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인 100만 명 시대. 한국은 더 이상 단일민족국가가 아니다. 제2외국어를 배우러 해외로 나가는 한국 학생만큼 우리말을 배우러 국내에 들어오는 유학생이 매년 증가하고 있다. 외국인들이 고위공무원직을 맡고, 한식의 세계화를 외치며 퓨전음식이 대세를 이루고 있다.
과거 놀림에 대상이었던 혼혈아에 대한 부정적 편견도 조금씩 사라지고 있다. 공중파방송에서 자신이 혼혈임을 당당히 밝힌 뒤, 오히려 대중의 지지를 받게 된 연예인도 있다. 세계는 하나라는 국제화 시대를 맞이해 우리도 이제 세계시민의 자격을 갖춘 것일까.
하지만 유엔인종차별철폐위원회(CERD)는 2007년 발표한 보고서를 통해 “한국이 단일 민족을 강조하는 것은 인종차별적 행위에 해당할 수 있다”며 “인종과 타 국가 출신에 대한 차별을 근절하기 위해 정부가 앞장서야 한다”고 권고한 바 있다.
특히 선진국에서 온 외국인과 후진국에서 온 외국인을 대하는 우리의 이중적 잣대는 CERD의 지적을 현실화시킨다. 전자가 부러움의 대상인 반면, 후자에게는 우리보다 열등하다는 부정적 인식을 가지고 있다. 이와 관련해 김성회 한국다문화센터 사무총장은 “한국은 다문화사회에 진입했다. 하지만 이들에 대한 인식은 여전히 부족하다”고 말했다.
행정안전부가 발표한 ‘2009년 지방자치단체 외국인주민 현황’에 의하면, 대한민국에 거주하는 외국인주민은 110만6,000명에 달한다. 이는 우리나라 전체 인구의 약 2%에 해당한다. 그 중 상당부분을 차지하는 결혼이주민과 이주노동자들의 증가로, 다문화가정의 자녀 또한 10만7,000여 명에 이르고 있다. 여기에 약 30만 명 정도로 추정되는 불법체류자를 포함하면 그 수는 더욱 늘어난다.
이처럼 국제결혼과 다양한 교류를 통해 국내에 들어온 외국인들은 각자의 문화적 특성을 지닌 채 우리와 공동체를 이루며 살고 있다. 우리와 다른 민족적.문화적 배경을 가진 사람들로 구성된 다문화가정은 어느새 우리의 이웃으로 다가오고 있다.
다문화가정의 초기 유형을 살펴보면, 1980년대 이후 한국의 경제규모가 확대됨에 따라 급격히 늘어난 외국인 이주자 가정이 주를 이루었다. 하지만 최근 들어 국제결혼과 탈북민들의 남한입국이 늘어나면서, 다문화가정의 모습과 출신 국적 또한 더욱 다양해지고 있다.
성장기에 형성된 소외의식이 반사회적 경향 우려
우리와 생김새는 물론 살아온 환경과 가치관 등이 다른 이주민들은 누구보다 안정적으로 국내에 정착하고 싶어 한다. ‘글로벌 코리아’를 지향하는 한국사회 역시 이들을 환영하고는 있지만, 실질적인 제도 장치와 다문화 포용 의식 등은 여전히 미흡하다.
세계 속 한국인의 위상을 높이기 위해 관련 부처별로 다양한 정책을 내놓고 있다. 하지만 국내에서 우리를 바라보는 외국인들의 시선에는 너무나 무관심하다. 대다수 이주노동자들은 여전히 임금체불과 폭력.욕설에 시달리고 있다. 외국인 배우자와 그들의 자녀 또한 가정폭력과 집단 따돌림 등으로 어려움을 호소하고 있다. 그들의 기억 속에 한국은 어떤 모습일까. 해외에서 한국인이 받는 차별대우에는 얼굴을 붉히면서, 우리는 왜 그들을 좀 더 따뜻하게 안아주지 못하는 것인지, 현장에 있는 다문화 전문가들은 안타까움을 토로한다.
이는 교육 현장에도 그대로 반영된다. 한국어가 서툰 다문화가정 아이들은 학습 부진과 장기 결석의 반복으로 상당수가 조기에 학업을 중단하고 있다. 가정 내에서도 부모의 출신국과 한국의 문화 차이에서 오는 정체성 혼란으로 힘들어하는 아이들이 많다고 한다.
불법체류 외국인 노동자 자녀의 경우엔 의무교육조차 제대로 받지 못하는 실정이다. 이는 곧 사회적 지위의 격차로 연결돼 우리 사회의 소외계층으로 남을 가능성이 높다. 우리나라가 1991년 가입한 ‘UN아동권리협약’을 보면, 부모의 법적 신분과 관계없이 아동의 교육권을 보장하도록 되어 있다. 하지만 우리 법체계는 이를 반영하지 않고 있다.
현실적으론 신분 노출을 두려워한 부모들이 자녀를 학교에 보내지 않는 경우가 더 많다. 일부 초등학교에선 불법체류자 자녀의 입학을 거절하는 사례도 종종 있다고 한다.
최근 들어 늘어난 국제재혼으로 어머니를 따라 무작정 한국 땅을 밟게 된 자녀들의 경우는 부적응 사태가 훨씬 심각하다. 일부 동남아 여성의 경우, 초혼이라 속이고 한국에 들어와 결혼생활을 한 후 본국에 있는 자녀를 데려오는 식으로 입양을 하기도 한다.
국제재혼 등으로 한국에 들어온 외국 아동은 현재 1만여 명 정도다. 더욱이 국제결혼을 택하는 재혼 남성들이 급증하면서, 그 수는 점점 더 늘어나고 있다. 부모의 이혼으로 깊은 상처를 받은 아이들은 말도 통하지 않는 낯선 환경에서 또 다시 혼란을 겪게 된다. 이는 국제재혼가정의 한국인 아이(前 배우자와의 자녀)도 마찬가지라고 한다.
이처럼 다양한 형태로 이뤄진 다문화가정 자녀가 청소년기를 지내고 나면, 심각한 사회문제로 등장할 가능성이 매우 높다는 우려가 제기되고 있다. 성장기에 형성된 소외의식이 반사회적 경향을 보일 수 있다는 지적이다.
극단적인 예일 수도 있지만, 지난 2007년 발생한 한국계 미국인 ‘조승희’의 버지니아텍 총기난사 사건은 다문화 가정 자녀에 대한 차별과 언어소통의 부재가 어떠한 부작용을 낳을 수 있는지 보여준다.
물론 모든 편견을 극복하고 슈퍼볼 MVP가 된 ‘하인즈 워드’처럼 성공적인 사례도 있다. 하지만 경제력과 영어실력이 부족했던 그의 어머니는 온갖 고생을 다하며, 아들을 키워야 했다. 국내에도 ‘하인즈 워드’ 혹은 ‘조승희’같은 외국계 한국인이 나올 수 있다. 이에 가정과 학교, 정부는 물론 사회구성원의 역할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다문화가정 부모와 자녀 함께 적응 교육 받아야
다문화가정 자녀들은 한국말이 서툰 어머니의 정확하지 못한 발음과 어휘 등을 그대로 전달받으며, 언어의 혼동 속에 자라난다. 대다수 결혼이주여성이 거의 입국과 동시에 결혼 및 출산을 하고, 한국 언어와 문화의 적응이 덜 이루어진 상태에서 양육을 맡기 때문이다.
그 결과, 다문화 가정 아이들은 또래들과 상당한 지적 발달 수준의 차이를 보이는 것으로 조사됐다. 일상적인 의사소통에는 문제가 없지만, 독서 습관 등이 형성되지 않아 어휘력과 작문 능력 등이 떨어진다는 분석이다.
또한 문화적 차이로 인한 사회부적응과 가족구성원간의 갈등도 커다란 장애요소로 꼽히고 있다. 일본인 어머니를 둔 김아연 양(15)은 “엄마의 이상한 한국어 발음만 들으면 왠지 짜증이 나요. 알아들을 순 있지만, 어설픈 한국어로 잔소리를 할 때면 정말 듣기 싫어져요”라고 말했다. 중학생이 되면서 ‘엄마가 외국인이란 사실을 티내지 말자’고 다짐했다는 김 양은 “이젠 엄마를 부끄럽게 여기고, 무시하게 되어버렸다”고 고백했다. (다문화 교육 사례집 中)
자녀 교육에 있어 어머니의 역할은 무엇보다 중요하다. 결혼이주여성들은 아이와의 원활한 소통과 양육을 위해 한국어를 제대로 배워야 한다. 하지만 대부분은 가정의 생계유지를 위해 일터로 나가기 때문에 교육을 받을만한 경제적.시간적 여유가 없다고 한다.
집에서 살림만 하는 경우라 해도, 남편이나 시부모가 이주여성의 외출과 교육받는 것을 반기지 않는다고 한다.
이에 한국디지털대학교가 운영하고 있는 ‘다문화가정 e-배움 캠페인(http://e-campaign.kdu.edu)’ 활용이 대안으로 떠오르고 있다. 컴퓨터 사용과 한국어 교육은 물론 외국인 아내를 둔 남편이 알아야 할 사항들(아내 나라의 문화 등)을 알려주는 프로그램이 마련돼 있다. 이재분 한국교육개발원 수석연구위원은 “자녀뿐 아니라 학부모가 함께 고려되는 지원 정책을 추진해야 다문화 가족 구성원 전체가 성장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전국에 다문화 거점학교 42곳 지정
정부는 다문화 가정에 대한 맞춤형 교육 지원을 위해 전국에 다문화 교육 거점학교(42곳)를 지정했다. 다문화 학생을 위한 한국어 및 기초학습 지도와 교대생 2,500명의 1대1 멘토링 등 다양한 사업들을 진행하고 있다.
하지만 눈에 띄는 성과는 내지 못하고 있다. 오히려 급조된 느낌의 엉성함으로, 탁상공론이란 비판까지 나오고 있다. 이는 관련 부처의 분산에 따른 결과다. 현재 다문화 관련 정책을 담당하고 있는 부처는 법무부를 비롯해 총 8곳에 달한다. 각 부처의 역할과 기능이 명확하지 않아 정책 효율성이 떨어진다는 지적이다.
이에 다문화사회 정착을 위한 법과 제도들이 하나 둘 만들어지고 있다. 하지만 지금 가장 시급한 것은 교육환경의 개선이란 것이 전문가들의 공통된 의견이다. 향후 다문화사회를 이끌고, 한국을 대변할 글로벌 인재의 역할은 다문화가정 2세들의 몫이기 때문이란 설명이다.#
김미희 기자 elikim@futurekore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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