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삼 14대 대통령
작년 12월 김상철 시장의 부고 소식을 들었을 때 참으로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다. 나는 빈소를 방문하지 못했지만 화환을 보냈다. 우리가 참 아까운 인재를 잃었다.
김 시장은 1993년 내가 문민정부의 첫 서울시장으로 임명했다. 그에게 상당한 기대를 했던 게 사실이다. 21세기대통령자문위원회에서 활약할 때부터 나는 그를 눈여겨봤다. 나는 감사원장에 이회창, 안기부장에 해남 출신인 김덕, 대법원장에 첫 호남 출신인 윤관을 앉혔다. 모두 상징적 인물이었다. 서울시장에는 5,6공 실세나 관료 출신이 아닌 참신한 인물로 그를 임명했다.
그런데 김상철 시장 임명 후 언론이 그를 엄청나게 때렸다. 나는 퇴임 이후 김 시장의 집에 가 보았다. 조그마한 2층 집이었다. 기가 찼다. 당시 언론에서 볼 때는 뒷산이 다 김 시장의 집처럼 보였고 그는 대단한 재산가인 것처럼 비쳐졌다. 당시 언론이 무소불위하던 시절이었다. 특히 TV 위력이 지금보다도 훨씬 더했다.
박희태 법무부 장관, 박양실 보사부 장관도 여러 이유로 낙마했지만 김상철 시장이 누구보다 억울했을 것이다. 내가 그를 서울시장으로 발탁했을 때 여러 사람이 긴장했던 것도 사실이다. 차기 대권이다 뭐다해서 민주계 내부에서도 반대가 있었다고 하는데 그런 건 없었다.
김 시장은 반론의 기회가 없었다. 나도 여러 배려를 할 수 없었다. 그게 워낙 초창기 일이다. 개혁드라이브를 강하게 걸 때였다. 나는 거기까지가 인연인가라고도 생각했다. 나도 소수 민정당을 끌어안고 호랑이굴로 들어간 것 아닌가. 보수 일간지도 금융실명제로 인해 반대로 돌아섰었고, 어떤 신문은 내 상도동 집을 아방궁이라고 보도할 정도였으니 알만했다.
서울시장을 한 번 한 사람이 뭘 하겠나. 다음은 총리 정도인데 더 이상 인연이 안 됐다. 원래 언론계에 프락치가 많다. 종북 뿌리가 깊다. 요즘 종북 논란이 있는데 김상철 시장은 10여 년전 미래한국신문을 만들어서 이미 종북문제에 대해 많이 보도했다.
김대중 정부 때는 김정일의 남한 방문을 막아야 한다며 나를 찾아와서는 성명서를 낸다고 하기에 서명을 한 적이 있다. 이명박 정부나 박근혜 정부가 들어서는 데에도 그가 역할을 했다. 그의 명복을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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