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경제발전과정을 “정부 주도에 의한 고도성장”으로 표현하는 이들이 많다. 대체로 맞는 말이라고 할 수 있지만, 정부 주도라는 말의 의미를 좀 더 명확하게 할 필요가 있다. 북한 같은 사회주의 체제에서는 정부가 모든 경제활동을 지시하지만, 정부 주도라고 표현하지 않는다.
정부의 역할이 제한적인 시장경제체제에서 정부가 정상적인 경우보다 상대적으로 더 많은 역할을 했다는 의미로 정부 주도라는 표현을 사용하는 것이다.
흔히 개발연대라고 부르는 고도성장기의 초반부에 이 용어가 좀 더 잘 어울린다. 권위주의적인 정부가 강한 통제력을 가지고 경제활동에 여러 가지로 개입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개발연대 초기의 정부개입이 모두 반(反, anti)시장적인 성격의 것이었다고 단정해서는 안 된다.
1960년대 전반기의 중요한 몇 가지 정부 개혁은 친시장적이었기 때문이다. 예를 들면, 1960년대 전반의 환율현실화조치는 수출이라는 활로를 열어준 중요한 계기가 되었다. 그 이전에는 원조의 가치를 높이기 위해 인위적으로 원화 가치를 높이는 정책을 사용했다.
그 경우 한국 제품의 가격이 높아져 수출이 매우 어렵다. 그러나 박정희 정부의 환율 현실화 정책은 수출을 가능하게 만들었다. 1965년의 금리현실화조치도 제도권 금융시장이 제 역할을 할 수 있는 계기를 만들어 줬다. 사실 이러한 조치들은 정부의 잘못된 개입을 바로잡는 조치들이었으므로 개입이라기보다는 개입의 철회라고 할 수도 있다.
중화학 공업화가 본격적으로 추진되었던 1970년대는 정부개입이 더 강화되었던 기간이었다. 은행을 국유화하고 금리를 정부가 통제하면서 저금리정책을 사용했으며, 중화학 공업부문에 자본이 투입되도록 여러 가지 유인과 지원을 제공했다.
그뿐 아니라, 보다 직접적으로 정치적 또는 행정적 압력도 행사하는 등 반시장적인 형태의 자원 배분이 빈번하게 이뤄졌다. 이것은 정부가 미래의 산업구조를 결정하는 행동이었다. 지금 와서 결과적으로 잘된 일이라고 평가할 수 있지만, 미래의 바람직한 산업구조가 어떤 것인가를 판단하는 일을 시장보다 정부가 더 잘한다는 보장은 있을 수 없다.
1980년대 들어와 전두환 정부는 정치적으로 더욱더 권위주의적인 형태를 유지했지만, 경제 운용은 시장원리를 회복하는 쪽으로 크게 방향을 선회했다. 무엇보다 금리 자율화를 통해 금융시장의 정상화를 추진했고, 인위적인 자원 배분의 메커니즘을 해체하는 데 힘썼다.
그리고 상품시장의 개방화도 과감히 추진했다. 특히 이 기간에 과감한 안정화 정책을 통해 만성적 인플레이션에서 벗어나게 된 것은 이 정권의 중요한 업적으로 인정할 만하다.
정부 주도에 의한 고도성장? 한국 정부의 역할에 대한 평가
경제발전과정에서 우리나라 정부가 담당해온 역할을 긍정적으로 평가할 수 있을까? 그렇다. 무엇보다 비슷하거나 우리보다 유리한 상황에서 같이 출발했던 다른 후진국 중에서 우리나라만큼 성공적으로 발전한 사례들을 찾아볼 수 없다는 사실이 이 대답을 강력하게 뒷받침한다.
그러면 그렇게 성공할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일까? 여러 가지를 열거할 수 있겠지만 리더십의 헌신과 정직, 청렴, 뛰어난 판단력 등을 들 수 있을 것이다.
미국식 민주주의의 도입을 관철하고 뛰어난 외교로 6·25남침을 극복하고 어려운 상황 속에서도 의무교육제도를 과감하게 도입했던 이승만 대통령과 새마을운동, 산림녹화, 산업화와 경제자립을 성공적으로 이끌었던 박정희 대통령은 하나님께서 우리나라에 보내주신 귀한 선물이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이 지도자들은 한국 교회의 강력한 기도 지원을 받았다.
문민정부 이후 1990년대 후반의 외환위기를 계기로 우리 경제는 개방화되었고 이에 따라 정부의 역할도 현저히 선진화되었다. 금리나 환율 등 중요한 거시변수들에 대한 정부의 개입도 거의 없어졌다.
한편 소득수준의 향상과 함께 저소득층의 생계를 지원하는 공공부조 제도와 사회보장체제의 중심이라고 할 수 있는 사회보험(연금보험, 건강보험, 고용보험 그리고 산재보험 등) 제도가 도입 또는 정착되었다. 환경정책, 차별금지정책 등 선진국형 정책의 비중도 높아졌다. 이것은 매우 자연스럽고 또 지속적인 발전을 위해 바람직한 변화라고 볼 수 있다.
더 크면서도 눈에 잘 띄지 않는 피해를 주는 것은 잘못된 정책 혹은 제도의 도입이다. 경제사회 관련 정책의 대다수는 가격 규제나 진입 규제 등 규제로 이뤄져 있다. 물론 모두 명분이나 취지는 훌륭하다. 경제 규제는 대부분 특정한 집단을 보호하기 위한 것이다.
그런데 보호는 예외 없이 비효율을 가져오고 그 비효율의 비용은 국민 일반에게 전가된다. 그것도 대체로 보호받는 집단보다도 더 취약한 계층에게 무겁게 전가되어 집단 간 갈등이 해소되기는 커녕 오히려 증폭되는 경우도 있다. 뒷거래의 유인도 제공할 수 있다.
한국의 경제 발전은 특정 집단을 보호해서가 아니라 오히려 꾸준히 보호막을 제거하고 개방화를 통해서 이뤄진 것임을 기억해야 할 것이다.
경제가 이만큼 자랐으면 그에 걸맞게 국회, 행정부, 사법부 그리고 지방자치단체의 모든 조직이 더 성숙해져야 한다. 정직하고 공평할 뿐 아니라 전문성을 가지고 있어야 하고, 의사결정을 위한 정보들이 잘 축적되고 효율적으로 활용될 수 있어야 한다.
비리나 정실(情實)이 개입되기 어렵게 하는 장치들이 설치되고 효과적으로 운용되어야 한다. 무엇보다 최고위 지도자들에게는 바르게 판단하고, 긴급한 상황에서 긴급하게 결단을 내릴 수 있는 지혜와 용기가 있어야 한다.
정말 이런 정부를 바랄 수 있을까? 앞에서 잠시 언급했던 것처럼 우리가 매우 특별한 발전의 역사를 가질 수 있었던 것은 완전하지는 않아도 다른 후진국들에 없었던 뛰어난 리더십과 정부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러한 리더십이 개인의 은사나 능력일 수 있지만 기도의 뒷받침이 없었다면 성공하는 것이 불가능했다고 믿는다. 우리 경제 발전의 역사에서 ‘행운’이라고 할 수 있는 사건들이 연속되었는데 그것들도 하나님의 선하신 손에 의한 것이었다고 본다.
그러므로 지나간 지도자들을 그리워하며 지금의 지도자들을 비판하기 전에 모든 지도자를 위해서 기도해야 한다. 정직하고 공평하며 능력 있고 치우침이 없는 지혜로운 일꾼들이 되게 해 달라고, 무엇보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종들이 되게 해 달라고 기도해야 한다.
“ … 모든 사람을 위하여 간구와 기도와 도고와 감사를 하되 임금들과 높은 지위에 있는 모든 사람을 위하여 하라. 이는 우리가 모든 경건과 단정함으로 고요하고 평안한 생활을 하려 함이라(딤전 2: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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