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극치료계의 ‘오바마’. 11월 8일 한국을 찾은 수 제닝스를 한국의 연극치료사들은 이렇게 불렀다. 연극치료계의 ‘대통령’이라는 의미라고 한다. 수 제닝스는 영국의 대표적인 1세대 연극치료사이다. 치료 연극의 기틀을 마련한 장본인이다. 4살 때부터 연극을 시작해 배우로도 활동하고 있다. 그가 발견한 EPR이론은 치료 대상자를 진단하는 방법으로, 또한 프로그램을 만드는 틀로 유용하게 사용되고 있다. 연극치료계 대통령과의 인터뷰는 지난 11월 11일 용인대 근처에 위치한 한식당에서 이루어졌다. 한국을 체험해보고 싶다는 그녀는 인터뷰가 끝난 후 민속촌으로 직행했다. 그와의 대화 내용을 소개한다.
- 한국 방문이 처음인데 한국에 대한 인상이 어떻습니까.
친절하고 따뜻하게 맞아줘 고맙습니다. 깨끗하고 조용한 것 같습니다.
- 원래 배우였던 것으로 알고 있는데
4살 때부터 연극 무대에 올랐습니다. 지금도 연극을 합니다. 어머니가 무용수였고, 아버지는 의사였습니다.
- 연극 치료는 언제부터 시작했는지
무척 오래됐습니다. 17살 때 정신병원 의사로부터 연극(드라마)을 정신 치료에 접목하면 어떻겠느냐는 부탁을 받았습니다. 연극치료를 훈련하는 프로그램이 시작된 것은 1960년입니다.
- 1970년대 연극치료 개념이 정립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만
연극치료는 새로운 것이 아닙니다. 정확히 말하자면 ‘재발견’이 된 것입니다. 연극이 치료효과가 있다는 것은 이미 알려진 얘기입니다. 드라마 테라피(Drama therapy·연극치료)라는 단어가 없었을 뿐입니다.
- 실제 의학적으로 증명된 사례가 있는지
있습니다. 영국에서는 연극치료가 효과가 있다는 증거를 기본으로 합니다. 불임 클리닉에서 연극치료를 하는데 병원에서 하는 프로그램보다 훨씬 더 결과가 좋았습니다. 의사들도 난감해 했습니다. 행동에 문제가 있는 청소년이나 아동들도 확실히 행동이 달라집니다. 스트레스를 줄이고 삶의 균형을 찾는 데 좋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아 일반인 중에도 참여하는 사람이 많습니다.
- 당신이 발견한 EPR이론에 대해 설명을 한다면
사람들이 연극적인 본성을 가지고 태어난다는 것이 큰 전제입니다. 사람의 연극적인 능력이 어떤 단계를 거쳐 발달해 가는지를 3단계로 크게 나누어 본 것입니다. 태어나 1-2살 아기들은 주로 자신의 감각과 몸을 가지고 외부의 정보를 받아들이고 표현하는 단계에 있습니다. 걷기 시작하고 말을 배우면서 부터 자기 몸이 아니라 몸 바깥에 있는 대상들을 가지고 표현을 시작합니다. 블록을 만든다든지 그림을 그린다든지 이야기를 한다든지 인형놀이를 한다든지 그런식으로 표현이 한 단계 또 발전을 합니다. 5살 넘어 6~7살 정도가 되면 내가 아닌 다른 인물이 돼 그 역할을 하는 것처럼 할 수 있는 단계로 발전합니다. 그것이 EPR이론입니다. 이 이론이 연극치료에서는 진단 방법으로 쓰이기도 하고 프로그램을 만드는 틀이 되기도 합니다.
- 어떤 경험을 통해 EPR이론을 발견했는지
아이가 태어나면 흉내를 낼 수 있습니다. 극적인 자기를 표현하는 능력은 언어 훨씬 이전에 있습니다. 그래서 연극이라는 것은 문명의 기초라고 생각합니다.
- 연극치료사가 ‘치료’를 한다고 하면, 편견이 많았을 것 같은데
그렇습니다. 주사를 맞고 화학요법을 하는 것이 치료가 빠릅니다. 연극치료는 시간이 많이 걸리고 경제면에서는 별로라고 생각합니다. 성격장애를 겪고 있는 아이들의 부모들은 약물치료를 원하는 경우도 많습니다. 부모들이 힘드니까 그런 것입니다. 영국에서는 10살 아래는 법적으로 약물 치료를 하지 말라고 합니다. 그러나 실제로는 4-5살 짜리 아이들에게도 약을 줍니다. 하지만 일단 연극치료를 시작했으니 죽으나 사나 해야 합니다.(웃음) 이제는 새로운 세대가 EPR이론도 알고, 기존 의사 중에도 이 이론을 아는 사람들이 많아지고 있습니다.
- 한국의 연극치료사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 있다면
지금 하고 있는 것을 열심히 하길 바랍니다. 무척 잘하고 있습니다. 정신병원이나 감옥, 불임 클리닉에 가는 것도 두려워하지 말았으면 합니다.
- 앞으로 한국에서의 일정은 어떻습니까.
숙명여대와 서울문화재단에서 워크샵이 있습니다. 한국에 있는 동안 가능한 연극을 많이 보고 싶습니다. 하루에 연극을 하나 보면 의사를 안 봐도 됩니다. 사람들이 연극을 많이 본다면 연극치료는 아마 덜 필요할 것입니다. #
서은옥 기자 seo0709@futurekorea.co.kr
통역. 김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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