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바이어던은 사회계약의 산물
리바이어던은 사회계약의 산물
  • 미래한국
  • 승인 2012.06.28 14: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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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경귀 한국정책평가연구원 원장

현대인들은 태어나면서부터 이전부터 존재해온 사회와 국가체제의 성원이 되고, 그 체제를 작동시키는 원리를 고민할 필요도 없이 경험적으로 알아가면서 성장하게 된다. 수 천년 동안 지속돼온 사회와 국가의 진화된 정교한 운영체계가 이미 개개인과의 어떠한 타협이나 위임의 여부와는 관계없이 주어져 있기 때문이다.

인간본성과 국가에 대한 통찰

일찍이 이러한 사회와 국가 생성의 원리와 과정, 국가를 움직이는 권한의 원천과 주체, 바람직한 운용체계에 대해 근원적인 고민을 던진 사람이 바로 토머스 홉스(Thomas Hobbes: 1588~1679)였고, 그 통찰의 산물이 <리바이어던(Leviathan)>이다.

그가 태어난 시기의 영국은 절대왕정의 시기로 왕의 권력은 신으로부터 주어진 것이라는 ‘왕권신수설(divine right of kings)’이 풍미했다. 스튜어트가의 제임스 1세에 의해 창도된 왕권신수설의 신봉은 왕의 절대권력을 강력히 옹호하는 배경이 됐고 이를 계승한 찰스(Charles) 1세의 폭정에 대해 귀족과 백성들의 원성이 높아가고 있었다. 특히 1215년 대헌장 이후 과세와 전쟁에 대한 동의권을 가진 의회가 점점 무력화되면서 그동안 축적돼온 왕당파와 의회파의 갈등과 대립이 극심하게 분출되던 대혼란의 시기였다.

이러한 잠재적 요소들이 결국 청교도 혁명과 3차례의 내전으로 폭발하게 됐고 영국 역사상 최초로 백성에 의한 국왕(찰스 1세)의 처형, 크롬웰의 독재공화정 실시, 찰스 2세의 왕정복고 등 혁명과 반동이 연속되는 격변기를 만들어냈던 것이다.

토머스 홉스도 이 격변의 소용돌이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 그는 한때 찰스 2세의 어린 시절 ‘황태자의 스승’이 되기도 하는 등 왕당파의 일원으로 분류되면서 프랑스 망명했다가 귀환했으나 왕정복고 이후에는 <리바이어던>, <시민론> 등의 출간으로 왕당파로부터도 비판받고 금서로 지정되는 등 현실정치세력에게 철저하게 배척받으며 고초를 겪었다.

<리바이어던>에서 홉스가 제시하는 자연법과 자연권의 사상을 제대로 음미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당시의 이런 사회 상황을 먼저 이해할 필요가 있다. 그가 담으려 한 심오한 사상이 보다 명확하게 떠오르기 때문이다.

홉스는 인간은 날 때부터 평등하다고 보았다. 이러한 ‘능력의 평등’이 각자의 목적 달성을 위한 ‘희망의 평등’을 낳고, 목적 달성의 경합이 불신과 전쟁을 야기한다고 보았다. 특히 인간의 본성 중에서 분쟁을 일으키는 세 가지 주된 원인을 경쟁(competition), 불신(diffidence), 공명심(glory)으로 꼽았다. 날카로운 지적이다.

하지만 홉스는 인간의 이런 본성을 비난하지 않는다. 인간이 자신의 이득, 안전, 공명심을 위해 공격자가 되고, 가족과 재산을 지키고 자기 방어를 위해 폭력을 사용하는 ‘만인이 만인에 대한 적인 상태’는 모두가 두려워할 만한 ‘공통 권력’이 존재하지 않는 한, 불가피한 인간의 생활양식이라고 보았다. 왜냐하면 만인은 자연적으로 모든 것에 대해 권리를 갖는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이 지점이 바로 ‘자연법(Law of Nature)’ 태동의 실마리가 된다.

 
홉스는 제1의 자연법으로 ‘평화를 추구하고 그것을 따르라’고 제시하고, 제2의 자연법으로 ‘평화와 자기 방어를 위해 필요하다고 판단하는 한, 자신이 타인에게 허락한 만큼의 자유를 갖는 것으로 만족해야 한다’는 명제를 제시한다. 결국 인간 간의 전쟁 상태를 막기 위해 일정 부분 자신의 권리를 양도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한마디로 ‘남이 너에게 행하기를 원치 않는 일은 너도 남에게 행하지 말라’는 것이 모든 사람이 따라야 할 ‘자연스런 사람의 법(자연법)’이 된다.

신의 계약의 절대 군주

하지만 모든 권리를 양도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자신의 생명보존을 위협하는 어떠한 행위에도 저항할 권리는 누구도 포기할 수 없다. 즉 불가양(不可讓)의 권리이다. 이런 경우를 제외하고는 당사자 간의 계약(covenant)을 통해 권리의 양도가 가능하고 행위자들을 구속하게 된다는 것이다. 홉스는 인간의 화합은 오직 인위적인 계약에 의해서만 가능하고, 이러한 계약들을 영속적으로 유지하기 위해 ‘공동이익’에 맞도록 지도하는 ‘공통권력’을 필요로 하며, 다수결에 의해 모든 권력을 ‘한 사람’ 또는 ‘하나의 합의체’에 ‘공통권력’으로 부여하게 된다는 것이다.

이러한 사회계약의 산물이 바로 ‘다수의 사람들이 하나의 인격으로 결합된 통일체’, 즉 ‘리바이어던(Leviathan)’이다. ‘리바이어던’은 많은 사람들이 서로 계약을 맺어 세운 하나의 인격체, 즉 ‘인공인간(artificial man)’이다.

그는 사회계약에 의해 탄생한 리바이어던에게 전제군주적 권능을 부여하고 백성에게는 ‘신의계약’의 준수로서 복종을 요구한다. 혹자는 이런 측면에 주목한 나머지 홉스가 전체주의자나 절대왕정을 무조건적으로 옹호한 것으로 오해하기도 한다. 하지만 홉스는 국민의 자유와 주권자의 무한권력이 양립한다고 보았다.

이는 주권자를 탄생시킨 사회계약의 효력이 영속적인 것이 아니라, 상호 권리와 의무의 존속과 이행의 신의를 전제로 한다는 점에서 백성들의 ‘자기 방어권’, ‘자연권’을 인정하고 있는 것으로 해석된다. 이런 점에서 홉스가 탄생시킨 리바이어던은 왕권신수설에 의한 절대주의 주권자인 군주와 엄연히 구별된다.

물론 홉스의 리바이어던이 비참한 내전을 종식시키고 청교도 혁명을 이끈 새로운 주권자인 크롬웰의 공화정에게 평화와 질서의 확립을 명분으로 한 강력한 독재정치와 백성의 복종을 정당화해주는 측면도 있었다. 하지만 찰스 2세의 왕정복고 이후에는 왕의 권력이 신으로부터 나오는 것이 아니라, 신민의 계약으로부터 나온다는 리바이어던의 반역적 주장과, 인간의 자기 보호가 의무에 선행하는 것으로 보는 위험한 자연권 사상이 담긴 것으로 여겨진 탓에 금서가 됐던 것이 아닐까?

리바이어던이 현대 민주주의 국가의 관점으로 보면, 지나치게 전제적 권력을 가진 국가체계를 옹호하는 것으로 볼 수도 있지만, 당시의 끊임없는 내란과 혁명의 소용돌이에 빠진 혼란과 무질서를 극복하고 백성의 정당한 위임을 받은 안정적이고 강력한 근대국가의 탄생을 희구했던 홉스의 철학적 사유의 산물이라고 할 수 있다.

무엇보다도 이 책이 고전의 생명력을 갖게 된 이유는 ‘사회계약’을 바탕으로 국가체계의 생성과 작동의 원리를 보편적인 자연법과 자연권 사상으로 설계해 냈다는 점이다. 그의 자연법 사상은 스피노자, 존 로크, 장 자크 루소, 존 스튜어트 밀에게 이어지는 등 17~18세기 정치사상계의 한 획을 긋게 되고, 주권재민(主權在民)의 사상을 바탕으로 오늘날 자유민주주의의 정치사상의 근간에까지 맥을 잇고 있다고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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