 문화 정책 과제
  • 이인철 미래한국 편집위원·변호사
  • 승인 2024.04.19 15: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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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짜뉴스 해결과 콘텐츠 중심 제도 변화가 중요

미디어 문화 정책의 어려움은 가짜뉴스 문제와 공영방송 제도 개혁이라는 난제를 포함하면서 분리된 정책 부서의 정책과 노선 차이에 이르기까지 미디어 문화 분야의 복잡한 상황이 배경에 있다. 논의가 많은 5가지 주제의 미디어 문화 정책 분야의 논의 상황과 쟁점을 정리하고 해당 과제의 순서와 방향을 살펴본다.

지난 수년간 언론에 대한 사회적 질타의 중심에는 가짜뉴스가 있다. 2016년 영국 브렉시트 투표와 미국 대선시에 제기된 가짜뉴스 논란은 방송과 신문 등 레거시 미디어의 정파적 보도를 문제삼았다. 

언론 기능의 회복

정치적 주장을 유튜브 등 SNS를 이용하여 뉴스 형태의 보도물로 제작 유포하는 상황이 전개되고 그 영향력으로 인해서 허위조작보도 논란으로 비화되었다. 가짜뉴스로 인한 뉴스 공정성 시비는 저널리즘의 핵심 쟁점이다. 가짜뉴스 논란은 탄핵사태 이후의 각종 선거에서 계속 제기되었고 수년간 언론관계법 개정 논의가 있었다. 

가짜뉴스 문제의 배경에 정파적으로 분열된 사회가 있다. 탈진실의 논리하에 정파적 주장을 옹호하는 것을 저널리즘으로 보는 견해까지 나오면서 언론 지형이 분열되었다. 언론이 사회통합을 위한 방향을 제시하지 못하고 오히려 갈등과 분열을 야기하고 있다. 미디어 전문직의 전문성 제고로 위기를 극복해야 한다는 주장도 여러 갈래로 도도히 흐르는 사회 분열의 물결 앞에서는 무력하다. 국민국가에서 국민정체성에 의한 국가 통합이 어려워지고 사회분열이 지속되는 전지구적 민주정의 위기 상황에서 가짜뉴스 문제는 해결 난망이다. 

민주정에서 여론 형성 역할을 하는 제도로서의 언론에 대한 규제에는 한계가 있다. 민주정의 방향을 정하는 선거 국면에서 가짜뉴스를 규제하는 제도 개선으로 방향을 설정해야 한다. 공직선거법상의 선거 관련 보도에 대한 각종 심의제도의 개선과 함께 그동안 논의되어 왔던 징벌적 배상제나 기사 삭제 제도 등을 선거 국면에 한정하여 검토하는 것으로 제도 설계를 함으로써 선거제도 개혁이라는 방향으로 설정하자. 

가짜뉴스 논란 자체가 선거 국면에서 발생하였고 선거와 관련되는 문제다. 민주정을 유지하는 두가지 기둥인 언론제도와 선거제도가 마주치는 지점에서 발생하는 문제는 그곳에서 해결하는 것이 적절하다. 

미디어와 문화 제도의 통합

신문에 이어 방송 시대가 저물고 정보통신망에 의한 OTT와 포털의 시대다. 동일한 콘텐츠가 다채널 다매체에서 유통되는 상황은 콘텐츠 중심의 제도 설계를 요구한다. 미디어 등장 순서에 따라 각기 형성된 법제도는 제도의 목적과 지향 및 수단이 다르다. 모든 미디어를 통할하는 제도가 요구되지만, 방통위는 방송이, 문체부는 영상콘텐츠가 중심인 체제를 제시하는 데서 보듯이 규제와 진흥이라는 상반된 목적과 정책 원리와 방식이 달라 통합은 쉽지 않다. 

콘텐츠를 중심으로 동일계층 동일규제 원칙에 따른 수평적 규제체제로의 전환과 관련하여 EU의 사례처럼 미디어법제의 통합과 포털 규제안이 제안되고 있다. 외국 법제를 그대로 가져오는 제도 설계가 국내 업체들을 규제하게 된다는 산업계의 반발이 있다. EU의 미디어 법제의 변화는 미국의 빅5를 겨냥한 유럽 미디어산업과 소비자 보호의 측면이 있다는 점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OTT를 미디어제도에 통합하는 문제와 포털 규제 문제는 많은 논의가 있어 왔지만 문제의 복합적 성격으로 인하여 결론을 내리지 못하고 있다. 오히려 이 과제를 잠시 내려놓고 시급하고 필요한 과제에 집중하여야 하겠다. 소비자보호와 공정경쟁 문제는 해당되는 법의 운영으로 접근이 가능하고, 일반법으로 해결되는 영역도 있다.

법과 제도가 산업보다 앞서 가는 것이- 앞서 갈 수 있는지 의문이지만- 반드시 좋은 결과를 가져오지는 않는다. 미디어와 문화 법제의 통합 논의보다는 콘텐츠에 대한 투자 방안이라든가, 통신 관련 과제들, 제도 통합에 선행되어야 할 정책 부서의 통합 문제 등에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 

김홍일 방송통신위원회 위원장이 3월 29일 정부과천청사 방송통신위원회에서 열린 디지털·미디어개혁 TF 회의를 주재하고 있다. / 연합
김홍일 방송통신위원회 위원장이 3월 29일 정부과천청사 방송통신위원회에서 열린 디지털·미디어개혁 TF 회의를 주재하고 있다. / 연합

문화 콘텐츠 지원

한류 열풍으로 문화산업에 대한 투자 등 문화산업 지원의 조성행정이 활발하다. 지원하되 간섭하지 않는다는 원칙에 따르는 문화행정은 문화향유권 도입 이후 창작 지원만이 아니라 문화소비를 지원하고 문화복지로까지 확장되었다. 문화 분야 보조금의 범위와 규모는 커지고 있다. 부정수급 문제, 시장 교란, 민간 자발성의 훼손, 포퓰리즘 수단화 등 조성행정에서 등장하는 문제는 문화분야도 동일하다. 복지정책화된 문화정책에서 지원 효과에 대한 판단을 내리는 것이 어려워지면서 문제점에 대한 적절한 대응과 이를 위한 의사결정이 어려워졌다. 

포퓰리즘 시대는 지원을 받는 지위가 권리화되고, 보조금은 지원 의무가 되었다. 정치적 이유 등으로 인하여 형평에 어긋나게 보조금이 배분될 때 중립적이어야 할 문화행정이 왜곡된다. 국가보조금을 사용하는 문화행정은 특정한 분야나 지역, 정파적 주장을 위한 것이 아니라 국가 전체의 관점에서 국가행정사무로서 검토되어야 한다. 지원의 필요성과 범위 및 규모 등에 대한 국민적 의견 수렴과 절차적 신중함 등의 거버넌스 차원에서 검토가 필요하다. 

정체성 정치의 전개로 인한 사회 혼란으로 갈등이 심화되는 국면에서 문화행정은 사회적 갈등의 유발 방지와 갈등 해소를 정책 지향점으로 고려할 필요가 있다. 콘텐츠 생산 지원에 있어서 창작자와 유통사업자의 입장만이 아니라 문화향유자의 입장에서 살펴봐 갈등 유발 방지와 갈등 해소에 도움이 되는지를 가려야 한다. 사회적 갈등을 유발하거나 국민통합을 무너뜨리는 경향을 해소하기 위하여 미디어와 문화에 대한 교육 차원의 노력도 필요하다. 

문화상품의 제공과 문화환경의 조성에 집중하는 것이 적절한 문화복지인지, 문화콘텐츠의 사회적 효과를 살펴봐야 하겠다. 우리가 먹는 것이 우리를 만들 듯이, 보고 듣는 것이 우리를 만들고 정체성을 형성하며 사회를 만든다. 관심의 시장은 주의력 결핍으로 인한 인지 문제를 유발하고 개인 지향성의 강화로 사회적 연대를 약화시킨다.

가짜뉴스 문제의 근저에 과잉 정보가 가져오는 정보 무질서 상황이 있다. 풍요의 시대에는 콘텐츠 소비의 분별력이 요구된다. 미디어 거리두기, 콘텐츠 금식 등의 문화 절제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는 상황은 미디어와 문화의 소비와 문화 향유의 의미를 다시 살펴보게 한다. 

미디어 문화 행정 부처의 개편

여러 갈래의 콘텐츠 유통채널이 정보통신망으로 수렴하는 현실은 콘텐츠를 주목하게 하면서 유통채널의 관점에서 콘텐츠 중심의 시각을 주문한다. 변화된 미디어 지형과 문화 산업의 발전 및 오늘의 미디어를 가능하게 하는 정보통신기술의 발전은 미디어와 문화를 아우르는 정책 부처로의 변화를 요청한다. ICT 기반 사회에서 문체부, 과기부, 방통위의 통합과 조정 논의는 방법론과 함께 업계의 변화가 따라야 할 것이어서 시간이 걸릴 듯하다. 

방통위의 위원회 체제를 독임제로 변경해야 한다는 주장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방통위원을 정치권에서 추천하는 방통위의 정치적 구성은 정책 결정에서의 정파적 결과를 낳아 방송통신정책이 정치적 논란을 가져오는 원인이 되고, 되풀이되는 방송 독립과 방송사 지배구조에 대한 논란의 원인이다. 제도 변경은 방송의 정파적 운영의 이유가 되는 정치병행성 문화를 일부나마 해소하는 계기가 될 수도 있을 것이다. 

공영방송 제도 개혁

정부의 각종 위원회 시스템을 돌아볼 필요가 있음은 위원회 체제가 공적 책무의 수행에 적절한가를 생각해 볼 때 그러하다. 참여 명분하에 설립된 정부의 각종 위원회가 정파적으로 운영됨에 따라서 단일하고 일관된 정책이 어렵고, 책임지지 않는 임기제 위원이 정책을 주관함으로써 직업공무원제를 흔들며, 정권의 변화에 따라 행정부가 정파적으로 운영되는 문제를 초래하였다. 그동안의 위원회 체제에 대한 정책 공과를 가려보는 기회를 갖고 제도를 개선하는 방향을 설정할 시기다. 

현재의 공영방송체제는 1988년 6공화국 탄생시 KBS, MBC 구조를 계승하고 있는데 물리적으로는 1980년 언론통폐합의 산물이라는 점에서 5공화국의 유산이다. 방송의 시대가 지나고 포털과 OTT의 시대가 되면서 공영방송의 필요성 여부가 논의되고 있다. 전국적 네트워크를 가진 거대 규모의 공영방송이 경쟁력 상실에도 불구하고 국가 재원으로 독과점 지위를 유지하고 있는 상황은 공공부문 개혁 차원에서 제도 개혁을 주문한다. 

다양한 정보가 다채널 다매체에서 유통되는 상황은 공영매체의 존립 이유를 묻게 된다. 법제도상으로 공영방송의 개념이나 공적인 콘텐츠에 대한 정의가 없다. 국민 부담의 수신료에 의해서 공영매체를 운영할 필요성의 문제가 제기된다. 방송을 떠나 인터넷시장으로 광고주가 이동한 시장 변화 상황과도 무관하지 않다. 역대 국회 마다 단골 메뉴처럼 KBS 수신료 인상 문제가 나오지만 현재의 수신료 유지로 결론을 내린 것은 공영방송에 대한 필요성이 국민들에게 와닿지 않는다는 현실을 보여준다. 

그동안 방송제도 개선 논의는 구조 개선보다는 방송 운영과 관리의 주체를 선정하는 방법에 관한 거버넌스 논의가 전부였다. 공영방송 이사진 몇 명을, 정치권에서 어떤 비율로 추천하여 구성하며, 공영방송 사장의 선임 방법을 어떻게 할 것인가에 대한 것이 전부다. 오래도록 각종 개정 법안이 논의되어 왔으나 결론이 내려지지 않고 있다. 어려운 구조 개혁 과제를 직접 다루는 것을 꺼리는 상황이 초래하는 현상 유지 분위기가 지배하고 있다. 

방송 구조조정이 어려움은 방송은 제도로서의 언론 성격이 있기 때문이다. MBC는 여러 특례규정으로 보호받고 있으며, KBS는 공공기관운영에 관한 법률에 공공기관에서 제외돼 외부의 관리 감독을 받지 않는다. 언론이라는 제도적 특성상 관리가 제한적이라는 원천적인 한계가 있다.

현 제도하에서 공영방송의 관리는 선임된 이사진에 의한 것이 전부다. 여야 추천으로 정치적으로 구성되는 이사진이 선임하는 경영진에 의한 방송 경영에 이사진의 경영 통제가 어렵다. 공영방송 내부 이사진에 의한 관리는 현상 유지에 그치고 인력 조정 등 과감한 구조조정은 시도하지 못한다. 공영방송의 재정위기와 정파적 보도의 원인은 관리감독의 실패에서 찾을 수 있다. 관리할 수 없어 관리받지 않으며, 국민의 방송이 아니라 방송종사자들만을 위한 공영방송이 되었다. 

방송에 대한 규제는 종국적으로 일정 기간 단위로 허가를 받아 방송사업자의 지위를 갱신하는 재허가제도로 귀결된다. 방송허가제에 대한 대안으로 지난 정부의 방통위안과 현 정부의 대통령직인수위원회에서의 개선안이 공영방송협약제도다. 

공영방송이 행할 책무를 계약 형태로 만들어 정부와 공영방송간에 공적책무수행협약을 체결하고 이의 수행 여부에 의해 재계약하는 방식이다. 공영방송만이 수행할 수 있는 공적책무를 정의할 수 있을지와 공적책무 미이행이라는 계약불이행시에 과감한 제재를 할 수 있을지가 관건이다. 

방송재허가조건이 지켜지지 않음에도 그동안 공영방송은 조건부 재허가로 허가갱신을 받아 독과점적 지위를 계속 유지해 왔다. 법과 절차에 따라 엄격히 행정이 이뤄진다면 현재의 재허가제도로도 재정 문제나 가짜뉴스 문제 등의 공영방송의 현안을 해결할 수 있다는 주장이 나온다. 

공영방송 문제의 본질은 경영 악화로 구조 개선이 요구됨에도 공기업처럼 구조조정에 대한 저항으로 이도저도 못하면서 현상 유지를 하는 것이다. 공영방송이 처한 현실은 인력 조정과 조직 변경 등의 다양한 방식의 제도 개혁을 요구한다.

공영방송 개혁은 공공부문 개혁에서 빼놓을 수 없는 부문으로서 필요하지만, 제도 개선에 따르는 이해관계를 조정하고 국민 합의를 위하여 시간이 소요된다. 개선 과정에서 공공기관 운영에 관한 법률에서 KBS와 EBS에 대한 예외 규정을 삭제하여 경영에 있어서는 공공기관으로서 외부 관리를 받도록 함으로써 관리 부실의 문제를 보완하는 것을 개혁의 첫걸음으로 삼을 수도 있겠다. 

현행 방송법제의 엄격한 적용과 집행에 의해 공영방송의 방만한 경영 문제를 교정하고 레거시미디어의 가짜뉴스 문제를 해소할 수 있겠다. 현행 제도의 엄격한 운영에 의해 공영방송 제도 개혁은 진행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미디어 문화 정책 과제의 중심에는 국가 질서의 하나인 제도로서의 언론, 미디어가 실어나르는 문화의 내용으로서의 콘텐츠가 있다. 전자의 경우는 제도에 대한 변화가 요구되고, 후자의 경우는 콘텐츠를 중심으로 하는 제도의 설계라는 요구가 있다. 정치와 사회, 문화 등 모든 영역에서 논란의 중심에 있는 가짜뉴스 문제 해결을 추구하는 언론 기능의 정상화로 방향을 설정하고, 콘텐츠를 중심으로 하는 제도 변화를 시도하는 것이 순서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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