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을 수놓는 삶과 죽음의 대서사시
전쟁을 수놓는 삶과 죽음의 대서사시
  • 미래한국
  • 승인 2013.01.30 11: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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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경귀의 고전 읽기: <일리아스>
박경귀 한국정책평가연구원 원장

수많은 신과 영웅들의 애환이 만들어낸 대서사시 <일리아스>와 <오디세이아>가 왜 그토록 오랫동안 서구인들을 매료시키고 있을까?

당대의 교과서로 삼은 그리스의 수많은 희극, 비극 작가들은 물론이고, 2천여 년 동안 시대와 나라를 넘나들며 수많은 사람들이 호메로스의 작품의 테마와 상징, 인물과 영웅담에서 영감을 얻어내 새로운 문화예술 작품을 재창조하고 학문을 확충했다.

‘호메로스’는 영광스런 시인의 대명사이자, 영원한 탐구와 모방의 대상이요, 문학적 상상력과 영감의 원천이기 때문에 끊임없는 궁구의 대상이 된다.

<일리아스>는 역사와 신화를 넘나든다. 작가적 허구와 역사적 사실이 혼재돼 있다. 트로이아 전쟁(Trojan War)과 트로이아 문명의 실존 여부가 그러했고, 고대 그리스 도시국가의 분포와 세력관계의 존재 여부도 논란의 대상이다.

하지만 독일 아마추어 고고학자였던 하인리히 슐리만의 1873년 발굴로 트로이아의 존재는 역사적 실재였음이 확인됐다.

트로이아 전쟁은 지금의 터키 땅인 소아시아지역의 일리오스에 있었던 트로이아 왕국과 펠로폰네소스 반도에 산재했던 그리스 도시국가 연합군 간에 10년간 벌어졌다.

트로이아의 왕자 파리스가 그리스 지역의 스파르타의 왕 메넬라오스의 왕비 헬레네(Helene)를 납치해 간 사건이 직접적 전쟁 원인이었다. 헬레니즘(Hellenism)의 어원과도 연결된 것이 의미하듯 헬레네는 영원한 여성성의 상징으로 서구 문학의 중요한 소재가 된다.

이 작품을 관통하는 주제는 사랑과 분노, 삶과 죽음이다. 전쟁 과정에서 인간 군상들이 겪는 이런 애환에 신들이 개입한다. 그리스의 고대 신은 기독교적 신과 전혀 다르다. 사회적, 심리적 기능을 하지만 도덕적 기능과는 거리가 멀다. 플라톤이 추구한 지성적으로 완벽한 무결점의 신이 아니다.

고대 그리스 신들은 자연신으로 모든 인간사회의 삶에 영향을 미치는 모든 자연 현상에 깃든 영적 이미지이다. 신들은 영생(永生)할 뿐 신들의 세계에서나 인간과 교감하는 영적 세계에서 인간적 감성과 행태를 그대로 나타낸다. 인간과 마찬가지로 신들끼리도 편을 갈라 싸운다.

물론 신들의 개입이 물리적 현실이든 아니든 간에 <일리아스>가 무한한 영감과 흥미를 자극하는 비결은 신과 인간이 서로 얽혀 만들어내는 이런 교감에 있지 않을까? 인간이 신에게 위안 받고 스스로 격려하기 위해 신을 의지했고, 때로 자신의 실패와 불운을 신의 나쁜 개입으로 합리화 시킬 수 있었던 것이 아닐까?

트로이아 전쟁을 지배하는 가장 큰 동기와 힘은 분노이다. 파리스에게 아내를 빼앗긴 메넬라오스의 분노, 자신의 전리품이자 사랑하는 브리세이스를 아가멤돈에게 빼앗긴 아킬레우스의 분노, 자신의 시종이자 절친인 파트로클로스를 죽인 헥토르에 대한 아킬레우스의 분노가 트로이아인들과 그리스인들 사이의 피의 보복을 부르는 전쟁의 동인이 되는 것이다. 사랑과 신뢰, 우정을 잃어버린 데 대한 분노이다.

호메로스는 이들의 분노를 신들이 더욱 부채질하게 하지만, 분노를 녹이는 화해를 인간들 스스로 만들어 내게 하고, 종국에는 필멸(必滅)의 인간의 한계를 깨닫게 해서 겸허하게 죽음을 마주하게 한다.

또 신들의 예언과 파트로클로스와 헥토르의 장례의식을 통해 그 어떤 영웅호걸도 언젠가 죽을 수밖에 없다는 인간의 운명을 겸허하게 수용하게 만든다. (미래한국)

박경귀 한국정책평가연구원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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