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안무치’라는 말은 ‘낯가죽이 두꺼워 부끄러움을 모른다’는 뜻이다. 얼굴 두께가 열 겹의 철로 된 갑옷과 같다는 의미의 철면피(鐵面皮)도 있다. 최근 우리 사회에는 정치인들의 후안무치와 철면피를 질타하는 목소리들이 터져 나온다. 최근 송영길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더불어민주당 전당대회 돈봉투 의혹의 정점으로 지목된 가운데 구속 상태로 재판에 넘겼다.
수사가 시작된 지 약 9개월 만이다. 송 전 대표는 이미 드러난 수많은 증거들을 무시하며 이를 ‘검찰의 정치공작’이라고 잡아뗐지만 법원으로부터 구속영장이 인용되자, 검찰 조사를 위한 소환에 ‘부르지 말라’며 아예 조사를 거부하는 태도를 보이고 있다.
송 전 대표는 구속 전에는 ‘100% 영장은 기각된다’라고 큰 소리를 쳤다. 그런데 구속되자 이번에는 그의 아내 남영신 씨가 나섰다. 남 씨는 “남편이 그동안 윤석열 대통령, 한동훈 법무부 장관을 밖에서 비판하고 공격하니까 발을 묶고자 총선을 앞두고 구속시켰다고 생각한다”라며 ‘송영길 검찰 탄압 저지 비상대책위원회’가 연 기자회견 공개석상에서 주장했다. 남 씨는 변호사다.
만일 남 씨의 주장대로라면 구속영장을 발부한 법원도 윤석열, 한동훈과 한통속이라는 이야기가 된다. 한마디로 ‘부창부수’가 따로 없다. 송 전 대표는 한동훈 전 법무장관에 대해 ‘건방진 놈’, ‘어린놈’이라고 지칭한 바도 있다.
후안무치하기로 치면 송 전 대표는 약과다. 후원금 횡령 의혹으로 2심에서 유죄를 선고받은 윤미향 의원은 국회 출판기념회에서 이해찬 당시 민주당 대표가 “왜 자료를 다 태우지 않고 남겨놨느냐”라고 말했다며, 이 말에 “든든하다고 생각했다”고 발언해서 여론의 뭇매를 맞았다. 범죄행위에 대해 증거 인멸 행위를 왜 하지 않았느냐는 내용과 이를 ‘든든하다’라고 생각했다는, 상상조차 못할 이야기가 공식석상에서 당당하게 나온 것이다. 상황을 구체적으로 들여다보자. 윤미향 의원은 지난해 11월 24일 의원회관에서 ‘윤미향과 나비의 꿈’ 출판기념회를 열었다.
윤미향, 황운하 의원의 위선
윤 의원은 현장에서 “(검찰) 조사 이후 곧바로 당시 이해찬 대표에게 면회를 신청해 회계자료 펼쳐놓고 ‘어떤 대답을 하든 검사는 이미 기소를 작성하고 있다’고 말했다”며 “이 대표가 내게 ‘당신네들은 왜 그런 자료를 다 남겨놨느냐, 우린 운동하면서 다 태웠는데 왜 그걸 다 남겨놨느냐’라며 ‘소명하지 않아도 된다. 다 알고 있다’고 말했다”고 전했다. 그러면서 “민주당의 이름을 갖고 국회의원에 당선됐다는 게 이렇게 든든하구나”라며 “내 앞에 나를 막아주는 큰 벽이 있구나, 뭘 해도 되겠구나 생각했다”고 회상했다.
위안부 피해자들을 이용해 개인의 사익을 채우는 최악의 범죄행위로 유죄를 선고받았는데도 죄의식조차 느끼지 못하는 윤미향 의원과 이를 옹호하는 민주당 인사들의 모습은 국민적 공분을 부르기에 충분했다. 더구나 이 행사에는 민주당 소속 의원들과 추미애 전 법무장관이 참석하고 조국 전 장관이 축하 영상을 보냈다.
일백보를 양보해서 윤미향 의원의 경우를 ‘성경을 읽기 위해 촛불을 훔쳤다’고 해도, 황운하 의원의 경우처럼 후안무치의 최고봉을 만나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문재인 정부 청와대의 ‘울산시장 선거개입’ 의혹에 연루돼 재판을 받고 있는 황운하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지난해 11월 29일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3부로부터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로 징역 2년 6개월, 직권남용 권리행사 방해 혐의로 징역 6개월 등 총 징역 3년을 선고받았다.
하지만 황 의원의 반응은 뜻밖이었다. 그는 자신의 페이스북에 “아무런 잘못도 없는 내게 왜 이렇게 힘든 일이 닥칠까 곰곰이 생각해본다”며 결백을 거듭 주장했다. 그는 “생각해보면 어떤 잘못도 없이 긴 시간 재판받는다는 것 자체부터 기막히게 억울한 일”이라며 “원인은 단 한 가지, 불의한 검찰과 싸운 것뿐이다. 마땅히 해야 할 검찰의 고래고기 비리사건 수사를 한 것뿐이고, 김기현 측 토착 비리 수사를 한 것뿐”이라고 말했다.
황 의원은 “재판받아야 할 범죄들은 다 덮이고 오히려 정당한 수사를 한 쪽이 재판받는 황당한 일이 진행됐다”며 “불의한 검찰권력과 싸웠다는 이유만으로 이렇게 혹독하게 보복을 당한다는 게 잘 믿어지지 않는다”고도 했다.
이어 “시련과 역경 속에는 하늘의 뜻이 있으리라 믿는다”며 “정의의 최후 보루인 항소심과 대법원 판결에서는 반드시 억울함이 풀어지리라 믿고 있다”고 강조했다. 아울러 “성탄절이 다가온다”며 “의로운 일로 박해받는 모든 사람들이 힘과 용기를 내는 축복의 성탄절이 되기를 기도한다”고 밝혔다. 한마디로 자신의 1심선고는 잘못된 것이고 항소심 전에는 무죄로 추정해 달라는 요구로 느껴진다. 과연 이런 주장이 경찰 고위 간부 출신이 할 수 있는 것일까.
이 모든 민주당의원들의 후안무치에는 ‘조국 효과’라는 해석이 있다.
민주당은 2019년 당시 조 전 장관에 대한 검찰 수사가 시작되자 이를 ‘검란(檢亂)’으로 규정하며 윤석열 당시 검찰총장의 사퇴를 요구했다. “조국 수사는 검찰 쿠데타” “검찰이 정치를 하고 대통령 인사권을 침해한 것”이라고 했다. 의원들도 앞장서 ‘조국 수호대’를 자처했다.
그런 조 장관은 자녀 입시비리와 감찰무마 등의 혐의로 1심에서 징역 2년의 실형과 추징금 600만원을 선고받았다. 이 사건이 재판에 넘겨진 지 3년 2개월 만이다. 다만 조 전 장관은 증거 인멸 및 도주 우려가 없다는 이유로 법정구속되지는 않았다.
조 전 장관과 함께 자녀 입시비리 공범으로 함께 기소된 배우자 정경심 전 동양대 교수도 징역 1년을 추가로 선고받았다. 앞서 정 전 교수는 딸 입시 비리와 사모펀드 관련 혐의로 기소돼 징역 4년의 실형을 확정 받은 바 있다. 조 전 장관은 자녀 입시비리와 관련한 위계 공무집행방해 및 업무방해 등 13가지 혐의로 기소됐다.
이중 입시비리 관련 혐의 7개 가운데 6개가 유죄로 인정됐다. 여기에 딸 장학금 수수 청탁금지법 위반 혐의, 감찰 무마 직권남용 혐의를 포함하면 총 8개가 유죄로 인정됐다. 민주당은 침묵했다. ‘조국수호대’에 그렇게 가열차게 나섰던 이들은 자신이 언제 그랬느냐는 듯 표정을 바꿨고, 조 씨는 ‘총선에 승리해서 명예를 되찾겠다’는 엉뚱한 주장으로 세간을 놀라게 했다. 대법원 심판 전에는 자신이 무죄라는 의미였기 때문이다.
그런 조 전 장관은 지난 해 11월 27일 오마이TV와 인터뷰에서 내년 총선 전망에 관해 “민주당을 포함한 민주진보진영이 승리할 수 밖에 없다. 범(汎)민주진영이 힘을 다 합해서 이룰 수 있는 건 200석이라고 생각한다”라며 “200석을 확보하면 개헌을 할 수 있다. 그럼 대통령의 임기를 단축하는 부칙 조항을 넣어 사실상 탄핵 효과를 얻을 수 있다”라고 주장했다.
여기에 더해 “탄핵보다는 반윤(반윤석열), 보수진영 일부가 개헌에 합의하고 매우 합법적 방식으로 임기를 줄이는 방안이 있다고 생각한다”라며 “탄핵으로 가기 힘들다고 생각한다면 반윤 또는 비윤(비윤석열) 국회의원들이 개헌에 합의할 수 있다”라고 했다.
한마디로 어이가 없는 행동이 아닐 수 없다. 이에 김근식 교수는 조 전 장관을 두고 “그야말로 파렴치의 극치”라면서 “뻔뻔함의 대가답게, 후안무치의 초절정 고수답게, ‘사실과 법리에 따라 반박’하고 ‘지치지 않고 싸우겠다’고 큰소리친다. 억울한 피해자 코스프레를 하고 있다”고 비난했다. 김 교수는 박근혜 정부 국정농단의 핵심인 최순실 씨의 딸 정유라 씨에게 수업 편의를 봐준 혐의로 구속된 이인화 소설가를 언급하면서 “이인화는 조국처럼 요란스럽게 고개 쳐들고 큰소리치지 않았다”고도 했다.
조국 전 장관의 이러한 후안무치 행태가 민주당을 비롯해 진보 진영 전체에 상식화되어 있다는 사실은 우리 정치의 비전을 암울하게 만든다. 물론 그 원인은 민주당에 있다.
민주당은 2022년 8월 당대표가 기소돼도 대표직을 유지할 수 있도록 당헌을 개정했다. 이어 최근 올해 총선의 공천룰을 확정하면서 하급심에서 유죄 판결을 받고 재판 중이라도 총선에 출마할 수 있도록 당헌 80조 1항을 개정했다. 이러한 룰 때문에 민주당 의원들은 대법원 최종심 전이면 1심과 2심에서 유죄가 나도 총선에 출마할 수 있는 기회를 얻게 된 것이다. 이러한 룰로 인해 민주당 의원들은 사법을 정치화하고 정쟁화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춰야 한다는 것이 일종의 미덕이 된 셈이다.
민주당 당헌이 문제
문제는 이러한 후안무치, 양심불량의 당룰이 이재명 대표를 ‘결사보위(?)’하기 위한 것이라는 점에 있다. 이재명 민주당 대표가 재판 중인 1심이나 2심에서 실형을 선고받더라도 출마할 수 있게 되었기 때문이다. 이를 두고 ‘이재명의, 이재명에 의한, 이재명을 위한 1인 방탄 공천룰’ ‘셀프 공천룰’이라는 비판이 일고 있다.
아울러 1심에서 2년 실형을 선고받은 조국 전 장관도 내년 총선에 출마할 수 있는 길이 열렸다. 조국 전 장관은 자신의 북콘서트에 딸 조민 씨를 데리고 다니며 내년 총선 출마설에 불을 지피고 있다. 조민 씨의 유튜브는 개설한 지 하루 만에 구독자가 6만 명에 육박했다.
민주당은 현재 돈봉투 사건 연루 의혹이 있는 현역 의원만 20여 명에 달한다. 부패 범죄 혐의가 있는 국회의원들로 교섭단체를 만들 수 있는 규모다. 민주당이 도덕적 대참사를 일으키며 나락으로 가는 이유는 환부를 제때 도려내지 않고 덮기를 반복했기 때문이라는 지적은 일리가 있다. 과거와 같이 민주당이 민주화투쟁을 하면서 정치범이나 양심범의 상황이 된 것도 아니다.
이재명 민주당 대표가 기소됐거나 수사받는 사건은 총 7개다. 이 중 선거법 위반을 뺀 6개가 공적 지위와 관련된 권력형 범죄 혐의다. 인허가권을 남용해 대장동·백현동·위례 사업자에게 부당 이익을 안겨줬고, 대북 사업과 성남FC에 기업 돈을 끌어댔다는 등의 혐의를 받는다. 이 사건들과 연루돼 기소된 사람만 24명이다.
이들 중 핵심 측근 3인방을 제외한 대부분은 이 대표가 결재·인지했거나 관련됐다는 사실을 증언하고 있다. 이러한 범죄가 어떻게 정치적 투쟁의 조건이 될 수 있을까. 정치로 사법을 무력화하겠다는 민주당의 발상은 법치의 근간을 뒤흔들고도 남는다.
물론 이러한 지적에 그러면 국민의힘은 모두 깨끗해서 사법처리 건이 없느냐는 질문도 가능하다. 하지만 문재인 정권에서 보수와 국민의힘은 5년에 가까운 적폐청산을 겪었다. 그 과정에서 보수의 기반은 사실상 와해되었고 인물들도 교체됐다. 반면 민주당에는 이해찬 전 대표가 외쳤던 ‘20년 집권’론으로 수많은 부정과 부패들이 독버섯처럼 자랐을 것은 삼척동자라도 알 수 있는 세상의 이치다. 절대 권력은 절대 부패한다고 하지 않았던가.
민주당은 이제라도 자신을 돌아봐야 한다. “天網恢恢 (천망회회) 疎而不失(소이불실), 하늘의 그물은 넓디넓게 펼쳐져 성긴 듯 보이지만, 그 무엇도 놓치는 일이 없다”고 노자(老子)는 도덕경에서 말했다. 공자 역시 “하늘에 죄를 지으면 빌 곳이 없다(獲罪於天, 無所禱也)”라고 제자들에게 가르쳤다. 국민에게 짓는 죄는 하늘에 짓는 죄라는 것은 ‘국민이 주인’이라는 이름의 민주당(民主黨)이 더 잘 알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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