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칠의 당부 “미국과 절대 헤어지지 마세요”
처칠의 당부 “미국과 절대 헤어지지 마세요”
  • 고성혁 군사전문저널리스트
  • 승인 2017.11.09 17: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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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틀러의 나치 독일을 무너트린 처칠 영국 총리는 1955년 정계 은퇴를 앞두고 마지막 각료회담을 앞두고 있었다. 대영제국을 살린 노(老) 정치인 처칠은 영국을 위해  동료들에게 마지막 조언을 했다. “『결코 미국인과 헤어지지 마세요.(Never be separated from the Americans!)” 그의 말은 조언이라기보다는 신신당부에 가까웠다.

2016년 한미공군 연합훈련 MAX-THUNDER 훈련에서 결의를 다지는 미7공군사령관 오샤너시 중장과 공군작전사령관 이왕근 중장

처칠 총리는 위대한 정치가이자 대단한 문장가였다. 2차 세계대전 후 처칠은 회고록을 집필했다. 1953년 노벨상위원회는   <처칠 회고록>을 노벨문학상에 선정했다. <처칠 회고록>에는 전쟁 기간 중에 쓴 편지가 상당 부분 차지한다.

처칠은 루스벨트, 아이젠하워, 몽고메리 장군 등 많은 전쟁 지도자에게 편지를 보냈다. 그 중 가장 많은 편지는 바로 루스벨트 미국 대통령에게 쓴 편지였다. 무려 1000여 통에 달했다. 미국을 영국 편에 서게 하려는 처칠의 애절한 구애와 구원의 편지였다.

처칠의  ‘신신당부’는 현재도 영국 정치인에게 그대로 이어지고 있다. 2017년 1월 26일 메이 영국 총리는  필라델피아에서 열린 미 공화당 연찬회 연설에서 “우리 두 나라는 (세계를) 이끌어갈 공동 책임을 갖고 있다.

우리가 물러서면 양국은 물론, 세계에 문제가 발생한다”면서 “미·영 두 나라의 협력을 통해 중국을 비롯한 아시아 패권의 부상과 이슬람 극단주의자들의 테러, 그리고 러시아의 위협 등에 크게 맞서야 한다”고 강조했다.

메이 총리는 영국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나는 미국 대통령에게 솔직하게 말하는 것이 두렵지 않다. 미국과 영국은 특수관계(special relationship)이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특수관계(special relationship)’라는 표현은 처칠 총리가 1946년 미국을 방문했을 때 소련의 ‘철의 장막’을 언급하면서 미·영 관계는 특수한 관계라고 말한 것을 인용했다.

그러나 대한민국 문재인 정부는 어떡하든 미국과 헤어지려고 안달이 난 듯하다.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 9월 28일 평택 2함대에서 개최된 건군 69주년 국군의 날 기념사에서 ‘우리 군이 북한 전력을 압도하고 있다’는 전제 아래 “우리가 전시작전권을 가져야 북한이 우리를 더 두려워하고 국민은 군을 더 신뢰하게 될 것”이라고 말하면서 전작권 조기 전환 방침을 밝혔다.

그런데 11월 1일 국회 시정연설에서는 “우리가 이루려는 건 한반도 평화다. 따라서 어떠한 경우에도 한반도에서 무력충돌은 안 된다. 한반도에서 우리의 사전 동의 없는 군사적 행동은 있을 수 없다”고 천명했다. 그 어떠한 전쟁도 안 된다면서 전시작전권은 왜 그토록 갈망하는지 아이러니하기까지 하다.

이 말을 들은 평양에서는 어떤 반응을 보였을까? ‘주한미군 내보내고 전작권 빨리 가져 오라우’하면서 박장대소 하지 않았을까?  6·25 전쟁 이후 북한은 끊임없이 ‘주한미군 철수’를 외쳤다. 미군이 두렵기 때문이다. 전시작전권 없는 주한미군은 사실 존재할 수 없다. 타군의 지휘를 받지 않는다는 것은 미군의 전통이다.

1차 세계대전 당시 영국군 편재 배속을 거부했던 미국 유럽 원정군 사령관 퍼싱 장군의 원칙이 지금까지 이어져 오고 있다. 참고로 미군은 퍼싱 장군을 기려서 6·25 때 북한 T-34 탱크 킬러로 투입한 탱크 이름이 M-26 퍼싱전차였다. 콧대 높은 영국이라 하더라도 도움을 받는 입장에서 미국의 원칙을 무시할 수 없었다.

영국이 2차 세계대전 당시 연합군 사령관에 아이젠하워 장군을 임명한 것도 같은 이유 때문이다. 현재 나토사령관 역시 미군 장성이다. 이것은 자존심 문제가 아니다. 전략자산을 운영하는 쪽에서 지휘권을 행사하는 것은 어찌 보면 현실적으로 타당하기 때문이다.

이런 내용을 문 대통령이 모를 리 없을 것이다. 만약 알면서도 그리 하는 것이라면 그것은 ‘미국과 빨리 헤어지기 위한 모략’이라고 해석할 수밖에 없다. 사실 임종석 대통령 비서실장의 경우 과거 주한미군 철수를 주장하던 운동권의 핵심 인물 아니던가?

국방부 역시 문재인 정부의 국방정책의 핵심을 거스를 수 없었던 모양이다. 국방부는 문 대통령 취임 직후인 5월 25일 전시작전통제권(전작권) 전환 시기를 2020년대 초반으로 앞당기는 방안을 추진하겠다고 국정기획자문위원회에 보고했다.

국방부는 “한·미 간 합의된 전작권 전환의 조건과 상황을 재검토해 전작권 전환이 문재인 대통령의 임기(2022년) 내 추진되도록 하겠다”는 보고를 문재인 정부 출범 직후 보고했다.

전시작전권은 한미연합사의 핵심 키워드이다. 한미연합사 하에서는 전시작전권이 누구에게 있느냐는 사실상 무의미하다. 한 몸으로 결합된 한미연합사의 군사적 결정은 한·미 양국이 공동 행사하기 때문이다. 그 결과는 지난 2015년 북한 목함지뢰 도발당시 여실히 증명되었다

한미 연합군 체제하에서의 실제 상황

2015년 8월 북한의 목함지뢰 도발 당시 오산의 공군작전사령부내 지휘소(KOREA AIR OPERATION CENTER)는 전쟁 그 자체였다. 여러 개의 대형 스크린에는 한반도 상공 항공기의 항적이 실시간 표시된다.

북한 상공의 상태도 한 눈에 볼 수 있다. 8월 21일 북한은 익일 오후 5시까지 대북선전방송을 중단하지 않는다면 선전포고로 간주하겠다고 일방적으로 발표했다. 북한의 동태를 예의 주시하고 있던 오산 작전사령부내 스크린이 붉게 변했다.

북한의 공중 침투를 경고하는 것이었다. 스크린에 표시된 항적은 북한이 날려 보낸 무인기였다. 즉각 무인기 대응팀을 가동시켰다. 무인기를 잡기 위해 아군 항공기는 위험선을 넘나들어야 하는 숨 가쁜 시간을 보냈다.

북한이 예고한 시간에 맞춰 즉각적인 응징을 하기 위해 공군 각 전투비행단은 전투기를 발진시켰다. 각 전투기는 유사시 주요 목표물을 타격할 미션이 부여되어 있었다. 당시 오샤너시 미7공군 사령관은 미 태평양 사령부에 요청해 B52 폭격기를 대기시켰다.

당시 한반도로 발진한 B-52 폭격기는 제주도 남방까지 올라왔다가 사태가 종결됨에 따라 되돌아갔다. 뿐만 아니라 미7공군은 전쟁 발발시 북한의 레이더망과 무선망을 마비시킬 전자전기도 한반도 상공에 띄웠다.

한·미 연합군의 응전 태세에 놀란 북한은 전방 군단의 방열된 야포조차 다시 갱도 안으로 집어넣었다. 당시 상황은 일반에 알려진 것보다 훨씬 수위가 높았다고 공군 관계자는 전했다.

북한 지휘부는 전방 일선 부대에 “명령 없이 움직이지 말라, 선보고 후조치하라”는 지시를 하달했다. 최근 미 공군 단독작전으로  B1-B 전략폭격기가 NLL 너머 깊숙이 들어갔을 때 북한은 숨죽였다.

뒤 늦은 북한 지휘부의 명령은 ‘선보고 후조치’였다. 북한 도발시 우리가 일선 지휘관에 ‘선조치 후보고’하라고 하는 것과는 정반대다.

전시작전권을 미군사령관이 행사한다고 해도 전시 작전은 한·미간 ‘50 대 50’으로 구성된 양국군 참모가 제반 사항을 협의해 처리한다.

지난 목함지뢰 사태 대응 역시 한·미 지휘관의 협의 하에 작전을 했다. 전쟁시라고 해도 한·미 양국 합참의장, 국방장관, 대통령의 공통 지휘를 받는다.

2017년 10월 1일 동지나해상에서 연합훈련하는 미 해군 로널드 레이건 항모와 일본 해상 자위대 함정. 한국과의 군사적 동맹이 약화될수록 미일동맹은 강화되고 있다.

실패할 것이 뻔한 미래연합군사령부

박근혜 정부는 전작권 전환 재연기를 미국과 조율하면서 전환 시기를 구체적 날짜로 못 박지 않았다. 대신  ‘한국이 행사할 조건이 될 때’라는 말로 사실상 무기한 연기시켰다. 그와 동시에 전작권 전환이 되면 한미연합사를 대체하기 위해 ‘미래사령부’를 구상했다.

미래사령부가 현재의 한미연합사령부와 다른 점은 미군이 한국군 지휘를 받게 되는 구조다. 문재인 정부는 전작권 전환을 조기에 마무리 짓기 위해 ‘미래연합군사령부’ 창설을 서둘렀다. 여기에는 미국의 동의가 있어야 한다.

지난 28일 서울에서 열린 49차 한·미 연례 안보협의회(SCM)에서 송영무 국방장관과 제임스 매티스 미 국방장관이 참석한 가운데 미래연합군사령부 창설안을 합의할 것인지는 초미의 관심사였다. 그러나 이번 SCM에 미래연합군사령부 창설안을 보고했지만 승인되지 않았다고 국방부 관계자는 밝혔다.

미군이 타군의 지휘를 받는 것을 미국이 승인하리라는 것을 기대한 것 자체가 난센스다. 국방부 관계자는 “한국군이 사령관, 미군이 부사령관을 맡는 미래연합군사령부 지휘 체계에 대해 한·미 간 이견은 없다”고 말하지만 그것은 미국의 립서비스일 뿐이다. 내년에 다시 상정할 것이라고 하지만 결과는 뻔하다.

한국군 지휘로는 미군 전략자산 운용 불가능

한미연합사체제 하에서는 미군의 전략자산을 필요시 즉각적으로 운용가능하다. 그러나 전작권이 분리된다면 미군 전략자산 운용에 제한이 걸린다. 미7공군과 한국 공군은 지휘계통이 하나로 묶여 있다.

유사시 미7공군 사령관과 한국공군작전사령관은 협의해 작전을 명령하고 수행한다. 물론 이 과정에서 양국의 군통수권자의 지휘를 받는다. 그러나 작전권이 분리된다면 사소한 것 하나하나 매우 복잡한 과정을 거쳐야 한다.  필요시 즉각적인 미군 전략자산 투입은 거의 불가능하다.

미군은 타군의 지휘를 받지 않기 때문이다. 매우 복잡한 절차와 승인을 얻어야만, 겨우 미군의 전략자산을 이용할 수 있을 것이다. 대한민국 해군참모총장이 부른다고 해서 미 해군 항모전단이 오지 않는다. 왜냐 하면 지휘체계가 다르기 때문이다. 결국 전작권이 없는 미군은 한반도 안보 책임에서 뒤로 물러서게 된다.  주한미군 철수와 다르지 않는 결과가 된다.

사실 문 대통령도 북한의 도발이 잇따르자 결국 미군의 전략자산 한반도 전개를 강력히 요청했다. 시시 때때로 미 공군의 B1-B 전략폭격기가 한반도 상공에 나타나는 것도 그 때문이다. 미우나 고우나 한국이 기댈 곳은 미국이다. 미국이 행사하는 전시작전권은 우리에게 있어서는 미군의 전략자산 사용권이나 마찬가지다.

주한미군은 6·25 직후 32만 5000여 명에 달했다. 주한미군은 휴전 이후 단계적으로 철수해 1960년대엔 6만여 명 수준을 유지했다. 카터 행정부 당시 철수론이 대두되었지만 레이건 행정부 시절엔 3만 8000여 명의 주한미군이 주둔했다.

그러다가 노무현 전 대통령은 럼스펠트 미 국방장관과 불협화음을 일으켰다. 럼스펠트 미 국방장관은 이라크와 아프간 전쟁을 빌미로 2005년 1만 2000여 명의 주한미군을 철수시켰다. 이 때  주한미군 72기갑연대가 해체되면서 주한미군 M1A1 에이브럼 탱크는 140대에서 55대로 줄어들었다.

계속 축소되는 주한 美 지상군 전력

2015년에는 미 정부의 예산자동삭감 정책으로 인해 미 육군의 전투여단이 강제 해체되는 상황에서 주한 미 2사단 1전투여단도 해체되고 말았다. 강철여단이라고 불리던 주한 미 2사단 1전투여단은 지상군의 핵심이었다.

현재 한국에 주둔하고 있는 주한미군 기갑부대는 없다. 한강 이북에 붙박이로 유일하게 남아 있는 미 지상군 부대는 230화력여단이 유일하다.

MLRS를 운용하는 주한미군 230화력여단은 한국군 5포병여단과 함께 북한에 대한 화력전을 수행하는 핵심전력이다. 이미 미국은 한반도에서 해·공군 중심으로 전력을 재편한 상태라고 봐도 과언이 아니다.

지난 28일 유엔에서는 북한 핵·탄도미사일 프로그램을 포함한 모든 핵무기를 비난하는 유엔 군축위 결의 ‘L35호’가 찬성 144표, 반대 4표, 기권 27표로 채택되었다. 그러나  문재인 정부는 북한·러시아·중국 등과 함께 이 결의안에 기권했다.

또한 중국의 사드 보복에 대해서는 한마디도 못하고 중국과의 관계 정상화를 발표하면서 마치 중국 품안에 달려가는 듯한 모습을 보여줬다. 그러나  미국의 동맹국들은 중국 포위 전략의 일환으로 동남아 해상에서 연합훈련을 더 강화하고 있다.

이를 증명이라도 하듯 27일자 홍콩차이나모닝 포스트 지는 백악관 아시아담당 선임보좌관을 지낸 데니스 와일더 조지워싱턴대 교수와의 인터뷰를 보도했다.

데니스 와일드 교수는 “미국의 새 아시아 정책의 캐치프레이즈는 ‘자유롭고 열린 인도-태평양 지역’”이라고 하면서 이 구상은 미국·일본·호주·인도 4개국 사이에서 오랜 기간 논의돼 왔다고 말했다. 한국에 대한 언급은 없다.

미국, 일본, 호주, 베트남은 연례적으로 연합훈련인 PACIFIC-PARTNERSHIP 훈련을 하고 있다. 지난 5월에는 프랑스가 주도해 일본 남방 해상에서 미국, 영국, 프랑스, 일본 연합훈련인 ‘쟌다르크 훈련’을 실시했다.

‘항행의 자유’를 위한 연합작전 능력의 향상이라는 것을 적시함으로써 훈련의 목적이 남중국해에서의 중국을 견제하기 위함을 분명히 했다.

이 훈련의 이면에는 한미 연합사의 역할 축소에 대비해서 과거 한국전에 참전했던 미국의 동맹국들의 역할 분담 목적이 숨어 있다고 해석하는 전문가 견해도 있다.

이들 4개 국가가 태평양해역에서 대규모 군사훈련을 연합으로 실시하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물론 한국은 빠졌다.  군사적 코리아 패싱의 한 단면이다.

영화 <남한산성>을 통해 본 대한민국의 미래

영화 <남한산성>을 보면 속이 미어 터진다. 마치 오늘의 현실을 보는 듯해서 그렇다. 임진왜란이 끝난 지 불과 38년만이다. 그것도 속수무책 당했다.

임진왜란 때와는 달랐다. 조선을 도와 줄 명나라 지원군도, 왜군에 맞써 싸웠던 의병도 병자호란 때는 없었다. 지금의 경기도 광주인 쌍령전투에서 전국 각지에서 모인 오합지졸 4만 조선 병력은 불과 300의 청나라 기병에 대패했다. 나라를 지킬 힘도, 또 동맹도 없었던 인조의 조선은 그렇게 항복했다.

병자호란 때는 그 많던 의병장들이 왜 씨가 말랐을까? 그것은 인조반정으로 정권을 잡은 서인세력이 정적(政敵)인 북인세력을 몰살시켰기 때문이다. 마치 지금의 적폐청산처럼 말이다.

북인세력은 임진왜란 당시 광해군을 도와 의병활동을 이끌었다. 홍의장군 곽재우, 북인세력의 영수 정인홍, 고경명 등은 모두 남명 조식 선생의 제자들이었다. 그러나 인조반정은 조선의 정치사를 완전히 바꿨다. 영화 남한산성은 인조의 조선이 아니라 현재의 우리 자신의 모습일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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