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핵 ‘말 잔치’보다 ‘공포의 균형’이 필요한 이유
북핵 ‘말 잔치’보다 ‘공포의 균형’이 필요한 이유
  • 박상봉 미래한국 편집위원
  • 승인 2016.10.20 09:31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제언] 북핵 위협과 비스마르크의 명견만리(明見萬里)

헬무트 슈미트는 1987년 평화 무드가 대세인 가운데 퍼싱II를 배치해 ‘공포의 균형’을 만들었고, 헬무트 콜은 1989년 동독 주민의 손을 잡고 통일을 이뤄냈다. 만약 이들이 공산 정권의 손을 잡았더라면 불가능한 일이었다. 

북한이 1월 6일 4차 핵실험을 하자 정부는 ‘레짐체인지’라는 강력한 카드를 내밀었다. 유엔은 대북결의안 2270호를 만장일치로 채택했다. 하지만 북한은 6월 22일 무수단 성공 발사, 8월 24일 잠수함 탄도미사일(SLBM) 성공, 9월 9일에는 5차 핵실험을 감행했다. 핵탄두의 소형화, 경량화, 표준화가 거의 완성되었다. 박근혜 대통령의 메시지도 더욱 강력해졌다. “김정은 정권이 종말을 재촉하고 있다” 

▲ 박상봉 독일통일정보연구소 대표·미래한국 편집위원

김정은의 반응이 점입가경이다. “최강의 핵과 공화국의 전략잠수함 탄도탄이 전 세계를 격동시키고 있는데 박근혜 패당은 민족사적 쾌거에 기절초풍해 동족을 헐뜯고 있다”, “우리는 박근혜 역도가 줴친(마구 말을 하는) 악담들과 저지른 죄악들을 죄다 기록해놓고 있으며 조국통일대전승리의 날에 가장 철저히, 가장 무자비하게 심판할 것이다”, “지금 백두산 혁명 강군은 멸적의 의지를 안고 청와대 안방부터 들부실(부술) 최후 명령의 시각을 기다리고 있다”. 

이를 보면 그야말로 깡패요, 선전포고 수준이다. 대홍수 피해를 본 희생자나 이재민에 대한 관심은 전혀 없다. 

10월 1일 국군의 날을 맞았다. 박 대통령은 “북한 주민, 대한민국으로 오라”고 말했다. 이재민은 물론 중국 등지를 헤매는 탈북민에게는 희망의 말이요, 생명의 빛이다. 김정은의 막말이 이어졌다. “잠자코 앉아 뒈질 날이나 기다려라”, “박정희 딸은 한수 더 떠서 우리의 사상과 제도, 정권을 반인륜적이니, 공포정치니 하고 미친 듯이 헐뜯고 있다”, “탈북을 선동하는 미친 나발질을 서슴지 않는다”. 

섬뜩하고 분노가 치민다. 하지만 더욱 놀라운 것은 박지원 의원의 대응이다. 박 대통령의 기념사에 대해 “선전포고” 수준이라고 타이르고 있다. 놀랍다. 김정은의 막말 이상이다. 신은미 식 대북관이다. 송두율과 이종석의 내재적 접근론을 능가한다. 박 의원이 그 동안 막말 김정은에 대해 뭐라도 제대로 할 말을 해왔다면 그래도 낫다. “적의 적은 아군” 정도의 인식이다. 

김대중 정권 하에서 자신이 주도해 김정일 구좌로 송금한 4억5000만 달러가 핵개발의 시드머니가 되었다고 하니까, “경부고속도로에서 사고가 난다고 박정희 대통령을 탓하는 것과 같다”는 궤변도 이어진다. 경부고속도로는 대한민국을 번영으로 이끌고 있지만 햇볕정책은 북한 핵에 인질로 잡혀 있는 오늘을 만들었는데, 엉터리 비교다. 

박지원 의원은 본질을 왜곡하지 말라 

박지원 의원은 반발이 거세지자 “자신과 국민의당은 종북주의자가 아니라 대화주의자”라고 말했다. 대화와는 거리가 먼 국회의원이 남북 문제가 거론될 때마다 대화론자가 된다. 국민의당이 더민주당과 대화를 못해 탈당해 만든 당이라는 사실도 잊어버렸단 말인가. 19대 국회는 국회선진화법 때문에 식물국회가 되었다.

여야가 대화로 국회를 운영하라는 법이 국회를 마비시켰다. 남북 대화에 매달려온 지난 20년 동안 북한은 5차례 핵실험을 했다. 수십 차례 미사일을 쏴 잠수함탄도미사일, 무수단 미사일을 성공적으로 개발한 데 이어 이제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을 거의 완성해가고 있다. 

여야 영수회담을 하고 정국이 개선된 적이 있는지 말해보라. 사드 배치를 둘러싼 성주 군민과의 대화는 왜 폭력으로 난장판이 되었는지 말해보라. 이런 상황에 북한이 도발할 때마다 대화를 주문한다. ‘대화’, ‘평화통일’과 같은 말을 선점해 대중을 선동하고 자신도 중독되어 있는 상황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박 의원의 통일 방안은 김정은과의 대화를 통한 평화통일임을 짐작할 수 있다. 하지만 5000만 국민에게 물어보라, 과연 몇 퍼센트나 동의하는지? 김정은과 합작하면 김정은은 대통령, 아니면 부통령이 되는 것이 당연하다.

평화통일이라는 단어를 선점해 국민을 우롱하지만 그 진실마저 은폐할 수는 없다. 통일이 3대 세습독재체제에서 노예처럼 살아가는 2400만 북한 동포에게 자유와 풍요로운 삶을 제공하는 기회라는 생각은 해보지 않았는지 반문하고 싶다. 

비판이 거세지자 박 의원은 갑자기 “우리가 북한의 붕괴를 감당할 수 있겠느냐”며 본질을 왜곡하고 있다. 대화론자들의 전형적인 통일불가론이다. 통일비용을 내세우며 독일도 감당하기 힘든 통일비용을 우리가 어떻게 감당할 것이냐며 통일에 대한 두려움을 증폭시키고 있다.

하지만 우리는 통일을 감당할 수 있음은 물론 통일된 한반도는 동북아 번영의 출발점이 될 것임이 분명하다. 필자는 이미 여러 곳에서 ‘한반도 통일은 독일보다 쉽다’, ‘북한은 제로베이스가 낫다’라는 칼럼을 통해 이런 통일기피증에 대응해왔다. 

독일을 보라. 언제 통일준비를 완벽하게 한 뒤에 통일을 이뤘는지. 통일은 많은 도전을 주지만 도전을 극복해야 한국은 강력한 선진사회로 거듭날 것이다. 

▲ “북한 주민 대한민국으로 오라”는 박근혜 대통령의 발언에 대해 박지원 의원이 “선전포고 수준”이라고 밝힌 것은 김정은의 막말 이상의 충격을 준다.

중국, 러시아를 제2의 헝가리로 만들어라 

국민은 말만 앞선 정부에 식상하다. 6차 핵실험이 코앞인데 또 다시 예의주시하고 있다고 말만 앞서니 불안하다. 일본의 핵무장, 핵동결과 평화협정안도 먼 일만은 아니다. 아직 여유가 있을 때 뭔가 구체적인 대안이 마련되어야 한다. 전술핵을 다시 들여오든, 자위적 핵무장을 하든, 핵을 구매해오든, 핵을 빌려오든 행동이 필요하다. 

북한 주민 수용과 관련해서는 중국이나 러시아를 제2의 헝가리로 만든다는 자세로 외교적 역량을 총동원해야 할 것이다. 1989년 9월 11일 헝가리가 동독인의 오스트리아 탈출을 허가하자 한 달여 만인 10월 말까지 2만4000명의 동독인이 이 루트로 서방세계로 탈출할 수 있었다. 그 후 40일 만인 11월 9일 베를린 장벽이 무너져 내렸다. 

동독인의 탈출과 관련해서는 한스-디드리히 겐셔 외교장관을 빼놓을 수 없다. 겐셔는 18년간 외교장관을 지내며 콜 총리와 함께 1990년 독일통일을 성사시킨 주역이다. 그는 지난 3월 31일 89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다. 그가 18년 외교장관을 지내며 수많은 연설을 해왔지만 최고의 연설은 1989년 9월 프라하 주재 서독대사관 발코니에서 대사관에 진입한 수천 명의 동독인 앞에서 행한 연설이다. 한 문장도 채 채우지 못한 연설이었다.

그는 “제가 이 자리에 선 것은 여러분을 서독으로 모시고 가기 위해서 … ”라고 하자 대사관이 떠나갈 정도의 환호성이 이어져 다음 문장이 끊겼다. 1989년 당시 이런 일이 가능할 것으로 믿었던 사람은 거의 없었다. 탈출한 동독인에 대한 애정과 통일에 대한 열망이 불가능을 가능으로 바꾼 것이다. 

중국이나 러시아를 제2의 헝가리로 만든다는 구상은 현재로서는 허구일 수 있다. 하지만 ‘지성이면 감천’인데 해보지도 않고 스스로 주저앉을 수는 없다. 더욱이 탈북자는 인권이 말살되는 잔혹한 세습독재를 탈출하는 사람들이다.

‘이밥에 고깃국’은 고사하고 삼시세끼도 해결할 수 없는 주민들이 생존을 위해 탈출하는데 아무리 중국, 러시아라 해도 언제까지 모른 채 할 수는 없다. 고르바초프가 페레스트로이카, 글라스노스트를 추진하고 동독 공산당이 호네커를 제명하는 일이 어찌 가능했겠는가. 

‘영원한 친구도 영원한 적’도 없는 국제사회에서의 적과 친구의 치환은 언제나 열려 있다. 중국이 어렵다면 우선 러시아에 총력을 기울이자. 또한 차제에 탈북자 보호와 함께 국군포로나 납북자 송환에도 정부의 강력한 의지를 보여주기를 바란다.

인권은 감성을 자극하고 도덕적 권유로 개선되는 법이 없다. 인권 침해를 폭로해 창피주기 즉, Naming & Shaming을 반복하며 한발 한발 개선해나가는 것이 인권이다. 북한이 듣지 않는다는 이유로 침묵만 하기에는 사정이 심각하다. 

메르켈, “전쟁에 대비하라” 

2015년 유럽은 IS 및 각종 테러로 비상이었다. 파리 테러, 니스의 트럭 테러, 브뤼셀 테러에 이어 비교적 안전하다던 독일에도 테러가 발생했다. 7월 22일 뮌헨 도심 쇼핑몰에서 이란계 독일인이 총기를 난사해 9명이 사망하고 27명이 부상했다.

1주일 전에는 뷔르츠부르크 통근열차에서 17세 아프가니스탄 난민이 승객을 공격해 4명이 부상했다. 7월 26일에는 바이에른 안스바흐 야외음악축제장을 노리다 입장이 불허된 시리아인이 주변 식당에서 자폭 테러를 감행해 19명이 중경상을 입었다. 

메르켈 총리는 난민 유입과 IS의 테러로 사회적 불안이 커지자 11월 3일 국민을 향해 ‘전쟁과 안보 불안’에 대비하라고 발표했다. 독일인들은 아파트건 개인주택이건 지하창고가 있다. 창고에는 통조림 등 다양한 저장생필품들이 구비되어 있다. 전쟁이라는 역사를 통해 체험한 것들이 현재 생활 속에 그대로 담겨 있다. 

2016년 유럽의 안보는 난민 유입이 이어져 불안정한 가운데 러시아의 크림반도 침공과 시리아 내전을 둘러싼 미·러의 충돌로 또 다시 불안하다. 올해 개최키로 했던 두 나라의 핵협상도 백지화되었다. 이런 위기 가운데 메르켈 정부는 8월 24일 ‘민간국방개념(Konzept Zivile Verteidigung)’을 발표했다. 

총 69페이지에 달하는 민간국방개념에는 유사시 정부와 국민들이 어떻게 행동할 것인가에 대해 잘 정리되어 있다.

▲생화학 무기의 공격을 받았을 때 어떻게 대처해야 합니까? ▲방사능 구름이 확산되고 있다면 국민들을 어떻게 안전하게 대피시킬 것입니까? ▲공격이 시작되면 연방정부는 어디로 이동합니까? ▲전쟁이 발발하면 귀중한 문화재는 어떻게 보호됩니까? ▲생필품과 국방부문에서 일하는 시민들은 어떻게 대응해야 합니까? 등과 같은 매뉴얼이 만들어져 최악의 경우를 대비하고 있다. 

민간국방개념과 함께 발표된 2016년 연방군의 안보백서에는 전쟁에 대비한 독일 내 국방정책과 안보정책이 담겨 있다. 과거에는 연방군의 해외 참전과 병력 파견과 같은 정책이 대세였다면 올해에는 유럽과 독일에 전쟁이 발발할 경우를 상정한 대안이었다. ‘전쟁에 대비하라’는 민간국방개념에는 국민들에게 개인별로 대비품목이 정해져 있다.

대략 2주일에 필요한 물과 식료품(1인당 채소 5.6kg과 견과류·과일 통조림, 콩과류 3.6kg, 곡류·빵·감자·국수·쌀 4.9kg, 고기·생선·유제품 5kg, 취향에 따라 잼·꿀·사탕류 및 조리제품 등으로 1인당 대략 19.9kg의 식품과 음료 28.5리터), 상비약품, 보온용 담요, 난방용 땔감, 나무, 양초, 손전등, 배터리, 성냥, 충전용 제품의 충전 완료 및 일정 규모의 현금 등이다. 

우리와 달라도 너무 다르다. 북한의 핵실험과 미사일 발사가 연일 지속되고 있는데도 야당은 물론 정부조차도 전쟁 대비나 대응을 주문하지 않는다. 아니 오히려 우리 국민은 사재기를 하지 않는 성숙한 시민이라는 엉뚱한 해설이다. 그렇다면 독일 정부와 국민은 성숙되지 않았는지 묻고 싶다. 

슈미트의 공포의 균형 정책이 통일 초석 

사드와 관련해서도 독일의 사례를 거론하지 않을 수 없다. 1987년 소련은 동독에 SS-20 중거리 핵미사일을 배치했다. 회원국들의 불안감이 증폭되고 서독의 헬무트 슈미트 총리는 나토 이중 결의안을 제시했다.

한마디로 강온 전략으로 소련을 상대로 핵미사일 동결을 위한 협상을 추진하는 한편, 나토의 미사일을 현대화하는 전략이었다. 그리고 서독 미군기지에 미국 산 중거리 핵미사일 퍼싱II와 크루즈 미사일을 배치하는 결단을 내렸다. 퍼싱II는 10분 내 모스크바를 잿더미를 만들 수 있는 위력을 가진 공격용 미사일이었다. 

이렇게 군사적 균형을 이뤘었지만 사민당 내 반발은 거셌다. 브란트의 동방정책을 기획했던 에곤 바는 슈미트가 독일 땅에 ‘동독을 협박하는 전쟁 상황’을 만들어냈다고 비난하고 나섰다. 교회와 시민단체들은 ‘평화운동(Friedensbewegung)’을 예고하며 슈미트를 압박했다. 본에서 열린 평화운동에는 30만 명의 인파가 몰려 슈미트의 강경 대응에 거세게 저항했다. 

하지만 슈미트 총리의 결단은 미 대통령 안보보좌관이었던 카터와 브레진스키는 물론 당시 워싱턴 주재 소련 대사 알렉산더 베세메르트니치도 혀를 내두르게 했다. 평범했던 슈미트가 일약 스타덤에 오른 순간이었다.

이 시기는 미국 대통령 레이건이 베를린 알렉산더 광장을 방문해 고르바초프를 향해 “Mr. Gorbatschow, tear down this wall”라는 연설로 베를린 장벽 붕괴를 예견했던 때이기도 했다. 그리고 정확히 2년 후 베를린 장벽은 무너져 내리고 동독은 서독에 편입되어 통일을 이뤘다. 

2016년 10월 10일은 북한 노동당 창건기념일이다. 북한이 이 날을 전후해 6차 핵실험이나 장거리 미사일을 발사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왔다. 이 날 야권 대선 후보들의 발언이 충격이다. 문재인은 사드 배치를 잠정적으로 철회하고 외교 노력을 강화할 것을 주문하며 박원순은 남북 경협을 재개하자고 제안하고 있다.

박지원의 선전포고 발언만큼 충격이다. 과연 이 제안이 박근혜 편의 발언인가, 김정은 편의 발언일까? 다른 한편 이 제안이 박근혜 대통령이 싫어서 한 발언이라면 이는 더 큰 문제다. 그들의 뇌리에는 “적의 적은 아군”이라는 권력에 중독된 나치즘적 공식이 박혀 있는 것은 아닌가 걱정이다. 

1871년 독일을 통일하고 제국을 건설한 비스마르크의 명언이 새롭다. 박 대통령은 물론 대권 잠룡들이 “정치는 역사 속을 지나는 신의 발걸음을 쫓아가 외투를 움켜잡는 것”이라는 대정치인의 ‘명견만리(明見萬里)’를 새기기를 바라는 마음이 간절하다. 이 명견만리로 독일에는 두 명의 평범한 헬무트가 위대한 정치인으로 우뚝 섰다. 헬무트 슈미트 총리와 헬무트 콜 총리다.

전자는 대표적인 사민당 인사로 1987년 평화 무드가 대세인 가운데 퍼싱II를 배치하는 결단을 내려 ’공포의 균형‘을 만들었다. 후자인 기민련의 콜은 1989년 동독 주민의 손을 잡고 기적과 같은 통일을 이뤄냈다. 만약 공산 정권의 손을 잡았더라면 절대로 불가능한 일이었다. 비스마르크의 명견만리가 대한민국의 정치인을 부르고 있다. 

본 기사는 시사주간지 <미래한국>의 고유 콘텐츠입니다.
외부게재시 개인은 출처와 링크를 밝혀주시고, 언론사는 전문게재의 경우 본사와 협의 바랍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