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 트렌드] 디지털과 친숙한 MZ세대 작가들이 바꾼 문학 지형도
[문학 트렌드] 디지털과 친숙한 MZ세대 작가들이 바꾼 문학 지형도
  • 이근미 미래한국 편집위원· 소설가
  • 승인 2023.02.13 02: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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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을 쓴 조세희 작가가 지난해 크리스마스에 80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나자 여러 정치인이 애도를 표했다.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은 2022년 7월 현재 320쇄를 거듭하며 148만 부를 발행한 스테디셀러이다. 문재인 전 대통령과 이낙연 전 총리를 비롯한 정치인들이 유명 작가의 죽음을 애도하는 글에 현 정권에 대한 비난을 잊지 않고 포함시켰다. 

산업화 시대 도시 하층민을 다룬 1978년 소설 내용을 수십 년간 힐난의 무기로 삼는 모습을 보면서 디지털 시대 도시 하층민을 다룬, 현재 각광받는 소설들은 얼마나 읽고 있는지 궁금했다.

1980년대까지만 해도 전쟁과 분단, 산업화, 광주, 노동운동 같은 거대 담론이 한국소설의 주요 소재였다. 1990년대에 여성 작가들이 대거 등장하면서 가부장적 가족 질서 안에서 억압받아온 개인의 내밀한 목소리를 다루기 시작했다. 기존 질서를 위협하는 ‘불륜 서사’가 많아 1990년대 일부 여성 작가들의 작품을 ‘불륜 문학’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2000년대 들어 1960년대생 남성 작가들의 재기발랄한 목소리가 문단에 가세하면서 독자들의 관심과 인기가 고조되었다. 거대 담론부터 재기발랄까지 많은 작가가 활동하는 가운데 몇몇 인기 작가가 문학 시장을 견인해나가는 형국이 오래 이어졌다. 그러던 중 2015년 최정상급 작가들의 초대형 표절 사태가 연이어 터지면서 문단이 급속도로 얼어붙었다. 

소설 ‘채식주의자’ 의 저자 한강 씨는 2016년 아시아인 최초로 ‘맨부커상 인터내셔널 부문’ 을 수상했다./ 자료사진
소설 ‘채식주의자’ 의 저자 한강 씨는 2016년 아시아인 최초로 ‘맨부커상 인터내셔널 부문’ 을 수상했다./ 자료사진

생산자이자 소비자가 된 MZ세대

1년 후 문단의 동면을 깨는 낭보가 날아들면서 소설시장이 되살아났다. 2016년 5월, 1970년생 한강 작가가 <채식주의자>로 아시아인 최초로 ‘맨부커상 인터내셔널 부문’을 수상했다. 노벨문학상, 프랑스 공쿠르 문학상과 함께 세계 3대 문학상 중 하나로 꼽히는 권위 있는 맨부커상이 표절로 얼룩진 한국 문단의 자존심을 일거에 회복시켰다. 2005년 이후 몇 년간 노벨상 시즌만 되면 한국 시인의 수상이 가십처럼 오르내리다 소리없이 사라질 때 느꼈던 민망함과 씁쓸함도 한 방에 날려버린 쾌거였다. 
9년 전에 발표한 <채식주의자>가 맨부커상 수상 이후 초강력 베스트셀러에 오르는 가운데 독서 시장을 움직이는 2030세대의 관심을 끈 이들은 동년배인 MZ세대 작가들이었다. 한강 작가의 맨부커상 수상이 자연스럽게 문단의 세대교체를 불러온 것이다. 

MZ세대는 ‘2020년대 기준으로 20대 후반에서 40대 초반에 해당하는 밀레니얼세대(M세대)와 10대 초반~20대 중반에 해당하는 Z세대’를 묶어 부르는 한국의 신조어이다. 해외에서는 ‘밀레니얼세대’와 ‘Z세대’로 구분해 부르는데, 우리나라만 유일하게 둘을 합쳐 MZ세대로 지칭하고 있다. 2020년 기준으로 MZ세대는 2435만명으로 전체 인구의 45%를 차지한다. 전 국민의 반 정도에 해당하는 활력 넘치는 MZ세대가 우리 사회 모든 분야의 생산자이자 소비자로 굳건히 자리 잡았다. 

‘현재 사회를 이끌어 가는 나이 든 세대’라는 의미의 기성세대에 X세대와 베이비붐 세대(40대 중반부터 60대까지)가 포함된다. 기성세대가 ‘전쟁, 분단, 가난, 개발시대, 민주화, 이념’에 관심이 많다면 새로운 트렌드를 받아들이는 데 유연한 MZ세대는 ‘글로벌, 공정, 개인주의’에 관심이 높다. 

디지털 기기를 만지며 자란 MZ세대가 즐기고 선택하는 기준은 이전 세대와 확실히 다르다. 소위 순문학 숭배주의가 팽배한 문학시장이 다양한 문화를 섭렵한 MZ세대의 입맛에 맞을 리 없었다. 순문학이란 근대 이후 일본 문단에서 사용되기 시작한 독특한 용어로 통상 ‘독자들의 기호에 영합하는 통속문학이나 대중문학이 아닌 순수한 예술적 감흥에 의거하여 창작된 문학작품’을 지칭한다. 독자들이 ‘정식 등단 절차를 거친 작가들의 예술성 따지는 지루한 작품’ 쯤으로 이해한다고 봐도 무방하다.

“재미있으면 된다고 생각해요

한국소설 판매 저하에 지대한 공(?)을 끼친 순문학 숭배주의를 깨고 MZ세대 작가들이 ‘발랄하고, 재미있고, 섬뜩하고, 가벼운’ 소설들을 앞다퉈 발표하면서 독자들의 공감을 얻어냈다. 매년 출간 즉시 베스트셀러에 오르는 <젊은작가상 수상작품집>이 MZ세대 작가들을 알린 통로가 되었다. 문학동네 ‘젊은작가상’은 등단 10년 이내 작가들이 한 해 동안 발표한 중편소설과 단편소설 가운데 가장 뛰어난 7편을 가려내 대상 1편, 수상작 6편을 선정한다. 김중혁, 김애란, 손보미, 황정은, 김금희, 박민정 작가 등이 대상을 받았는데 김중혁 작가(1971년생)와 김금희 작가(1979년생) 외 대다수의 수상 작가가 1980년 이후에 출생했다. 

2010년부터 발간된 <젊은작가상 수상작품집>에 실린 작품들의 소재는 실로 다양하다. 순문학에서 배제했던, 장르문학으로 불러도 무방한 소설들이 즐비하다. 2012년 제3회 ‘젊은작가상’ 대상과 2022년 ‘이상문학상’ 대상을 받은 손보미 작가를 직접 인터뷰할 때 ‘이념적이거나 지나치게 미학적이었던 이전 작가들과 달리 스토리 라인이 강화되어 재미있으면서 잘 읽히는 작품을 쓰는 비결’을 묻자 이런 답변을 들려줬다.

“제가 99학번인데 그때 인터넷이 활성화되었어요. 인터넷으로 각종 정보를 다 볼 수 있고 인터넷에 글을 쓰기 시작한 세대의 특징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직접 전쟁을 경험했거나, 개발시대에 모진 가난을 겪었거나, 이념 대결에 과도하게 휩쓸렸던 이전 세대와 달리 MZ세대들은 인터넷 바다를 자유롭게 유영하며 직접 경험의 한계를 뛰어넘었다. 별다른 취미가 없다는 손 작가는 두치펑 감독의 홍콩 느와르와 미국 갱스터 영화, 레이먼드 챈들러를 비롯한 여러 작가의 추리소설, 논픽션과 과학 팟캐스트, 케이블의 음악방송과 뮤직비디오까지 다양한 것에 관심을 두고 있다고 했다.

“어떤 책이나 드라마를 보고 거기서 인상적인 게 있으면 이야기가 될 수 있을까, 그런 생각을 합니다. 제 머릿속에 어떤 공간을 확보해 거기 사는 사람들을 만들고, 거기서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상상하는 걸 좋아합니다.”

‘문제는 리얼리즘이다’를 외치며 비장하게 원고지를 메웠던 기성세대 작가들과 달리 MZ세대 작가들은 시공을 초월한 상상력으로 부담 없이 자판을 두드린다. 손보미 작가에게 “당신의 작품이 어떤 울림을 주기를 원하나”라고 묻자 쿨한 대답이 돌아왔다.

“레이먼드 카버의 ‘문학이 세상을 바꾼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소설이 할 수 있는 일이 있다면 여기에 사는 사람들의 일을 다른 세상에 전달해주는 것’이라는 말에 동의해요. 저는 제 소설을 읽고 재미있으면 된다고 생각해요. 나도 이런 적 있어, 이런 정도면 좋지 않을까요.”

디지털에 익숙한 MZ세대에게 웹소설은 문학의 새로운 장르로 급부상했다.
디지털에 익숙한 MZ세대에게 웹소설은 문학의 새로운 장르로 급부상했다.

장르문학의 약진

2022년 정보라 작가의 <저주 토끼>가 부커상 인터내셔널 부문 최종 후보에 오른 일은 한국 문단의 엄숙주의가 또 한 번 깨지는 계기가 되었다. 맨부커상은 2019년에 부커상으로 명칭을 변경했다. 정보라 작가가 부커상 후보에 올랐을 때 한국에서 오히려 놀라움을 표했다. 신춘문예 같은 문단 등단 절차를 거치지 않은 작가인데다 한국에서 비주류로 취급받던 호러, 공상과학(SF) 작품으로 부커상 인터내셔널 부문 최종 후보에 랭크됐기 때문이다.

어느 틈엔가 ‘등단한 순문학 작가’를 고집하던 문단의 기류가 바뀌면서 장르문학이 문학계 비주류를 넘어 대세로 자리 잡아 나가고 있다. 장르소설 공모에 억대 상금을 내걸거나 드라마, 영화, 게임, 웹툰 등 2차 콘텐츠 제작까지 약속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 정보라 작가뿐만 아니라 한국과학문학상을 통해 발굴된 김초엽, 천선란 작가 등이 독자들의 열렬한 환호를 받으며 활동하는 것도 계기가 되었을 것이다. 

이러한 변화에 힘입어 국내 최장수 문예지인 월간 ‘현대문학’이 2022년 7·8월호에 장르소설 20편을 수록하는 센세이션을 감행했다. 1955년 1월부터 매달 발행되며 순문학을 대표해 온 현대문학의 변신이야말로 달라진 문학시장을 대변한다. 현대문학 윤희영 팀장은 한 인터뷰에서 “과거 비주류였던 장르문학이 대세가 되면서, 순문학과의 경계가 점차 없어지는 추세이다. 두 문학의 경계를 어떻게 설정해야 하는가에 대한 물음표를 던지는 취지에서 만든 특집”이라고 밝혔다.  

전 세계가 공감할 수 있는 스토리를 담은 재미있는 소설이 양산된 데다 탁월한 번역가들이 등장하면서 한국소설의 해외 진출이 늘었고, 비중 있는 해외문학상 수상 소식도 자주 들려오고 있다. 2022년 한 해에만 번역원 지원을 받아 27개 언어권 150여 종에 이르는 한국문학 작품이 해외에서 출간됐다. 
2021년 윤고은 작가의 <밤의 여행자들>이 아시아 문학 최초로 영어권 대표 추리문학상인 대거상 번역추리소설 부문을 수상했다. 2022년 4월 손원평 작가의 장편소설 <서른의 반격>이 일본 서점대상(번역소설 부문), 5월에 김소연 작가의 시집 <한 글자 사전>이 일본 번역대상을 받았다. 김금숙 작가의 그래픽노블 <풀>은 뮤리엘 만화상을 받았고, 김재균 작가는 이영주 시인의 <차가운 사탕들>을 번역해 미국 루시엔스트릭 번역상을 수상했다.

아동문학에서도 괄목할 만한 성과가 나오고 있다. 이수지 작가는 2022년 3월 한국인 최초로 ‘아동문학계의 노벨상’으로 불리는 한스 크리스티안 안데르센상 일러스트레이터 부문을 수상했다. 그림책 <구름빵>으로 유명한 백희나 작가는 2020년 세계적인 아동문학상인 아스트리드 린드그렌상과 상금 6억 원을 받았다. 

2016년 한강 작가의 맨부커상 수상 이전에 받은 국제상은 신경숙 작가의 2012년 ‘맨아시아문학상’이 유일하다. MZ세대 작가들이 한계가 없는 상상력을 펼친 결과 2022년 한 해만 4편이 해외문학상을 수상했고, 9편이 유력 문학상 후보에 올랐다.  

해외문학상을 받거나 유력 문학상의 후보에만 올라도 여러 나라와 판권 계약이 이뤄지고 소설 판매도 호조를 보인다. 정보라 작가의 <저주 토끼>는 부커상 인터내셔널 부문 최종 후보에 오른 것만으로 20여 개국과 판권 계약을 맺었다. 

MZ세대 작가들의 작품이 국내 베스트셀러에 오르면 해외 시장이 실시간으로 반응할 정도로 현재 한국 소설에 대한 반응이 뜨겁다. 요즘 일본 문학시장의 키워드는 ‘SF와 여성’인데 그 기대에 한국 여성 작가들이 부응하고 있다. 손원평 작가의 <아몬드>와 <서른의 반격>이 일본 서점 대상을 연이어 수상한 것만 봐도 알 수 있는 일이다. 일본은 ‘SF’ 장르 작품이 흔치 않아 김초엽·정세랑·김이환·천선란 작가의 작품은 일본 출판사에서 입도선매를 할 정도이다. 

해외 문학상 수상작 늘어나

최근 5년간 해외에서 가장 많이 팔린 조남주 작가의 <82년생 김지영>은 10개 언어권에서 30만 부 이상 판매됐다. 그 가운데 20만 부를 일본 독자들이 구입하면서 스테디셀러로 자리 잡았다. 한국문학번역원이 2016년부터 5년간 해외에서 출판한 한국문학 658종(37개 언어권)을 조사한 결과 5000부 이상 판매된 작품이 34종에 달했다. 한강의 <채식주의자>는 13개 언어권에서 16만 부 이상 판매된 것으로 나타났다.

웹소설까지 포함한다면 K문학이 뻗어나갈 길은 무궁무진하다. 한국콘텐츠진흥원에 따르면 웹소설 시장은 2021년 현재 6000억 원대로 성장했다. 2013년에 100억 원대였으니 8년 만에 매출이 60배 늘어난 것이다. 일반 단행본 시장 매출액 7132억 원을 웹소설이 곧 추월할 것으로 보인다. 웹소설은 웹툰·TV드라마·영화로 제작하거나 전자책 또는 종이책으로 이어지기 때문에 일반 출판시장과도 연결되어 있다.  

장르소설과 웹소설의 뜨거운 바람은 고등 교육기관의 커리큘럼까지 바꿔 놓았다. 순문학 범주에 들어가는 시, 소설, 희곡만 가르치던 문예창작학과에서 장르소설, 웹소설, 시나리오, 스토리텔링까지 다양한 과목을 강의하고 있다.

1942년에 출생한 조세희 작가가 36세에 쏘아 올린 작은 공을 발랄한 30대 작가들이 이어받아 세계를 통통 튀기며 달리고 있다. 정치인들이 문학을 빌려 공격하려면 1986년생 장류진 작가의 <일의 기쁨과 슬픔> 정도는 인용해야 공감을 얻는 시대가 됐다. 판교 테크노벨리에 위치한 스타트업 회사의 안나가 잡다한 일로 늘 피곤하지만 자신을 다독이는 방법도 갖고 있다는 걸 알면 “44년 간 변한 게 없다”는 무작정 공격이 민망해지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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