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대 총선 승리 코드는 ‘민생’
22대 총선 승리 코드는 ‘민생’
  • 윤주진  퍼블리커스 대표
  • 승인 2024.01.11 11: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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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거판의 소위 ‘꾼’이라면 흔히들 공감할 만한 이야기가 있다. 언론의 조명도가 높은 후보 간 TV 토론이나 거리 유세, 광고보다도 더 큰 영향을 발휘하는 것이 바로 ‘공보물’이라는 분석이다. 선거철이면 유권자 집으로 배달되는 봉투 속 우편물이다. ‘후보가 왜 이렇게 많아’라는 탄성부터 쏟아내게 만드는, ‘과연 누가 이런 걸 읽을까’ 의구심도 자아내는 바로 그 화려한 색감과 큼지막한 얼굴이 돋보이는 책자들이다. 

선거 전문가들은 입을 모아 이 공보물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특히 수도권 지역, 5% 포인트 미만의 득표율 차이로 당락이 결정되는 격전지일수록 공보물의 가치는 올라간다. 공보물이 최종 당선자를 가려내는 마지막 승부처인 이른바 ‘스윙보터(Swing Voter)’ 표심을 좌우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필자 역시 여당 중진 의원으로부터 “의외로 공보물 보고 나를 뽑았다는 사람들이 많더라”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공보물에 숨겨진 정치적 함수는 과연 무엇일까? 여기에 22대 총선 승리의 코드가 담겨 있다. 

방기선 국무조정실장(왼쪽 두 번째)과 이영 중소벤처기업부 장관(왼쪽 세 번째)이 11월 21일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에서 민생 규제 혁신 방안을 발표하고 있다. / 연합
방기선 국무조정실장(왼쪽 두 번째)과 이영 중소벤처기업부 장관(왼쪽 세 번째)이 11월 21일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에서 민생 규제 혁신 방안을 발표하고 있다. / 연합

선거 막바지까지 본인이 선호하는 당과 후보를 정하지 못한, 주로 중도층에 해당할 가능성이 높은 유권자가 최후의 선택을 내려야 할 때쯤 만나는 것이 바로 이 공보물이다. 이 시점까지 마음의 결정을 내리지 못했다는 것은, ‘정치인이 다 거기서 거기’라는 정치 무관심에 빠져 있음을 의미할 수도 있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진정으로 국민과 공동체를 위해 일 잘할 후보가 누구인지 꼼꼼히 살펴보고 선택하겠다는 의지의 표현일 가능성도 적지 않다. 

공보물은 후보 개인의 화려한 언변이나 대중적 매력, 혹은 최근 정치권에서 쉽게 접할 수 있는 거친 말 폭탄을 담기에는 한계가 있다. 그보다는 공보물의 주인공은 공약이다. 내 삶을 바꿀, 구체적 청사진과 실천 계획이 바로 유권자의 마음을 움직인다. 

하루 네 시간, 지옥철 왕복 출퇴근을 하는 사람에게는 교통 관련 공약부터 눈에 들어올 것이다. 내년부터 초등학교에 아이를 보내야 하는 부모는 교육 공약에, 치매에 걸린 부모를 모시고 사는 부부는 노인 의료복지 공약에 눈길이 갈 것이다. 저마다의 ‘긴급 민생 현안’은 다양하다. 공보물은 바로 “누가 우리 민생을 위한 후보인가”라는 근본적 질문에 대한 답변서인 셈이다. 그러니 공보물이 결정적 판세를 좌우한다는 말에 수긍이 간다. 

‘선거는 민생이다’라는 공식이 점점 더 잘 맞아떨어지는 데는, 유권자의 정책적 수요가 날이 갈수록 다원화되면서 동시에 빠른 속도로 공론화 돼 가는 최근 정치 트렌드와도 깊은 관련이 있다. 과거에는 개개인이 직면하는 여러 삶의 문제가, 당사자 또는 가족의 책임 범위 안에서 ‘자체적으로’ 해결해야 할 사안으로 여겨졌다면, 오늘날에는 아주 사소한 현안도 정부와 정치권이 관심을 갖고 나서서 풀어줘야 할 공적 사안으로 다뤄지는 경향이 있다. 이를테면 층간소음을 예로 들어보자. 

과거에는 이웃 간 풀거나 반상회 정도에서 다뤄야 할 개별적이고 사적인 문제였다면, 오늘날에는 지자체와 경찰이 직접 개입할 필요성까지 제기되는 집단적, 공적 현안이다. 미디어와 소셜네트워크 매체의 보급과 발달은 공통의 관심사나 문제의식을 공유하는 파편적 유권자를 ‘작지만 강한 힘’으로 묶어내는 놀라운 변화를 가능케 했다. 정치권이 귀 기울이고 공감해줘야 할 이슈는 걷잡을 수 없이 증가한다. 

사소한 현안도 정부와 정치권이 풀어야 할 사안으로 변화

거대 담론에 대한 피로감도 꽤 큰 몫을 차지한다. 2000년대 이후 정치권을 뜨겁게 달군 주요 화두는, 대부분 진보와 보수, 또는 좌우간 대립이라는 프레임 속에서 탄생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참여정부에서, 이명박·박근혜 전 대통령의 보수 정권 정부를 거쳐, 초유의 대통령 탄핵 사태 끝에 문재인 정부가 탄생하는 격동의 물줄기가 그렇게 흘렀다.

하지만 국민은 2022년 5월, 정치 경험이 사실상 전무하고 제대로 된 정치 기반 세력조차 없는 전직 검찰총장을 대통령으로 선택했다. 지난 대선 패배 후 민주당에서 출범한 대선 평가 기구 ‘새로고침위원회’도 유권자가 크게 6개 그룹으로 재편되고 있다고 분석하면서 기존의 정치문법과 구도로는 선거에서 승기를 잡기 어렵다는 결론을 도출한 바 있다. 

정치 양극화는 역대 최악의 수준으로 치닫고 있다. 특히 극렬 지지층에 포위돼 민심의 중원 지역으로 과감하게 진출하지 못하는 것이 오늘날 주요 정당의 현실이다. 적극적으로 목소리를 내고 활동하는 충성 지지층이 보내는 환호만 듣고 ‘스타 정치인’이 됐다고 착각하는 정치인이 부지기수다.

거칠고 자극적인 메시지의 범람이다. 침묵하는 다수는 냉소한다. 소영웅주의에 취한 그들만의 리그에는 관심이 없다. 선거 때만 되면 이른바 제3지대론이 반복해서 등장한다. 새로운 정치에 대한 갈망이다. 역시나 반복됐던 제3지대 실패도 마찬가지다. 새롭지 않다는 실망이다. 

각종 여론조사에서 지지하는 정당을 묻는 질문에 ‘무응답’ 또는 ‘모름’ 비율이 여야 각 당 지지율에 육박한다. 두터운 부동층은 22대 총선 향방 예측을 어둡게 하는 안개와 같다. 반대로 말해, 반전을 모색할 기회 역시 충분하다는 뜻이다. 선거는 흔히들 ‘바람’이라고들 하지만, 현재 정치권의 여야 모두 동남풍을 불게 할 능력과 아이디어는 부재하다. 그렇다면 결국 공보물의 정석으로 돌아가야 한다. 

천정부지 치솟는 점심값 해결의 답을 제시하는 정치, 밤마다 시끄럽게 울려대는 오토바이 소음을 잡을 해법을 찾는 정치, 아무렇게나 버려진 쓰레기로 악취가 진동하는 거리를 깨끗하게 만들어 주겠다고 약속하는 정치가 바로 유권자가 기다리고 희망하는 정치다. 


단 1%라도 더, 내 삶에 도움이 되어줄 것이라는 믿음을 주는 정당과 후보가 22대 총선에서 국민의 선택을 받을 수 있을 것이다. “국정 동력이냐 정권 심판이냐” 질문에 대한 답도 결국에는 어느 쪽이 더 민생을 살피느냐에 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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