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이 최순실 사태로 들끓고 있다. 지상파, 종편, 라디오, 신문 및 인터넷 매체의 모든 뉴스나 시사 프로그램, 하다못해 예능프로그램에서까지 최순실과 박근혜 대통령을 격렬히 비판하거나 조롱하고 있다. 대통령이 2번에 걸친 대국민사과를 했음에도 국민들의 격앙된 감정은 좀처럼 수그러들지 않고 있다.
추미애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대통령 업무를 정지하고 모든 권한을 국회에 넘기라’는 취지의 요구를 하였고 문재인 의원은 하야하지 않으면 중대결심을 하겠다고 엄포를 놓고 있다. 심지어 우익의 원로로 대우받던 복거일 작가나 정규재 주필마저 ‘하야와 완전한 사면’, ‘질서 있는 퇴각’ 운운하며 하야를 언급하고 있다. 새누리당 의원들 가운데 박근혜 대통령의 사실상 퇴진을 요구하거나 야당의 요구를 다 들어주어야 한다는 취지의 주장을 하는 이도 있다.
이런 사태를 보면서 몇 가지 쟁점을 정리해 보자. 필자는 이 국면에서 박근혜 대통령이 하야하고 국회에 권한을 다 넘기는 것이 헌정(憲政) 운영에 결코 좋은 선례가 될 수 없다고 생각한다. 1987년 헌법 개정 이후 한국은 쿠데타나 시위로 대통령이 하야하던 불행한 전철(前轍)을 깨고 선거에 의한 평화적 정권교체의 전통을 쌓고 있다. 돌이켜 보면 김영삼 정부 시절 김현철 비리 및 구속, 김대중 정부 시절 세 아들의 비리 및 구속, 노무현 정부 시절 형님인 노건평의 비리 및 구속이 연이어 발생하였음에도 대통령을 강제 하야 시키지 않았다.
국정을 잘못 이끌었다면 다음 대선(大選)에서 국민의 심판을 받으면 되고 그것이 헌법제정권자의 의사이다. 대통령의 임기 중 도저히 국정을 맡길 수 없을 정도의 비리나 위법이 있다면 헌법에 정해진 바에 따라 국회의 탄핵소추(彈劾訴追)와 헌법재판소의 탄핵결정(彈劾決定)으로 축출하고 60일 이내 대선을 통해 국민의 뜻으로 차기 대통령을 정하면 된다.
그렇지 않고 시위, 언론사의 선정적인 보도를 통한 여론몰이로 대통령을 강제로 하야시키고 국회가 모든 것을 하겠다고 나서는 것은 헌정유린(憲政蹂躪)이고 선거에 의하지 않은 권력의 찬탈(纂奪)이다. 주권재민(主權在民)이 아니라 주권이 언론사, 여론조사기관 또는 시위대에 의하여 행사되는 형국이 된다. 그러한 선례를 만들어 놓으면, 단임제 헌법 하에서 임기 말이 다가오면 야당은 또 다시 그러한 방법으로 권력 투쟁을 벌일 유혹을, 언론사 또는 여론조사기관은 자신들의 영향력 행사 및 이익 확보의 기회로 포착하려는 유혹을 받게 된다.
결과적으로 정국은 대통령 임기말이 다가오면 항상 불안정하게 되고 이는 경제에도 치명적인 영향을 줄 것이다. 대통령의 실정이 있으면 차기 선거 또는 탄핵결정 후 선거를 통해 정치적으로 심판하는 것이 안정적인 헌정 운영을 도모하는 길이다.
둘째, 박대통령의 불행한 개인사(個人史)를 감안하더라도 최순실씨의 발호(跋扈)와 호가호위(狐假虎威)를 막지 못한 것은 잘못이고, 검찰은 최씨의 비리 의혹을 철저히 수사하여 법에 따라 엄단하여야 할 것이다. 검찰은 그 과정에서 차기 대선에서의 검찰 조직의 영향력 확보 또는 증대를 노리거나 검찰 내 계파나 특정인사의 권력 투쟁에 이용해서는 안 된다. 드러난 비리를 묵인해서도 안 되고 확인되지 않은 비리 의혹을 기자들에게 흘려 정치투쟁의 소재로 제공하는 경솔한 처사를 해서도 안 된다. 또, 이번 사건을 처리하면서 전임 대통령들이나 다른 정치인들이 공익 재단 운영에 관계된 사안의 처리와 형평성을 잃어서도 아니 된다.
셋째, 지금은 여론의 광풍이 가라앉은 후 선정적인 보도, 근거 없는 보도에 대하여는 법적 책임 또는 정치적 책임을 물어야 할 것이다. 언론사가 헌정 중단을 유도하는 듯 한 보도를 무차별적으로 하게 놓아 두고 그것이 옳은 것인 양 받아들이는 풍토가 고착된다면 대한민국의 헌정은 머지않아 유린되고 경제는 추락을 면할 길이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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