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래한국’ 총무국의 000 차장님 이야기.
그녀는 어떤 뉴스도 ‘사진’으로 전달되는 부분은 믿지 않는다. 이번 세월호 사건 때도 그랬다. 많은 언론들이 무능함을 만회하려는 듯 대형사진들을 도배하다시피 했지만 그녀는 어떤 사진도 그대로 믿지 않았다.
“그 일 겪고 난 뒤로는 사진에도 다 ‘의도’가 있다는 걸 알았어요.”
여기서의 ‘그 일’이란 1993년 3월의 사건을 의미한다.
사진으로 서울시장 낙마시킨 언론의 ‘무소불위’
기세 좋게 문민정부의 간판을 내걸고 취임한 김영삼 대통령은 당시 40대의 젊은 김상철 변호사를 서울시장으로 임명했다. 그를 ‘과거에 물들지 않은 일꾼’으로 소개한 당시 유력 일간지는 지면의 상당 부분을 할애해 인터뷰 기사를 게재하기도 했다.
밀월(?)은 여기까지였다. 1주일 후인 3월 3일, 해당 일간지는 태도를 바꿔 김상철 서울시장 ‘저격’ 기사를 내보냈다. ‘김상철 시장 집 정원 524평 그린벨트 밭 무단형질 변경’이라는 제목과 함께 실린 것은 여기가 집인지 에버랜드인지 알 수 없을 정도로 으리으리한 대저택의 사진이다.
결국 1주일 만에 사표를 낼 때까지 모든 언론이 김 前시장의 안 좋은 사진만 희한하게 찍어다 썼다는 게 000 차장의 후일담이다. 얼마 전 아주 우연히 처음으로 그 기사를 냈던 일간지 출신의 언론인을 만났다. “지금 생각해보면 정말 아무 일도 아니었다”고 회고하는 그에게 “그럼 그때는 어떻게 생각하셨느냐”고 차마 묻지는 못했다.
김영삼 대통령도 그렇게 난리가 났던 김 前시장의 집에 퇴임 이후 가 보고는 “기가 찼다. 당시 언론이 무소불위하던 시절이었다”고 표현했다. (김상철 추모집 ‘그는 시대를 보았다’ 中)
이 수라장을 겪고 10년 뒤 창간된 것이 여러분께서 읽고 계신 故 김상철 회장의 ‘미래한국’이다. 하지만 언론의 무소불위는 끝났다고 말할 수 있는가? 우리는 세월호 참사 이후 언론들이 올려대는 수많은 사진들 앞에서 여전히 ‘오해 중’이다.
우리의 눈을 어디까지 믿을 수 있을까
한 가지 전제할 사실이 있다. 이번 세월호 사건으로 박근혜 정부가 많이 비판받아야 한다는 사실이다. 도대체 개명천지 21세기에 어떻게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있는지 관(官)의 음지를 조사하면 고칠 일들이 산더미일 거라는 데 의심의 여지가 없다.
물론 이끼가 번지는 데는 시간이 걸렸을 것이다. 대한민국은 10년이라는 시간 동안 좌파 정부도 경험했으니 이번 사건에는 ‘좌우 합작의 비극’이 깔려 있을 거라는 게 합리적 가설이다.
그런데 아무리 좋은 마음으로 바라보려 해도 어떤 사람들은 이 문제를 오로지 박근혜 하야 혹은 우파 흔들기의 구심점으로 삼으려 하는 것 같다. 아직도 배가 망망대해에 드러누워 있고 사건 발생 이후 열흘 정도가 흘렀을 뿐이라는 걸 믿기 힘들 정도다. 사람들은 이미 누가 나쁜 놈이고 누구를 처단해야 할지를 다 결정해 버린 눈치다.
이 메커니즘에도 ‘사진 공격’은 작지 않은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김문수 경기도지사의 경우를 보자. 그는 이번 논란에서 눈치 없이 ‘시적인 글’을 썼다가 속된 말로 가루가 됐다. 하지만 그에 못지않은 분노를 증폭시킨 사진 한 장이 있으니 그게 바로 “저는 경기도에서는 좀 영향력이 있는데 여기는 지금 경기도가 아니라서 힘이 없다”는 발언의 캡처 장면이었다.
수없이 스크랩된 사진 속 한 마디는 사실 “여러 가지로 한계가 있기 때문에 일단 해수부 장관은 여기에 와서 하도록 하겠습니다”라는 본론을 전달하기 위한 서론이었다. 애초에 그다지 중요한 메시지조차 아니다. 그런데도 SNS는 본론을 자르고 서론만 돌려댐으로써 그를 책임 회피 하는 비겁한 리더의 전형으로 만들어버렸다. 이런 사례는 수도 없이 많을 것이다.
예로부터 우파 인사들의 ‘꼰대度’가 높아 어디 가서 눈치 없이 행동하는 사례가 많다는 점은 인정한다. 하지만 거기에도 사실적 근거가 뒷받침돼야지 ‘이 기회에 날린다’는 식이어서는 곤란하다. 그래서야 당사자에게도 억울한 마음이 생길 뿐 개선의 여지가 생길 리 만무하지 않겠는가.
정부가 의도적으로 구조를 피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
역시 SNS를 反정부 기조로 정렬시킨 ‘세월호 유리창 사진’에 이르면 상황은 좀 더 심각해진다. 이 사진은 ‘자세히 보면 창문에 구명조끼가 보인다. 정부는 유리창 깨서 안 구하고 뭘 하고 있나?’라는 비난으로 연결됐다.
그 사진이 언제 어떻게 찍혔는지를 아는 사람은 거의 없다. 확실한 건 목포해양경찰 이형래 경사가 “앞쪽 격실에서 구명조끼를 흔들며 구조 요청하는 분이 보여 유리를 깨고 6~7분 구했다”는 증언을 했다는 사실이다. 정부가 의도적으로 구조를 회피하고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이렇게 많다는 것도 놀랍지만 그걸 교묘하게 증폭시키는 사람들은 그저 악마로 보일 뿐이다.
그러더니 이제는 ‘노란 리본’이라는 사진 한 장이 유행처럼 번지고 있다. 나도 한때 이 사진을 페이스북에 걸어둘까 잠시 고민했었고, 기적을 바라는 분들의 마음을 비웃을 생각도 전혀 없다. 하지만 그렇게 온힘을 다해 사진을 보며 분노하던 사람들의 귀결이 ‘기적이라는 이름의 사진’으로 귀결되는 게 조금은 허탈하다.
누군가는 지금도 목숨을 걸고 야속한 물살을 가르는 중이다. 맹렬하게 비판받아야 할지언정 정부도 노력하고 있다고 볼 만한 근거는 널려 있다. 왜 우리는 때때로 3D의 현실 대신 2차원의 사진 속으로 도망 가 스스로의 판단력을 제한하려고 할까.
이원우 기자 m_bishop@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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