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월 11일은 중국대사관 앞에서 탈북자 북송반대 시위가 열린 지 무려 333일째가 되던 날이다. 지난 2012년 2월 14일 이후 중국대사관 건너편에 위치한 효자동 옥인교회 앞에서 점화된 탈북민 북송반대 촛불은 시민단체인 ‘자생초’(자유, 생명, 촛불)의 자원봉사자들에 의해 이어지고 있다.
자생초 자원봉사자들은 현재 옥인교회 옆에 자가발전기를 설치하고서 천막 농성을 이어가고 있다. 기자가 자생초 천막을 방문한 이 날은 한낮임에도 수은주가 영하 10도까지 내려갔다. 천막 안에는 작은 난로가 있었고 바람을 차단했음에도 살을 에는 찬 공기가 들어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본지 기자를 만난 자생초의 강재천 씨는 “나 혼자서 집회를 하는 게 아니라 수많은 자원봉사자들이 개인 차원에서 진행하는 것”이라며 “이 분들을 대표하는 것처럼 인터뷰를 하는 것이 다소 부담스럽다”고 전제하면서 대화에 응했다. 그는 민주화보상법개정안 통과추진본부 본부장이기도 하다.
그간 ‘자생초’에 대해 나왔던 일부 언론 보도에 대해 강 씨를 비롯한 자원봉사자들은 사실과 다르다며 이의를 제기해 왔다. 본지는 지난 9월 자생초와 일부 탈북민 단체들 및 옥인교회 간에 갈등이 있다는 보도를 한 바 있다.
“자원봉사자 차원의 희생적 시위”
강 본부장은 “기존 언론보도와 관련해서 굳이 반론을 하고 싸울 일은 아니지만, 사실관계는 좀 바로잡고 싶은 부분이 있다”며 목소리를 높였다.
그는 “우리는 애초부터 중국대사관 앞에서의 농성이 특정단체들의 홍보의 장이 되는 것을 경계해 왔다. 이건 저 뿐만 아니라 여기서 순수한 마음으로 이 농성을 하는 자원봉사자들도 같은 생각”이라며 “얼마 전까지만 해도 이곳은 각종 플래카드와 현수막, 기자회견 등이 난무하는 농성 백화점과도 같았던 게 사실”이라고 밝혔다.
현재 옥인교회 옆에는 자생초의 천막이 있으며 강재천 본부장을 비롯한 자원봉사자들은 이곳에서 무려 1년 가까이 철야농성을 계속해 왔다. 말 뿐인 ‘철야’가 아니라 현장에서 저녁부터 그 다음날 아침 동이 틀 무렵까지 꼬박 밤을 새는 말 그 자체로의 철야시위다.
자생초가 농성을 시작한 시기는 다른 북한인권단체들과 마찬가지로 지난해 4월 중국이 국제사회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탈북민 24명을 강제북송 시켰을 때였다.
강 본부장은 “이후 그 24명은 총살을 당했는데 그 상황에서 농성을 중단한다는 건 말이 안 된다”며 “그 분들의 핏값을 받아내겠다”고 취지를 설명했다.
그는 이어 “그러나 일부 단체들은 행사와 이벤트 및 자체 홍보 위주로 접근하는 듯했기에 그 부분이 항상 안타까웠고, 그래서 그들과 대립이 있었던 것”이라고 주장했다.
즉 철저하게 개인적 자원봉사자들을 주축으로 한 순수한 농성이어야만 초심을 잃지 않고 장기적으로 진행할 수 있다는 게 자생초 측의 설명이었다.
강 본부장은 “단체 홍보와 언론플레이의 목적이 아니라 순수한 자원봉사자들 차원에서 참여하는 것이라면 누구라도 여기에 오는 걸 환영한다”고 덧붙였다.
대한민국 현대사에서 반미(反美)를 기치로 내건 미국대사관 앞 시위는 셀 수도 없이 많았다. 2002년에는 주한미군의 ‘공무 중 과실치사’였던 여중생 장갑차 사건을 침소봉대한 좌파단체들이 광화문 미국대사관 앞에서 석 달 가까이 폭력시위를 벌였고, 2008년에도 미국산 쇠고기 수입에 반대하는 반미 촛불시위가 광화문 일대를 뒤덮은 바 있다.
“역사적인 反中 시위, 24명 피값 받겠다”
그러나 점차 많은 영향력을 우리에게 미치고 있고, 특히 탈북민들을 번번히 강제북송 시켜 사지로 내몰 뿐 아니라 고구려 역사까지도 왜곡하는 중국을 겨냥해서는 그간 속 시원한 시위나 반대가 없었던 게 사실이다.
이런 관점에서 볼 때 자생초 자원봉사자들이 진행하고 있는 중국대사관 앞 농성은 의미가 있다. 강 본부장은 “우리가 중국에 대항해서 1년 가까이 농성을 진행하고 있는데, 이러한 지속적 목소리는 좌우를 통틀어 대한민국 역사에서 처음 있는 일일 것”이라며 “좌파는 본질적으로 친중 성향이고, 우파도 중국을 상대로 이런 장기 시위를 해본 역사는 없다. 따라서 우리는 지금 역사적인 장소에 있다고 단언할 수 있다”고 밝혔다.
무더운 여름과 추운 겨울을 고스란히 겪으면서 1년 가까이 이 농성이 이어진 비결은 무엇일까. 강재천 본부장은 “약 150명 정도의 자원봉사자들이 우리와 뜻을 같이 하고 있으며 많은 분들이 매일 오셔서 여러 도움을 주신다”며 “귀중한 시간을 쪼개고 귀중한 물품을 보내주시는 분들과 우리는 같이 가고 있다. 그렇기에 여기까지 올 수 있었던 것”이라고 밝혔다.
지난 여름부터 불거졌던 옥인교회 측과의 문제는 비교적 완만하게 봉합된 것으로 보인다. 그는 그 간의 사정을 이렇게 설명했다.
“농성 초반부터 옥인교회 측과 약간의 마찰을 포함해서 참 많은 일들이 있었습니다. 그 과정에서 다소 섭섭한 내용도 있기는 했지만 그래도 옥인교회가 중국대사관 앞에 있어줘서 정말 다행이고, 고맙게 생각합니다. 만약 중국대사관 건너편에 교회가 아니라 민간 주택이 있었다면 이런 농성은 애초부터 불가능했을 겁니다.”
강재천 본부장은 “우리의 농성이 계속 이어져 중국이 탈북민들을 난민으로 공식 인정할 수 있다면 좋겠지만, 그건 현실적으로 어렵다는 걸 잘 안다”며 “하지만 우회적인 방법을 써서라도 중국에서 신음하는 우리 국민들의 목숨을 구할 수 있도록 중국 정부를 압박할 수 있다면 우리는 이 농성을 언제까지라도 이어갈 것”이라고 밝혔다.
한편 강재천 본부장은 5만여명의 팔로워를 보유한 ‘파워 트위터리안’이기도 하다. (미래한국)
김주년 기자 anubis00@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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