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의 위선, 그리고 우리의 선택
유럽의 위선, 그리고 우리의 선택
  • 미래한국
  • 승인 2012.05.24 13: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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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학자 폴 존슨은 세계적 베스트셀러가 된 그의 역작 <모던타임즈(Modern Times)>에서 오늘날 현대사회가 1919년 아인슈타인의 상대성이론과 함께 시작됐다고 보았다.

시간과 공간은 절대적인 것이 아니라 상대적 개념이라는 아인슈타인의 발견은 명쾌한 기하학에 기반한 19세기 뉴턴의 기계적 물리학과 서구문화의 뿌리인 기독교적 세계관을 일격에 뒤집어 엎었고, 인류는 더 이상 무엇이 옳고 그른지에 대해 확신할 수 없게 됐다. 아인슈타인의 과학적 상대성원리(relativity)가 도덕적 상대주의(relativism)와 중첩되면서 선과 악, 옳고 그름, 아름다운 것과 추한 것의 구분이 모호하게 된 것이다.

같은 시기 활동하던 사이비 사회과학자 프로이드와 마르크스는 확신에 찬 무신론자들로서 인간의 모든 활동을 각각 죄의식과 계급투쟁의 일환으로 규정하였고 유럽사회의 기독교적 전통을 파괴하는데 일조했다. 니체는 이미 ‘신의 죽음’을 선언했던 터였다. (반면 유대인이었던 아인슈타인은 하나님을 믿었고 과학적 엄격성을 고수했으며, 도덕적 상대주의는 자신의 상대성이론과는 전혀 다른 차원에 존재하는 치명적인 ‘사회적 전염병’으로 간주했다.)

결국 삶의 중심에 있던 기독교의 몰락은 현대 인류의 정신세계에 커다란 구멍을 만들었다. 결과적으로 현대의 역사는 인류가 그 빈공간을 어떻게 채워왔는지의 역사가 됐다. 하나님의 위치에 마르크스주의 같은 인본주의적 이데올로기가 들어왔고, 신세계 건설을 위해 전통과 질서가 거침없이 파괴됐으며 지옥의 용광로 같은 두 차례의 세계전쟁이 불가피했다.

현재 유럽은 반세기가 넘는 평화의 시대를 누리고 있다. 하지만 자유와 책임의 우파적 가치보다 국가주도의 복지와 평등 같은 좌파적 가치에 매몰돼온 유럽 국가들은 세계사의 중심에서 밀려났다. 현재 유럽이 누리고 있는 공전의 평화도 2차대전 이후 패권국 미국의 막대한 경제원조와 안보우산이 있었기에 가능했을 뿐이다.

최근 유로존의 경제위기도 어느 정도 예견된 것이었다. 개인이 악착같이 노력하지 않아도 국가가 먹여주고 입혀주는 유럽식 복지국가 모델은 종말을 고하고 있다. 국가의 역할을 줄이고 개인의 책임과 노력을 촉진하는 영국이나 독일 일각의 자유주의 개혁도 유럽 주류사회의 어리석은 무신론과 좌파적 대세를 돌이키기는 쉽지 않아 보인다.

우리가 나아가야 할 길은 미국의 안보우산 속에 평화와 번영을 무임승차해온 유럽의 사회주의 모델인가, 아니면 개인의 책임과 자유를 강조하는 미국식 자유주의 모델인가. (하긴 미국에서도 연말 대선을 앞두고 복지확대문제가 쟁점화되고 있다.)

한반도에서는 이미 세계사에서 실패로 판명된 공산주의 잔재와의 싸움이 여전히 벌어지고 있다. 주체사상을 내세우며 최후의 발악을 하고 있는 북한의 독재정권과 우리 사회 내 종북세력이 완전히 제거되지 않는 한 한반도는 세계사의 변방으로 남을 수 밖에 없을 것이다.

편집장 김범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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