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층분석] 힘있는 통일부가 필요하다           
[심층분석] 힘있는 통일부가 필요하다           
  • 한정석  미래한국 편집위원
  • 승인 2024.01.12 11:4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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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0월 17일 줄리 터너 신임 미 국무부 북한인권특사가 취임 후 첫 일정으로 한국을 방문했다. 최근 국제적 이슈가 되고 있는 중국 정부의 탈북자 강제송환 문제에 대해 우리 정부와 협의하기 위해서였다. 그 대상은 외교부 장관이 아닌, 김영호 통일부 장관이었다.

터너 특사는 이 자리에서 “최근 중국 억류 탈북민 북송에 대해 한국 정부와 마찬가지로 깊이 우려하고 있다”며 “미국은 모든 정부가 강제송환 금지 원칙을 지키길 촉구한다”고 밝혔다. 이에 김영호 통일부 장관은 “한미동맹이 70년을 맞이하면서 자유, 인권 등 가치를 공유하는 동맹으로 발전하는 시점에 있다”며 “터너 특사 임명을 계기로 한미가 북한인권 개선이라는 공통의 목표를 위해 더 협력할 수 있기를 기대한다”고 말했다. 

이러한 상황은 어색한 것이었다. 정상적이라면 터너 특사는 박진 외교부 장관을 만나 이 문제를 논의해야 했다. 국외 탈북민 업무를 전담하는 외교부 내에 ‘민족공동체 해외협력팀’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외교부가 국회에 제출한 2024년도 예산안 사업설명자료에 의하면 ‘민족공동체 해외협력팀’의 사업 목적은 해외 체류 북한이탈주민의 신변보호 및 안전하고 신속한 국내이송 지원으로 되어 있다. 내년도 예산은 14억5400만 원이 편성되어 있지만 지난해 19억 원 예산과 비교하면 25% 삭감된 수치다. 국외 탈북민 업무 관련 예산이 2년 사이 4분의 1로 줄어든 셈이다. 외교부는 이 예산을 중국내 탈북자를 보호하는 데 쓰지 못했다. 불용예산이 되어 버린 셈이다. 외교부가 중국내 탈북자 문제를 다루는 데는 한계가 있다는 지적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유엔 북한인권결의안
유엔 북한인권결의안

‘북한 통일부’라는 오명을 벗자

7월 2일 윤석열 대통령은 통일부의 역할에 대해 의미심장한 당부를 했다. “앞으로 통일부는 자유민주적 기본질서에 입각한 통일이라는 헌법 정신에 따라 통일부 본연의 역할을 수행해야 할 것”이라고 했던 것. 이어 윤 대통령은 “그동안 통일부는 마치 대북 지원부와 같은 역할을 해왔는데 그래서는 안 된다. 이제 통일부가 달라질 때가 됐다”고 말했다. “우리가 지향해야 하는 통일은 남북한의 모든 주민들이 더 잘 사는 통일, 더 인간답게 살 수 있는 통일이 되어야 한다”고 강조하기도 했다. 

윤석열 대통령의 이러한 통일 인식은 과거의 통일부의 정책 목표와 방향으로는 효과적인 통일을 이뤄내기는커녕, 남남갈등과 북한에 이용당할 가능성만을 높인다는 판단에 따른 것으로 이해된다. 실제로 이제까지 통일부의 정책 방향은 북한과의 경제협력이나 대화가 주를 이뤘다. 

문제는 그 정도가 남북협력을 넘어 북한 편에 기울어져 왔다는 비판이다. 2020년 통일부가 입법 예고한 남북교류협력법 개정안은 북한 기업이 한국의 주식과 부동산, 저작권 등을 소유할 수 있는 길을 열어 주는 것이었다. 이에 외교부가 개정안은 안보리 대북제재가 금지한 합작으로 간주될 위험성이나 금융 거래 금지 규정 등을 어길 수 있다고 우려를 표했지만, 통일부는 수정 없이 입법을 강행하다가 여론의 비난에 부딪혔다. 

또 2021년 법원이 남북경제문화협력재단(경문협)이 북한에 보낸 약 8억 원의 조선중앙TV 저작권료 송금 경로 등을 밝히라고 했지만 통일부는 ‘공개할 수 없다’며 법원 명령을 거부하는 어처구니없는 사태도 있었다.

통일부가 대북전단을 살포한 북한인권 단체의 설립 허가를 취소하고 관련 법인과 단체들에 대한 조사에 착수하자 유엔이 “한국 통일부는 모든 조치를 중단하라”며 제동을 걸고 나서기도 했으며 개성공단 내 남북공동연락사무소를 북한이 무단 폭파한 사건에도 통일부는 피해를 보상받기 위한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 이러한 문제들로 인해 ‘북한 통일부’라는 비난 여론이 높아졌고 심지어 통일부 폐지론마저 등장하는 상황을 통일부는 초래한 것이 사실이다. 

결국 통일부는 윤석열 정부 출범을 계기로 그 위상이 급격히 축소되기에 이른다. 지난 9월 통일부는 남북대화·교류협력 조직을 ‘남북관계관리단’으로 통폐합해 정원 81명으로 개편을 단행했다. 

이에 따라 통일부는 조직 체제가 ‘3실 3국 6관 1단 31과 4팀’에서 ‘3실 3국 5관 27과 6팀’으로, 정원은 소속기관을 포함해 617명에서 536명으로 조정되고 내년도 통일부 예산도 올해 (1조4358억 원)보다 23% 줄어든 1조1087억 원으로 2년 연속 감소 수모를 겪기에 이르렀다. 하지만 이런 통일부 축소 방향은 올바른 것일까. 다시 터너 미 국무부 북한인권특사와 김영호 통일부 장관이 만난 장면으로 돌아가 보자. 

통일부를 키워야 하는 이유

터너 특사는 이날 정부서울청사에서 진행된 김영호 통일부 장관과의 면담에서 “북한의 인권 실태는 세계 최악 수준”이라며 “북한의 끔찍한 인권 실상을 만든 이들에게 책임을 묻는 역할은 통일부와 긴밀히 협력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통일부가 해야 할 과제에 대해 미 국무부가 주목하고 기대하고 있다는 의미다. 그러한 통일부의 미션은 이미 김영호 장관이 밝힌 바 있다. 

지난 8월 30일 김영호 통일부 장관의 한반도 국제포럼 기조연설에서 당시 김 장관은 “우리 정부는 물론 세계 각국과 국제기구, NGO가 함께 공개처형, 정치범 수용소 등 북한의 반인도적 범죄행위를 널리 알리고 관련 가해자는 그 책임을 물을 수 있도록 해야 할 것”이라며 “이 과정에서 대한민국 정부는 북한인권 실상을 전파하는 가장 큰 스피커이자 허브가 될 것”이라고 말한 바 았다.

또 김 장관은 지난 9월 14일 통일부 출입기자단 간담회 모두발언에서 “가칭 ‘국립북한인권센터’를 설립해 민간과 함께 북한인권 콘텐츠 허브를 마련하고, 더 많은 시민이 북한인권을 논의할 수 있도록 하겠다”고 했다. 이는 윤석열 대통령이 말한 ‘통일은 남북한 주민 모두를 잘 살게 하는 것’에 조응한 것이다. 그렇다면 통일부의 위상은 축소될 것이 아니라 한미일 공조와 연대 속에서 동북아 질서의 균형을 위해 새롭게 재해석이 되어야 함을 의미한다. 그 가운데 하나로 북한 내 정보 유입이 미국의 대북 전문가들을 통해 유력하게 등장하고 있다. 

최근 국제 통신사인 AP통신의 초대 평양지국장을 지낸 진 리 윌슨센터 공공정책연구원은 미국의소리방송(VOA)와의 통화에서 북한의 언론 실상은 외부에서 알던 것보다 훨씬 더 참혹했다고 말한다. 로버트 킹 전 미 국무부 북한인권특사도 같은 날 VOA와의 통화에서 북한은 언론 자유가 전 세계에서 가장 제한적인 국가 중 하나라고 지적한다. 이들의 공통된 주장은 인권을 표현하는 가장 기본적인 방법 중 하나가 바로 언론이며, 유엔이 정의한 인권의 필수적 요소 중 하나인 언론의 자유를 북한이 보장하도록 국제사회가 계속 촉구해야 한다는 것이다. 

특히 미국의 언론학자인 로버트 보인턴 뉴욕대 교수는 북한 당국의 변화를 촉구하고 강제하는 노력과 함께 해외 정보가 북한으로 원활하게 유입될 수 있도록 국제사회가 계속 노력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처럼 북한인권과 북한 자유화를 유도하고 그러한 전략과 국제사회와의 공조를 추구하는 역할이 통일부의 새로운 사명이 되어야 한다는 점은 윤석열 정부의 통일부가 무엇을 준비하고 추진해야 하는지 시사하는 바가 크다. ‘축소지향의 통일부’가 아니라, 새로운 비전과 미션으로 무장한 ‘진짜 통일부’의 등장이 필요하다는 의미다. 

이를 위해서는 통일부의 조직과 예산, 정책 목표 등이 획기적으로 전환되어야 한다. 이와 관련 태영호 국민의힘 국회의원은 한미일 연대라는 프레임 안에서 한반도 통일에 대한 컨센서스를 북한인권과 북한 자유화로 수렴시키는 ‘통일외교’ 정책이 통일부의 전담 사업이 되어야 한다는 점을 강조한다. 

탈북자 가족들이 중국대사관 앞에서 탈북자 강제북송에 반대한다는 피켓을 들고 중국 정부에 항의하고 있다. / 연합
탈북자 가족들이 중국대사관 앞에서 탈북자 강제북송에 반대한다는 피켓을 들고 중국 정부에 항의하고 있다. / 연합

평화적으로 통일 이루는 것이 전제

통일부의 정책과 방향이 단지 대북정책에만 그쳐서는 안 된다는 주장도 윤석열 정부가 귀 기울여야 할 내용이다. 2017년 한국행정연구원이 통일부 소속 공무원 100명과 통일·북한문제 관련 학자 40명 등 총 14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심층인터뷰 조사 ‘통일부의 존폐 및 기능·조직의 변화에 관한 연구’ 보고서는 통일부가 어떤 존재여야 하는지 전문가들의 컨센서스를 담고 있다. 

이 연구는 ▲2032년 이내에 통일이 실현되는 것을 가정하고 ▲남북한이 합의하여 평화적으로 통일을 이룬다는 것을 전제하며 ▲연방제 또는 남북연합 등 과도기 통일 형태를 설정하지 않고 ▲ 통일국가는 1국가 1체제하의 대통령제를 가정했다. 그 결과, 통일부가 그동안 ‘통일정책’보다는 ‘대북정책’에 더 많은 비중을 둠으로써 통일전략의 수립, 북한 정세 파악 및 대응 전략 수립, 통일 준비 등 통일정책과 관련된 기능은 약해졌으며 통일과 관련된 외교 및 홍보 기능 등도 기대에 미치지 못하고 있었음이 드러났다. 

또한 통일부 업무는 그 특성상 다른 부처와의 긴밀한 협업과 협조를 통해 추진해야 할 사항이었음에도 불구하고 통일부의 위상과 권한의 한계 등 여러 이유로 인해 관련 부처들과의 긴밀한 협력이 이뤄지지는 못했다는 것이다. 한편, 통일부는 각 부처에 산재한 북한·통일 관련 기능에 대한 총괄·조정 기능을 수행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역할을 수행하는 데 어려움이 있었음도 드러났다. 현재와 같은 통일부의 기능과 위상으로는 다가올 통일시대에 적절히 대응할 수 없기 때문에 통일부의 기능을 새롭게 재정립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이는 우리 통일부의 정책 방향이 독일의 동·서독 분단시기와 통일시대에 연방정부에 설치한 ‘연방내독성(聯邦內獨省)’의 모델을 차용하면서 동·서독 간 교류협력에 치중했던 오류를 그대로 답습했기 때문인 것으로 해석됐다. 서독의 통일 추진기에 연방내독성의 활동 내역을 보면 통일을 추진하고 통일 이후를 대비해야 할 부처로서 준비가 부족했고 그 역할도 미비했다. 

보고서는 이에 통일부는 서독 연방내독성을 반면교사 삼아 기존의 여러 기능 중에서 통일전략의 기획, 통일 로드맵 작성 및 추진 등에 주력해야 할 것이며 분단 시기에 수행했던 일상적인 남북 교류협력 등의 기능은 부가적인 기능으로 설정할 필요가 있음을 제시하고 있다. 

따라서 통일부는 통일에 대비하는 차원에서 현재부터 통일정책과 관련된 기능을 강화해야 하는데 이는 통일정책 추진 기능, 통일대비 기능, 통일외교 기능, 통일홍보 및 문화 기능 등의 강화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한편, ‘통일을 위한 재정·경제적 준비’도 통일부의 중요한 역할로 인식하는 것으로 나타났다는 점은 특이하다고 할 수 있다. 막상 예기치 않은 통일이 왔을 때 감당해야 할 남북 통합의 재정적 문제와 투자 등에 대한 수요와 계획의 준비를 업데이트해가야 한다는 것이다. 

결국 통일부는 ‘자유통일을 추진하는 부서’라는 소명이 강하게 유지되어야 하고 대북정책은 이를 실현하는 방법론이라 할 수 있다. 그렇다면 대한민국 정부에서 가장 상위의 헌법적 소명을 가진 ‘최종심급’의 부처가 바로 통일부여야 한다는 발상의 전환이 필요한 시대는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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