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추석. 명절 특집방송의 한 프로그램에서 탈북민으로 구성된 북한예술 공연단이 소개돼 사람들의 이목을 끌었다. 한국의 아이돌 가수들과 함께 최신 가요를 부르고 춤을 추던 모습은 많은 이들에게 잊지 못할 공연으로 기억되고 있다. 8개월여 남짓 지난 지금, 그들은 어디서 무엇을 하고 있을까.
이들은 평양민속예술단, 모란봉예술단, 한민족예술단, 아리랑예술단 등 4개의 예술인 단체가 모여 탈북예술인단체총연합회(이하 NK예총)로서 활동 중이었다. 대부분 평양과 함흥 등에서 남한으로 온 예술인들이다. 잦은 방송 출연과 수백 번이 넘는 공연을 통해 이제는 북한의 공연예술을 대표하는 단체로 자리매김한 NK예총. 이를 증명하듯 인터뷰를 위해 찾아간 날도 주명신 대표는 아침 일찍부터 어딘가 바쁘게 다녀오던 길이었다.
- 설립하게 된 배경은 무엇인가요?
저희 단체는 2002년 12월 6일 창단했습니다. 제가 한국에 2001년에 들어와 약 1년 후에 설립했지요. 남한에 와 보니 남과 북은 한 민족임에도 상당한 문화적 이질감이 있다는 것을 느꼈습니다. 개인적으로도 통일을 이루고, 남북이 공존해 살아가려면 제가 느꼈던 이질감을 줄여나가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제 능력 안에서 남북한 사람들에게 도움을 주기 위해 무언가 해야겠다는 사명감이 있었어요.
10년 동안 900여회 공연
- 첫 공연은 어떻게 시작됐습니까?
처음 남한에 와 지켜보니 이곳 사람들은 북한의 공연 예술을 직접 볼 기회가 전혀 없었더군요. 그래서 우리가 직접 공연을 해보면 어떨까 생각했습니다. 보통 남한 사람들이 북한에 가면 공연을 볼 수 있는데 이 공연을 위해 남한에서는 어마어마한 돈을 지급합니다. 그렇다고는 해도 남한 사람들 중 극히 일부만이 북한의 공연 예술을 접하고 돌아가는 셈이지요. 교회에서 처음 공연을 했는데 반응이 좋았고 저희 공연을 본 사람들이 적극적으로 권유해주셨습니다. 그 이후로도 계속 공연하다 보니 지금까지 약 10년 간 900회 정도 했습니다.
- 한국에 온 지 1년 만에 활동을 시작한 셈인데 어려운 점은 없으셨나요?
처음에는 아주 힘들었습니다. 모든 것이 서툴렀지요. 공연 내용도 미약하고, 자금 지원도 없고, 지리도 모르고요. 공연장에 가려고 해도 저희가 알아서 기차도 타고 버스도 타는 등 대중교통으로 찾아다녔습니다. 또한 언어적인 어려움도 있었습니다. 같은 한민족이라고 해도 남한 사람들이 쓰는 언어를 이해하기 힘들었어요. 아무튼 상당히 어려운 가운데 버텨내면서 운영해 나갔습니다.
지금은 많은 사람들이 도와주고 있습니다. 저희 단체를 사단법인으로 등록한 이후 상황이 많이 좋아졌습니다. 통일부에서 재정적인 지원도 받고 있어요. 차량 지원이나 연습실 대여, 음향 설비 등 금년부터 지원을 받고 있습니다. 예전보다는 숨통이 많이 트였습니다.
NK예총은 정식으로 연습실을 갖추고 있다. 사무실 문을 열면 곧장 사방이 유리로 돼 있는 넓은 연습실을 만날 수 있다. 연습실 한켠에는 공연을 위한 의상이나, 악기, 소품 등이 놓여 있다. 민속공연 뿐 아니라 때때로 창작극까지 하는 이곳은 한국의 여느 공연단체 못지않게 활발히 운영된다. 소속된 인원은 25명이고, 상황에 따라 찬조 출연자까지 포함하면 30여명이 함께 활동하고 있다. 예술단 안에는 성악, 무용, 기악, 공연기획, 음향 등 여러 팀으로 나누어져 있다. 공연이 있을 때마다 작품 설정이나 기획 등 회의를 거쳐서 공연 내용을 결정한다.
- 창작극도 하고 계시군요. 어떤 내용인가요?
저희는 북한예술을 기본으로 하지만, 창작극 같은 경우는 남과 북의 공연 문화를 합쳐 새롭게 재구성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저희만 할 수 있는 독창적인 공연 예술이라고 생각합니다. 저희가 직접 공연하는 걸 보면 아마 색다른 느낌을 받을 수 있을 것입니다.
- 단원모집은 어떻게 이루어지나요?
북한에서 온 사람들은 이미 저희 단체를 알고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남한에 오면서 직접 참여하고 싶다는 경우도 있고 여러 곳에서 연락이 옵니다. 또 재능이 있는 사람들을 발굴하기 위해 저희가 직접 스카우트를 하기도 합니다만, 대체로 기존에 저희 단체를 알고 찾아오는 사람들이 더 많습니다. 북한에 있을 때부터 남한 방송에 출연한 저희 단체를 보고 같이 공연을 하기를 원해 찾아오거나 중국에서 방송을 보고 오는 사람들도 있어요.
- 작년 추석 때 한 방송 프로그램 출연으로 대중들에게 널리 알려지기 시작한 것 같습니다.
네, 그때부터 저희를 알아보는 사람들이 상당히 늘었습니다. 지금까지 방송만 해도 50회 정도 출연했습니다. 특히, 스타킹, VJ특공대 등에 출연하면서 유명해졌지요. 방송 이후 활동하기 훨씬 수월해졌습니다. 홍보도 많이 되고 공연 횟수도 늘어나면서 점차 남한의 예술단 못지않게 실력도 쌓아가고 있어요. 점차 노하우가 생기고 있습니다.
- 요즘 활동은 어떠신가요? 초청 공연이 많으시던데요.
올해 초에는 구제역 때문에 공연이 많이 취소됐어요. 요즘에는 시, 군에서 진행하는 각종 축제 초청을 받아 공연을 하고 있습니다. 어르신들이 특히 저희들을 많이 좋아해주시지요. 저희 공연을 통해 향수도 느끼고 60~70년대 한국의 예술을 닮았다고들 하십니다. 순수하고 청아한 우리 민족의 정서를 잘 이해하면서도 옛 모습 그대로 표현하는 것이 바로 북한의 공연 예술이 아닌가 싶습니다.
60~70년대 한국 예술 닮은 북한 공연
- 어떤 공연을 가장 좋아하나요?
물동이춤(항아리춤)을 가장 인기 있습니다. 옛날 물 긷던 아낙들의 형상을 춤으로 승화한 것인데 이것은 우리 민족만이 할 수 있는 예술입니다. 외국인들이 보면 참 많이 신기해하지요. 물동이춤처럼 민족적인 전통예술을 저희가 복원한다는 데 보람을 느끼고 자랑스럽게 활동하고 있습니다. 민요인 울산아리랑, 울산타령, 처녀뱃사공, 영천아리랑도 많이 좋아하십니다. 남북이 갈라지기 이전에 장구 두드리면서 함께 즐기던 정서를 저희를 통해 기억하고, 복원하는 것이지요. 공연을 떠나 둘로 갈라진 민족이 정서적으로 통일하는 데 큰 기여를 한다고 생각합니다.
- 그래도 탈북민 출신으로서 이념이라든지, 정치적인 시각도 배제할 수 없을 텐데요.
저희는 정치적인 것은 철저히 배제하고 있습니다. 다만 저희 공연을 보는 사람들이 한번 쯤은 북한 문제에 대해 스스로 질문을 던져봤으면 하는 기대가 있습니다. 저희가 굳이 정치적인 발언을 하지 않아도 저희를 통해 북한에 대해 한번 쯤 생각해보는 사람들이 있지 않을까요? 공연을 보는 사람들은 보수, 진보 등 여러 성향이기 때문에 일방적으로 저희 생각을 강요할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다만, 순수한 예술을 보면서 정서적 공감대를 형성하도록 하고 있습니다. 결국 통일이라는 같은 목적을 바라보며 가는 것이지요. 같은 민족으로서 남한 사람들이 북한 사람들의 고통을 인식하게 하는 것만으로도 성과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데올로기나 학습적인 강요는 이제 더 이상 옳은 방법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한 가지 아쉬운 점은 ‘왜 통일을 해야 하는가’라는 얘기를 들을 때입니다. 통일 문제가 경제적인 면으로만 흐르는 것 같고요.
北에서 음악 교수로 15년 근무… 동생이 말 잘못해 정치범 수용소 끌려가다 극적으로 탈출
- 개인적인 질문을 좀 드리겠습니다. 어떤 계기로 탈북을 결심하셨나요?
저는 북한에서 15년간 음악 교수로 근무했습니다. 교수라면 사회지도층일텐데, 왜 탈북을 하게 됐을까요. 이것이 바로 중요한 포인트입니다. 제 경우 동생이 말을 잘못하는 바람에 연대적인 책임으로 정치범 수용소에 잡혀가게 돼 살기 위해 남한으로 왔습니다. 말을 잘못해서 잡혀간다는 것, 이곳 남한 사람들은 상상도 할 수 없을 것입니다.
정치범 수용소에 지금 20만 명 정도 갇혀 있는데요, 사회적 지위를 막론하고 한번 그곳에 들어가면 끝이라고 보면 됩니다. 지위가 높든 엘리트든 상관없습니다. 김정일이라는 독재자에게 잘못 보이면 한 순간에 모든 생활이 사라지고 목숨의 위협을 받는다는 것, 이것은 사실입니다. 참으로 말도 안 되는 현실이지요.
- 그럼에도 정치적인 활동은 전혀 안하시네요.
어쩔 수 없는 상황으로 고향을 떠나오고, 동생은 정치범 수용소에 끌려가고, 이런 것들을 생각하면 모든 공연에서 김정일 체제를 욕하고 북한 정권을 비난하는 것으로 가득 채우고 싶습니다. 하지만, 공연에 넣을 수는 없었습니다. 예술적으로 승화시키면서 북한 예술을 통해 속으로만 이야기하는 것이지요. 북한 정권에 대한 분노는 보는 사람들의 숙제로 남기고 싶습니다.
- 한국에 와서 적응하기 어려운 점은 없으셨나요?
처음에 와서는 세차하는 일 등 닥치는 대로 일했습니다. 참 어려웠지요. 북한에서 교수를 한 경험을 바탕으로 공연단을 만들긴 했지만 일을 시작하면서 또 다른 어려움이 생겨났습니다. 남한사회는 혈연, 지연, 학연을 빼고는 이야기 할 수 없는데 저희는 아무것도 가진 것이 없으니까요. 아무리 공연을 많이 하고 싶어도 예산 문제 등으로 좌절된 적도 많습니다.
- 통일에 대해 하고 싶으신 말씀이 있다면?
가장 큰 소원은 한시라도 빨리 평화통일이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저희 예술단이 많이 알려져 남북한의 문화적 이질감을 해소하고 궁극적으로는 평화통일의 초석이 될 수 있도록 쓰임을 받았으면 좋겠습니다. 통일이 되면 고향에 돌아가 부모 형제에게 자유 대한민국의 좋은 점을 널리 알리고 싶어요. 북한이 분쟁을 일으킬수록 더 고립되고 힘들어질 뿐입니다. 천안함 사건이나 연평도 포격은 결코 통일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것을 확실히 해두고 싶습니다. 남북한이 함께 나아갈 수 있는 방법을 모색했으면 좋겠습니다.
석주희 객원기자 juhee.suk@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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