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st of the Be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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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미래한국
  • 승인 2017.05.18 10: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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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인제 국회의원
제가 김상철 변호사님을 만난 것은 대학교에서입니다. 서울대 법대 2년 선배이시고, 나이는 1년 많았습니다. 판사로서도 선배이십니다. 감히 그분에 대한 평가를 하자면 우선 대단한 수재였습니다. 똑똑하다는 말이 너무 통속적일지 모르지만 다른 적절한 말이 없을 정도로 뛰어나신 분이었습니다. 서울대 법대는 웬만한 선후배 동료들이 어린 시절부터 주변에서 똑똑하다는 소리를 듣고 자란 사람들인데 김 선배님은 그 중에서도 탁월했습니다. 전공과목은 물론이고 사회 전반에 관심이 많았는데 어느 한 분야도 깊이가 떨어지는 대목이 없었습니다. 토론에서도 지는 법이 없었습니다. 학과 성적은 차석으로 들어와서 수석으로 졸업했습니다.
 
제가 68학번인데 그때는 학생운동이 굉장했었습니다. 게다가 당시 서울대 법대가 학생운동의 중심이었는데 김 선배님은 현실문제에도 적극적으로 나서서 발언하고 행동하던 선배였습니다. 공부도 잘했지만 그런 사회 의식적인 면에서도 중심이었던 거죠. 당시 서울대 법대에는 사회법학회와 농촌법학회라는 이념 서클이 있었는데 전 사회법학회에서 활동했고 김 선배님은 농촌법학회의 중심 회원이었습니다. 최기선 의원이나 최규성 의원들과 함께 했을 겁니다. 듣기로는 거기서도 대단히 정열적으로 하셨다고 합니다.
 
그 후에 변호사 활동하실 때도 가끔 뵀는데 굉장히 열정을 가지고 인생을 사신 분입니다. 김 선배님과 ‘대한민국이 어떤 나라가 돼야 하느냐’, ‘대한민국이 추구하는 이상적인 길이 어떤 것이냐’에 대해 뜨겁게 토론했던 기억이 납니다.
 
자주 뵙지는 못 했는데 병마 때문에 일찍 운명하셔서 안타깝기 그지없습니다. 특히 김영삼 대통령이 당선되자마자 저를 노동부 장관으로 임명하시고 동시에 김 선배님을 서울시장으로 임명하셔서 짧지만 함께 정부 일을 한 시기도 있었습니다. 당시 언론에서 자택 문제로 트집을 잡고 여론의 분위기가 나빠져서 사임할 수밖에 없었던 것은 지금 생각해도 안타깝습니다. 나중에 아마 사소한 문제로 드러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러고 나서 중국 베이징에서 김 선배님의 저서인 <7일간의 서울시장> 중국어판을 발간하는 자리에서 만난 적도 있었습니다. 여전히 밝은 생각을 갖고 계시고 더 정력적으로 활동하고 계셨습니다.
 
돌이켜보면 김 선배님은 항상 원칙을 지키려고 하시는 분이었습니다. 그런 분과 정부나 정치 현장에서 함께 일하면서 많은 인연과 추억을 쌓았으면 좋았을 텐데 그렇게 하지를 못해서 아쉬운 마음입니다. 그리고 그런 기회가 더 이상 없다는 것도 가슴 아픕니다. 제가 이런 말 잘 안 하는데, 김 선배님은 제가 굉장히 존경하는 선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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