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뻥’을 현실로 만든 위대한 세대
‘뻥’을 현실로 만든 위대한 세대
  • 미래한국
  • 승인 2011.12.21 1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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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성준의BOOk& World] 톰 브로코의 <가장 위대한 세대>을 읽고

 

2002년 월드컵에서 대한민국 팀이 4강이 오르자 전 국민이 열광했다. 당시 4강을 예측하거나 기대한 사람은 사실상 전무했다. 16강이 목표였다.

2011년 대한민국은 무역 1조 달러를 돌파, 무역 9위, 수출 7위국이 됐다. 또 유엔이 올해 발표한 인간개발지수에 따르면 대한민국은 15위이다. 리히텐슈타인, 아일랜드와 같은 유럽 소국들이 앞에 있어서 그렇지, 영국도 프랑스도 대한민국보다 등수가 낮다. 물론 UN의 측정방식에 이의를 제기하는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것을 축구로 환산하자면, 대한민국 축구팀이 FIFA 랭킹 15위에 들어간 셈이다. 그런데 평가는 냉담하다. 특히 젊은 층에서는 “그것이 나와 무슨 상관이냐? 삼성이나 현대에 다니는 것도 아닌데”라는 싸늘한 반응마저 나오고 있다. 왜 이런 일이 일어나고 있을까?

 
진정한 기적은 (2002년 월드컵) 축구팀의 4강 진출도, 김연아의 금메달도 아니다. 대한민국 국력 자체가 세계 15위 안에 들어섰다는 것이 기적이다.

오히려 대한민국 축구팀도 김연아도 대한민국 국력을 반영하는 상징들 중의 하나이다. 그런데 이러한 대한민국의 기적적 발전에 대해서는 매우 박한 점수를 주는 것이 현실이다.

월드컵 4강·김연아 금메달보다 세계 국력 15위가 더 의미

1960년대 박정희 대통령은 한 연설에서 “필리핀만큼 잘 살 수 있었으면…”이라고 말했다. 독자적 건설 능력이 없어서, 장충체육관 등 주요 시설 건설을 필리핀 건설회사에게 맡겨야만 했으며, 현대건설은 필리핀 건설회사의 하청업체에 불과했다.

당시 대한민국의 국력은 많은 아프리카 나라들보다 낮은 수준이었다. 사실 하루 3끼 입에 풀칠하는 것이 급급한 실정이었다.

60년대생들은 기억할 것이다. 70년대 교실 벽에는 신동우 화백의 만화가 붙어 있곤 했다. 1980년대가 되면 집집마다 더운 물이 나오고 자가용이 생길 것이라는 내용이었다. 심지어 비행기타고 해외여행도 다니게 될 것이라는 대목에서는 어린 우리들도 믿지 않았다. “이건 뻥이야! 공상과학 만화도 아니고…”  그런데 그 ‘뻥’이 ‘현실’이 됐다.

현재 우리의 삶을 뒤돌아보자. 어렵다고 하지만, 스마트폰과 자가용으로 무장하고, 해외 여행하는 것이 그다지 신기한 일이 아닌 세상에 살고 있다. “자장면 값도 안 되는 최저 시급”이란 선동 문구가 시내 한복판에 붙어 있는 것을 보았다.

70년대 초등학교 시절, 어린 마음에 자장면이 어떻게나 먹고 싶었던지… 자장면 한 그릇 사먹으려고 빈병을 모으고 다녔던 것을 기억한다. 당시 필자는 서울에서 그래도 제법 사는 축에 드는 집안에서 자랐다. 그런데도 그러했다.

최근 톰 브로코의 <가장 위대한 세대>를 다시 읽어 보았다. 정서가 메말랐다는 평을 듣는 필자이건만, 대목 대목에서 눈물이 쏟아지는 것을 참을 수 없었다.

미국에서 ‘가장 위대한 세대’는 1914년에서 1924년에 태어난 세대(혹자는 세대 범위를 1901년생 이후로 확대시키기도 한다)로서, 1930년대 대공황 시기에 어린 시절을 보내고, 제2차 세계대전에 참전 혹은 후방에서 지원 사업을 해야만 했으며, 1950~1960년대 전후 복구사업과 경제건설을 통해, 미국을 세계 최강대국으로 만든 세대를 일컫는다.

이들은 제1차 세계대전 세대인 이른바 ‘잃어버린 세대’의 다음 세대인 동시에, 베이비 붐 세대의 아버지 세대이기도 하다. 이 용어가 만들어지게 된 것은 톰 보로코가 동일 이름의 라디오 프로그램을 운용하면서부터이다.

보로코는 대공황, 전쟁, 경제건설의 시대를 살아간 많은 사람들의 생생한 이야기를 라디오로 내보냈다. 그리고 그 이야기를 묶어 출판한 것이 바로 이 책이다. 동네 소년 야구단 코치로 봉사하는 할아버지가 알고 보니, 노르망디 상륙작전 참가자였다는 식의 이야기로 풀어간다.

이들의 이야기는 어떻게 보면 한결같다. 찢어지게 가난한 어린 시절, 그리고 참전. 많은 이들은 참전하기 위해 이동하면서 기차와 배, 그리고 비행기를 난생 처음 타보게 된다. 그리고 현대무기를 다루면서, 농민에서 공업인으로 전화돼 간다.

또 생사가 갈리는 전쟁터에서 새로운 ‘생사관’을 획득하게 된다. 남은 목숨을 값지게 사는 것이 죽은 전우에 대한 예의라는. 그리하여 전쟁이 끝나고 고향이 돌아와, 인생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해 본다.

그리고 GI Bill(참전용사에게 주어진 학비 지원금)을 자산으로 대학에 들어간다. 그리고 오늘날의 미국을 건설한다. 유럽 전선과 태평양 전선으로의 첫 해외여행(?)의 경험도 훌륭한 자산이 됐다.

기성세대·젊은세대가 함께 자랑스러운 역사 서술에 나서야

이 책을 읽으면서 생각난 것은 ‘대한민국의 가장 위대한 세대’였다. 세계에서 가장 못살던 나라 중의 하나였던 대한민국을, 그것도 참혹한 전쟁의 폐허 속에서, 세계 일류 국가의 하나로 건설해낸 ‘대한민국의 가장 위대한 세대’야말로 진정한 영웅들이었다.

이들은 낙동강 전선에서 조국을 수호했으며, 월남과 중동 열사의 땅에서 싸우고 건설했다. 또 우리의 어머니와 누이들은 라면 한 그릇으로 허기진 배를 채우면서, 동생 학비를 벌기 위해 잔업과 철야를 마다하지 않았다. 미국의 위대한 세대보다 더 위대한 것이 한국의 위대한 세대일 것이다.

그런데 대한민국의 ‘위대한 세대’는 정당한 존경을 받지 못하고 있다. 필자를 포함한 젊은 세대의 책임이 크다. 그러나 이 분들도 조금은 책임이 있는 것 같다. 조국을 지키고 건설하는 데는 성공했으나, 이러한 당신들의 업적을 이론화시키고 신념화시켜 후손들에게 전해주는 데는 실패했기 때문이다. 즉 돈과 물질은 남겨줬지만 정신적 유산은 넘겨주지 못했던 것이다.

정말 고생한 이 세대에게 이런 주문을 하는 것 자체가 염치없는 일일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젊은 세대와 손을 잡고, ‘한국판 위대한 세대’ 프로그램을 만들어야 할 것이다. 종편도 시작됐으며, 인터넷 매체도 많다. 추상화된 역사가 아니라, 피와 살이 살아 숨 쉬는 역사를 서술해야 할 것이다.

때로 ‘실수’와 ‘아픔’도 있다. 그러나 이 모든 것을 함께 담아, “이 대한민국이 어떻게 만들어지고 수호되어 왔는지”에 대해 젊은 세대와 함께 대화를 나누는 장을 만들어 보면 어떨까 한다. (미래한국)

황성준 편집위원·전 조선일보 모스크바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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