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정당인 자유당의 존슨 후보가 지지율을 ‘15%’까지 올려 TV 토론장에서 트럼프, 클린턴과 정책 토론을 벌일 수 있을지가 또 하나의 관심사로 등장
워싱턴 = 이상민 기자
2016년 미국 대선에서 제3의 정당인 자유당(Libertarian Party)에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자유당은 지난 5월 29일 전당대회를 갖고 게리 존슨 전(前) 뉴멕시코 주지사를 2016년 대선 후보로 뽑았다. 2012년 대선에도 자유당 후보로 출마했던 존슨 전 주지사는 이날 윌리엄 웰드 전 매사추세츠 주지사를 자신의 러닝 메이트로 지명하고 본격적인 대선 레이스에 뛰어들었다.
1971년 설립된 자유당은 미국에서 공화·민주당에 이은 제3의 정당이지만 27개 주에서 등록당원이 40만 명에 불과한 미니 정당이다.
개인 자유의 극대화(Maximum Freedom), 정부 기능의 극소화(Minimum Government)를 기치로 내걸고 설립된 후 지금까지 대통령 선거와 연방 상·하원 선거 때마다 후보를 내고 있지만, 당선된 후보는 한 명도 없다. 2012년 대통령 선거에서 120만 표(전체 유권자 1%)를 얻은 것이 최고 성적이다.
▲ 2016년 미국 대선에 자유당 후보로 출마하는 게리 존슨 前 뉴멕시코 주지사 |
제3정당의 존재가치 알리는 절호의 기회
하지만 월스트리트 저널, 워싱턴포스트 등 주요 언론들은 사설과 칼럼을 통해 자유당이 이번 2016년 대선에서는 이전과는 다른 결과를 낼 것이라는 분석들을 내놓고 있다. 대통령으로 당선될 리는 만무하지만 이들을 찍는 유권자들의 수가 늘어나고, 이들의 목소리가 미국인들에게 전해질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월스트리트 저널은 이번 대선에서 공화, 민주당의 후보로 나올 트럼프와 힐러리를 싫어하는 사람들에게 자유당의 존슨이 대안이 될 수 있다고 사설에서 밝혔다.
워싱턴포스트의 유력 칼럼니스트인 제니퍼 루빈은 미국 내 110만 명의 불법 이민자들을 추방하고 추가 불법 이민자들을 막기 위해 미국과 멕시코 국경 사이에 장벽을 쌓겠다는 트럼프의 주장을 ‘말도 안 되는 소리’라고 나무랄 사람은 이제 자유당의 존슨 밖에 없다고 밝혔다.
전통적으로 공화·민주 양당제로 운영되고 있는 미국에서 자유당 등 제3정당 운동을 연구해온 전문가들도 이번 대선이야말로 제3의 정당의 목소리가 미국인들에게 들릴 수 있는 절호의 기회라고 말하고 있다.
이런 목소리가 나오는 2016년 미국 대선에서 사실상 공화, 민주당 대선 후보인 트럼프와 힐러리가 최근 미국 대선에 출마한 후보들 중 가장 인기 없는 후보들이라는 점이다.
월스트리트 저널과 NBC 공동 여론조사에 따르면 미국인 48%, 45% 각각 트럼프와 클린턴을 싫어한다고 답했다. 자기가 클린턴을 찍는다면 그것은 트럼프가 싫어서이고 트럼프를 찍는다면 클린턴이 싫어서라고 답하는 미국인들이 절반 가까이 된다는 것이다.
정치 경험이 전무한 트럼프가 대통령이 되는 것을 불편해하는 미국인들은 42%, 힐러리는 ‘거짓말쟁이’이고 ‘믿을 수 없는 사람’이라 그녀가 대통령이 되면 최초의 미국 여성 대통령이라는 주장은 아무런 의미가 없다고 말하는 미국인들은 38%다.
공화당 내에서 트럼프를 반대하는 “네버 트럼프(Never-Trump)” 목소리는 여전하다. 아버지, 아들 부시 대통령 부자(父子), 미트 롬니 2012년 공화당 대선 후보 등 유명 인사를 비롯해 보수 논평가들은 트럼프가 보수 가치를 대변하지 않는다며 그를 지지하지 않을 것임을 계속 밝히고 있다.
아들 부시 행정부 당시 미국 외교정책에 상당한 영향력을 발휘했던 유력 잡지 ‘위클리 스탠다드’의 윌리엄 크리스톨 편집장은 트럼프 대신 보수 가치를 대변하는 무소속 후보를 뽑아야 한다는 목소리를 앞장서 높이고 있다.
민주당 내에서 클린턴을 반대하는 목소리 역시 크다. 클린턴이 2016년 민주당 대선 후보로 다 된 것으로 생각하고 있지만 버니 샌더스는 지난 5월 10일 웨스트버지니아 경선에서 힐러리 클린턴을 이겼고, 가장 많은 대의원표가 있는 캘리포니아에서도 이길 수 있다는 분석까지 나오고 있다.
민주당 내 젊은층을 중심으로 클린턴은 월스트리트 등 거대기업과 이익그룹의 돈을 많이 받았고, 정직하지 않으며, 충분히 진보적이지 않다는 불만이 큰 것이다.
자유당 존슨 후보는 자신을 “재정적으로 보수이고, 사회적으로 진보”라고 말한다. 이 점은 자유당의 이념적 좌표를 대변하는 것이다. 이런 입장 때문에 트럼프가 보수 가치를 대변하지 않고, 클린턴이 진보 가치를 대변하지 않아 불만이 많은 공화, 민주 양당 구성원들의 표를 얻을 수 있다는 것이 자유당의 분석이다.
자유당은 다음의 이념적 좌표를 갖고 있다. 규제를 통해 정부의 시장 개입을 반대하고 빈곤층 식량 보조 등 정부의 복지정책을 반대하며, 소득세를 폐지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국가에 의한 공립교육을 반대하고 자유시장 원리에 따라 교육이 이뤄지도록 해야 한다고 밝히고 있다. 자유무역을 지지하지만 미국이 해외 문제에 개입하는 것을 반대한다. 미국이 세계 경찰국으로 활동하는 것과 미국의 해외 원조 활동을 반대하고, 해외 주둔 미군을 철수해야 한다는 고립적인 태도를 갖고 있다.
▲ 자유당 로고 |
제3정당 후보는 유력주자 당락의 캐스팅 보트
개인의 자유를 신봉하다보니 동성애, 동성결혼을 지지하고 마약, 포르노, 매춘, 도박 등 이른바 직접적 피해자가 없는 범죄들의 합법화까지 주장한다. 개인의 총기 보유는 당연히 합법이고, 외국인들이 미국에 이민 오는 것을 환영하고 있다.
이렇다보니 이제 공화당 트럼프의 반(反)이민 정책을 반대할 수 있는 사람은 자유당의 존슨 밖에 없다며 이들의 목소리가 들려야 한다는 볼멘 소리가 미국 내 보수층에서 들리고 것이다.
재미있는 것은 민주, 공화당이 아닌 제3의 정당 후보를 대선에서 찍겠다고 고려하는 미국인들이 늘고 있다는 점이다. 월스트리트 저널에 따르면 대선에서 제3당 후보를 고려하겠다고 응답한 미국인들이 2008년 38%, 2012년 40%, 2016년 47%로 계속 늘고 있다.
워싱턴 DC 연방의회에서 석탄업계 로비스트로 활동하는 크린스틴 예슐리는 “민주, 공화 양당에 너무 많은 힘이 몰리는 것이 싫어서 제3의 정당 후보를 고려하는 사람들이 있다”며 “다른 선택도 있다는 것을 민주, 공화당에 알려 이들을 견제하기 원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동안 미국 대선에서 공화, 민주 양당의 후보가 아닌 제3정당의 후보가 대통령으로 당선된 적은 없지만, 박빙의 승부에서 양당의 후보 당락에 영향을 미친 경우는 있다.
가장 최근 사례는 2000년 대선에서 녹색당 대표로 출마한 랄프 네이더다. 그는 대선 본선에서 전체 유권자의 3%의 표를 얻었다. 이것은 민주당 표를 갉아먹은 꼴이 되어 당시 민주당 후보인 앨 고어가 조지 W. 부시 대통령에 근소한 차이로 패배하는 데 한 몫을 한 것으로 풀이되고 있다.
15% 지지율 얻어야 TV토론 참여 가능
1992년 대선에서 제3정당으로 출마한 로스 페롯도 대표적이다. 그는 당시 대선 본선에서 전체 유권자의 18%를 득표했다. 이는 대부분 이전 공화당 표들이어서 아버지 부시 대통령의 표를 갉아먹어 빌 클린턴 민주당 후보가 승리한 주요 요인이 된 것으로 분석되고 있다.
1912년 대선에서는 시어도어 루스벨트 전 대통령이 제3정당으로 출마해 전체 유권자의 30% 표를 얻으면서 공화당 표를 갉아먹어 민주당 후보인 우드로 윌슨이 대통령으로 당선되기도 했다.
관심 가운데 있는 자유당이 이번 대선에서 두각을 나타내기 위해서는 대통령 후보 TV 토론회에 참가하는 것이다. 미국 대통령선거위원회는 대통령 본선 중에 있는 세 번의 대통령 후보 TV 토론회에 참가하기 위한 후보의 자격으로 공인된 여론조사기관을 통한 여론조사에서 15% 이상의 지지를 얻는 것으로 밝히고 있다.
자유당의 존슨은 대통령 후보 TV 토론에 참가해서 공화, 민주 양당의 권력을 견제하고 논의되는 이슈들의 내용을 바꾸는 등 제3정당으로서 역할을 감당하겠다고 밝히고 있다.
존슨 후보가 그동안 거의 모든 선거에서 주목을 받지 못했던 자유당에 대한 여론 지지율을 ‘15%’까지 올려 TV 토론장에서 트럼프와 클린턴과 어깨를 나란히 하고 토론을 벌일지가 2016년 미국 대선의 또 하나의 관심거리가 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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