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세계] 예술혼을 불태우다 37세에 요절한 화가들
[예술세계] 예술혼을 불태우다 37세에 요절한 화가들
  • 오재학 전 주호치민 총영사
  • 승인 2024.01.11 14:5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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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양 예술사를 들여다보면 천재적 재능을 가진 유명한 예술가들이 젊은 나이에 요절하여 사람들을 안타깝고 슬프게 하는 반면 어떤 예술가들은 90세 넘어까지  왕성한 예술활동을 보여 우릴 놀라게 합니다. 


화가의 경우 마사치오(Masaccio), 바스키아(Basquiat)가 27세, 실레(Schiele)가 28세, 스라(Seurat)는 31세, 모딜리아니(Modigliani)는 36세에 요절했습니다.

음악가의 경우에는 슈베르트가 31세, 모차르트가 35세, 쇼팽이 39세에 작고했습니다. 음악가의 경우에는 특히 젊디젊은 27세의 나이에 요절한 사람들이 많아, 심지어 ‘27Club’이라는 명칭까지 생겨났는데, 존슨(Robert Johnson), 헨드릭스(Jimi Hendrix), 조플린(Janis Joplin), 모리슨(Jim Morrison), 코바인(Kurt Cobain), 와인하우스(Amy Winehouse)등 록(rock)가수들이 여기에 해당됩니다. 

이들의 불꽃 같은 생애가 너무 짧게 끝나 다른 세상에서라도 영원히 살라는 염원에서 'forever'를 앞에 붙여 ‘forever 27 club’이라는 호칭을 만들어 내기도 했습니다. 

화가의 경우 모네는 86세, 미켈란젤로는 89세, 미로는 90세, 피카소는 92세, 샤갈은 98세를 살았고, 여성화가의 경우에는 이보다 더 장수하여, 오키프(O'keeffe), 부르주와(Bourge-ous)가 99세, 모지스(Moses)는 101세, 태닝(Tanning)이 102세까지 예술활동을 했고, 앙기솔라(Anguissola: 1532~1625)는 16~17세기 화가임에도 93세까지 살았습니다.

아테네의 대표작 '아테네 학당'
아테네의 대표작 '아테네 학당'

인간의 평균수명과 화가의 수명과 관련한 연구 결과들

장수한 화가들을 보면 인생에서는 너무 늦은 나이가 없다(Nothing is too late to begin)는 말이 실감납니다. '그랜마 모지스'로 유명한 매리 모지스(Mary Moses)의 마지막 유언은 우리로 하여금 인생의 의미를 새롭게 들여다 보게 합니다. 

"정말 하고 싶은 일을 하세요. 신께서 기뻐하시며 성공의 문을 열어주실 것입니다. 당신의 나이가 이미 80이라 하더라도 말입니다. 지금이 시작하기 가장 좋은 때입니다. 어릴 때부터 늘 그림을 그리고 싶었지만 76세가 되어서야 시작했습니다. 당신이 좋아하는 일을 천천히 하세요. 때로 삶이 재촉해도 서두르지 마세요." 

손흥민을 그려 유명해진 영국 여류화가 와일리(Rose Wylie) 역시 76세에 시작하여 89세 현역임에도 왕성한 작품 활동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음악가의 경우 슈베르트, 모차르트, 쇼팽이 요절하여 음악가는 대부분 단명하는줄 알았으나 꼭 그렇지만도 않습니다. 하이든(교향곡:77세), 베르디(오페라:88세), 스트라빈스키(지휘:89세), 시벨리우스(작곡:92세)를 위시하여, 이다 헨델(바이올린:92세), 루빈스타인(피아노:95세), 파블로 카잘스(지휘:95세), 스토코프스키(지휘:95세) 등 장수한 음악가들이 많습니다. 

기틀리스(바이올린), 프레슬리(피아노), 호르쇼프스키(피아노)는 100세를 넘겨 활동했고, 위그 퀴에노는 108세까지 테너가수로 오른슈타인은 109세까지 작곡가로 활동했습니다. 

"신이 잘츠부르크에 내려준 선물"이라 불렸던 대표적 단명 음악가인 모차르트의 예를 보면 여러 가지 요인들이 음악가의 수명에 작용한 것으로 보입니다. 물론 천연두 발병 등 직접적 요인도 있지만 3년간에 걸친 유럽 연주여행(마차 이용)은 엄청난 심신의 피로를 줬고 600곡 이상을 작곡한 데 따른 혹독한 정신적, 육체적 에너지 소모도 무시할 수 없습니다. 

음악가들의 경우 평균적으로 작곡가들이 단명하고 연주자, 지휘자들이 장수한 것으로 나타납니다. 이는 연주를 숙명으로 여기고 대단한 자신감과 확신으로 일관한 성실성, 낙천성 때문이라 하며, 지휘자들의 경우, 곧고 바른 자세(척추안정), 엄청난 신체운동, 카리스마적 통솔력(스트레스 없음) 등이 장수의 원인이라는 견해가 지배적입니다. 

인류의 평균수명을 연구한 결과에 따르면 신석기시대 29세, 청동기시대 38세, 고대그리스 시대 36세, 14세기 영국 38세, 17세기 유럽 51세, 18세기 유럽 45세, 19세기 유럽 65세라고 합니다. 인간의 평균수명과 화가의 수명과 관련한 몇 가지 연구 결과가 있어 들여다 봅니다. 

앙뜨완 와토의 '시테라 섬으로의 여행'
앙뜨완 와토의 '시테라 섬으로의 여행'

(1)유전학적, 해부생리학적 관점

일반적으로 인간의 신체능력은 37세를 전후하여 급격히 하향곡선을 그립니다. 인지능력, 혈장 단백질수치가 계속 감소합니다. 어휘력, 공간정향력, 단어기억력, 귀납추리력도 현저히 떨어집니다. 미각, 후각은 연령 증가에 큰 영향이 없으나 시각, 청각, 촉각은 40대 전후 크게 쇠퇴합니다. 25세부터 주름이 생기고, 29세를 전후하여 피부노화가 시작되며 근육과 뼈도 함께 노화가 진행됩니다. 

인간의 DNA와 노화과정(aging process) 연구 결과에 따르면 인간의 자연수명은 37.8세라고 합니다. 매머드가 60년, 화살머리 고래 260년, 그린랜드 상어 400년이라고 합니다. 사춘기 여성의 난자는 30만 개인데 37세를 기점으로 2만5000개 수준으로 감소하고, 남자들도 이 시기에 정자의 숫자가 줄고, 운동능력도 크게 쇠퇴한다고 합니다. 

(2)화학적, 보건학적 관점

이스라엘 출신 화가의 작업환경에 관한 분석 결과입니다. 

우선, 물감 혼합, 방습처리, 에어브러싱(airbrushing) 과정 및 수성아크릴 물감, 실크스크린, 유기용제를 이용한 붓과 캔버스 씻기 등에서 많은 화학물질에 노출이 됩니다. 납성분이나 방부제, 티타늄다이옥사이드 함유 안료, 라텍스, 황산화물감 등도 인체에 나쁜 영향을 미칩니다. 

이러한 작업환경에서 오랫동안 노출될 경우 지각, 기억력 감퇴, 판단력, 인지력 손상, 손과 발의 경련, 말초, 중추신경 과민반응(neuropathy), 청력손실 등의 직업병이 유발됩니다. 특히, 물감(안료) 자체에 함유된 독성물질에 의한 중독현상도 큰 위험요소입니다. 비소,구리, 납, 은, 코발트 청산가리, 안티몬, 수은 등 많은 색상의 안료에 유독성 금속물질이 함유되어 있습니다. 

(3)사회, 문화, 역사적 관점

혈기왕성한 젊은 예술가들은 술과 도박, 마약 등에 빠지기 쉽습니다. 방탕한 생활에 물들어 육체와 정신을 망치기도 하고, 우울증, 고독감, 좌절감에 사로잡혀 자살을 하기도 합니다. 14세기의 페스트, 20세기초의 스페인 독감 등 전세계를 휩쓴 유행성 전염병의 희생 제물이 되기도 합니다. 1차, 2차 세계대전을 비롯, 수많은 국제 분쟁에 직접, 간접으로 참전해 전쟁터에서 사망하거나 부상당한 경우도 허다합니다. 

37세 젊은 나이에 요절한 7인의 천재화가들

서양미술사에서 유독 ‘37세’라는 젊은 나이에 요절한 화가들이 많습니다. 15~19세기에 걸쳐, 천재화가로 태어나 불꽃 같은 삶을 살다가 아쉽게 요절한 화가 7명의 슬프지만 강렬했던 삶을 들여다 보고자 합니다. 

● 라파엘로(1483~1520)/ 르네상스

이탈리아 우르비노(Urbino)에서 태어나, 주로 피렌체에서 활동했고 다빈치, 미켈란젤로와 함께 르네상스 3대 화가로 불립니다. 1491년에는 모친이, 1494년에는 부친이 연속 사망해 고아가 되었고 페루지노(Perugino)공방에서 그림을 배웠습니다. 

교황 율리우스 2세 초청으로 로마궁정화가로 활동했고 간결한 구도와 선명한 색상, 플라톤적 인간미 등을 표현해 ‘우아한 미적 감각의 화신’이라 불렸습니다. 제빵사의 딸 마르게리타와의 사랑으로도 유명합니다. 말라리아, 매독, 페렴 등의 질병에 시달렸고, 그가 37세가 되던 1520년 4월 6일 성금요일(Good Friday), 공교롭게도 자신의 생일에 생을 마감했습니다. 

교황 레오 10세는 "신께서 가장 사랑하던 천사를 지상에 내려 보냈다가 다시 데려가셨다"고 하며 크게 안타까워했습니다.조화와 균형, 절제미를 절묘하게 묘사한 화가로 추앙 받았으며 훗날 신고전주의 화파 탄생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습니다. 주요 작품으로 아테네 학당, 갈라테이아의 승리, 성가족(Holy family), 라 포르나리나(La Fornarina), 알렉산드리아의 캐더린(Catherine) 등이 있습니다. 

● 파르미자니노(1503~1540)/ 매너리즘

이탈리아 파르마(Parma)에서 태어나 볼로냐, 로마에서 활동했으며, 르네상스 화풍에 반기를 들고 단축, 왜곡, 과장법을 써서 인체를 길게 늘려 표현했습니다. 젊은 시절 연금술(alchemy)과 마술(magic)에 심취했습니다. 1524년 교황 클레멘스 7세 요청에 따라 로마에 가서 활동했습니다. 

세련된 감성, 고상한 우아미, 정교한 리듬을 표현함으로써 ‘환생한 라파엘로’라는 별명으로 불렸습니다. 주요 작품으로는 '로마약탈', '목이 긴 성모', '예수의 세례', '거울 속 자화상' 등이 있습니다. 

● 버지니아 다 베초(1601~1638)/ 바로크

이탈리아 벨레트리(Velletri) 출신 여성화가로 프랑스 바로크 화가 시몽 부에(Simon Vouet)의 부인입니다. 부에는 루이 13세의 궁정화가였습니다. 1624년 미술공부를 위해 로마에 온 부에와 만나 1626년 결혼하여 프랑스로 이주했습니다. 뛰어난 미모의 소유자로 알려졌고 부에가 마돈나(Madonna)를 그릴 때마다 모델이 되었습니다. 

당시에는 여성이 화가가 될 수 없었으나 부친과 남편이 화가라서 다 베초가 그림을 그릴 수 있었습니다. 시몽 부에의 이탈리아 바로크 화풍을 프랑스에 접목한 것으로 유명합니다. 다 베초는 역사화, 미니어처 파스텔화로 유명했고, 주요 작품으로는 유디트, 예수의 십자가 처형 등이 있습니다. 다 베초가 37세의 나이로 요절하자 부에는 베랑제(Beranger)라는 프랑스 여성과 재혼합니다. 

● 앙뜨완 와토(1684~1721)/ 로코코

프랑스 발랑시엔느(Valenciennes) 출신으로 경쾌함과 우아함, 세련미, 환상적 표현을 위주로 하는 로코코 화풍의 아버지라 불립니다. 루이 15세 때인 1717년 ‘페트 갈랑트(fete galante)’ 그림으로 왕립아카데미 회원이 되었습니다. ‘페트 갈랑트’란 우아하고 목가적인 풍경을 배경으로 하여 남녀의 연애나 축제 같은 화려한 파티를 의미합니다. 

로코코에는 귀족계급의 일상, 화려함, 과소비, 비도덕, 경박함 등의 부정적 이미지가 따라다녔으며 특히 로코코 퀸이라 불리던 마리 앙뜨와네트의 사치스러움까지 가세하여 부정적 인상은 더욱 더 짙어졌습니다. 이러한 귀족적 향락주의 위주의 로코코 화풍에 반하여, 특히 1789년 프랑스 대혁명을 계기로 신고전주의 화풍이 대두하게 됩니다. 

와토는 2번이나 로마에 가고자 했으나 모두 실패했습니다. 그의 그림이 지나치게 화려하고 경박하다고 볼테르(Voltaire), 디드로(Diderot) 등으로부터 비난 받았으나 후일 위고(Victor Hugo)와 보들레르(Baudelaire)는 와토의 그림을 좋게 평가했습니다. 로코코 화풍은 장식미술과 영화, 음악, 건축 등에 다양한 영향을 미쳤습니다. 

이후 인상주의와 낭만주의 태동에도 크게 기여했습니다. 와토는 말년에 결핵과 후두염으로 요절했는데 주요 작품으로는. ‘키테라섬으로의 순례’, ‘사랑의 기쁨’, ‘사랑의 노래’ 등이 있습니다. 

●  테오도르 샤세리오(1819~1856)/ 낭만주의

'미술계의 쇼팽'이라 불리는 샤세리오는 외교관의 아들로 도미니카에서 출생했으며 신고전주의 화가 앵그르(Ingres), 낭만주의 화가 들라크루와(Delacroix) 휘하에서 그림을 배웠습니다. 1840년 로마 방문시 앵그르를 만나 그림을 배우고 1843년부터 들라크루와 그림을 모방했습니다. 1846년 알제리를 방문하고부터 무어족(Moors), 유대인, 아프리카인 등 이국적인 관심이 폭발해 이후 오리엔탈리즘 화풍에 몰입했습니다. 

그의 스승인 앵그르는 샤세리오가 ‘미술계의 나폴레옹’이 될 것이라고 그의 그림을 극찬했습니다. 샤세리오는 일반적인 그림뿐만 아니라 생 로슈(Saint Roche), 생 룰르(Saint Roule) 교회의 벽화를 그렸는데 이 과정에서 과로로 인해 건강을 크게 해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샤세리오는 평생 동안 앵그르의 신고전주의와 들라크루와의 낭만주의를 융합시키려는 노력을 기울였습니다. 

그의 화풍은 이후 모로(Gustave Moreau), 고갱(Paul Gauguin), 마티스(Henri Matisse) 등에 영향을 미쳐 상징주의와 인상주의, 야수주의, 입체주의 탄생애 크게 기여했습니다. 주요 작품으로는 아폴로와 다프네, 감람산의 예수, 목욕 후의 여성들을 그린 테피다리움(Tepidarium), 비너스 아나디오멘느(Venus Anadyomene) 등이 있습니다. 


● 반 고흐(1853~1890)/ 후기인상주의

서양미술사에서 가장 비극적인 삶을 살았던 고흐는 네덜란드에서 태어나 프랑스에서 활동했습니다. 태어날 때부터 이미 사망한 그의 형의 이름을 그대로 물려받았던 고흐는 처음부터 비정상적인 삶의 궤적을 갖게 되었습니다. 목사의 아들로 태어나 그림 판매상과 기독교 전도사 등을 전전하다 결국 그림을 그리게 됩니다. 

1880년 본격적 그림수업을 시작한 고흐는 네 번에 걸쳐 사랑하는 여성을 만나게 됩니다. 네 번 모두 사랑을 고백했으나 네 번 모두 거절당했습니다. 1881년에는 이혼한 사촌 ‘키(Cornelia  Kee)’, 1882년에는 매춘부 ‘시엔(Clasina Maria Sien)’, 1873년에는 런던의 하숙집 딸 ‘로이어’ , 1884년에는 10살 연하 여성 ‘베게만(Margot Begemann)’에게 사랑을 고백했으나, 모두 거절당했습니다. 

이런 과정에서 고흐는 엄청난 좌절감과 열등감에 빠져들었고 정신질환을 비롯하여 평생 임질, 알콜중독, 매독 등의 질병에 시달리게 됩니다. 1880년을 기점으로 농부들의 삶과 농촌풍경 등을 자주 그렸습니다. 카르민(carmine), 코발트 블루(cobalt blue), 에메랄드 그린(emerald green)을 주로 쓰는 그림들을 그렸습니다. 

1886년 파리로 이주하면서부터 초상화와 정물화에 심취했습니다. 이때 고갱(Gauguin), 시냑(Signac)과도 만납니다. 1888년에는 프랑스 남부 아를르로 이주해  화가공동체를 꿈꾸게 됩니다. 그는 시골 풍경과 라벤더 향기, 해바라기 물결, 밝은 햇살에 매료되었습니다. 자신이 관심을 가졌던 일본 판화 ‘우끼요에(ukiyo-e)’의 본산인 일본을 아를르와 동일시했습니다. 

이 때부터 울트라 마린(ultra marine), 엘로 ,보라색을 이용해 밀밭과 추수하는 모습, 농촌들녘 등을 묘사합니다. 1888년 10월 고갱이 아를르에 도착했을 때 화가공동체 구현을 시도했으나 결별하고 결국 자신의 귀를 자르는 기행에 이르게 됩니다.

이후 생 레미(Saint Remy) 정신병원과 오베르(Auvers-sur-Oise)를 거치며 그림을 그리다가 1890년 권총으로 자살하며 37세의 짧은 생애를 마칩니다. 고흐의 화풍은 이후 많은 영향을 미쳤는데 대담한 색상과 거침없는 구도, 물감을 짙게 찍어 바르는 임파스토(impasto) 기법 등은 후일 야수주의와 독일 표현주의, 입체주의, 상징주의 탄생에 큰 영향을 줬습니다. 

그는 죽는 순간 ‘슬픔은 영원히 지속될 것(The sadness will last forever)’이라고 하였답니다. 주요 작품으로는 ‘감자 먹는 사람들’ ‘해바라기’ ‘별이 빛나는 밤에’ ‘까마귀 나는 밀밭’ ‘붉은 포도밭’ ‘밤의 카페테라스’ 등이 있습니다. 

툴루즈 로트렉의 '물랭루즈에서의 춤'
툴루즈 로트렉의 '물랭루즈에서의 춤'

● 툴루즈 로트렉(1864~1901)/ 후기인상주의, 아르누보

프랑스 남부 알비(Albi)의 백작 가문에서 태어난 로트렉은 근친혼에 의한 유전병(농축이골증, 왜소발육종)으로 키가 152cm에 머물렀고 소년 시절 낙상까지 겹쳐 평생을 열등감과 절망감, 육체적 고통 속에서 살았습니다. 1882년 몽마르트르(Montmartre)에 거주하면서 본격적으로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고 이때 고흐와도 만났습니다. 

1885년에는 모델과 여성화가로 활동한 발라동(Suzanne Valadon)과 만나게 되어 둘은 결혼코자 했으나 여러 이유로 실패합니다. 로트렉은 벨기에 브뤼셀에서 개최된 화가 20인 전시회인 ‘레뱅(Les vingts)’에도 참가합니다. 

1889년 물랭루즈라는 카바레가 문을 열자 그곳에 드나들며 자신과 같이 불우한 처지에 놓인 매춘부들과 친해졌고 그곳에서 유행한 서커스(circus)에도 큰 관심을 가져 이와 관련된 그림을 많이 그렸습니다. 물랭루즈 가수 ‘이베트(Yvette)’, 댄서 ‘라 굴뤼(La Goulue)’, 댄서 ‘아브릴(Jane Avril)’ 등과 친하게 지냈고 이들을 모델로 광고.포스터를 많이 그렸습니다. 

압생트(absinthe)와 꼬냑(cognac)을 섞은 ‘지진칵테일(earthquake cocktail)’ 등을 제조해 과다음주로 알콜중독에 빠지고 문란한 관계로 인해 매독 증세로도 고통을 받았습니다. 평생 고독과 소외감, 열등감에 시달렸습니다. 하지만 파리 밤문화에서 터득한 인생에 대한 깊은 통찰과 아라베스크(arabesque)적인 구성. 서커스 등을 소재로 한 단순하고 대담한 형태와 색상 등은 후기 인상주의, 아르누보(art nouveau), 표현주의에 많은 영향을 미쳤습니다. 단순 일러스트와 광고를 정규 미술 수준으로 격상시킨 화가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주요 작품으로는 ‘물랭루즈’ ‘반고흐상’ 등이 있습니다. 그가 37세로 요절할 당시 "Nowhere do I feel so much at home !"라면서 물랭루즈에 대한 영원한 향수를 언급했다 전해집니다. 
오래 전부터  유난히 37세에 요절한 화가들이 많다고 생각해 오던 차에 예술가들의 단명한 삶의 원인에 대해 들여다 봤습니다. 지금까지 언급한 예술가들 말고도 37세에 요절한 예술가는 많은 듯한데 몇 명만 더 찾아봅니다. 

브람스, 니체로부터 당대 최고 음악가로 극찬을 받았고 오페라 카르멘(Carmen)을 작곡한 비제(Georges Bizet)도 37세에 요절했고 우리나라의 경우, ‘조선의 고갱이요 세잔’이라 불렸던 화가 이인성, 한국 추상화의 근대와 현대를 잇는 가교 역할을 했던 박길웅, 그리고 ‘날개’의 시인 이상(본명 김해경)도 37세에 작고했습니다. 

또한 블러드 다이아몬드(blood diamond)로 유명한 아프리카 시에라리온의 경우 국민 전체의 평균 수명이 37세라는 통계도 있다고 합니다. 

짧은 생애를 불꽃 같이 살다 요절한 예술가들을 그들에에게는 처음부터 신의 계시가 있었을 것이라는 말들을 합니다. ‘악마의 재능’이라는 속설도 있습니다. 천재예술가들은 악마와 계약을 맺어 천재적인 재능을 얻는 대신 그 댓가로 자신들의 생명을 맞바꿨다는 이야기입니다. 

‘창조병(creative disease)’라는 말도 있습니다. 혼신을 다해 예술 활동에 전력투구해 예술혼을 불태우다 기력이 쇠진해 요절했다는 뜻입니다. 고독을 삶의 일부로 받아들이고 절제와 인내로 삶의 유일한 기쁨으로 창작에 몰두했다는 것입니다. 

이처럼 단명한 예술가들의 삶을 두고 어느 철학자는 이렇게 말합니다. “인생은 가까이서 보면 모두 비극(요절)이지만 멀리서 보면 언제나 희극(기쁨)”이라고 말입니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예술가의 수명에 상관없이 예술은 언제나 인간의 삶을 윤택하고 풍요롭고 행복하게 이끌어 간다고 주장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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