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투쟁’의 신발끈을 동여매면서...
‘역사투쟁’의 신발끈을 동여매면서...
  • 미래한국
  • 승인 2011.11.22 14: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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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일영의 <건국과 부국 - 이승만. 박정희 시대의 재조명>을 읽고

“지금까지는 이승만의 단정노선 때문에 분단이 된 줄만 알았는데...” 필자가 멘토로 참여하고 있는 모 대학교 한국현대사 스터디 모임에서 한 여학생이 한 말이다. 바로 이 스터디 모임의 교재가 김일영의 <건국과 부국 - 이승만. 박정희 시대의 재조명>인데, 이 여학생은 이 책을 통해 “북한이 ‘민주기지노선’에 따라 1946년 2월에 ‘북조선 임시인민위원회’를 조직하는 등 이미 독자적 정부를 수립했다는 사실을 처음 알게 됐다”며 놀라워했다. 또 다른 학생은 “고등학교에서 ‘근현대사’란 과목을 수강했는데, 이승만하면 ‘정읍발언’이 가장 먼저 떠오른다”고 말했다. 수능시험 준비를 위해 ‘근현대사’ 인터넷 강의를 들었는데 강사가 “이승만의 정읍발언에 밑줄 쫙 긋고, 여러분 이승만하면 정읍발언이고, 정읍발언하면, 분단이라고 외우시면 됩니다”라고 설명했다는 것이다.

이 모임에 참석한 학생들의 반응은 한마디로 말해, ‘처음 듣는 신기한 이야기’를 알게 돼 재미 있다는 것이었다. 학교에서 배운 것과 다른 ‘새로운 학설’을 접하게 돼 지적 호기심을 충족시킬 수 있어 좋다는 것이다. 이러한 현상을 ‘일부’ 전교조 교사에 의한 교육 탓으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이러한 지적 풍토는 결코 ‘일부’ 전교조 교사에 의한 것이 아니다. ‘해방전후사의 인식’과 ‘태백산맥’의 논리가 고등학교와 대학교에서 중심 이론으로 자리잡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오히려 보수주의 혹은 자유주의 사관에 입각한 한국 현대사 조명은 고등학교와 대학교 강단의 ‘소수자’로 전락돼 있다. 김일영 교수의 이 책에 ‘재조명’이란 부제가 붙은 것도 바로 이러한 현실 때문이다.

처음 듣는 신기한 이야기...우파는 콘텐츠에서 밀렸다

많은 보수진영 인사들은 최근 이른바 ‘안철수 현상’과 20-40대의 反기득권 흐름에 당황해 하고 있다. ‘민주주의’ 자체에 대한 회의론이 거론되고 있으며 심지어 ‘재부팅’해야 한다는 소리마저 나오고 있다. 또 ‘철없는 요즘 젊은 것들’에 대한 한탄과 우려도 계속되고 있다. 혹시 20대만의 문제라면, 아니 더 양보해서 20-30대의 분위기라면, 이른바 ‘철부지론’이 설득력이 있을 수도 있다. 그러나 문제는 40대까지 포함돼 있다는 것이다. 필자는 40대이고, 필자의 딸은 20대이다. 이를 한 세대로 묶어서 이야기할 수 있는 것인지... 현재 정부든 군대든 회사든 어느 조직을 가나, 40대가 허리이다. 군대로 말하자면 영관급 장교들이다. 이들도 ‘철부지’라면 ‘재부팅’ 자체가 불가능한 것이다. 사병은 커녕 영관급 장교도 없이 장군들이 무슨 일을 할 수 있단 말인가? 이쯤 이야기를 진행하면 ‘패배주의’가 고개를 쳐든다. 이제 한국 보수주의나 자유주의는 공룡이 멸종한 것처럼 시간과 함께 멸종해가는 것이 아닌가 하는 한탄이 절로 나오기도 한다.

그럼 왜 이런 현상이 일어났는가? 혹자는 트위터와 같은 SNS 때문이라고 말한다. 물론 이 말에는 일리가 있다. 그러나 이것은 현상이지, 현상을 만들어낸 본질은 아니다. SNS라는 도구의 사용에 미숙한 것도 문제지만, 더 큰 문제는 그 도구에 집어넣은 ‘콘텐츠’이다. ‘콘텐츠’ 자체에서도 밀리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그럼 왜 ‘콘텐츠’에서도 밀리는가? 보다 근원적인 이유는 ‘역사투쟁’에서 패배하고, 역사와 현실을 바라보는 ‘프레임 장악’에서 밀리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 대선에서 MB는 압승한 바 있다. 그러나 MB의 승리는 대한민국파가 ‘역사투쟁’에서 이겼기 때문이 아니었다. 당시도 많은 40대는 대한민국의 역사적 정통성에 대해 의구심을 가지고 있었다. “대한민국은 태어나지 않아야 할 국가였으며, 대한민국 역사는 정의가 실패하고 기회주의가 득세한 역사”라는 것이 40대 이하 세대의 기본적인 역사 프레임이다. 단지 “기회주의라도 좋다. 경제만 살려다오”라는 논리가 MB의 승리를 만들어냈던 것이다. 그런데 기대했던 것만큼 경제가 살아나지 않자(이것이 MB의 잘못이든 국제경제 환경 탓이든), “그렇다면 더 이상 기회주의에게 표를 줄 수 없고, 이제는 정의를 회복할 때”라는 논리가 힘을 얻기 시작한 것이다.

MB가 BBK에 관련 됐든 안 됐든 관계없었던 것처럼, 박원순의 사소한(?) 비리는 문제가 되지 않았다. 박원순이 좌익이라고? 한반도의 역사적 정통성은 좌익에게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에게, 단지 현재 물질적 풍요 때문에 ‘민족적 정의’를 배반하고, ‘생활 보수’가 돼 ‘기회주의자’처럼 비굴하게 살고 있는 것에 대해 ‘양심의 가책’(?)을 느끼고 사람들에게 “박원순이 좌익”이라는 사실은 마이너스가 아니라 플러스였던 것이다.

박원순의 좌익사상은 마이너스가 아니라 플러스였다

앞선 칼럼에서 ‘유령과의 역사투쟁’을 이야기한 적이 있다. 인정하기 싫지만, 보수우익 진영은 40대 이하 세대에서의 역사투쟁에서 패배하고 있다. 지금은 ‘저들의’ 역사관이 40대 이하에서는 주류이고, ‘우리의’ 역사관이 비주류이다. 대한민국과 북한의 경제력을 비교하면서 대한민국에게 정통성이 있다고 우리는 주장한다. 그러나 이러한 ‘현실투쟁’의 승리가 ‘역사투쟁’의 승리와 반드시 일치하는 것은 아니다. 보수우익이 ‘역사적 정통성이 없는 졸부’ 정도로 인식되고 있는 한, ‘역사투쟁’에서 승리할 수 없는 것이다.

즉 “대한민국은 ‘자유의 공화국’이며, 대한민국의 역사는 절대빈곤 속에서 한강의 기적을 일궈낸 산업화의 역사인 동시에, 여러 어려운 환경에도 불구하고 민주화를 성취한 위대한 역사”라는 사실이 ‘사고의 프레임’으로 설정되지 않는 한, 40대 이하의 가슴과 두뇌를 사로잡을 수 없다. “아버지가 힘들게 일해서 돈 번 것은 알지만, 또 그 돈 때문에 아쉬운 소리도 하지만, 기본적으로 우리 아버지는 정통성이 없는 기회주의적 졸부”라고 생각하고 있다면, 아버지의 권위는 근본적인 한계에 봉착할 수 밖에 없으며, 또 그 집안이 ‘긍지 있는 명문가’로 성장할 수 없는 것과 같은 이치이다.

이번 대학생 한국 현대사 스터디에 참여하면서 대학교 1학년 당시 ‘해방전후사의 인식’이란 책으로 지하 서클에서 ‘세미나’를 했던 기억이 난다. 그 당시 세미나에 참석한 이유 중의 하나는 “처음 듣는” 새로운 사실을 접할 수 있다는 ‘지적 호기심’ 때문이었다. 그리고 왠지 기성세대와는 다른 소리를 하고 싶다는 반항심(?)도 한몫 했다. 그런데 2011년에는 20대 청년층의 특권인 지적 호기심과 반항심이 김일영 교수의 책을 읽게 만들고 있는 것이다.

여기서 희망을 보았다면 지나친 낙관일까? 좌우간 이제는 ‘역사투쟁의 신발끈’을 동여 맬 때다. 그 투쟁은 <건국과 부국>을 정독하고, 또 이 책을 젊은 세대에게 추천해 주는 것으로부터 시작될 수 있을 것이다. (황성준 편집위원. 전 조선일보 모스크바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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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스핏언더 2014-06-05 23:07:03
기사 잘봤습니다. 옳은 말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