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가 진단] 한국 기업의 상속세 어떻게 바뀌어야 하나
[전문가 진단] 한국 기업의 상속세 어떻게 바뀌어야 하나
  • 최준선 성균관대 법학전문대학원 명예교수
  • 승인 2024.03.26 14:2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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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의 사망으로 이 회장 유가족이 보유한 삼성전자 및 계열사 지분의 상속재산가액은 18조9633억 원으로 확정됐다. 한국 상속ㆍ증여세법에 따르면 최고세율은 50%이고, 기업의 최대 주주인 경우, 20%가 할증된다. 자진 신고 공제율 3%가 적용됐고, 주식에 대한 상속세액만도 11조 366억 원이 됐다.

기타 재산까지 합하면 12조 원 대의 상속세를 납부하게 됐다. 한국은 물론 역사상 세계 최대 금액의 상속세액이다. 유족들은 상속세를 내기 위해 연부연납제도를 선택, 신고세액(12조 원가량)의 6분의 1인 2조여 원을 먼저 납부하고 남은 10조 원 가량을 5년에 걸쳐 나눠 납부하고 있다. 유족들은 2023년 말과 2024년 초에도 삼성전자ㆍ삼성물산ㆍ삼성SDSㆍ삼성생명 지분 2조7000억 원 규모의 주식을 매각했다. 

게임사 넥슨의 창업주 김정주 전 회장의 유족들도 그룹 지주사 NXC 지분 29.29%(85만1968주ㆍ4조7000억 원 규모)를 정부에 물납했다. 유족들은 10조 원에 달하는 자산을 상속받게 됐기 때문에, 6조 원에 달하는 상속세를 내기 위해서다. 물납을 수령한 기획재정부는 두 차례 NXC 지분 공개매각을 추진했지만, 매수 의향을 보인 곳이 없어 유찰됐다. 국내 인수자가 없을 경우 자금력이 풍부한 중국 게임회사가 인수할 가능성이 점쳐진다. 

넥슨 창업자 고 김정주 회장의 유족이 물려받은 지분의 상당수를 상속세로 정부에 물납했다.
넥슨 창업자 고 김정주 회장의 유족이 물려받은 지분의 상당수를 상속세로 정부에 물납했다.

전문경영인 성과 못내는 기업도 많아  

이처럼 국민의 사망을 계기로 그 재산의 반 이상을 국가가 몰수하는 것이 정당화될 수 있는가. 그 재산이라는 것이 현금도 아니고 대부분 주식이거나 부동산 등 현금으로 환가 또는 처분하는 데 상당한 노력과 시간이 필요하며 때로는 원매자가 없어 대폭 할인까지 감수해야 한다. 이것이 약탈과 수탈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국가 약탈의 상속세 맞다. 

경제개혁연구소라는 기관이 있다. 그 기관장이 얼마 전 자음과 같은 글을 신문에 냈다. “최근 상속세와 증여세가 코리아 디스카운트의 원인이라는 주장이 계속 제기되고 있다. 지배주주 일가 자녀들이 주식을 상속 또는 증여받을 때 세 부담이 너무 커서 주가를 떨어뜨려서라도 세 부담을 줄이려고 한다는 것이다. 세금 납부에 필요한 재원 마련을 위해 일감 몰아받기 등 각종 사익편취 행위가 불가피하게 전개되고, 이 때문에 회사 가치는 더 저평가된다.

그 해결책으로 상속ㆍ증여세의 세율 인하를 제시한다. 이와 같은 논리는 매우 그럴듯해 보이는 주장이지만 그 원인 진단과 처방에 수긍하기 어렵다. 회사 가치가 저평가된 이유는 고율의 상속증여세율 때문이 아니다. 무슨 수를 써서라도 지배권을 유지하여, 다음 세대에서도 계속해서 회사를 직접 경영하려는 지배주주 일가의 과욕이 근본적인 원인이다. 이러한 과욕만 포기한다면 자신이 보유한 주식의 가치를 높이는 게 유일한 목적이 되어 저평가 문제가 자연스럽게 해결된다”고 주장했다. 

결국 높은 상속세율이 문제의 원인이 아니므로 세율 인하도 그 처방이 될 수 없고, 올바른 처방은 회사를 계속해서 직접 경영하려는 지배주주 일가의 과욕을 줄이는 것이라는 결론이다. 그 구체적 방안으로, 지배주주 일가가 회사로부터 빼앗는 다양한 사적 이익을 거버넌스 개혁을 통해 줄이면 된다고 한다.

특혜 채용으로 입사한 뒤 고속 승진을 할 수 없게 하고, 특별히 더 높은 보수를 받을 수도 없게 하고, 일감을 몰아받거나 사업 기회를 가로챌 수도 없게 하면, 지배주주 일가가 굳이 경영에 직접 참여할 이유도 없으며 능력 있는 전문경영인에게 경영을 맡기게 될 것이라고 한다. 이렇게 하는 것이 자신의 행복이나 회사가 자손만대 번창하기를 바라던 창업자의 뜻을 위해서라도 더 유리하고, 핏줄이 아니라 오로지 실력으로만 최고경영자 자리에 오를 수 있게 된다는 것이다. 

지배주주 일가가 지배권 유지 욕심을 내려놓으면 계열사 간 부당 합병, 쪼개기 상장, 자사주의 마법 문제도 자연스럽게 사라질 것이라고 한다. 요컨대 문제는 지배권을 유지하려는 지배주주 일가의 욕심에서 비롯되는 것이라고 한다. 

상속세 폐지 불가론자들의 주장은 나름 설득력 있고, 깊은 통찰을 담고 있다. 다만, 오너가 계속 기업을 경영하려는 의욕이 과욕인가에 대해서는 의견이 다를 수 있다고 본다. 오너 경영체제 때문에 망한 기업도 부지기수이지만, 전문경영인에게 맡겨 망한 기업도 많다. 

2023년 12월 21일 국회 본회의에서 상속세 및 증여세법 개정안이 통과됐다. / 연합
2023년 12월 21일 국회 본회의에서 상속세 및 증여세법 개정안이 통과됐다. / 연합

상속세 폐지하고 자본이득세 도입해야

미국 기업 중에는 GM, US Steel, Kodak, HP, 엔론(Enron), 월드콤(WorldCom), 타이코(Tyco), 헬스사우스(HealthSouth), 글로벌크로싱(Global Crossing) 같은 회사들이다. 한국도 기아자동차가 노조의 전횡에 휘둘린 결과 망했고, 현대차그룹이 인수한 후 현재 세계 자동차 시장을 선도하고 있다. 주인 없는 기업 대우조선해양은 한때 부채 총계가 15조648억 원에 달했었다.

지금은 다행히 한화그룹에 인수되어 순항 중이다. 오너가 직접경영을 포기한다고 해서 결코 저절로 기업이 승승장구하는 것은 아니다. 그동안 경영학계의 수많은 실증적 연구 결과는 가족기업의 성과가 압도적임을 증명하고 있다. 메타, 구글, MS, Amazone, Tesla, X 등도 모두 오너 경영체제다. 일본 토요타도 창업자의 자손이 회장 직위에 복귀했다. 델컴퓨터 창업자인 마이클 델 역시 2004년 경영 일선에서 물러났지만 회사가 부진의 늪에 빠지자 2007년 회사로 돌아와 델컴퓨터의 부활을 이끌어 냈다. 

미국은 전문경영인이 90% 정도다. 그러나 전문경영인은 주주의 대리인 역할에 충실한다. 지배주주의 승인하에 본인은 최고의 권력과 부를 움켜쥐며, 한국 돈 2천 억 원대의 최고의 연봉을 받는 사람도 있다. 그러나 그 자리를 유지하기 위해 구조조정 등이 닥치면 근로자에 비정해진다. 이들이 그만큼 많은 연봉을 받는 이유는 노동자를 해고해 준 대가(Elizabeth Warren 상원의원)라는 것이다. 현직 유지를 바라고 단기 성과에 치중하는 경향도 있다. 

더구나 한국은 오너와 전문경영인이 협업하는 hybrid 체제가 많아 오너경영의 폐단이 충분히 해소되고 있다. 한국의 문제는 가족기업의 승계를 불가능하게 만드는 상속ㆍ증여세 때문이다. 상속세 단계적 폐지를 주장하는 영국 총리는 왜 상속세를 폐지하려는가? 리시 수낵 영국 총리가 바보인가. 38개 OECD 국가들 중 명목상 상속세가 있는 국가들은 18개국뿐이고, 모든 OECD 국가들의 상속세 평균은 12.9%며, ‘상속세가 있는 18개 국가들만의 상속세 평균’은 27%다. 60%에 달하는 주식에 대한 상속세는 누가 보더라도 과도한 것이다. 

현대 국가의 경쟁력은 군함 수가 아니라 세계적 기업의 숫자로 결정된다. 과거에는 전쟁 배상금 때문에 전쟁했지만, 현대는 전쟁하면 금융ㆍ경제 시스템이 붕괴된다. 자본주의 사회 구성 요소인 국가, 기업, 소비자 가운데 기업은 사회적 부를 창출하는 유일한 존재다.

그런데 현재 한국 상황을 보면, 상속세 부담 등으로 추가 성장을 주저하거나 기업 매각을 결정하는 등의 사례 다수 발생하고 있다. 원활한 가업승계는 장기 축적된 노하우와 기술 전수, 지속적인 성장동력 확보에 반드시 필요한 요건인 만큼 우리 기업들이 최소한 주요국들과 동등한 여건에서 비즈니스를 영위할 수 있도록 상속세율 인하 등 제도 전반의 개선이 필요하다. 

현행 한국 상속ㆍ증여세 제도는 경영권 분쟁을 조장하는 악법이다. 상속세 분쟁이 이혼 사건보다 많다고 한다. 정상 국가가 아니다. 상속세로 인해 부의 이전이 지체되고, 상속ㆍ증여세 부담 때문에 기업 승계가 늦춰지는 게 큰 문제이다. 

개인회사 지분을 팔면 25% 양도세만 내면 돼 상속세를 낼 때보다 최대 35%포인트 세율을 절감할 수 있다. 결국 한국 상속세는 사업을 중단하고 부의 이전에 있어 편법을 조장한다. 지금 정부가 추진하는 기업 Value-up은 상속세 폐지와 규제 개혁부터 시작해야 할 것이다. 

상속세는 폐지하고 주식을 상속이 아닌 매도 등 다른 방법으로 타인에게 양도할 때 양도차익에 과세하는 지본이득세 방법이 가장 합리적이라고 생각된다. 캐나다, 스웨덴, 호주, 뉴질랜드 등이 채택하고 있다. 유산세를 유산취득세로 변경하는 정도로는 기업에는 별로 도움이 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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