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광동 편집위원 나라정책연구원장
나눠 쓰는 것이 왜 좋지 않겠는가? 그런데 문제는 나눌 것을 생산하지 않거나 나눠줄 것이 없는 사람들이 그런 주장을 한다는 데 있다. 새벽 6시에 지하철을 타보면 출근하는 사람이 많다는 데 놀라게 된다. 새벽부터 열심히 일하는 사람들을 보면 늘 반성하게 된다. 반면 지하철역 입구의 음식점에는 새벽 6시까지 술자리가 계속되는 모습도 보이고 출근하는 사람들 사이로 과음으로 구토하는 장면도 심심찮게 목격한다. 바빠야 할 오전 내내 일도 없이 자는 사람도 많다.
새벽부터 출근해 성실히 사는 사람을 잘 살게 만드는 것이 정의 아닌가? 열심히 일하는 그들이 잘사는 사회가 공정사회다. 그런데 그들이 일한 몫을 새벽까지 술먹고 자는 사람과 나누라면 그게 불공정이고 정의에 반하는 것이다.
일에 치여 쉬지도 못하고 병원도 못가는 사람도 수없이 많다. 그들을 쉬게 만드는 사회가 복지사회 아닌가? 놀고 있는 두 아들을 먹여 살리느라 뼈가 부러져라 일하는 노모를 도와주고, 놀고 있는 아들을 직업 전선으로 내모는 것이 공정이고 복지 아닌가?
최근 우리 사회에 공정에 대한 관심이 높다. 문제는 공정을 내세우며 남의 것에 관심이 많다는 것이다. 왜 그렇게 남의 것에 관심 많은가? 그리고 왜 그것을 나눠쓰자 하는가? 우리 사회는 열심히 일한 사람이 일한 만큼 그 몫을 받고 자유롭게 사용할 수 있는 공정성부터 확립돼야 한다. 그 건전한 사회를 거쳐야 복지사회로도 갈 수 있다. 일에 시달리는 사람들을 쉬게 하고 놀며 비아냥거리고 남의 것에 관심 많은 사람들을 먼저 일하게 하는 것이 정의사회다.
더구나 우리는 갈 길도 멀고 ‘복지늪’에 허우적거릴 상황으로 내몰리고 있다. 1970년 태어난 사람은 101만명이다. 그런데 40년이 지난 작년(2010)에 태어난 사람은 불과 47만명으로 절반도 안 된다. 그만큼 생산인구 감소와 고령화의 골은 깊고 심각하다. 1960년 이전에 태어난 거대 인구가 속속 연금과 복지혜택으로 살아가게 돼 있다.
특히 한국은 고령화는 물론 OECD 국가 중 가장 국가부채와 가계부채가 증가하는 나라다. 의료보험이든 공무원이나 군인연금이든 지방자치단체든, 아니면 LH 같은 공사든 기하급수적으로 적자가 확대되지 않는 곳을 하나라도 찾기 어렵다.
애늙은이가 되는 선진국병과 복지병이 쓰나미처럼 몰려오고 있다. 그런데도 다들 ‘나눠 쓰자’고 열을 올린다. 그것도 당당하고 정의인 것처럼 말한다. 나눠 쓰고 싶다면 자기 것을 내놓고 나눠달라 말하면 된다. 자기 것을 내놓지 않고 남의 것을 나누자고 하면 그게 도둑질 아닌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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