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10월 10일 노르웨이의 노벨위원회는 에티오피아의 아비 아머드 알리 총리(43)를 노벨평화상 수상자로 발표했다. 이에 대해 청와대가 씁쓸함을 느꼈을지도 모른다. 2018년에 한 언론은 “2018년 1월 3일자 타임지는 한반도 비핵화를 위해 노력한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위원장을 노벨평화상 후보로 꼽았다”고 보도한 적이 있고, 또 다른 언론은 “노벨평화상 수상자 발표를 앞둔 시기에 청와대 춘추관에는 미묘한 긴장감이 팽배했다”고 보도하기도 했다. 물론 청와대가 노벨평화상에 대해 드러내놓고 기대감을 표시한 적은 없다. 오히려 문 대통령은 “노벨상은 트럼프 대통령이 받고 우리는 평화만 가져오면 된다”고 발언한 적이 있다. 하지만, 이 발언을 그대로 믿을 것인지는 전적으로 듣는 사람의 판단에 달린 문제다. 이에 비해 트럼프 대통령은 좀 더 직설적이다. “노벨위원회가 공평하게 수여한다면 나는 많은 일과 관련해 수상자가 될 것”이라고 말했던 그였다.
그렇다면 문재인 대통령이나 트럼프 대통령이 노벨평화상을 받을 충분한 명분을 가진 것일까? 결론부터 말한다면, 그렇지 못하다. 우선은 노벨평화상 수상의 역사를 되돌아볼 때 현직 대통령들이 평화에 기여했다는 이유로 상을 받은 이후에 그 평화가 유지되지 못했거나 오히려 비극적 결과를 가져온 경우가 많았기 때문이다. 앞으로도 그렇다. 항구적·구조적 평화가 아닌 일시적인 평화를 보고 수상자를 결정하는 관례가 반복된다면 이는 노벨평화상의 권위 자체를 실추시키는 일일뿐 아니라 숱한 부작용을 잉태할 수 있다. 북한의 비핵화 문제만 해도 그렇다. 북한이 핵을 포기할 가능성이 높지 않을 뿐 아니라, 설사 미북 간 타협으로 모종의 합의가 이루어진다하더라도 완전한 비핵화가 아닌 ‘가짜 비핵화’에 그칠 가능성이 높다. 만약, 그런 ‘가짜 비핵화’에 노벨평화상이 주어진다면, ‘그들만의 축제’일뿐 그로 인한 고통은 고스란히 한국 국민이 몫이 되고 말 것이다.
문재인·트럼프·김정은에게 노벨평화상이 필요한 이유
문재인·트럼프·김정은에게 노벨평화상이 필요한 이유는 각자가 처한 정치적 입장으로 인하여 각각 다르다. 우선 트럼프 대통령은 2020년 재선을 위해서 2019년 노벨평화상이 필요했고, 2020년에도 수상이 절실할 것이다. 탄핵 위기와 지지도에서 민주당 후보에게 뒤지는 상황에서 노벨평화상 수상은 모든 악재들을 집어삼키는 블랙홀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2020년 수상자 발표 시기가 2020년 10월초이기 때문에 미국 대통령 선거(2020.11.3.)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다.
2019년 문재인 대통령은 트럼프 대통령보다 더 간절하게 노벨평화상을 원했을 것이다. 2019년에 노벨평화상을 받았더라면 2020년 4월 총선에서 여당과 그 ‘2중대’ 정당들의 승리를 견인할 수 있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문 대통령은 2019년 6월 12일 노르웨이 오슬로에서 열린 오슬로포럼에서 ‘국민을 위한 평화’라는 주제로 기조연설을 하면서 ‘평화’를 53회 외쳤고, 9월 24일 유엔 총회 기조연설에서도 ‘평화’를 54회나 외쳤다. 이러한 행동을 보면서 문 대통령이 노벨평화상에 관심이 없는 것이 아니라 관심이 없는 척 했을 뿐이라고 해석하는 사람들도 많다.
김정은 위원장은 트럼프나 문재인 대통령만큼 절실한 상황에 있지는 않지만, 그래도 노벨평화상을 받는다면 북한 인민들에게 아버지와 할아버지를 능가하는 위대한 지도자로 각인하는 선전거리가 될 수 있을 것이다. 또한, 문재인과 트럼프가 노벨평화상을 받고 김정은이 빠진다면 북한 인민들에게 체면을 구기는 일이 될 수 있다. 이렇듯 문재인, 트럼프, 김정은 3인은 간절함의 정도는 다르지만 각자의 입장에서 노벨평화상을 원하고 있을 것이다. 특히 트럼프 대통령과 문재인 대통령은 그들의 정치적 계산에 따라 2020년 노벨평화상 수상을 위한 마지막 베팅을 시도할 가능성이 있다.
현직 대통령에게 주어진 빛바랜 노벨평화상
1901년부터 수여되기 시작한 노벨평화상은 2019년까지 총 100차례에 걸쳐 107명의 개인과 27개의 단체에게 주어졌다. 수상자는 엄격한 추천 및 심사 절차를 거쳐 결정되지만, 현직 대통령 또는 외교장관에게 수여되었다가 빛을 바랜 사례들이 종종 있었다. 1906년 시오도르 루즈벨트(Theodore Roosevelt) 미국 대통령, 1973년의 헨리 키신저(Henry Kissinger) 미 국무장관, 2000년 김대중 대한민국 대통령, 2009년 버락 오바마(Barack Obama) 미국 대통령 등이 그 예이다.
미국의 26대 대통령인 루즈벨트는 1905년 러시아와 일본의 특사를 포츠머스로 불러 러일전쟁을 종식하는 조약을 체결하게 한 공로로 1906년 노벨평화상 수상자가 되었다. 그러나 포츠머스 조약 직전에 일본과 가쓰라-태프트 밀약을 맺어 1910년 일본으로 하여금 조선을 합병하도록 양해했던 사실이 드러남으로써 루즈벨트가 만들어낸 평화가 가짜였음이 증명되었다.
1973년 파리평화협정을 주도한 공로로 키신저 미 국무장관이 노벨평화상을 받은 것은 최악의 사례였다. 베트남전쟁을 종식하고 평화를 가져왔다는 명분으로 키신저에게 주어진 노벨평화상은 1975년 북베트남의 남침과 그로인한 베트남의 공산화로 인해 빛이 바랬다. 북베트남의 레득토는 아직 베트남에 평화가 오지 않았다는 이유로 수상 자체를 거부했고, 1975년 베트남 공산화 이후 키신저는 노벨평화상을 반납하고자 했으나 거부당했다. 이 사건으로 노벨위원회 위원 2명이 사임했고, 사람들은 “평화상이 아니라 전쟁상이었다”고 조롱했다.
2000년 노벨평화상 수상자는 김대중 당시 대한민국 대통령이었다. 노벨평화상위원회 군나르 베르게 위원장은 "金대통령이 한국과 동아시아에서의 민주주의와 인권, 특히 북한과의 평화․화해를 위해 노력한 점이 인정된다"고 선정 사유를 밝혔다. 하지만, 김대중 대통령에게 주어진 노벨평화상은 2006년부터 시작된 북한의 6차례 핵실험으로 빛을 잃었고, 한국 국민은 북한의 핵 인질로 전락했다.
2009년 취임 1년도 안된 오바마 대통령에게 수여된 노벨평화상은 최강국 미국의 대통령이기에 받은 ‘선불’이라는 평가가 어울린다. 그는 2011년 이라크 전쟁 종전을 선언하면서 미군을 철군시켰으나, 이슬람국가(IS) 세력이 창궐하면서 미국은 2014년에 다시 미군을 투입해야 했고, 이로서 오바마에게 주어진 노벨평화상 역시 진정한 평화를 보장하지 못했음이 증명되었다.
여기에 더해 2019년도 노벨평화상 수상자로 결정된 에티오피아 아비 아머드 총리의 경우에도 수상 결정이 발표되고 2주도 지나지 않아서 퇴진을 요구하는 대규모 시위에 직면했다는 보도가 나오고 있다.
현직 국가지도자의 노벨평화상 수상, 과연 타당한가?
이상 살펴본 몇 건의 사례에서 도출할 수 있는 교훈은 현직 대통령 또는 외교수장에게는 노벨평화상 수여를 제한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 이유를 구체적으로 들어보면, 첫째, 현직 지도자에게 있어 평화를 만들고 유지하는 것은 당연한 임무다. 당연한 임무를 수행한 것에 대해 가장 권위 있는 상을 수여하는 것 자체가 모순인데다, 결과가 입증되지 않은 상태에서 형식적인 선언이나 합의를 이끌어냈다고 성급하게 노벨평화상을 주게 되면 지도자들은 가짜 평화를 만들어내고 싶은 유혹을 느끼게 된다. 둘째, 현직 대통령이나 지도자가 노벨평화상을 수상하면 정치적 위상이 강화되어 국내 정치에 큰 영향을 미친다. 특히 선거를 앞둔 현직 대통령에게는 절대적으로 유리한 결과를 가져오게 될 것이다. 이는 국가지도자들이 무리하게 노벨평화상 수상을 추진하는 유혹을 느끼게 되는 이유이다. 셋째, 노벨평화상 추천·심사 절차의 공정성이 저해될 소지가 높다. 국가지도자는 ‘현직’이라는 이점을 이용하여 수상을 위해 국가예산과 자원을 전방위적으로 사용할 수 있다. 따라서 민간 신분으로 평화에 이바지한 후보들은 그만큼 불리한 입장에서 수상 경쟁을 벌여야 될 것이다.
위와 같은 이유들로 현직 국가지도자들에게 노벨평화상을 수여 하는 것은 엄격히 제한되어야 마땅하다. 이러한 관점에서 지미 카터 전 미국 대통령에게 수여된 노벨평화상이 갖는 의미는 특별하다. 카터 대통령은 1981년 대통령직을 마친 후에도 끊임없이 평화와 인권 신장을 위해 활동하였고 그 공로를 인정받아 2002년 노벨평화상을 수상했다. 진실로 의미있는 수상이라고 할 수 있다. 노벨위원회가 이런 점들을 충분히 고려하여 지금부터라도 현직 국가지도자들의 노벨평화상 수상을 배제하는 결단을 내린다면, 각국의 지도자들이 개인적 영달이나 정치적 목적을 위해 ‘평화쇼를 통한 노벨평화상 수상’을 추진하는 일은 없어질 것이다.
‘가짜 비핵화’에 노벨평화상이 주어진다면
미국은 최강국이다. 루즈벨트 대통령이나 키신저 국무장관이 만들어낸 평화가 나중에 거짓으로 밝혀졌다고 해서 미국이 위기에 처해지지는 않았다. 그러나 대한민국은 그렇지 않다.
김대중 정부시절 대통령 주변에는 노벨평화상 수상을 추진하는 참모들이 활발하게 움직였고, 2000년 남북 정상회담을 성사시키기 위해 적지 않은 돈이 북한에 지불되었다. 방북을 마치고 돌아와서 김대중 대통령은 “북한은 핵을 개발할 능력도 의지도 가지고 있지 않다”고 했고, “이제 전쟁은 없다”고도 했다. 김 대통령의 이 발언들이 국민에게 일시적인 안도감을 주었을지는 모르지만, 북한은 김 대통령이 노벨상을 수상하는 순간에도 핵개발과 미사일 개발을 지속했고 2006년 첫 핵실험을 실시하기까지 국제사회의 눈총을 받지 않으면서 ‘핵무력 건설’에 박차를 가할 수 있었다. 이후 2017년까지 여섯 차례에 걸쳐 핵실험을 강행함으로써 한국을 핵 인질로 만들었다. 그래서 묻고 싶다. 김대중 대통령의 노벨평화상 수상이 대한민국의 안전에 어떠한 기여를 했는가?
현재의 상황은 더욱 심각하다. 북한은 ‘조선반도 비핵화’라는 괴상한 논리를 앞세우고 “미국의 적대시 정책을 포함한 우리 공화국을 위협하는 모든 미국의 위협을 먼저 해소해야 한다”는 주장을 줄기차게 반복하고 있다. 이 주장대로라면 대한(對韓) 핵우산, 미 전략자산 전개, 연합훈련 등을 모두 제거하거나 중단해야 하고, 북한이 ‘위협’이라고 지목하면 주한미군도 철수해야 하며 한미동맹도 무력화시켜야 한다. 이는 북한이 핵능력의 일부만을 내놓고 얻고자 하는 모든 것을 얻어가겠다는 ‘가짜 비핵화’를 획책하기 때문이며, 미국에게 새로운 셈법을 가져오라고 압박하는 것도 ‘가짜 비핵화’를 수용하라는 뜻이다.
만약, 재선 경쟁에 돌입하는 트럼프 대통령이 노벨평화상을 노리고 북한의 이런 제안을 덜컥 받아들인다면, 한반도에는 한바탕 ‘평화쇼’가 펼쳐질 가능성이 크다. 트럼프 대통령은 자신이 이룬 성과를 침소봉대하여 북핵 문제가 해결된 것처럼 선전할 것이며, 한국에서는 문재인 정부와 좌파 노조가 장악한 ‘기레기’ 언론들이 ‘평화의 나팔’을 불어댈 것이다. 북한에서도 “위대한 지도자께서 미국을 제압하고 공화국의 위상을 높였다”며 난리를 칠 것이다. 당연히, 지금까지의 관례대로라면 이 평화쇼가 문재인·트럼프·김정은의 노벨평화상 공동수상으로 이어질 수 있다. 하지만, 미국이 ‘가짜 비핵화’를 수용하는 것은 북한의 핵보유를 기정사실로 만들면서 한국의 핵 인질 상태를 영속화시키는 것을 의미한다. 문재인 정권의 재집권 가능성도 높아지고 대한민국을 사회주의 체제로 바꾸고자 하는 그들의 ‘국가개조’ 작업도 더욱 힘을 받을 것이다.
잘못된 대상에 대한 성급한 노벨평화상 수여가 자유민주주의 대한민국의 종말을 가져온다고 해도 노벨위원회가 책임을 져주는 것은 아니다. 그 책임은 오롯이 대한민국 국민의 몫이 될 것이다.
글/김형철 전 공군참모차장·김태우 전 통일연구원장·박휘락 국민대 교수·송대성 전 세종연구소장·신원식 전 합참 작전본부장
외부게재시 개인은 출처와 링크를 밝혀주시고, 언론사는 전문게재의 경우 본사와 협의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