禮와 仁으로 세상을 일깨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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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미래한국
  • 승인 2012.12.05 10: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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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경귀의 고전읽기: 공자 著 <논어(論語)>
 

‘공자(孔子)’하면 떠오르는 <논어(論語)>는 동양고전 가운데 첫손에 꼽힌다. 동양의 교양인 치고 <논어>를 읽어보지 않은 사람은 없을 듯싶다. 비록 <논어>를 완독하지 않았더라도 학교 교과서의 여러 글에서 명언 한 두 구절이라도 접해보지 않은 사람은 없으리라.

하지만 사대부의 필독서였던 과거와 달리, ‘공자 왈’이 현대인에게 끝까지 읽어 봐야 할 치명적 매력을 주지는 못하는 듯하다. 그저 <논어> 몇 구절을 기억해 때때로 인용하면서 인문적 교양을 과시하는 정도로 그 쓰임이 떨어진 듯하다.

물론 이런 상황은 시대 변화의 탓도 있지만 공자의 지나친 성인화(聖人化)가 자초한 측면도 없지 않다. 공자가 위대하게 부각될수록 일상의 보통사람들의 삶과 거리를 넓히고, 본받아 실천하기엔 도무지 어려운 고리타분한 말씀으로 치부되기 때문은 아닐까?

<논어>의 가치를 제대로 음미하기 위해서는 공자의 진면목을 알아야 한다. 신격화된 공자가 아닌 ‘인간 공자’를 마주할 때 그의 생각과 말, 행동에 담긴 교훈과 가치를 각자의 삶 속에 제대로 받아들일 수 있게 된다.

공자는 주공(周公)처럼 전권을 위임받아 정치적 포부를 펼쳐 예악과 도가 넘치는 세상을 만들 수 있기를 희구했다. 하지만 어떤 제후도 그의 원대한 포부에 귀 기울이지 않았다. 공자가 “아무도 나를 알아주지 않는구나!”라고 한탄한 이유이다. 공자의 염원과 포부, 그의 굴욕과 좌절을 함께 이해해야 <논어> 속에 담긴 그의 고뇌와 지혜를 마음으로 배울 수 있게 된다.

공자만큼 배움을 좋아한 사람도 없을 듯하다. “배우면서 때로 그것을 익히는 것도 기쁘지 않은가?(學而時習之, 不亦說乎?) 부단한 시습(時習)이 그 열락의 원천이요 군자의 제일 덕목인 것이다. 또 공자는 항상 배워나가는 사람(學而知之者)으로서 온고지신(溫故而知新)하는 자세를 요구했다.

공자는 가족윤리로 효(孝), 사회윤리로 충(忠)을 강조했다. ‘충(忠)’을 ‘진심을 다한다’로 이해할 때 일상의 인간관계로 까지 확장될 수 있다. 인(仁) 또한 공자의 핵심 사상이다. 극기복례(克己復禮)가 인의 중심이다. 자기를 이기고 예를 회복하는 것이 인이다. 특히 공자는 인을 타자와의 관계에서 실천적 덕목으로 요구한다.

아울러 공자는 문(文)과 질(質)의 조화도 중요시했다. 형식과 본질의 어울림이 있어야 학문의 완성, 인간의 완성에 가까이 갈 수 있다고 보았다. 공자는 예(禮)를 중시했지만, ‘문질빈빈(文質彬彬)’의 관점에서 형식보다 진심을 중시했다. 특히 예를 통해 불평등한 사회를 조화시키고자 했다.

최근 중국 공산당이 사회적, 경제적 불평등의 심화로 몸살을 앓고 있는 중국 사회를 바로 세우기 위해 ‘조화사회(和諧社會)’와 ‘소강사회(小康社會)’를 국가 비전으로 내세우 것은 결국 현실에서 구현될 수 없는 이상적 ‘대동사회(大同社會)’를 대신해 사회의 각 기능과 주체들의 욕구를 조정하고 타협시키는 효과적인 기제로서 예를 핵심개념으로 하는 유교를 부활시키고 있음을 간파하게 해준다.

세속의 관점에서 볼 때 공자는 실패한 정치인이었다. 그가 현실 정치에서 중책을 맡았더라면 당대의 혼란과 무질서를 바로잡았을 수 있었을까? 오히려 그의 올곧은 성정과 도에 집착하는 이상적 철학은 현실과 불화할 수밖에 없었던 듯싶다.

하지만 공자의 정치적 좌절에도 불구하고, 그의 가르침의 교육적 역할은 시대를 뛰어넘어 살아남았다. 그의 좌절과 고뇌가 오히려 끊임없는 자기 성찰을 촉진하고 그의 내면을 더욱 단련시켜 성인적 교육자의 토양이 된 것은 아닐까? (미래한국)

박경귀 한국정책평가연구원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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