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근미의 트렌드 읽기] 위스키 소비에 불을 붙인 하이볼 트렌드
[이근미의 트렌드 읽기] 위스키 소비에 불을 붙인 하이볼 트렌드
  • 이근미  미래한국 편집위원·소설가
  • 승인 2024.01.11 17: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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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는 유난히 술에 관대하다. 담배 피우는 장면은 방송에서 금하고 있지만 술 마시는 장면은 여과 없이 방송되고 있다. 

한국을 알리는 외국인 유튜버나 ‘어서와 한국은 처음이지’ 프로그램에 출연한 외국인들이 “한국은 편의점에서 술을 살 수 있고, 길에서 술을 마실 수 있다”고 말할 때면 우리나라의 주류 규제가 느슨하다는 사실을 새삼 깨닫게 된다. 

홈술족, 혼술족

술 트렌드도 계속 변화하고 있다. 녹색병에 담긴 희석식 소주가 술의 대명사처럼 불렸으나 발효소주가 시장을 넓혀가고 있다. 수제맥주의 인기가 치솟았다가 한풀 꺾인 지 꽤 되었다. 요즘 가장 인기 있는 주류는 ‘아재 술’로 불리던 위스키이다. 위스키를 비주류 음료와 희석하는 하이볼 레시피가 인기의 한 원인이다. 

관세청 수출입무역통계에 따르면 올해 5월 기준 스카치·버번·라이 등 국내 위스키 수입량은 지난해 같은 기간(9065t)보다 56.3% 증가한 1만4169t으로 집계됐다. 이는 역대 최고치인 2003년의 1만1822t을 20년 만에 갈아치운 기록이다. 수입액 역시 역대 최고 수준이다. 올해 5월 기준 약 1392억 원 규모의 위스키가 수입돼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12.0% 증가했다. 이는 2008년 이후 최대 수입액이다. 

국내 위스키 시장은 주 5일제, 주 52시간제로 근무시간이 축소되고, 2016년 부정청탁금지법(김영란법)이 시행되면서 꾸준히 감소해 왔다. 

그랬던 위스키의 소비가 늘어난 이유가 뭘까. 우선 코로나 때 집에서 술을 먹는 홈술족과 혼자 술을 먹는 혼술족이 대거 늘어났다는 데 원인이 있다. 알코올 도수가 높은 위스키는 개봉 이후 장기간 보관이 가능하다는 이점이 있다. 그러면서 비싼 위스키에 ‘가성비 주류’라는 닉네임이 생겼다. 

코로나19를 계기로 주류 문화의 트렌드는 ‘다 같이, 많이’에서 ‘소수, 가볍게’로 바뀌었다. 그와 함께 위스키가 ‘비싸고 독한 술, 마니아용 술’이 아닌 오래 두고 조금씩 음미하는 술로 인식되면서 MZ세대의 관심을 끈 것이다. 

위스키 소비에 불을 붙인 것은 하이볼 트렌드이다. 하이볼 완제품도 나와 있지만 자신의 스타일대로 집에서 쉽고 다양하게 제조할 수 있는 레시피가 SNS를 통해 확산되면서 위스키 소비가 늘었다. 

하이볼은 ‘적은 양’의 술과 ‘많은 양’의 비주류 음료를 섞은 칵테일을 통틀어 가리키는 말인데 그 ‘적은 양’의 술로 위스키가 가장 적당하다는 게 애주가들의 평이다. 하이볼은 미국과 영국의 기차에서 제공하면서 시작됐다고 하는데 정작 유행에 불을 붙인 곳은 일본이다. 일본 주류회사 산토리가 위스키 판매의 부진을 극복하고자 하이볼 레시피를 소개했고, 그 레시피가 인기를 끌면서 위스키 판매를 견인했다고 한다. 

하이볼 인기는 취향대로 만들어 마시는 ‘믹솔로지(mixology)와 궤를 같이 한다. 믹솔로지란 섞다(Mix)와 기술(Technology)이 결합된 신조어로 자신의 취향에 맞게 직접 주류를 만들어 마시는 문화를 의미한다. 믹솔로지는 홈텐딩(홈+바텐딩), 즉 ‘집에서 즐기는 바텐딩’이 보편화 되면서 자연스럽게 트렌드가 되었다. 

믹솔로지에 가장 잘 맞는 주류가 위스키이고 덩달아 탄산수와 탄산음료, 빅볼 컵얼음 매출까지 증가했다. 혼술 인구의 증가, 고급주류의 접근성이 높아지면서 주류 트렌드가 ‘프리미엄화’한 것, 믹솔로지 트렌드, 이 세 가지가 합쳐지면서 위스키 소비가 늘어난 셈이다. 

FOMO 증후군과 펜트업

위스키와 하이볼의 인기가 높아지면서 업계에서 치열한 경쟁을 벌이고 있다. 위스키 시장 성장에 맞춰 편의점들이 인기·희귀 위스키를 ‘한정판매’하자 고가임에도 오픈런을 유발하며 불티나게 팔렸다. 

오픈런을 하는 심리는 요즘 세대가 성취감을 느낄 수 있는 일이 많지 않아 짧은 기간에 성과를 올릴 수 있는 일에 흥미를 느끼기 때문이라는 분석도 있다. 

또 하나 유행에 뒤처지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 오픈런을 불러온다고 한다. 최소 평균 정도에 속하고 싶은 마음이 작용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이를 ‘FOMO 증후군(fearing of missing out, 흐름을 놓치거나 소외되는 것에 불안해하는 증상)’이라고 하는데 이러한 심리는 유행과 타인의 행동에 민감할수록 더 증폭되는 경향을 보인다. 

어른들의 술로 여겼던 위스키가 젊은층들의 인기를 얻은 이유를 ‘펜트업(pent-up 보복 소비)’으로 풀이하기도 한다. 그동안 억눌렸던 소비 심리가 폭발적으로 분출하면서 소비자들이 프리미엄 제품에도 지갑을 활짝 열었다는 것이다. 

위스키의 호황을 바라보는 업계의 눈은 불안하다. 소주와 맥주로 대변되던 주류시장이 너무 빨리 바뀌고 있기 때문이다. 와인과 수제맥주의 열풍을 밀쳐두고 위스키 광풍을 주도하는 MZ세대의 마음이 언제 또 다른 곳으로 향할지 모를 일이다. 트렌드 세터 MZ세대가 주도하는 주류시장을 예측하기가 쉽지 않지만 위스키와 하이볼의 인기는 당분간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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