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북기자 칼럼]
▲ 8.18 해방 72주년을 맞아 북한 군인들과 각 계층 근로자, 청소년 등이 북한 평양 만수대 언덕에 있는 김일성·김정일 부자 동상을 참배했다고 조선중앙통신이 15일 보도했다. / 연합 |
“수령님(김일성)께서는 14살 어리신 나이에 조국광복의 뜻을 품으시고 (중략) 영웅적 항일무장투쟁을 조직전개하시여 일제를 타승하시고 조국광복위업을 빛나게 성취하시였습니다.” 지난 8월 15일 북한 대남선전매체 우리민족끼리(이하 우민끼)에 게시된 김정일의 생전 ‘어록’이다.
북한에서 ‘8·15 광복’은 전적으로 김일성의 위대한 항일 빨치산 투쟁의 결과이다.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께서 항일의 혈전만리를 헤쳐 강도 일제를 쳐부시고 조국을 해방시켜주신 력사적인 주체34(1945)년 8월 15일이 있어 우리 인민의 존엄이 하늘끝에 닿은 것”이라는 것이다. 이는 8월 16일 북한 노동신문이 보도한 8·15 관련 논평 내용이다.
8·15 광복절을 맞아 북한 조선중앙방송은 ‘식민지민족해방투쟁의 새 시대를 안아오신 전설적 영웅’이라는 제목의 영상 사설에서 “지금으로부터 72년 전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의 탁월한 령도 밑에 간고한 항일대전에서 빛나는 승리를 이룩하고 우리 인민은 조국해방의 날을 맞이하였다”고 보도했다.
북한은 또한 조선중앙텔레비전으로 방영된 기록영화(역사다큐멘터리) <조국광복을 위하여>를 통해, 김일성이 1940년 봄부터 ‘항일혁명의 최후승리와 조국광복을 위한 조선인민혁명군 소부대 작전을 진두지휘’했으며, 김일성이 조직한 조선인민혁명군 소부대(빨치산 게릴라)들은 한반도의 최남단인 부산은 물론 일본 본토까지 진격했다고 주장했다.
다큐는 1941년 봄 김일성이 독일의 소련 침공을 미리 예상했고, 그해 여름 연해주의 하바로프스크에서 소·중·조 국제연합군 창설을 제안하여 소련군 장성들로부터 전폭적인 지지를 받았다고 주장했다. 또 김일성 주도로 1942년 7월에 국제연합군이 편성되었는데, 이는 추후 일제 패망과 2차 세계대전 승리에 결정적 역할을 했다고 설명한다.
김일성은 회고록 <세기와 더불어>에서 1945년 8월 9일 소련군이 대일전쟁에 참전하기 전 이미 자신의 명령 하에 있는 조선인민혁명군 소부대 및 인민무장대가 한반도의 모든 지역에서 일본 관동군과 교전하여 무장해제를 시켰고, 이미 해방된 지역들을 진주하는 소련군에게 인계했다고 주장한다.
김일성의 8·15 광복 역사조작, 문 대통령의 역사왜곡
다음은 김일성 회고록 <세기와 더불어> 제8권 ‘-7-최후 결전의 날’에서 주장한 김일성의 발언 전문이다.
“인민무장대는 전국도처에서 각이한 명칭을 가지고 일제를 격멸하는 전투에 참가하였습니다. 각 도의 거의 모든 지역들에서 인민무장대가 활동하였습니다. 청진, 길주, 성진 지구의 무장부대들은 적 패잔병들을 소탕하고 8·15 해방 전에 벌써 무장으로 공장들을 장악, 경찰기관들을 기습 소탕하였습니다.
강원도의 철원, 법동 지구와 평안북도의 염주, 삭주 지구항쟁조직들도 잘 싸웠습니다. 신의주지구의 항쟁조직들은 (김일성의)총공격 명령이 내려진 다음날부터 경찰관파출소와 국경경비초소들을 들부시고 도경찰부와 도청을 점거, 비행장에 박혀있는 패잔병들을 무장해제하여 8월 하순에 진주해온 쏘련군 사령부에 넘겨주었습니다.
평안남도와 평양 지구에서는 조국해방단을 중심으로 무어진 큰 항쟁대오가 병기창을 습격하고 도청과 부청을 점거, 적 패잔무력을 제압하였습니다. 황해도의 항쟁조직들도 일제가 항복하기 전에 여러 지역의 적들을 습격 제압하였습니다…”
1990년대 초 북한은 8·15 당시 김일성의 지휘 하에 있는 국내 무장조직들의 영웅적인 대일전투 스토리를 담은 <하루를 앞두고>라는 제목의 영화를 제작하기도 했다.
북한의 ‘8·15 광복’에 대한 역사적 정의에는 태평양 전쟁과 히로시마 나가사키에 투하된 원자탄 두 발에 대한 언급이 없다. 만주 지역에서 활약했던 중국공산당 휘하 동북항일연군의 항일전 역사도, 소련군의 대일참전까지도 대부분 김일성의 업적으로 대체되었다.
김일성이 대위로 있던 소련군 소속 국제88여단 공수부대는 김일성이 창조적으로 만든 부대로 묘사되었고, 한반도 북쪽에 진주한 당시 소련군 참전자들의 증언, 진술조차 왜곡해 버렸다.
김일성은 8·15 광복에 대해, 일본의 무조건 항복 이전에 이미 한반도 곳곳에서 활약 중이던 자신의 부대에 의해 일본군이 전부 무장해제 되어 소련군은 총 한방 쏘지 않고 한반도의 북반부를 집어 삼킨 것으로 공식화했다.
기자 역시 탈북하기 전까지는 이 같은 북한의 주장을 모두 사실로 알고 있었다. 즉, 2000만 북한 주민도 마찬가지로 8·15 광복의 역사를 그렇게 인식하고 있다는 것이다.
8월 15일 광화문 세종문화회관에서 열린 ‘광복절 경축식’에서 문재인 대통령의 경축사가 있었다. 문 대통령은 경축식 참석에 앞서 서울 용산 효창공원에 있는 김구 선생의 묘역을 참배했다.
8·15 광복절에 항일독립운동의 의미를 부여할 뜻을 보여준 것으로 해석된다. 문 대통령은 경축사에서 2년 후인 오는 2019년을 “대한민국 건국과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을 맞는 해”라고 규정했다.
영토, 국민, 주권을 갖춘 대한민국이라는 국가가 건립된 1948년 8월 15일은 ‘정부수립일’일 뿐 ‘건국절’이 아니라는 점을 확실하게 못 박은 것이다.
문 대통령은 1917년 중국 상해에서 14명의 독립운동가들이 발표한 ‘대동단결 선언’의 의미를 1948년 8월 15일의 대한민국 건국이념 위에 놓고 “광복은 항일의병에서 광복군까지 애국선열들의 희생과 헌신이 흘린 피의 대가”라고 주장했다.
외세의 도움 없이 우리 선조들 스스로의 힘으로 독립을 성취했다는 취지로 풀이된다. 하지만 문 대통령이 말한 ‘항일의병과 광복군’의 범주에 김일성이 주장하는 ‘항일빨치산’까지 포함되는지 기자는 의문이 들지 않을 수 없다.
문 대통령의 ‘8·15 광복’에 대한 인식은 미·소 양국의 막강한 무력행사 가운데 일본의 무조건적인 항복을 이끌어 낸 미국의 핵공격에 대한 설명이 전혀 없다는 점에서 북한의 ‘역사조작’ 8·15 광복과 차이가 없어 보인다.
북한이 일제 패망으로 인한 ‘광복’을 ‘김일성의 항일빨치산 투쟁 결과물’이라고 주장했다면, 남한은 1930년대 이전에 만주에서 궤멸한 조선독립군과 영토도 주권도 국민도 없는 소수의 해외망명정치집단에 불과했던 중국 상해임정이 한반도 독립을 가져온 결정적 원인이라고 본다는 점에서 그렇다.
남과 북 모두 역사의 진실에는 별 관심이 없어 보인다. 미국을 비롯한 강대국들의 군사적 영향이 없었다면, 우리 스스로 일본으로부터 독립할 수 있었을까 하는 점에서다.
남북 모두 역사에 대한 불편한 진실을 외면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남북 모두 외세의 힘과 작용으로 독립이 주어졌다는, 우리 힘으로 독립을 쟁취하지 못했다는 엄연한 역사에 대한 열등의식을 극단적 반일감정으로 위로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씁쓸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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