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은 사망시 북한은 급격한 혼란에 봉착. 살육의 내전 상황에서 북한 주민들의 대량탈북이 예상되며 이에 대비하지 않을 경우 극심한 갈등과 남북 주민간에 새로운 적대감 형성도 우려된다.
동북아 정세에 변화의 임계점이 형성되고 있다. 북한이 최근 미국 전역을 타격할 수 있는 장거리 핵미사일 실전 배치를 완료했다는 의혹이 정보당국으로부터 나오는 가운데 미국은 말레이시아에서 북한과 비밀접촉을 가졌다.
미국의 북한 전략이 ‘레짐 체인지’라는 김정은 제거 쪽에 무게가 실리면서 북한사태의 급변은 학살의 내전과 ‘대량탈북’이라는 또 다른 사태를 야기할 수 있다.
남한으로 탈출하는 북한 주민들의 대량탈북사태를 미리 준비하지 못한다면 우리에게 통일의 기회는 또 다른 적대의 위험으로 끝날 수 있다는 점에서 북한 주민들의 대량탈북 문제는 더 이상 미루고 방치해서는 안 될 위험으로 인식되어야 한다. 시나리오를 통해 북한 주민의 대량탈북 사태를 시뮬레이션해 보기로 하자.
김정은이 죽었다
북한 권력서열 2위인 인민군 총정치국장 황병서가 군을 동원해 무장반란을 일으키고 호위사령부를 접수한다. 김정은은 부관에 의해 집무실에서 사살된다. 황병서의 라이벌인 최룡해가 국가안전보위부장 김원홍을 부추겨 즉각 황병서 견제에 나섰다.
보위부와 평양방위사령부에 의해 평양은 원천 봉쇄되었고 안에서는 평양방위사령부 소속 부대가 황병서에게 장악된 호위사령부 군인들과 시가전이 벌어진다. 김정은 사살에 성공한 쿠데타 주도세력은 호위사령부 정예무력으로 평방사와 보위부의 평양 봉쇄를 간신히 뚫고 전군에 대한 지휘통제권을 회복한다.
조선중앙TV의 정규 방송은 전면 중단되고 시간이 잠시 멎은 듯했다. 평양에서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도무지 알 길이 없는 주민들과 군인들은 두려움과 불안감에 사로잡혀 있다. 하지만 북한 전역에 걸친 폭풍전야의 살벌한 고요함은 이내 산산이 부서지고 만다.
황병서가 장악한 군부와 김원홍, 최룡해의 보위부가 전국 곳곳에서 치열하게 격돌하기 시작한 것이다. 북한 전역은 삽시간에 내전 상황으로 치닫는다. 머리가 없어진 북한 권력은 둘로 쪼개져 서로를 반역세력으로 규정하고 상대 진영에 대한 무자비한 살육전을 벌인다. 졸지에 양 진영의 희생양이 되어버린 주민들과 병사들이 너도나도 북한을 탈출하기 시작한다.
겨울이라면 압록강과 두만강으로, 여름이라면 바다로 남쪽으로
만약 북한 급변사태가 한겨울에 터진다면 많은 주민들은 비교적 탈출이 쉬운 압록강과 두만강 상류를 선택하여 북한을 떠날 것이다. 하지만 황해도 강원도 평안남도 등 내륙에 거주하고 있는 주민들은 국경까지 이동거리가 멀어 신속한 탈출이 어렵게 될 것이다. 물론 이때 중국군의 국경봉쇄 또는 탈출자들에 대한 집단 체포 북송이라는 변수가 있기는 하다.
그렇다고 각종 지뢰가 촘촘하고 철조망이 중중 첩첩인 군사분계선에 함부로 발을 디딜 주민들은 많지 않을 것이다. 있다면 지뢰를 해체할 줄 아는 최전방 부대 군인들이나 전방지역 물정을 어느 정도 알고 있는 소수 지역 주민들일 것이다.
만약 북한의 급변사태가 여름에 일어난다면, 북·중 국경보다는 해상 탈출을 많이 선택할 것이다. 여름 역시 살벌한 군사분계선이 가로막혀 있어 육상으로의 대량 탈출이 쉽지 않을 것이므로 각종 선박이나 고깃배, 하다못해 뗏목이나 튜브를 이용한 해상 탈출이 가장 현실적인 대안일 것이다.
대량탈출 쏠림 지역으로 볼 수 있는 곳은
또한 북한 측 강원도 철원군에서 군사분계선을 통과해 남한 측 경기도 연천으로 내려오는 임진강과 북한 황해도와 개성시 사이를 흘러내려와 임진강과 합쳐져 서해로 나가는 예성강을 이용한 탈출 역시 무시할 수 없는 경로라고 할 수 있겠다.
가장 가능한 지역은 아마 강화도와 김포시가 될 확률이 높다. 썰물 때에는 예성강과 임진강에서 떠내려 올 것이고 밀물 때에는 가장 가까운 황해남도 연안군 쪽 해상에서 내려와 교동도와 강화도, 그리고 인천국제공항이 있는 섬과 아라뱃길, 월미도 쪽으로 차례차례 상륙할 것이다. 서해 해상 탈출이 좀 더 활발하다면 당진 서산 태안반도까지 영향을 받을 수 있다. 하지만 배를 타고 굳이 중국으로 가는 탈출자들은 없을 것이다.
동해 쪽 해상으로 탈출한다면 북한 신포, 원산 이남(以南) 해상에서는 목적지가 남한이 되겠지만 청진, 라선시쪽 해안에서 출발한다면 일본을 목적지로 정한 탈출자들도 있을 것이다. 동쪽 해안은 당연히 가장 가까운 7번 국도의 끝 명파해변 정도가 될 것이다. 이곳은 민간인통제구역 즉 민통선 안쪽이라 당연히 군이 피곤해질 것이다. 그 다음은 고성, 속초, 양양 등지가 차례대로 영향을 받을 것이다.
▲ 시리아 난민들이 터키국경에 집결하고 있다. |
북한지역의 배들 모두 증발할 것
북한지역의 각종 어선은 서해 1000여 척, 동해 700여 척 해서 도합 1700여 척이 된다고 한다. 대량탈북이 현실화 된다면 아마도 북한의 동서 해변에 있는 거의 모든 고깃배들이 탈출의 수단으로 활용돼 증발할 가능성이 크다. 대신 남한 해변의 해수욕장마다 북한 각종 목조 어선들이 어지럽게 널려 있는 황당한 풍경을 볼 수도 있을 것이다.
대량탈출주민의 총 규모는 북한 총 인구의 약 3.5%
강원도 양구 철원 쪽 내륙은 북한 군인들의 산발적인 탈출이 있을 것으로 예상되지만 자칫 무장 충돌로 번질 위험성이 있고 탈출자 대부분이 군인인 것을 감안할 때 지역 치안에 문제가 생길 수도 있다.
탈출자 중에는 10대 후반에서 20대 30대 40대까지 청장년층이 대부분을 이룰 것이며 여성 보다는 남성들의 비율이 높을 것이다. 또한 군인과 민간인이 뒤죽박죽으로 섞여 있어 대량 탈출자를 수용할 때 집합과 선별, 조사, 재배치, 이동 등에서 적지 않은 어려움이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여기서 변수는 북한의 해안경비대와 해군, 그리고 각 지역 안전부(보안부)의 태도인데, 초기에는 상황 파악이 안 되는 몇몇 관료들의 과격한 통제 지시로 인해 어느 정도 사상자가 발생할 수도 있겠지만 대량탈출사태 앞에 우두머리 없는 분열된 권력의 말단은 금방 힘을 못 쓰게 될 것이다. 결국 군(軍), 경(警)의 말단 관료들은 주민 대량 탈출과 군인의 이탈 현상을 방관 또는 외면하게 될 확률이 높다.
1945년 분단 이후 40년 동안 동독에서 서독으로 넘어간 탈동독인 460만 명 중, 무허가 반체제 탈출자만 390만 명에 달해 연평균 10만 명 수준이었다고 한다. 1989년 11월 베를린 장벽이 붕괴되고 1990년 12월 동서독이 완전히 하나의 국가로 되기 전까지 1년 동안 서독으로 탈출한 동독 주민들의 수는 당시 동독인구 1661만 명 중 약 2.6%인 43만 명이었다는 역사적인 기록이 있다.
2013년 5월 세이브NK 주최로 열린 ‘통일을 대비한 전문가 원탁회의 -대규모 탈북사태와 난민보호시설 건립을 중심으로-’에서 한관수 조선대 교수는 북한 주민들의 성분을 크게 3계층으로 분류해 탈출주민 총수를 계산했다.
한 교수의 발표에 따르면 북한 전체 인구 2100만 명(군 병력 제외)중, 지배계층으로 분류되는 28% 핵심계층이 590만 명이고, 45% 동요계층이 954만 명, 마지막으로 27% 적대계층 573만 명으로 분류했다.
북한 급변사태 시 탈출 의지를 가지고 있을 570만 명의 적대계층 속에 어린이, 노약자, 신체장애자들과 그들의 가족들을 제외한 350만 명 중, 약 20%인 70만 명은 북한 전체 인구의 3.5% 정도가 된다. 특권을 누리던 평양시의 약 300만 명 주민은 탈출 의사가 없겠지만 만약 평양 시내에서 내전이 발발하면 피난을 갈 가능성이 있다.
북한 정권과 군부가 주민 통제력을 완전히 상실할 때는 탈출 주민 숫자가 더 많아질 수 있다. 한 교수는 발표에서 북·중 국경과 근접한 평안남북도, 함경남북도 그리고 자강. 량강도의 총인구 1335만7200여 명 중 약 47만 명의 탈출 주민이 발생할 것으로 예측했다.
남한과 가까운 황해남북도와 강원도의 전체 인구 565만8600여 명 중, 약 22만 명의 탈출 주민이 발생할 것으로 예측했다. 북쪽 6개도 인구 중 탈출자 47만 명이 전부 북·중 국경으로 탈출하지는 않을 것을 감안할 때 남한으로 오는 탈출 주민이 최소 30만 명은 족히 될 것으로 본다.
만약 내일 당장 대량탈북사태가 벌어진다면
서독 정부는 동독 주민들의 대량 탈출에 대비해 분단 직후인 1952년에 이미 ‘긴급수용법’을 제정했으며, 동독 이주민과 탈출 주민에 대해 ‘전원수용’ 원칙을 가지고 적극적인 탈(脫)동독인 포용정책을 추진했다고 한다. 남한에서 이와 비슷한 정책인 ‘북한이탈주민의 보호 및 정착지원에 관한 법률’은 분단 반세기가 지난 1997년에야 비로소 제정되었다.
만약 내일 당장 북한에서 이러한 무정부 내전상태가 벌어졌을 때 북한 주민들의 대량탈북사태는 어떠한 형태로 나타날 것인가. 언제 어떻게 일어날지 모를 엄청난 역사적 사변을 정확히 예측할 수 있는 신비스러운 천리혜안이 우리에게는 없다.
하지만 도를 넘고 있는 김정은의 광기와 한계에 다다른 미국과 국제사회의 인내, 그리고 대통령의 심상치 않은 탈북 권유 발언은 가까운 시일 안에 위에서 상상한 형태의 특대형 사변이 이 땅에서 기어이 일어날 수도 있다는 것을 암시하고 있다.
북한 주민들에게 탈북은 체제에 대한 거부와 저항의 유일한 수단이다. 동독을 탈출한 수백만 동독 주민들로 인해 결국 동독 사회주의체제가 붕괴되었듯이 탈출의 원인이 생계 문제이든, 정치적 핍박이든, 자유에 대한 갈망이든 혹은 남한 체제에 대한 막연한 환상이든 결국 탈북의 끝이 북한 체제의 붕괴라는 것에는 두말할 필요가 없다.
그런 의미에서 북한 체제가 유지되고 있는 지금까지의 산발적인 탈북현상을 남한은 이념과 체제의 승리 차원으로 접근했다. 이러한 접근은 탈북자들의 남한 정착 실패 및 어려움에 대한 어두운 현실을 몹시 불편해 했고, 과거에 이미 몸에 밴 탈북자들의 문화와 생활 습관은 그리 중요하지 않게 여겨졌다.
하지만 이념과 체제 대결의 종지부인 북한 체제 붕괴 직후의 대량탈북은 차원이 전혀 다름을 한국 사회는 직시해야 한다. 각자 뿔뿔이 흩어져 20여 년에 걸친 긴 시간동안 산발적이고 비조직적으로 국내에 들어온 3만 명의 탈북자들과, 수일 또는 수개월 안에 직면해야 할 수십만 명의 집단탈출 주민들은 분명히 차원이 다른 탈북자들이다. 한마디로 이미 온 3만 명은 탈북자 출신 ‘남한사람’이지만 앞으로의 수십만 명은 그야말로 오리지널 북한 주민인 것이다.
대량탈북사태, 남한에서 일어나는 문화의 충돌
분단 이후 서독으로 넘어 온 탈동독인들은 서독 내에 설치된 난민촌에서 9개월 간 철저한 조사를 받았고, 서독 정부는 '탈동자(脫東者)'의 서독 정착에 막대한 비용을 쏟아 부었다는 독일 통일 사례를 봤을 때 현재 정부의 10만 탈북난민 정착촌 건설 계획은 당연히 이미 전부터 실행했어야 할 통일정책이다.
남과 북은, 이제 언어와 풍습까지 같은 한 민족이라고 보기 어려운 전혀 다른 가치와 문화와 사상을 가지고 이웃 아닌 이웃으로, 동포 아닌 동포로 살아왔다. 같은 민족이라는 상징 하나만 존재할 뿐, 가치관과 체험, 표현방식 등에서 공감대가 거의 없는 상황이다.
을왕리 해수욕장에서 신나게 물놀이하던 초등학생이 물속에서 나오는 눈에 살기를 띤 시커먼 북한군인과 마주쳤을 때, 그 둘 사이에는 공감은 둘째 치고 소통조차 거의 불가능할 것이다.
아마도 군·경은 초비상이 걸릴 것이다. 전방지역 군인들은 전쟁단계에 준하는 비상 상황에 들어가고, 탈출 주민 통제와 치안 유지에 현재 병력으로는 어림도 없을 것이므로 예비군 비상소집을 할 것이다. 수도권 내 대학과 초중고는 치안 불안을 이유로 임시 휴교령이 내려지고 탈출 주민들의 무차별 내륙 이동을 철저히 통제할 것이다.
꽉 막힌 퇴근 길 강변북로와 올림픽대로와 자유로에서 차를 태워달라고 창문을 두드리는 초췌한 탈출 주민들과 마주칠 것이다. 경찰과 헌병들이 도로 곳곳에서 철저한 검문검색을 벌여 시내는 거대한 주차장이 되어버릴 것이다. 많은 탈출 주민이 산속으로 들어가 이들의 통제는 갈수록 어려워질 것이다.
연애할 때에는 서로가 보여주고 싶은 아름다운 가면으로 인해 상대의 민낯이 잘 보이지 않는다. 하지만 결혼하고 한 처마, 한 이불속에 들어가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서로가 서로에게서 발견되는 불편한 사실들 앞에 계속해서 충격 받고, 실망하고, 상처받는다. 어쩌면 북한의 대량탈북사태로 인한 갑작스러운 통일은 준비 안 된 서로에게 엄청난 충격을 가져다 줄 것이다.
집단 탈북으로 일어날 현상들 ‘탁고개’를 조심하라
‘탁고개’란 용어는 북한이 90년대 이른바 ‘고난의 행군’ 이라는 혹독한 굶주림의 시기를 겪으면서 생겨난 공포의 대명사이다. 아주 오래된 북한의 연속극(드라마)에서 유래되었을 것으로 짐작하는 ‘탁고개’란 한마디로 마적들이 숨어서 지키고 있는 골목이라는 뜻이다.
탁고개의 주인공들은 주로 굶주린 군인들이었고 이들의 타깃은 어른, 아이, 간부, 농부, 할 것 없이 그야말로 무차별적이다. 한번 탁고개에 걸렸다 싶으면 한겨울에도 팬티까지 깡그리 벗겨지기 십상이다. 인류가 멸망한 후 얼마 남지 않은 생존자들의 폭력성을 그린 판타지 영화에서나 나올법한 공포의 연출이다.
필자의 부친도 당시 1군단에서 북한군 소좌(소령) 계급이었지만 술에 취해 귀가 중 재수 없게 타 부대 병사들이 지키고 있던 탁고개를 만나 얼마나 맞았는지 얼굴이 만신창이 되고 군복까지 모두 빼앗겼던 참담한 일이 있었다. 당시 북한에서 탁고개를 당한 경험이 없는 탈북자들은 참으로 행운아들이다.
이런 무시무시한 탁고개는 비단 군인들만의 전유물이 아니었다. 사춘기 남학생들 역시 굶주린 배를 채우기 위해 밤마다 몇 명씩 떼를 지어 다니면서 마을과 도시의 후미진 곳에 진을 치고 있다가 지나가는 사람들을 마구 습격하곤 했다.
자동차가 말을 하네?
2000년대 들어 북한의 국경지대 마을과 도시에는 남한의 자동차 기술이 대단하다는 풍문이 쉬쉬하고 돌았다. 그때는 그것이 내비게이션 기능인줄 몰랐지만 남한 자동차는 주행 중에도 전방에 있는 건널목, 사거리, 목적지 등을 상세하게 안내해준다는 말이 믿어지지 않았다. 어떤 이는 아마 차들로 꽉 막힌 도로를 보며 무슨 전국 자동차 전시행사를 하고 있나 의문스럽기도 할 것이다.
살 물건을 모두 골라 출입구 계산대에서 한 번에 일괄 계산하는 자본주의 편의점 구조 자체도 신기할 따름인 탈북 주민들에게 마트와 편의점에 쌓인 다양한 가공식품과 물품은 보는 것만으로도 흐뭇할 것이다.
탈북 주민의 값싼 노동력을 몰래 착취하려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음료 자판기와 믹스커피가 나오는 식당 입구의 커피자판기가 마냥 신기한 그 값싼 노동력이 다른 행성과 같은 남한에서 바로 할 수 있는 일이 과연 있을까, 더욱이 남한으로 유입된 북한 주민 대다수는 남한과 외부정보에 어느 정도 노출된 함경도 평안도 국경지대 사람들이 아니라 외부와 고립된 황해도 강원도 사람들일 것이다.
정부는 실제 발표한 대로 급하게 내륙 여기저기 난민캠프를 짓고 군경, 정보기관, 통일부, 행자부 등 관련 부서들이 모두 참여하는 통합 전담기구가 만들 것이다. 초기 혼란이 어느 정도 잠잠해지면 군경은 탈출 난민들을 조직적으로 캠프까지 이송하고 캠프에서는 기무부와 국정원 경찰이 합동으로 탈출 난민들에 대한 면밀한 조사를 진행할 것이다.
이때 임시 캠프는 북한군의 경포 사정거리를 고려해 전방으로부터 약 30km 이상 이격(離隔)된 학교 건물이나 공설 운동장, 각 지역 체육관 혹은 복지관, 공원 등 공공장소에 설치하게 될 것이라고 전문가들은 예측한다. 이 임시 캠프의 명칭 또한 사회적으로 예민한 주제일 것이다.
일단 ‘난민 수용소’라는 부정적인 표현에 이미 와 있는 탈북자들이 반발하고 나설 것이다. ‘난민촌’ 이라든지 ‘정착촌’ 같은 표현도 국민 정서에 받아들여지지 않을 것이다. 수용소, 정착촌, 난민촌 같은 부정적 표현 대신 ‘통일시범캠프’ ‘하나통일타운’ ‘통일 신도시’등 긍정적 표현으로 대체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북한의 갑작스러운 붕괴, 남한은 북한을 당당하게 접수할 준비가 되어 있는가. 지금 상태라면 10여만 탈출 주민을 통제하는 일에도 진땀을 흘릴 것 같다. 남과 북은 분단 이후 분명히 전혀 다른 길을 걸어왔다는 것을 진지하게 고려하도록 남한 주민들을 교육하지 않으면 안 될 것이다.
단지 ‘같은 민족’이라는 이유를 통일의 명분으로 삼기에는 그동안 민족의 공통적 속성은 많이 이지러졌다. 수십만의 대량탈출주민 국내 유입 후, 또다시 극심한 심리적 분단과 ‘동·서’에서 ‘남·북’이라는 또 다른 첨예한 지역갈등이 생겨나게 될 것이다.
통일은 더 이상 추상적으로 접근할 문제가 아닌 현실생존의 문제이다
장장 70여 년의 세월 완전히 격리된 상태에서 서로 적대적인 전혀 다른 체제에 익숙해진 남북한 주민들은 통일에 대한 막연한 기대보다 현실의 혹독함을 경험하게 된다. 전력 과부하로 몇 십 분 정전이 되어도 전 국민이 난리를 치고 장관까지 경질되는 사회에서 수십만의 내전 난민이 한꺼번에 밀려온다는 것은 아마 꿈에서도 떠올리기 싫은 재앙일 것이다.
독일이 통일 후 정치 경제적 통합은 어느 정도 성공을 거뒀지만 아직도 구 동서독인들 간의 심리적 통합 문제가 심각하게 대두되고 있다는 것이 40년이라는 짧은 분단 역사에 우리처럼 남북이 전쟁도 치르지 않았고, 통일된 지 20년이 지난 독일의 현 주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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