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10 총선이 한 달 정도 남았다. 공천 작업이 막바지로 치닫고 있다. 출전 대진표가 속속 윤곽을 드러내고 있다. 이번 선거는 ‘출전선수’보다 주목받는 게 있다. 출전선수를 선발하는 공천과정이다. 공천 잡음은 요란하지 않은 선거는 한 번도 없었다. 소란 정도는 ‘피바람’에 비유되곤 했다. 여야가 차이가 없었다.
하지만 4·10 총선은 다르다. 여야가 극적인 대비를 보인다. 국민의힘은 ‘세련된 공천’이란 찬사를 듣는다. 민주당은 ‘난폭한 공천’으로 비난받고 있다. 민주당은 심한 공천앓이를 하고 있다. 선거 승패를 결정짓는 3가지 요소가 있다. 인물, 이슈 그리고 바람이다. 선거에서 인물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공천은 인물 대결의 시작이다. 인물이 이슈도 만들고 바람도 일으킨다. ‘공천 실패는 곧 선거 패배’라는 경고가 이를 잘 보여준다.
민주당의 공천 내홍이 반영되어서일까. 국민의힘이 민주당을 앞선 여론조사 결과가 잇달아 나오고 있다. 특히 서울 정당 지지도는 오차범위 밖의 격차를 보이기도 했다.
민주당 공천 내홍으로 국민의힘이 여론조사 앞서
공천에 어떤 차이를 보였길래 이런 현상이 일어난 것일까. 우선 선거에 임하는 여야의 자세가 달랐다. 4·10 총선은 윤석열 대통령 임기 3년 차에 실시된다. 중간평가다. 정권 심판의 성격이 짙다. 당연히 회고적 투표 성향을 보이게 될 것이다. 윤석열 정권의 정책 수행 능력에 대한 평가가 최대 쟁점이다. 윤 대통령은 국정 수행 능력에서 좋은 점수를 받지 못했다.
부정 평가가 긍정 평가를 압도했다. 거기다가 명품백 수수를 비롯한 김건희 여사 문제로 윤 대통령의 도덕성마저 의심받고 있다. 최악이다. 민주당 일각에서는 대통령 탄핵소추가 가능한 200석 확보도 가능하다는 얘기도 나올 정도였다. 이재명 민주당 대표도 “우리의 목표 의석은 151석”이라고 밝혔다. 이에 대해 국민의힘 의원조차 “이 대표가 ‘엄살’을 부린다”라고 말했다. 몸조심하고 있다는 얘기다.
거기다가 국민의힘조차 ‘용산’과 관계 설정을 제대로 하지 못했다. 용산의 거수기 대접을 받았다. 이준석·김기현 대표는 용산의 압력에 ‘퇴출’(?) 당했다. 선거를 앞두고 모든 책임은 국민의힘 몫이 됐다. 최악의 선거환경이었다. 국민의힘으로서는 반전의 기회도 없고 시간도 부족한 듯했다. 위기가 기회가 된 것은 민주당의 자살골이었다. 민주당이 ‘고개’를 쳐든 것이다. 박지원 전 국정원장이 만든 선거 격언이 있다. “골프와 선거는 고개를 들면 진다”가 그것이다.
민주당이 고개를 든 이유 역시 자신감이었다. 그것은 공천 전략에서 드러났다. 제1의 공천 전략은 ‘정권심판론의 공격수 선발’과 ‘대선 패배 책임자 배제’였다. 선거를 앞두고 정권심판론이 압도하고 있는 상황에서 어쩌면 당연한 전략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명분과 실제가 일치하지 않을 때 예상 밖의 결과를 낳는다. 이 전략의 내용을 뜯어보면 친명 일색의 공천이었다.
이 대표 경쟁자의 솎아내기도 추가됐다. 공천 결과도 그렇게 나왔다. 친문의 구심점 역할을 할 수 있는 인물은 철저히 배제됐다. 임종석 전 대통령비서실장과 홍영표 전 원내대표를 컷오프시켰다. 경선 기회조차 주지 않았다. 공천의 공정성과 정당성의 문제가 불거졌다. “임종석은 안 되고 추미애는 되는 이유가 뭐냐”, “박용진이 하위 10%면 이재명은 상위 10%냐”는 비아냥이 난무했다. 결국 공천기준은 ‘친명횡재, 비명횡사’라는 비판에 직면했다.
무리는 무리를 낳는다. 이런 무리한 공천 속에 횡행하던 ‘불법’과 ‘반칙’ 그리고 ‘억지’가 들통나고 말았다. ‘정체불명 여론조사’가 대표적 사례다. 선정 과정에서 탈락한 여론조사 기관이 친명 의원에 의해 추가 발탁된 사실이 밝혀졌다. 현역 의원을 배제한 ‘유령 설문’을 돌린 회사도 문제가 된 리서치 DNA였다. 이 대표 재임 시 성남시의 용역을 대행했던 인연도 드러났다. 현역 의원 ‘정성평가’도 비명계의 밀어내기를 위한 설계였다는 오해를 받았다. 김영주 국회부의장과 박용진 의원이 정성평가에서 0점 처리된 사실이 밝혀진 것이다. 임혁백 공관위원장이 제기한 ‘대선 패배 책임론’도 구설에 올랐다.
공천 기준에 관한 불신이 커졌다. 격화된 당내 내부 총질은 아직도 진행 중이다. 이 대표는 민주당을 사당화하려 한다는 비난에 직면했다. 이런 공천에 대해 진중권 광운대 교수는 “이익의 사유화, 비용의 사회화”라고 비난했다. 공적 업무인 공천을 통해 이 대표가 당권을 장악하려는 사심이 작용하고 있다는 분석인 셈이다.
진 교수는 한마디 덧붙였다. “당을 장악하면 이 대표의 혐의가 없어지느냐”라고. 이 대표의 재판과 관련한 직간접적 인연이 있는 인사가 공천받거나 혹은 경선 후보가 된 사례를 꼬집은 것이다. ‘무료변론’과 ‘변호사비 대납 의혹’에 대해 이 대표 편든 전현희 전 권익위원장을 비롯하여, 박균택·조상호·임윤태 변호사가 그들이다. 이 때문에 국민의힘으로부터 ‘대장동 공천’이라는 비난받고 있다.
반면 한동훈 위원장은 공익과 사익을 일체화시켰다. 총선 승리를 위해 철저히 자기 희생하는 모습을 연출하고 있다. 한 위원장은 비대위원장 수락 연설에서 총선 불출마를 선언했다. 한 위원장은 또 공천 과정에서 “내 사람을 공천하지 않겠다”라고 선수 치고 나왔다. 사실 한 위원장에게 ‘자기의 사람’이 거의 없다. 유일하게 ‘한동훈 사람’이라고 할 수 있는 김경률 비대위원도 명품백 발언 뒤 불출마 선언을 했다. 하나마나 한 이야기였다. 하지만 사당화의 욕심을 드러낸 이 대표와는 확연히 대비되는 대목이다.
공천 전략에서도 큰 차이를 보였다. 국민의힘은 치밀했다. ‘용산 낙하산 부대’를 우대도, 차별도 하지 않는 거리두기 전략으로 일관했다. ‘용핵관’은 한 위원장 처지에서 ‘뜨거운 감자’다. 용핵관을 쳐내면 한 위원장이 당을 장악하려 한다는 오해를 살 수 있다.
용핵관을 우대하면 역시 한 위원장도 용산의 이중대라는 비난을 감수해야 한다. 어떻든 한 위원장은 윤 대통령의 오랜 친구인 석동현 변호사를 컷오프 제1호로 선택했다. ‘거리두기’를 분명히 한 셈이다. 그러면서도 주진우 전 법률비서관과 이원모 전 인사비서관, 조지현 전 행정관 등 핵심 ‘용핵관 낙하산’은 안착시켰다.
어떻든 이번 공천에서 용핵관의 생존율은 높다고 할 수 없다. 36명이 낙하산을 타고 내려온 것에 비하면 그렇다. 이는 용산이 공천 과정에서 전면적인 개입을 하지 않았다는 의미가 될 수 있다. 국정 지지율은 낮은 상황에서 ‘용산 요원’에게 프리미엄을 요구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반대로 생각하면, 한 위원장이 공천 과정에서 용산의 적극적 개입을 차단한 때문일지도 모른다. 어떻든 ‘용산 특혜시비’를 차단했다는 것은 큰 성공이다. 자기 희생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여당 공천 특징 중 하나로 꼽히는 ‘현역 의원 재배치’도 자기 희생 없이는 쉽지 않은 ‘전술’이었다. 중진 의원인 서병수·김태호·조해진 의원 등을 험지에 낙점했다. 무리한 축출로 반발을 사는 대신 ‘험지 출마’로 ‘물갈이’ 효과를 얻은 셈이다. 특히 ‘자객공천’ 효과까지 누림으로써 주목도를 높이는 일거양득 효과를 얻게 됐다. 이것도 일종의 ‘몸조심 전략’이라고 살 수 있다. 하지만 물갈이 폭이 크지 않지 않은 것도 사실이다. 비율이나 면면으로 봐도 그렇다. 물갈이는 현역 교체를 뜻한다. 현역 교체는 쇄신과 혁신의 다른 말이다.
한동훈 위원장은 공익과 사익 일체화
다선 의원은 기득권으로 인식된다. 특히 ‘윤핵관’인 권성동·이철규·윤한홍 의원 등은 공천받았다. 김건희 특검법 재의, 낙천한 의원의 무소속 출마 혹은 개혁신당(이준석 신당)행 우려 등을 고려, 잡음을 최소화한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가장 중요한 이유는 민주당의 추락이다. 국민의힘이 굳이 모험을 감수해야 할 이유를 없앴기 때문이다. 어떻든 역설적으로 ‘감동 없는 공천’이 되고 말았다. 불출마와 험지 출마를 자진 선택한 ‘장제원과 하태경만 바보 됐다’라는 얘기가 나올 지경이다. 서울 강남과 TK에서 어떤 변혁의 모습을 보여줄지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공천 갈등 관리에서도 한 위원장이 이 대표보다 비교우위에 있다는 평가를 받는다. 민주당은 사실상 ‘심리적 분당’ 상황으로 진입했다. 공천 갈등은 지도부의 균열을 낳았다. 친명과 친문 세력의 분화 조짐을 보인다. 총선 패배의 위기감이 점점 높아지는 이유이다. 그런 상황에서도 이 대표는 ‘개혁공천’에 대한 정당성만 역설하고 있다. ‘시스템 공천’이니 문제 될 게 없다는 얘기다.
“1년 전에 만들어진 특별당규와 당헌에 의해 시스템 공천을 진행하고 있다”라고 주장한다. 거기에 머물지 않고 있다. 해볼 테면 해보라고 큰소리를 치고 있다. “입당과 탈당은 자유”라고 말한다. 더 이상 밀리지 않겠다는 의지만 밝힌 셈이다. 심지어 “평가에서 0점 받은 의원도 있다”라며 냉소적인 반응까지 보였다. 공천 탈락자에 관한 미안함조차 읽을 수 없는 대응이다.
국민의힘에도 낙천자의 거친 항의가 있었다. 후보 부적격 판정을 받아 공천에서 배제된 김성태 전 자유한국당(국민의힘 전신) 원내대표가 그다. 한 위원장은 김 전 원내대표에 대해 “단식으로 드루킹 특검을 관철함으로써 민주주의가 훼손된 것을 막았다”라며 위무했다. 김 전 원내대표는 그 소리를 듣는 즉시 승복했다. 또 장성민 전 비서관이 총선에서 150~160석을 얻을 것이라는 얘기가 전해졌다. 한 위원장은 “우리는 아직 쫓아가는 상황”이라며 입단속을 시켰다. ‘고개를 드는 행위’ 즉 낙관론을 경계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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