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년 동안 우리 일상을 답답하게 했던 코로나 팬데믹이 물러나고 코로나와 더불어 살아야 하는 엔데믹 시대가 열렸다. 지난 6월 1일 코로나19 확진자 격리 의무가 해제되면서 앞으로는 마스크도 병원급 이상 의료기관 등 일부 시설에서만 착용하면 된다. 지난 2020년 1월 20일 국내 코로나19 첫 확진자가 나온 지 1229일 만에 일상생활에서 방역 규제가 모두 풀린 것이다.
코로나가 끝나도 비대면을 선호하고, 재택근무가 정착되고, 마스크를 계속 사용할 것이라는 예측이 많았지만 현실은 정반대 현상을 보이고 있다. 여전히 마스크를 사용하는 사람이 있긴 하지만 현저히 줄었다. 당국에서는 면역에 약한 노령층에 마스크 착용을 권했는데 의외로 일부 젊은층에서 ‘민낯 포비아(공포증)’를 호소하며 마스크 착용을 고수하고 있다. ‘마기꾼 (마스크를 썼을 때와 벗었을 때의 차이가 크다는 뜻의 신조어)’으로 놀림 받기 싫고, 마스크가 옷처럼 자연스럽다는 게 그 이유다. 일부가 마스크를 여전히 사용한다지만 거의 대부분 마스크를 던지면서 꾸안꾸(꾸민 듯 안 꾸민 듯)로 지내던 이들이 꾸꾸(꾸미고 꾸민) 스타일로 과감한 변신을 시도했다.
성형외과와 화장품가게가 붐빈다
마스크 해제를 앞두고 붐빈 곳은 성형외과와 피부과였다. 매경이코노미가 빅데이터 분석 기업 나이스지니데이타와 함께 지난해 4~5월 서울 주요 상권 매출을 분석했을 때 전년 동기 대비 매출이 가장 많이 오른 상권 1위는 가로수길이었다. 가로수길에서 매출 증가 1위는 성형외과였고 톱10의 대부분이 ‘뷰티·미용’ 관련 업체였다.
관련 전문가는 “코로나 팬데믹 기간 동안 보톡스·필러 등 미용 목적의 ‘에스테틱’ 시술 수요가 급증한 것과 관련이 있다. 재택근무와 마스크 착용이 일상화되면서 ‘이참에 시술을 받아 보자’는 고객이 크게 늘었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마스크를 벗자 붐빈 곳은 풀메이크업을 완성하기 위한 화장품 가게였다. 마스크를 낄 때 눈화장에만 역점을 뒀던 사람들이 ‘입체감’을 살리는 피부 화장과 장시간 외출에 필수인 ‘지속력’이 중시하게 되었다. 에이블리코퍼레이션이 운영하는 에이블리가 마스크 없이 대중교통을 이용할 수 있게 된 올 3월 판매를 기반으로 발표한 뷰티 트렌드를 보면 ‘립스틱’ 판매량이 전년 대비 250% 증가했다. 마스크에 묻어나지 않는 ‘매트 립’이 인기였던 코로나 때와 달리 광택감과 볼륨감을 강조할 수 있는 촉촉한 제형의 ‘글로시 립’이 대세로 떠올랐다.
턱선, 콧대, 볼 등에 또렷한 윤곽과 생기를 더해주는 ‘쉐딩·치크·하이라이터’의 3월 판매량은 160%, 눈두덩이, 애굣살 등에 음영을 줘 눈가를 선명하게 만드는 ‘아이브로우’와 ‘아이섀도우’ 판매량도 각각 3배(195%), 2배(95%)가량 증가했다.
남성 메이크업 제품 판매도 급증했다. 위메프가 지난 2월 11일부터 3월 10일까지 한 달 동안 남성 화장품 매출 추이를 살펴본 결과 1년 전 같은 기간에 비해 남성 메이크업 제품 매출이 57% 급증했다. 품목별로는 눈썹을 그리는 아이브로우 매출이 1127.1% 폭증했다. 비비크림(109.2%), 파운데이션(66.5%), 선크림(40.7%)의 매출도 증가했다. 향수 매출은 20.2% 증가해 향기까지 놓치지 않으려는 남성 꾸꾸족들의 심리를 대변했다.
크롭티와 힙합바지
패션도 꾸안꾸의 감추기에서 꾸꾸의 드러내기로 변신했다. 비대면이 일상이었던 코로나 때는 ‘원마일웨어’(실내와 집 근처 1.6㎞ 반경 내에서 입을 수 있는 옷)와 고프코어룩이 트렌드였다. 잠옷이나 트레이닝복으로 오해받을 만한 원마일웨어와 야외 활동에 용이한 등산복 패션 고프코어룩의 공통점은 마스크와 더불어 두루뭉술하게 감추기에 적당하다는 점이다.
한껏 꾸미고 드러내는 꾸꾸 패션은 지난해부터 유행하기 시작한 ‘Y2K 패션’의 복귀와 맞물려 있다. Y2K는
Year+2+Kilo(1000)를 합친 단어로 2000년을 뜻한다. ‘1990년대 말부터 2000년대 초반 세기말 생활양식’이라는 의미와 ‘새천년을 앞두고 컴퓨터가 2000년 이후의 연도를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는 버그’라는 뜻도 있다.
Y2K 패션은 한마디로 화려하다. 몸매가 드러나 섹시한 무드를 풍기는 크롭 톱, 로우 라이즈 팬츠와 미니스커트, 개방적이고 파격적인 가죽 바이커 재킷과 카고 팬츠가 코로나로 억눌린 사람들의 눈길을 끌면서 인기를 얻게 되었다.
그중에서도 가장 인기를 끈 건 크롭 스타일이다. 배꼽을 드러내는 티셔츠가 거리를 뒤덮더니 급기야 겨울에도 허리 위까지 올라간 패딩이 각광 받았고, ‘얼죽크’(얼어 죽어도 크롭)라는 유행어까지 탄생했다.
얼죽크의 인기가 온몸을 휘감던 무광의 블랙 롱패딩, 일명 김밥패션을 밀어냈으며 한술 더떠 핑크, 라이트 바이올렛 등 파스텔 컬러의 크롭 패딩이 큰 사랑을 받았다. 반짝이는 ‘유광 패딩’도 지난 겨울을 대표하는 패션 아이템이었다.
한여름 더위가 이어지는 요즘 단순히 배만 내놓는 게 아니라 한쪽 어깨를 드러내거나 등이 푹 파인 티셔츠가 유행이다. 위에는 최대한 노출을 많이 하고 아래는 풍성한 힙합 바지로 꾸미고 꾸민 패션 스타일을 고수하는 것이다. 3년 동안 갑갑하게 지냈던 사람들이 마음껏 표현하려는 의지가 단단하다. 억눌렸던 마음을 꾸미고 꾸미면서 활짝 펼치겠다는 욕구가 거리에 넘쳐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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