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세계에 퍼뜨린 통곡기도의 횃불
전세계에 퍼뜨린 통곡기도의 횃불
  • 미래한국
  • 승인 2017.05.16 16: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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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인식 美 베델한인교회 담임목사 · KCC 대표간사

제가 김상철 장로님을 처음 만난 것은 전화를 통해 처음으로 인사를 나누게 된, 얼굴도 못 본 만남이었습니다. 미국에 40년 넘게 살아 온 교포 출신의 목사인 저로서는 솔직히 잘 알지도 못했고 만난 적도 없는, 다만 뉴스를 통해 서울시장을 단기로 역임한 분이라는 정도의 상식이 전부였습니다.

그렇게 첫 만남을 이루게 한 그 전화 통화가 근 40분 넘게 계속되는 전화 통화일 줄은 미처 몰랐습니다. 아마도 제 일생에 첫 대화를, 그것도 전화로만 인사를 나눈 사이에 그토록 장시간 통화를 나누게 된 분은 김 장로님 말고는 전에도 없었고 후에도 없을 것 같습니다.

그날 저는 시애틀의 어느 한인교회 부흥집회 인도를 위해 그 도시에 가 있었고 전화하신 바로 그 때가 그 교회 성도 몇 분의 식사 대접을 받고 있었던 때였습니다. 그 시간에 걸려온 전화가 그렇게 오래 지속되는 바람에 결국 전화기를 귀에 댄 채 식사 대접을 감사한다고 눈짓으로 인사하고 그날 저녁 집회에서야 다시 그분들을 만났던 기억이 생생합니다.

김상철 장로님도 전화를 놓지 못하고 저 역시 남들의 대접을 받던 상황에서 대화를 끊지 못했던 것은 한마디로 우리 두 사람의 기가 통하고 상황 판단이 같았으며 민족을 향한 울분이 솟구치는 대화로 이어졌기 때문이었습니다.

얼굴도 못 본 첫 대화에서 우리는 저 평양정권을 이대로 두는 것은 그 자체가 죄악이다, 인간이 아니라 짐승처럼 맞아죽고 굶어죽는 북한의 동족들을 외면한 채 침묵한다면 그 침묵이 바로 죄이다, 천만에 가깝다는 남한의 교회들과 목사들이 언제부터 이렇게 좌파에 끌려 다니고 입을 다물고 있는 신앙야성 상실증에 걸린 것이냐 하는 등의 대화들로 피차에 뜻이 맞아 전화기를 놓을 수가 없었던 것입니다. 오랜만에 긴 얘기 안 해도 말 몇 마디에 비전을 맞추고 절로 눈물이 솟구치던, 정말 오랜만에 시원한 생수를 들이키는 것 같던 그런 첫 만남이었습니다.

시원한 생수를 들이키는 듯했던 그와의 대화

그 후 김상철 장로님과 저는 미국과 한국에서 여러 목적의 기도회와 모임, 그리고 통곡기도대회와 같은 각 도시의 연속 순회 집회에서 피차 강연자가 되고 순서 담당자가 돼 꽤나 많이 만났습니다.

만남들은 거듭될수록 저에게 축복이 되고 확신이 됐습니다. 솔직히 서울법대를 나와 고시를 패스하고 판사 생활을 했으며 법조계의 젊은 중심 리더로 살아 온 엘리트가 이렇게 겸손할 수 있다는 ‘기적’을 처음으로 보여주신 게 바로 그 분이었습니다.

우리는 나이도 동갑이고 교회 생활이 몸에 밴 친밀감이 있어 얼마든지 허물없는 사이까지 갈 수 있었음에도 김 장로님은 항상 변함없는 예의와 친절로 저를 대하고 KCC 간사들을 대해주시던 신앙 인격의 산 실물과 같은 분이었습니다. 한 마디로 성경이 기술하는 다윗 같은 분위기와 성품을 느끼게 하셨습니다. 또 다윗이 그랬다는 것처럼 인물과 인상이 다 반듯하시고 잘 생기신 신앙인이요 법조인이며 이웃의 아픔을 두고 지나치지 못하는 선한 ‘한국의 사마리아인(Korean-Samaritan)’이셨습니다.

미국에서 나온 수잔 숄티와의 어느 만남에서 김 장로님이 사용하시던 영어의 구사력과 설득력은 미국에서 대부분을 살아온 순 교포 출신의 저에게도 감탄사가 흘러나오는 수준이셨습니다. 그래서인지 우리는 더 좋아했고 더 존경했으며 더 의지할 수밖에 없었던, 북한동족 해방운동의 동역자였고 탈북자들의 구출을 위한 캠페인의 동지였습니다.

강단에 올라 한번 스피치를 시작하면 손에 종이 한 장 없이 조금도 흐트러짐이 없는 논리와 도전으로 듣는 이들의 마음을 진동시켰고, 김 장로님의 목소리 또한 싫증이 날 수 없는 친화력을 느끼게 하는 역동적 음성이셨습니다. 그의 뜨거운 가슴과 불같은 연설들은 항상 선을 향해 열정이 넘쳤고, 악을 향해 날이 섰으며, 민족을 향해서는 연민이 범벅이 돼 있는 그런 세례요한이요, 그런 한국판 예레미야 같은 분이셨습니다.

등불은 꺼지고…

북한동족의 해방과 탈북자들의 구출을 위해 해외 이민교회들부터 시작된 통곡기도대회의 불길을 이끌어 가면서 저는 여러모로 외롭고 고립된 절벽 끝의 심정을 가질 때가 한 두 번이 아니었지만 김상철 장로님 같은 분이 계셔서 의지가 됐고 행복했습니다. 그 분은 제 배나 채우며 향락에 젖거나, 그 좋은 머리에 배운 대로 사는 엘리트들과는 달랐습니다. 더러운 구정물처럼 민족의 정의를 오염시키고 있는 그 수많은 한국의 엘리트성 잡인들, 잡배들과도 달랐습니다.

김 장로님은 어둠을 헤치고 빛나는 작은 등불과 같으셨다는 생각을 이제 김 장로님이 떠나신 오늘에 와 더욱 안타깝게 회상해 보게 됩니다.

3대에 걸친 저 이상한 옛날 중국 마적 떼 같은 평양정권도 어느새 흔들리는 기색이 역력하고 베를린 장벽이 하루아침에 무너지던 독일 통일의 기적처럼 분단 70년이 되기 전에 하나님께서 우리 민족에 통일을 주시는 그때가 임박해오는 이때 우리 모두는 더욱 더욱 김상철 장로님을 잊지 못할 것입니다. 병상에 누워계시던 때 한국을 방문해 KCC의 평생 동지 송기성 목사님(정동제일감리교회)과 함께 장로님을 방문했을 때 저를 조용히 응시하던 김 장로님은 어느새 눈이 벌겋게 눈물로 충혈되기 시작하셨습니다.

옆에서 지켜보시던 부인께서 저렇게 눈동자가 눈물로 채워질 때는 정말 반갑다는 표현이시라고 해석해 주셔서 저도 모르게 눈물이 주르르 흐르던 기억이 납니다. 아마도 반갑다는 말을 하고 싶으신 것뿐만이 아니었을 것입니다. 마치 시애틀에 있던 저와 처음으로 전화 통화를 할 때처럼 동족구원의 소원을 외치고 싶은 마음, 다시 또 저와 함께 탈북자들의 구출을 위해 세계를 누비고 싶은 속마음을 오래 오래 대화하고 싶은 표현이셨을 것입니다.

김 장로님, 이제 곧 평양에 들어가 통일을 주신 하나님을 경배하며 감사통곡기도대회를 갖게 되는 그날, 우리는 이 복음 통일운동의 주역 중에 주역이셨던 한 분이 계셨노라고, 바로 그분의 이름이 “김상철”이라고 하는 신실한 하나님의 종이었다고 선포할 것입니다. 김 장로님, 수고 많이 하셨습니다. 존경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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