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명수 대법원장 취임 이후 법원 판결이 공정과 균형을 잃었다는 비판이 많다. 특히 정치적으로 민감한 사건에서는 어김없이 친(親)정권 성향의 판결과 결정이 뒤따랐다.
문재인 대통령과 청와대 핵심 실세가 연루된 사건에서는 검찰이 청구한 구속영장이 법원에서 기각되는 일이 잦아졌다. 그런 배경에는 법원 조직의 정점에 있는 김명수 대법원장과 그가 구축해 놓은 친정부 성향의 법관들이 자리잡고 있다는 지적이 많았다.
2017년 1월 1일 저녁, 한 종편 채널은 이재명 경기지사의 친형 강제 입원 시도 의혹을 심층 보도했다. 19대 대통령 선거에 나올 유력 후보들에 대한 검증 차원의 기사였다. 이 지사가 성남시장으로 재임할 때인 2012년 친형 이재선 씨를 관할 기관인 분당보건소 등을 통해 정신병원에 강제 입원시키려 했다는 내용이었다.
당시 이 지사는 격앙된 반응은 보였다. “민주공화국을 마비시키는 독극물” “폐간시키겠다”고 했다. 그러면서 이 지사는 “마음의 병을 앓고 있는 저의 셋째 형님(이재선 씨)으로부터 지속적인 협박을 받은 어머니가 보건소에 정신질환 여부 확인을 위해 진단을 의뢰했고, 성남보건소는 행정 절차로 형님의 정신질환 여부 확인 절차를 시작하였다”며 “그러나 그 보건소가 성남시장 관할이기 때문에 정치적 문제가 생길 수도 있어 진단 절차는 더 이상 진행하지 않았는데, 결국 그 형님은 어머니를 때려 입원시키는 패륜을 저지르고 말았다”고 설명했다.
그리고 “이후 형수를 폭행하고 가산을 탕진하는 등에 이르자 그 가족들이 스스로 정신병원에 강제 입원시켰다”고 밝혔다. 즉 형님을 정신병원에 입원시키려 했거나 입원시킨 사람들은 어머니와 형수, 조카이며 오히려 자기는 말렸다는 취지였다. 당시 이 지사는 셋째 형의 정신병원 입원동의서, 어머니 폭행 협박으로 처벌받은 공소장, 어머니가 신청한 접근금지명령서 등 근거 자료를 제시했다.
실제로 정신병원 입원동의서에는 이 시장이 아니라 형수 박모 씨와 그의 딸 이름이 적혀 있었다. 이 지사의 해명은 설득력이 있어 보였고 방송 기사가 완벽한 오보로 보일 정도였다. 그러나 방송 기사와 이 지사의 해명을 자세히 살펴보면 큰 차이점이 있었다. 기사는 ‘2012년’에 벌어진 일을 다뤘는데, 이 지사가 제시한 입원동의서는 ‘2014년’ 자료였다.
이재선 씨는 2013년 교통사고를 당하고 조울증세가 심해져 2014년 가족들에 의해 정신병원에 실제로 입원한 적이 있다. 바로 이 자료를 언론 등에 뿌리며, 이 지사는 친형을 정신병원에 강제 입원시키려고 했던 자신의 과거를 감추려 했던 것이다. 참 교묘한 ‘작전’이었다.
이 지사의 토론회 발언은 과거에 밝혔던 해명과 거의 비슷했다. 상대 후보가 2014년이 아니라 ‘2012년’이라는 시점을 특정해 물어봤으나 자신은 전혀 무관하다는 것이었다. 오히려 상대 후보에게 허위사실 유포를 경고하는 모습도 보여줬다.
이 지사는 1주일 뒤 열린 MBC 후보 토론회에서도 유사한 입장을 밝혔다.
“우리 김영환 후보께서는 저보고(친형을) 정신병원에 입원시켰다 이런 주장을 하고 싶으신 것 같은 데 사실이 아닙니다. 정신병원에 입원 시킨 것은 형님의 부인 그러니까 제 형수와 조카들이었고 어머니가 보건소에다가 정신질환이 있는 것 같으니 확인을 해보자라고 해서 진단을 요청한 일이 있습니다. 그 권한은 제가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제가 어머니한테 설득을 해서 이거 정치적으로 너무 시끄러우니 하지 말자고 못하게 막아서 결국은 안 됐다라는 말씀을 또 드립니다.”
이재명 허위사실 공표 사건
도지사가 되려는 사람이 자신의 친형을 정신병원에 강제 입원시키려 했다면 유권자들은 상당한 혼란에 빠질 가능성이 높다. 더욱이 당시 이 지사 주변에는 배우 김부선 씨 스캔들 의혹 등 공직자의 자질이나 도덕성에 악영향을 미칠 사건들이 적지 않았다.
그래서 이 지사는 친형을 정신병원에 강제 입원 시키려 했다는 상대 후보의 주장이나 언론 보도에 “전혀 관련 없다” “폐간 시키겠다”는 격한 반응을 보이며, 의혹 확산을 차단했던 것으로 보인다.
지방선거가 끝나고 경찰은 수사에 착수했다. 경찰은 2018년 11월 이 지사에 대해 기소 의견으로 사건을 검찰로 넘겼다. 그 다음달 검찰은 친형을 정신병원에 강제 입원시키려 한 혐의(직권남용권리행사방해)와 TV토론회에서 허위사실을 발언한 혐의(공직선거법 위반) 등으로 이 지사를 재판에 넘겼다. 수사 결과 놀라운 일이 드러났다.
공소장에는 이 지사가 2012년 4월부터 4개월간 부하 직원들을 동원해 성남시 관할인 분당보건소와 정신건강센터, 분당서울대병원 등에 영향력을 행사하고 친형을 정신병원에 강제 입원 시키려 한 사실이 드러나 있다. 협조하지 않는 보건소장에게 이 지사가 직접 협박을 한 정황도 드러났다.
공인회계사로 일했던 친형 이재선 씨가 성남시 인터넷 홈페이지에 이 지사를 비판하는 글을 여러 차례 올리고, 시장실을 찾아가 소란을 피우자 정신병원에 입원시키려 했다는 사건 발단 배경도 공소장에 소개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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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 법정에서는 이 지사가 친형을 입원 시키려고 보건소와 병원 관계자들에게 압력을 넣었다는 증언이 이어졌다. 분당보건소장은 “2012년 6월 이 지사가 브라질 출장 전날에 친형의 정신병원 입원 절차를 진행했으면 좋겠다고 지시했으며 브라질에서 3번이나 전화를 걸어 ‘지시한 것을 검토했느냐’고 말했다”고 증언했다. 그는 이 지사로부터 ‘이 양반아, 보건소장이 맞느냐’는 독촉까지 받았다고 말했다.
전임 분당보건소장은 “강제 입원 검토 지시를 받고 위법이라며 반대 입장을 고수하는 바람에 인사 불이익을 받았다”고 증언했다. 그러자 이 지사 측은 친형을 강제 입원 시키려 한 것이 아니라 진단을 받게 하려 한 것이라는 입장을 내놓기도 했다.
강제 입원 시도가 직권남용죄에 해당하는지는 차지하고, 적어도 TV 토론회에서 나온 이 지사 발언들은 거짓말로 확인된 셈이었다. 이 지사는 친형을 강제 입원 시도한 적이 없으며 오히려 자신은 반대했다는 점을 강조해왔기 때문이다. 이 지사로부터 ‘독극물’ ‘폐간’ 막말을 들었던 방송 기사 역시 오보가 아니었다.
2019년 5월 16일 수원지법 성남지원(재판장 최창훈)에서 1심 선고가 나왔다. 그러나 모두 무죄였다. 재판부는 “피고인은 옛 정신보건법 25조 절차에 따라 가능한 범위 내에서 친형을 정신의료기관에 입원시키겠다고 마음먹은 것으로 보인다”며 “강제 입원 절차를 다소 무리하게 진행한 것은 사회적 비난을 받을 소지는 있지만 직권남용 권리행사방해라고 단정할 수 없다”고 설명했다.
성남시청에서 소란을 피우거나 폭언을 하는 등 당시 친형의 증세를 봤을 때 이 지사가 친형을 강제 입원시키려고 한 행위는 기초단체장이 정신질환자를 입원시키기 위해 진단을 받게 할 수 있도록 한 옛 정신보건법을 따랐다고 볼 수 있다는 취지였다. 이 지사가 보건소장 등에게 친형의 조울병 평가문건 수정, 진단 및 보호신청 관련 공문 작성, 차량을 이용한 입원 진단을 지시했다는 혐의에 대해서도 법령상 의무에 없는 일을 하도록 한 정황은 없다고 판시했다.
그러면서 TV 토론회에서 허위사실을 공표한 혐의에 대해서는 “이 지사의 답변 내용에 구체적인 사실이 들어 있지 않은 불분명한 발언이고, 그 발언이 유권자 판단을 그르칠 정도로 의도적으로 사실을 왜곡한 것은 아니다”고 판단했다. 당시 상대 후보가 구체적으로 질문했고 이 지사는 교묘한 거짓말로 의혹을 강하게 부인했는데도 재판부는 이 지사의 손을 들어준 것이다.
광주 인성고와 연세대 경영학과를 나온 최 부장판사는 법관 생활 대부분을 광주전남 지역에서 일했고 2018년부터 수원지법 성남지원에 근무했다. 그는 이 판결 뒤인 2020년 법원의 핵심 요직인 서울중앙지법 영장전담 부장판사로 영전했다.
2019년 9월 6일 2심 선고 재판에서는 다른 결론이 나왔다.
수원고법 형사2부(재판장 임상기)는 이 지사가 강제 입원 절차를 진행하라고 지시한 점은 인정했으나 직권남용의 위법성은 증명되지 않았다고 봤다. 그러면서 재판부는 “TV 토론회에서의 발언은 선거인의 공정한 판단을 오도할 정도로 사실을 왜곡, 허위 사실을 공표한 것”이라며 공직선거법 위반으로 당선 무효형인 벌금 300만 원을 선고했다.
재판부는 “이 지사가 친형의 강제 입원 절차를 직접 지시하고, 절차 일부가 진행된 사실이 넉넉히 인정된다”면서 “그런데도 이런 사실을 숨긴 채 강제 입원 시도에 전혀 관여하지 않았다고 발언함으로써 유권자의 공정한 판단을 그르치게 할 정도로 사실을 왜곡하는 정도에 이르렀다“고 판시했다.
재판부는 또 “이 지사가 친형을 강제 입원 시도했다는 의혹은 토론회 이전에도 언론 등에 여러 차례 보도돼 이 지사가 무슨 일을 말하는지 잘 알고 있었을 것”이라면서 “상대 후보가 2012년 벌어진 일을 구체적으로 질문했으나 입원을 시도한 부분을 의도적으로 숨기는 등 고의성이 인정된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친형 강제 입원 시도 여부는 공직자의 자질과 도덕성을 판단할 중요한 사항으로, 그런 불리한 사실을 감추기 위해 이 지사가 유권자들에게 고의로 거짓말을 했다고 판단한 것이다.
이재명의 거짓말, 2심에서는 ‘당선무효형’ 선고
사건은 상고심으로 넘어갔다. 2020년 6월 대법원은 이 사건을 전원합의체에서 다루기로 했다. 당초 대법원2부에 배당됐으나 일부 대법관이 2심 판결과 다른 의견을 내면서 합의를 이루지 못해 전원합의체에 회부된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집권 여당에 급격한 정치적 변화가 있었다. 유력 대선 후보로 꼽혀왔던 안희정 전 충남지사는 수행비서 성폭행 사건으로 복역 중이었다. 또 다른 주자 박원순 서울시장은 성추행 혐의에 연루됐다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문재인 대통령의 총애를 받았던 조국 전 법무부 장관도 온갖 비리 의혹이 제기돼 중도 하차했다.
‘친문적자’로 알려진 김경수 경남지사 역시 드루킹 일당과 공모해 댓글 조작을 벌인 혐의로 1심에서 징역 2년을 선고 받았다. 여당 대선 주자들에게 저주가 내렸다는 말이 회자됐다. 여기에 차기 대통령 선호도 1, 2위를 하던 이 지사마저 유죄가 확정된다면 여당의 대선 후보가 모두 사라졌다는 위기감이 고조됐다.
대법원 선고는 2020년 7월 16일 나왔다. 결론은 당선무효형이 선고된 공직선거법 위반(허위사실 공표)에 대해 무죄 취지 파기환송이었다. 다수의견은 김명수 대법원장을 포함해 7명이었고 ‘유죄’라고 반대의견을 낸 대법관은 5명이었다.
전원합의체 판결에는 대법관 13명 중 이 지사의 다른 사건 변호인이었던 김선수 대법관이 이번 재판을 회피하면서 12명의 대법관이 참여했다. 대법원장을 제외하면 6대 5로 의견 대립이 매우 치열했음을 보여준다
다수의견은 “이 지사의 토론회 발언은 상대 후보자의 질문이나 의혹 제기에 대해 답변하거나 해명하는 과정에서 나온 것”이라며 “그 발언은 토론회의 주제나 맥락과 관련 없이 어떤 사실을 적극적이고 일방적으로 널리 드러내 알리려는 의도에서 한 공표 행위라고 볼 수 없다”고 판시했다. 하지만 이런 논리라면 토론회에서 상대 후보의 질문에 거짓말로 답해도 처벌이 어렵게 된다. ‘답변’은 적극적이고 일방적으로 널리 드러내 알리려는 의도에서 한 공표 행위가 아니기 때문이다.
다수의견은 또 “선거의 공정을 위하여 부정확하거나 바람직하지 못한 표현들 모두에 대해 무거운 법적 책임을 묻는 것이 해결책이 될 수는 없다”며 “국가기관이 토론 과정의 모든 정치적 표현에 대하여 그 발언 배경이나 맥락을 보지 않고 일률적으로 엄격한 법적 책임을 부과한다면 후보자는 법적 책임을 부담하게 될지 모른다는 두려움에 더욱 활발한 토론을 하기 어렵게 된다”고 밝혔다. 토론회에서 표현의 자유를 대폭 보장해야 한다는 것이다.
다수의견은 또 “이 지사는 상대 후보자의 질문 취지를 ‘직권을 남용해 불법으로 강제 입원 시키려고 한 사실이 있느냐’로 해석한 다음, 그러한 평가를 부인하는 의미로 답변한 것이라 볼 수 있다”고도 했다. 이 지사 측이 재판에서 줄곧 주장했던 논리를 대법원이 인정해준 것이었다.
그러나 반대의견(박상옥 이기택 안철상 이동원 노태악 대법관)은 판결문에서 “이 지사는 적극적으로 거짓 해명을 한 것일뿐 아니라 부하 직원들에게 정신병원 입원 절차를 지시하고 독촉한 사실을 숨기거나 은폐함으로써 유권자의 정확한 판단을 그르칠 정도로 의도적으로 사실을 왜곡한 것”이라고 반박했다.
무리한 판결, 여당 1위 후보 살렸다
반대의견은 또 “두번째 토론회(MBC)에서의 발언은 상대 질문에 답변하는 것이 아니라 이전 토론회 발언에 대해 이 지사가 먼저 발언한 것으로, 즉흥적, 돌발적인 것이 아니다”면서 “이 지사는 상대 후보의 질문에 단순히 부인하는 답변만을 한 것이 아니라, 자신에게 불리한 사실은 숨기고, 자신에게 유리한 사실만을 덧붙여서 전체적으로 ‘이 지사가 친형의 정신병원 입원 절차에 관여한 사실이 없다’는 의미로 해석될 수밖에 없는 취지로 발언했다”고 설명했다. 실제로 이 지사는 언론 보도에도 2012년 사건과 2014년 사건을 교묘하게 뒤섞어 의혹을 해명해왔다.
반대의견은 그러면서 “적극적 일방적 허위사실의 표명이라는 등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토론회 발언은 처벌할 수 없다는 듯한 다수의견은 논리적으로 설득력이 떨어진다”고 지적했다.
특히 “일부 허위 표현이 있더라도 토론 과정에서의 경쟁과 사후 검증을 통해 도태되도록 하는 것이 민주적이고, 일반 국민이 토론과 검증과정을 보며 누가 옳고 그른지 판단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다수의견의 입장은 우리나라 정치 현실을 전혀 모르고 있다는 비판을 받아야 했다.
이 지사 의혹은 당시 토론회는 물론 선거 때까지 누구 말이 맞는지 전혀 규명되지 않았고, 법원에 와서야 이 지사의 거짓말로 확인됐다. 이 지사가 아무 관련 없다고 끝까지 거짓말로 버티면서 토론회와 언론을 통한 검증은 무용지물이 됐던 것이다. 그런데도 이번 대법원의 판결이 정립되면 우리의 TV 토론회는 ‘아무말 거짓말대잔치’로 전락할 우려가 높아졌다.
가까스로 정치 생명을 건진 이 지사는 판결 직후 “거짓이 진실을 이길 수 없다는 믿음을 확인했다”고 말했다. 대법원으로부터 거짓말은 했지만 처벌이 어렵다는 선고를 받아놓고도, 판결문 잉크가 마르기도 전에 자신의 주장이 처음부터 옳았던 것처럼 언론 플레이를 한 것이다.
법조계 안팎에서는 대법원이 여당의 대선 후보를 구하기 위해 무리한 판결을 했다는 지적이 나왔다. 그리고 이런 판결은 다른 여권 후보인 김경수 재판에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우려한다. 김경수 전 지사는 지난해 2심에서 실형을 선고 받았다. 1심에서 업무방해와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가 유죄로 인정됐으나 2심에서 공직선거법 위반은 무죄가 됐다.
대법원의 편향 판결 논란은 더 거세질 전망이다. 법원은 ‘정권의 보루’가 아니라 ‘법치의 보루’라는 사실을 한시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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