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대국 국제정치의 비극
강대국 국제정치의 비극
  • 미래한국
  • 승인 2009.06.25 00:0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이춘근의 전략이야기
국제정치의 영역은 평화와 협력의 영역이기 보다는 경쟁과 갈등의 영역이다. 일반 상식에 의하면 서로 생각하는 것이 비슷하고, 가까이 있으며, 교류와 소통이 빈번하고, 인종적으로도 서로 비슷하고 그래서 서로를 더 잘 이해하는 나라들끼리는 평화적으로 지낼 가능성이 높다.

그러나 이 같은 일반 상식은 국제정치의 현실과는 전혀 동떨어져 있는 틀린 말이다. 전쟁이란 주로 이웃 나라들이 벌이는 일이며, 서로 교류가 빈번한 나라 사이에서 전쟁이 발발할 가능성은 그렇지 못한 나라들 사이보다 훨씬 더 높다. 교류가 빈번하다는 것은 이익의 충돌 가능성도 높다는 사실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교류가 빈번하지 않는 나라들 사이에서는 전쟁이 일어날 일도 없다.

카터 대통령의 국가안보 보좌관을 역임한 브레진스키(Zbgniew Brzezinski) 교수는 미국과 소련 사이의 냉전이 한창 진행 중이던 1986년 ‘소련과 어떻게 경쟁할 것인가’라는 부제가 달린 게임플랜(Game Plan : How to Conduct U.S-Soviet Contest)이라는 책을 간행했다.

이 책에서 그는 소련이 공산주의를 포기하고 자본주의국가가 되는 경우 혹은 미국이 자본주의를 포기하고 공산국가가 되는 경우 그 어떤 경우라도 미국과 소련의 갈등은 해소되지 않을 것이라고 단언했다. 미국과 소련은 운명적으로 서로 충돌할 수 밖에 없는 대제국들 (colliding empires)이기 때문이라는 것이 그의 설명이다.

냉전시대가 종식된 이후 10여 년 동안 미국과 러시아(구소련) 사이에 냉전시대와 같은 긴장 관계는 없었다. 소련이 자본주의로 변신해서가 아니라 소련제국이 더 이상 미국과 맞먹을 수 없을 정도로 몰락했기 때문이었다.

21세기 초반인 현재 미국과 패권을 두고 경합을 벌이는 도전자로 인식되는 나라는 러시아가 아니라 중국이다.

중국은 1978년 등소평의 개혁개방정책 이후 지금까지 거의 30년 동안 년평균 9%를 상회하는 경이적인 경제성장을 나타내 보였다. 경제성장률만이 집중적으로 보도되다 보니 중국이 얼마나 무서운 속도로 군사력을 증강시키고 있는지에 대해서는 잘 알려지지 않았다. 중국은 1990년대 초반 이후 지금까지 매년 약 17%씩 국방비를 증액시켜오고 있는 나라다. 중국의 군사력 성장 비율은 1930년대 독일의 군사력 증강 비율을 오히려 상회한다.

중국이 군사력을 급속하게 성장시키는 것은 국가로서 당연하고 정상적인 일이다. 고속 경제성장은 지켜야 할 이익이 갑자기 많아졌음을 의미하는 한편 군사력을 증강시킬 수 있는 돈이 마련되어 있다는 사실을 의미한다. 중국이 군사력을 급속히 성장시키고 있다는 사실에 가장 민감하게 반응하고 있는 나라는 미국이다.

미국은 미국 역사상 처음으로 유럽지역보다 아시아지역에 더 막강한 군사력을 배치하기 시작했다. 미국은 최근 괌의 미국 군사기지에 F-22, F-35와 무인정찰기 글로벌 호크 등 최신예 공군기 48기를 주둔시킬 것이라고 발표 했다.

미국이 아시아에 최신예 군사력을 증강 배치하는 것은 중국의 패권 도전을 용인하지 않겠다는 미국의 전통적인 전략에 입각한 반응이다. 미국은 ‘유럽 혹은 아시아 지역 전체를 장악할 수 있는 지역 패권국의 등장을 결코 허용하지 않는다’라는 전략원칙을 가지고 있다. 아시아 혹은 유럽에서 패권을 장악한 강대국은 태평양 혹은 대서양을 통해 미국을 직접 위협할 수 있는 세력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미국은 독일이 유럽 패권 장악을 시도했던 1차, 2차 세계대전 당시 독일의 반대편을 지원, 독일의 야욕을 꺾어 버렸다. 마찬가지로 일본이 아시아에서 패권을 추구했던 태평양 전쟁 기간 동안 미국은 중국, 소련을 지원함으로써 일본의 패권 장악을 좌절시켰다.

2차 대전 이후 유럽 및 아시아에서 국제공산주의가 기승을 떨칠 때 미국은 유럽에서는 NATO를 통해, 아시아에서는 미일동맹, 한미동맹, 미.필리핀동맹 등 다수의 양자 동맹을 통해 국제공산주의 세력의 아시아 및 유럽에서의 패권 장악 시도를 저지했다.

앞으로 아시아는 물론 세계 패권국의 지위에 도전하려는 중국의 노력은 미국에 의해 강력히 저지될 것이다. 본 칼럼의 제목은 필자가 한글로 번역 출간했던 시카고대 미어셰이머 교수의 저서 ‘강대국 국제정치의 비극’(The Tragedy of Great Power Politics)에서 차용한 것이다. 한국판 독자를 위한 서론에서 미어셰이머 교수는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그 동안 경이로운 경제발전을 이룩한 중국은 아시아에서의 패권을 추구할 것입니다. 중국이 패권을 추구하는 것은 중국이 나쁜 나라이거나 중국의 지도자들이 잘못된 방향으로 인도되었기 때문이 아닙니다. 중국이 패권을 추구하는 것은 그것이 중국을 위해 가장 좋은 전략이 되기 때문입니다… 물론 미국은 중국의 패권 도전을 허용하지 않을 것입니다. 이처럼 하는 것은 미국이 나쁜 나라이거나 미국의 전략이 잘못 되어서가 아닙니다. 중국이 패권을 차지하는 상황은 미국의 국가안보를 위해 바람직하지 못한 상황이기 때문에 미국은 중국의 패권 도전을 저지하려는 것입니다. 결국 중국의 힘이 증강될수록 미중 관계는 마치 냉전시대 미소 관계와 비슷한 방향으로 진행될 것입니다.”

러시아가 재기하고 있다. 러시아의 부흥은 최근 수년간 석유 및 천연가스를 수출함으로써 막대한 수익을 냈다는 사실에서 연유한다. 필자는 러시아의 군사적 급성장과 석유 천연가스로 인한 수입증가는 미국의 보이지 않는 ‘전략적인 손’이 개입한 결과라고 분석한다. 마치 겨울잠에서 깨어난 듯, 일어나 기지개를 켜기 시작한 북극 곰 러시아에 대해 가장 신경을 많이 써야 할 나라는 누구일까? 중국일 것이다.

중국과 러시아가 힘을 합쳐 미국에 대항할 것이라고?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은 국제정치의 유구한 진리중 하나-원교근공(遠交近攻 : 먼 나라와 동맹하고 옆 나라와 전쟁한다)-의 원칙을 잘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이다. 이웃하고 있는 두 나라는 결코 진정한 동맹이 되기 힘들다. 일본과 인도를 자기편으로 끌어들이는 데 성공한 미국은 러시아마저 일으켜 세워 중국의 패권 도전을 저지하고 있는 중이다.

대부분의 한국 사람들은 국제정치를 낙관적으로 보는 편이다. 북한 핵을 평화적으로 해체할 수 있다고 믿었을 정도니 말이다. 세계정치는 우리 나라 사람들이 이해하고 있는 방식대로 돌고 있는 것은 아니다. 한국인들의 국제정치적 관점을 아주 잘 반영했던 햇볕정책의 처절한 실패는 우리도 이제 국제정치를 보다 현실적으로 보아야 한다는 사실을 일깨워 준다.#

이춘근 政博·이화여대 겸임교수, 뉴라이트 국제정책센터 대표
 

본 기사는 시사주간지 <미래한국>의 고유 콘텐츠입니다.
외부게재시 개인은 출처와 링크를 밝혀주시고, 언론사는 전문게재의 경우 본사와 협의 바랍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