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이는 사랑받기 위해, 어떤 이는 욕망을 충족시키기 위해, 어떤 이는 살기 위해 다이어트를 한다. 세대를 불문한 여성들의 관심사, ‘다이어트’에 관한 소설집이 출간됐다.
<여성 동아> 장편소설 공모에 당선된 9명의 여성 작가들이 각자의 색깔로 다이어트에 관한 얘기를 풀어낸다. SF에 칙릿, 실존주의에 이르기까지 이 시대의 ‘다이어트 홀릭(holic)’을 풀어내는 방식도 다양하다. 하지만 이 소설은 지루하지 않은 ‘경쾌함’으로 무언의 다이어트 압박에 시달리는 우리의 자화상을 넌지시 일깨워 준다.
권혜수 작가의 ‘나의 아름다운 로망’에는 164센티미터의 키에 체중 45킬로그램을 유지하기 위해 눈물겨운 다이어트를 하는 ‘재영’이라는 인물이 등장한다. 재영은 날씬한 몸을 통해 자신의 존재를 입증해 보이려는 인물이다.
“날씬한 몸을 통해 내가 꿈꾼 것이 또 하나 있다. 집안도 재능도 평범한 내가 그 평범을 수직으로 뛰어넘어 사람들의 시선을 받을 수 있는 길은 날씬하고 세련된 몸이었다.”
살을 빼기 위한 그녀의 몸부림은 처절하다. 초등학교 운동장을 쓰러질 정도로 돌고, 한 번에 삼백 배씩 절을 해서 생 땀을 흘린다. 어떤 옷을 업어도 폼이 날 때의 만족감은 그녀에게 인간 승리였다. 그러나 늘 음식 앞에서 긴장해야 하는 재영은 ‘꽃돼지’로 불렸던 어린 시절만큼 행복하지는 않다.
사랑을 얻기 위해 다이어트를 하는 모습도 처절하긴 마찬가지다. 이근미 작가의 ‘그녀의 수난시대’에 등장하는 서른다섯 노처녀 예원은 2주에 8킬로그램을 빼준다는 다이어트 약품 광고에 혹해 870만 원짜리 다이어트 프로그램을 덜컥 구매해 버린다. 그녀가 거금을 들여가며 이렇게 다이어트를 하려는 것은 마음에 두고 있는 여행작가의 관심을 끌기 위해서였다. 이 여행작가는 묻지도 않았는데 재혼을 안할 거라는 둥 바람처럼 살 거라는 둥 도통 예원을 이성으로 생각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는 예원에게 “남자 새끼들은 다 똑 같아, 살 빼”라는 명령을 할 뿐이다.
이성에게 호감을 주기 위해 살을 빼려는 노력은 여성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장정옥 작가의 ‘봄밤, 도킹’에 등장하는 삼촌은 다이어트를 위해 위절제술을 하기도 한다. 먹성 좋은 40대 노총각 삼촌이 이렇게 극단적인 방법을 선택한 데에는 그에게 사랑하는 여인이 생겼고, 그녀가 뚱뚱한 몸은 받아들일 수 없다는 말을 해왔기 때문이다.
소설 ‘다이어트 홀릭’이 주는 매력은 재미 있는 인물 설정뿐만 아니라 인물들이 다이어트 보다 중요한 것이 있다는 것을 깨달아 가는 과정에 있다. 이근미 작가의 ‘그녀의 수난시대’에 등장하는 예원은 함께 다이어트에 도전했던 친구 경신이 지나친 다이어트로 암에 걸려 수술을 하면서 자신의 다이어트 계획에 일대 전환기를 맞이한다. 병상에서 읊조리는 경신의 말은 다이어트에 대한 예원의 생각을 바꾸어 버린다.
“내가 원래대로 돌아간다면 다이어트 따윈 잊을 거야. 내 살에만 빠져 있는 동안 내 영혼은 얼마나 허전했을까.(중략) 아무 생각 없이 살았는데 인생이란 뭘까, 대체 나는 어디서 와서 왜 살며 어디로 가는 걸까. 앞으로 그 답을 찾아볼 생각이야.”
아픈 친구의 모습을 보고, ‘다이어트’에 대한 마음을 고쳐먹은 예원에게는 어느덧 사랑의 선물까지 찾아온다. 부담 없는 친구로 지내자는 여행작가 주현이 그녀에게 마음을 열기 시작한 것이다.
다이어트의 황제 샘물박사가 등장하는 한수경 작가의 ‘너를 접수한다, 오버!’, 허벅지에 생긴 셀룰라이트(지방 덩어리) 따위에 집착하지 말고 있는 모습 그대로 당당하게 살아가라는 내용을 담은 신현수 작가의 ‘오렌지 스킨 혹은 진흙 쿠기’ 등도 흥미진진하다. #
서은옥 기자 seo0709@futurekore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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