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신해혁명 100주년을 맞다
중국 신해혁명 100주년을 맞다
  • 미래한국
  • 승인 2011.11.07 17: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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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풍향계 / 유럽

 
중국과 대만은 제각기 1911년 신해혁명의 승계자라고 주장한다. 신해혁명의 지도자 쑨원(孫文·孫逸仙)은 양쪽에서 공식적으로 숭앙 받고 있다. 그러나 이 기념행사를 거창하게 하려는 공산당의 노력은 오히려 초조함을 드러냈다.

지난 9월 말 홍콩 출신 무술배우 재키 챈(成龍) 주연 신해혁명 주제 영화 ‘1911’이 개봉됐다. 관리들은 이 영화를 크게 홍보했으나 흥행은 매우 저조했다. 이 영화는 마지막 왕조 ‘淸’이 시작한 전반적 정치개혁을 자세히 조명하는 것을 회피했다.

청조는 이 개혁으로 멸망을 자초했던 것이다. 청조의 개혁에 초점을 맞춘 TV 인기 연재물 ‘공화정치를 향한 전진’(走向共和)은 2003년 방영됐는데 연재가 끝나기도 전에 검열을 받고 재방송은 금지됐다. 1911년 신해혁명 6년 후에 쑨원이 “오직 강력한 힘 있는 인민만이 자유를 누린다”라고 정치인들에게 행한 비탄 섞인 연설 장면이 있다. 오늘날 중국 검열당국으로서는 분명히 당혹스러운 내용이다.

2010년 중국정부 당국은 1911년 혁명에 관한 토론이 이와 같이 자기들이 정한 기준에서 벗어나는 것을 금지했다.

최근 수개월간 아랍세계의 격변으로 중국 당국은 더욱 당혹스럽게 됐다. 4월에는 베이징에 있는 몇몇 유명 대학에서 학생들이 기획한 신해혁명 학술 토론회를 금지시켰다. 이 행사의 목적은 ‘혁명의 감동적인 승리’뿐만 아니라 민주주의에 관해 ‘알려지지 않은 보다 깊은’ 내용을 점검하자는 것이었다.

약 한 달 전에는 베이징의 國家大劇院에서 홍콩오페라단 공연예정의 오페라 ‘醫師 쑨원’의 초연을 갑자기 취소시켰다. ‘업무적인 이유’라고 했지만 홍콩의 언론들은 쑨원의 애정행각 묘사를 포함해 몇 가지 내용이 사실과 일치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중국당국은 정치적 우려에도 불구하고 대규모 예산 지출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신해혁명의 발원지 우한(武漢)에서는 1911년 혁명에 관련된 각종 전시회와 도시 개선에 200억 위안(약 31억 달러)의 거액을 투입하기로 했다. 청, 즉 만주의 마지막 왕조는 1912년 멸망해 중국 역사상 2000년의 왕조 통치를 마감했다. 중국 당국은 그 당시 만주족에  자행된 폭행과 가혹행위에 관해 침묵을 지키고 있다.   

몇몇 중국학자들에 의하면 신해혁명은 혼란한 군벌주의와 그 뒤를 이은 전제 독재 정부의 요인들을 제외하고는 중국을 위해 이룩한 일이 별로 없다고 한다. 이러한 비난은 몇 가지 근거가 있다. 신해혁명 이후 중국은 혼란, 군벌주의, 폭동사태로 빠져 들어갔다. 민주공화정치의 희망은 국가를 진압, 장악하려는 노력으로 무산됐다. 공산당은 드디어 1949년 경쟁자들을 진압하고 국가 권력을 장악하게 됐다. 중국의 지성인 ‘리쩌후’는 중국은 청조의 개혁에 기회를 더 줘야 했다고 주장해 격론을 야기시켰다.

공산당은 1911년 혁명이 정당하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그 자신이 궁지에 빠지게 됨을 알게 된다.

이코노미스트 10/8

정리: 정 철 객원해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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