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생의 허욕에 대한 날카로운 깨우침
영생의 허욕에 대한 날카로운 깨우침
  • 미래한국
  • 승인 2013.01.16 1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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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경귀의 고전 읽기: <길가메시 서사시>
박경귀 한국정책평가연구원 원장

작자 미상의 <길가메시 서사시(Epic of Gilgamesh)>는 메소포타미아의 민족 중 최초로 문자를 사용한 수메르족이 수메르어로 진흙 토판에 기록해 널리 알려졌다.

기원전 2천년 휠씬 이전의 것으로 추정된다. 고대 그리스 문화와 이후 서양문화에 큰 영향을 끼친 호메로스의 <일리아스>보다 무려 1천5백여 년 앞서며, 현존하는 인류 최초, 최고(最古)의 서사시로 인정받는다.

이 서사시의 주인공은 길가메시이다. 그는 기원전 3천년대 초반 존속했던 메소포타미아 도시국가 우룩(Uruk)의 첫째 왕조 다섯 번째 통치자로 3분의 2는 신이요, 3분의 1은 인간으로 태어났다.

누구도 대적할 수 없는 강인한 육체와 완력을 갖췄고, 축성술에 뛰어났다. 이 서사는 절대 권력과 용맹을 지녔던 수메르의 영웅 길가메시가 겪는 도전과 모험, 영생을 추구하는 인간의 헛된 욕망과 숙명적 좌절을 그리고 있다.

그는 대모험을 떠나, 대홍수를 피해 유일하게 살아남아 신들로부터 영생(永生)을 얻은 ‘머나먼 곳’으로 불리는 우트나피시팀(Utnapishtim)을 만나 어렵게 영생의 꽃을 구했으나, 뱀에게 한 순간에 빼앗겨버리고 빈손으로 돌아와 결국 자신도 죽음을 맞는다.

길가메시의 서사시를 읽노라면 역사와 신화가 여러 상징으로 혼재되어 있음을 보게 된다. 이야기 속의 시대와 장소를 명확히 나타내지 않아 현실과 상상의 세계가 뒤섞여 있다.

하지만 기원전 3천년 경의 메소포타미아 지방에 실재했던 우룩 왕조의 시대적 배경에 비춰 역사적 실재성을 보여주는 대목도 상당히 많다.

우트나피시팀이 영생을 얻게 되는 경위를 설명하기 위해 들려주는 홍수 이야기도 호기심을 자극한다. ‘노아의 방주(Noah's ark)’ 이야기와 아주 흡사해 지금까지 많은 학자들의 논란거리가 된다.

판독자 샌다아즈는 창세기의 홍수 이야기가 길가메시 서사에 나오는 수메르의 홍수 설화에서 영향을 받은 것인지 독립적 설화로 내려 온 것인지에 대해서는 분명치 않다고 말한다.

이 시에 나오는 수많은 신들과 그들이 인간의 삶에 다양한 방식으로 개입하는 양태를 보면서, 시기하고 분노하며 기뻐하고 질투하며 징벌하는 등 의인화된 신과, 제어할 수 없는 자연에 두려움을 갖고 있던 인간의 교감을 통해 삶을 영위하던 고대 중동 사회의 가치관과 습속을 엿볼 수 있다.

여기에 등장하는 수메르의 복잡한 신들의 계보나 짧게 나타나는 이들의 역할과 특징에서, 후대에 더욱 풍성해진 그리스와 로마의 신화에서 활약하는 신들과 유사한 면을 많이 보여준다는 점도 흥미롭다.

이 서사시가 전해주는 핵심적 교훈은 아무리 뛰어난 영웅도 죽음을 피할 수 없다는 평범한 진리이다. 엔키두와 길가메시의 영웅적 삶도 필멸(必滅)의 운명을 거스를 수 없음을 확연하게 보여준다.

엔키두의 죽음을 보면서 죽음에 대한 두려움과 공포에 빠져 자신만은 영생을 얻어야겠다는 허욕과 자만으로 무모한 모험에 도전했던 길가메시에게 역리(逆理)의 결과를 경험하게 함으로써 인간의 한계를 알려주려 한 것은 아닐까?

불로초를 구하려 애쓰던 진시황도 길가메시와 같은 심정이었을까? 영생을 얻기 위해 광야를 떠돌던 길가메시에게 죽음의 운명을 받아들이고 현실의 평범한 행복을 즐기라고 충고하는 젊은 여인 시두리(Siduri)의 말은 내세보다 현실의 삶을 더 중시하던 수메르인들의 인생관을 대변해줄 뿐만 아니라, 후세 인간에게도 주고자 한 깨우침이 아닌가 싶다. (미래한국)

박경귀 한국정책평가연구원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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