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층분석] 보수, 무엇을 할 것인가
[심층분석] 보수, 무엇을 할 것인가
  • 한정석 미래한국 편집위원
  • 승인 2024.04.17 12: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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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4월 10일 22대 총선이 국민의힘 참패로 끝났다. 하지만 야권 연대로 탄핵과 개헌의 200석을 넘길 수 있다는 희망을 가졌던 민주당과 진보의 기대도 무위에 그쳤다. 

국민의힘 입장에서는 ‘최악은 피했다’라는 안도와 함께 향후 4년간 과반을 차지한 민주당과 야권의 주도로 펼쳐질 정국에 낙담하는 한숨 소리가 새어 나왔다. 민주당 최강의 전투력을 발휘하던 친명계 의원들이 대거 국회에 재입성했을 뿐만 아니라 윤석열 대통령과 한동훈 전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에 대한 저격을 노리는 정적들의 입성도 이뤄졌다. 

최대 정적인 이재명 민주당 대표, 조국 전 법무부 장관, 검찰총장 시절 충돌한 추미애 전 법무부 장관, 이성윤 전 서울지검장 등이다. 윤석열 대통령과 원한에 가까울 정도로 대립각을 보였던 이준석 개혁신당 대표도 있다. 반면 윤석열 대통령이 심복으로 여겼던 용산 그룹은 대거 몰락했다. 

한동훈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이 4월 11일 서울 여의도 국민의힘 당사에서 22대 국회의원 선거 관련 입장 발표를 한 뒤 당사를 떠나며 당직자들과 인사하고 있다. / 연합
한동훈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이 4월 11일 서울 여의도 국민의힘 당사에서 22대 국회의원 선거 관련 입장 발표를 한 뒤 당사를 떠나며 당직자들과 인사하고 있다. / 연합

권력투쟁만 남은 국민의힘

가장 큰 숙제는 사퇴한 한동훈 비대위원장과 윤석열 대통령 사이에 해결해야 할 관계다. 한 전 비대위원장이 정치를 접지 않는 한, 총선 패배의 책임을 두고 윤 대통령과 한 전 비대위원장 그룹 사이에 공방이 예상되기 때문이다. 

한동훈 전 비대위원장이 당권에 도전할 생각으로 총선 패배 책임 논쟁이 벌어진다면 국민의힘 전당대회에 큰 영향을 주게 된다. 국민의힘으로서는 2년 후 지방선거에서 승리해야 이듬해 대선에 동력이 생기기 때문이다. 

아울러 이번 선거에서 공천을 받지 못했거나 낙선한 중진들로서는 2년 후 지방선거에 출마할 수 있어야 자신의 정치적 입지를 유지할 수 있다는 점에서 총선 후 국민의힘 전당대회는 보수 여권 내에서 가장 예민한 사안일 수 밖에 없게 된다. 

따라서 윤석열 대통령으로서도 국민의힘 전당대회에서 어떻게든 자신을 지지해 줄 수 있는 당내 세력이 당권을 장악해야 하는 입장이다. 이 부분에서 용산과 친윤, 한동훈 전 비대위원장의 당내 세력 간에 양보 없는 권력투쟁이 발생할 수밖에 없다는 전망이 나오는 이유다. 이러한 역학 구도 속에서 원내 진입에 성공한 나경원 의원과 안철수 의원, 그리고 원내 입성에는 실패했지만 유력한 잠룡인 원희룡 전 장관 등의 행보는 바빠질 수밖에 없다. 여의도 관측통들은 대개 나경원 의원과 원희룡 전 장관 간에 경쟁이 아니겠느냐는 전망을 내놓고 있다. 

한동훈 전 비대위원장이 국민의힘 130석을 얻어냈다면 적어도 지난 총선보다 의석이 늘었다는 평가를 통해 당대표 도전에 자격이 주어지지만, 현재 스코어로는 총선 패배에 대한 책임론이 더 크다는 점에서 한동훈 전 위원장의 당권 도전은 현실적으로 어렵다는 평가다. 

물론 한동훈 위원장으로서는 그러한 평가를 수용할 가능성은 크지 않다. 이번 총선의 패인이 본인에게 있다기 보다는 이종섭 국방장관의 호주대사 발령과 황상무 수석의 설화에 대한 윤석열 대통령의 방어, 그리고 대파 사건과 같은 용산발 참사가 상승하던 국민의힘의 지지세에 찬물을 끼얹었다고 생각할 것이기에 그렇다. 

실제로 국민의힘은 한동훈 전 위원장을 내세워 긍정적인 점수를 따내기 시작한 것이 사실이다. 그러한 가운데 용산과 친윤이 한 전 위원장의 행보에 제동을 걸면서 필연적으로 윤석열 대통령이 등장하게 되고, 이 때문에 이재명 vs 윤석열이라는 대결 구도가 재현되면서 정권심판론에 불이 붙었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해석에는 반론도 만만치 않다. 

한동훈 전 위원장이 윤석열 대통령에 대해 관철해야 할 자신의 책무를 방기했다는 비판이 그것이다. 대표적인 예가 김건희 여사의 디올백 사건에 대한 용산과 윤석열 대통령의 안일한 태도에 한동훈 전 위원장이 굴복한 점이 지적된다. 

결국 한동훈 전 위원장은 국민이 보기에 오만과 독선에 가득찬 윤석열 대통령의 충실한 부하 외에 다른 의미를 부여하기 어렵다는 평가가 지배적이었다. 따라서 한동훈 전 위원장이 용산과 윤석열 대통령에게 총선 패배를 돌리는 것은 누워서 침 뱉기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특히 당내 중진들과 친윤 그룹에서는 한동훈 전 위원장의 수도권과 비례공천의 아마추어리즘을 지적하는 이들이 적지 않다. 선거 경험이 풍부한 당내 인사들의 권고를 제대로 듣지 않고 설익은 전략의 오류가 선거의 구도와 인물에 악영향을 줬다는 것이다. 

하지만 그러한 주장들도 사실은 국민의힘과 윤석열 대통령이 가진 근본적인 오류에서 벗어나 있다고 평가하기 어렵다. 

국민의힘은 2016년 이후 여러 선거에서 패배를 거듭해 왔다. 이러한 배경에는 시대정신의 변화를 제대로 읽어내지 못하는 보수 주류들의 정치적 지체현상이 자리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러한 현상 가운데 대표적인 것이 ‘운동권 586청산론’이라 할 수 있다. 
선거가 국민의 정치적 욕구를 반영하는 것이라면, 적어도 운동권 청산론은 시대적 상황에서 국민이 긴급히 요하는 것이 아니었다. 그보다는 코로나19와 미중경제 전쟁으로 인한 경제적 불확실, 그리고 여기에 더해진 고물가, 고금리로 인한 경제 충격과 생활고에 국민의힘 스스로 집권 여당으로서 신뢰성 있는 대안이나 정책을 주도하지 못했다는 점이 더 크다는 평가다. 

수입 금지 규제를 풀어 해결할 수 있었던 사과 한 알에 5000원, 그리고 850원 대파 논란은 윤석열 정권이 드러내는 무능함의 표상으로 인식되기에 충분했던 것이다. 

문제는 용산과 윤 대통령, 한동훈 전 비대위원장은 그렇다고 쳐도, 어떻게 정치를 수십 년 해왔다는 국민의힘 중진들마저 모두가 꿀 먹은 벙어리 상태가 되어 있을 수 있느냐는 것이다. 

한마디로 언론과 여론에 비치는 국민의힘이란 국민과는 유리된 ‘그들만의 힘’이었다는 평가로부터 과연 국민의힘 중진들이 선거 경험이 풍부한 전문가들이 맞느냐는 질문은 비범한 것이 아니라 상식 수준의 것이라 할 수 있다. 

조국 조국혁신당 대표가 4월 10일 국회에서 총선 출구조사 결과 발표를 보고 있다. / 연합
조국 조국혁신당 대표가 4월 10일 국회에서 총선 출구조사 결과 발표를 보고 있다. / 연합

‘윤로남불’된 김건희 리스크 해결이 관건

그러나 무엇보다 22대 총선에서 집권 여당의 패배에 결정적이고 근본적인 원인은 윤석열 대통령이 김건희 여사 리스크를 해결하지 못했다는 점을 들지 않을 수 없다. 이 가운데 디올백 사건은 종북 성향의 목사가 꾸며낸 함정이라는 점이 있었지만 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 사건에 대해 법원이 김건희 여사 관련 계좌의 공모 관련성을 판결에서 밝혔던 만큼, 검찰이 김건희 여사를 소환 조사해서 그 계좌들에 김건희 여사의 공모 관계가 없다면 무혐의 처리하는 것이 옳았다. 

만일 고발 단체가 검찰의 이 조치가 부당하다고 판단한다면 법원에 재정신청을 할 것이고, 그러면 법원이 수사 결과를 검토해서 기소든, 기각이든 하면 되는 문제였다. 이 사건의 내막을 알고 있는 율사들과 금융전문가들은 김건희 여사가 무혐의라는 점을 알고 있었고, SBS의 뉴스픽 보도도 그러한 취지로 분석 보도한 바가 있다. 하지만 윤석열 대통령은 완고했다. 실체적 진실을 본인이 알고 사건 내용도 법적으로 잘 알기에 더 그랬을 것이다. 

하지만 그 결과는 조국 전 장관이 주장하는 것처럼 ‘윤로남불(윤석열이 하면 로맨스, 남이 하면 불륜)이 되어 버린 것이다. 이번 총선에서 불어닥친 조국 바람은 김건희 리스크의 역풍에 다름이 아니었다. 이러한 가운데 디올백 사건은 대통령의 사과 없이 KBS 기자와 대담으로 변명을 합리화하는 대응을 만들어 국민적 공분과 비난을 사는 결과를 초래했다. 적어도 사과 후에 그러한 해명을 하는 것이 순서였다는 것이 중론이다. 

이러한 윤석열 대통령의 거듭된 대응 오류에는 ‘밀리면 끝장’이라는 식의 오판을 정무적 판단으로 제시하는 비선 그룹이 있지 않고는 불가능하다는 추측마저 존재한다. 윤석열 대통령으로서는 자신의 성공 신화를 믿고 그 신화에 스스로 자신의 무덤을 마련하고 있었다는 설명이 과히 틀려 보이지도 않는 이유다. 

윤석열, 국민과 직접 소통해야

상황이 어찌 됐든 윤석열 대통령은 분명히 레임덕 상황에 놓여 있다. 하지만 윤 대통령은 이를 인정하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지난 2년과 크게 달라질 여야 구도도 아니기 때문이다. 대통령은 여전히 야당이 과반으로 결의하는 법안을 거부할 수 있고 야당들은 이를 저지할 정족수 200석을 확보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문제는 국민의힘 내부에 있다. 과연 국민의힘의 22대 국회의원들이 윤석열 대통령을 지난 2년간의 대통령처럼 대할 것인지가 의문인 것이다. 그러려면 대통령과 용산은 국민의힘에서 일어날 당권 경쟁과 권력투쟁에 개입하지 말아야 한다. 

그보다는 차라리 현재의 국민통합위원회를 정비해서 국민과 직접 소통에 나서는 것이 현명할 수 있다. 국민통합위를 통해 국민이 공감하는 개혁 법안의 입법을 국회에 촉구하고 야당이 거부하면 국민이 직접 목소리로 야당을 국정에 견인되도록 하는 것이다. 

이를 위해 현재 국민통합위의 성격은 보다 근본적으로 국가 위기를 정의해 도출하고 그러한 위기를 극복하기 위한 국민적 명령기구로 전환해야 한다. 

그러한 예는 97년 IMF 금융사태 시에 김대중 대통령이 여소야대를 극복하기 위해 ‘제2건국위’를 구축하고 이를 통해 국회가 국민의 요구와 주장을 따르게 했던 사례가 있다. 

노무현 대통령 역시 여소야대 상황에서 노사모 조직을 ‘참여민주주의’라는 이름으로 독려했다. 노사모는 정치, 경제, 사회, 문화 각 영역에서 공적 이슈의 모든 분야에 공론과 아젠다 주체로 활동했다. 노 대통령은 2007년 “노사모가 없었으면 대선 수사를 못했거나 대통령이 못됐거나 둘 중 하나였다”고 말했다. 당시 노사모는 공무원 조직에도 결성됐다. 우파의 노사모, 보수의 제2건국위도 생각해 볼 때가 된 것이다. 

물론 그러한 시민참여 운동은 보수의 혁신과 정치 개혁의 보편적 가치를 중도로 확장한다는 유연성을 전제로 해야 함은 당연한 것이다. 보수도 이제 각성을 통해 새로워져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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