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법과 인륜의 갈등
국법과 인륜의 갈등
  • 미래한국
  • 승인 2016.02.28 09: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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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경귀의 고전 읽기]소포클레스 著, <안티고네>

박경귀  대통령소속 국민대통합위원회 국민통합기획단장 

오이디푸스가 죽은 후 테베에서는 오이디푸스 왕의 쌍둥이 아들인 에테오클레스와 폴뤼네이케스가 1년씩 왕위를 교대하기로 한다.

하지만 먼저 왕위를 차지한 에테오클레스가 1년이 지나도 왕위를 동생에게 넘겨주지 않자, 폴뤼네이케스는 장인의 나라 아르고스 군대를 이끌고 테베를 공격한다. 이 교전 중에 형제는 모두 전사한다. 

테베의 섭정이던 크레온은 조국을 배신한 폴뤼네이케스의 주검을 들판에 버려 들짐승과 새들의 먹이가 되게 한다. 또 주검을 거두어 장례를 치르려는 사람은 누구든 돌로 쳐 죽이라는 포고령을 내린다. 하지만 이 명령을 어긴 사람이 나온다. 폴뤼네이케스의 여동생 안티고네였다. 그녀는 남몰래 오빠의 시신을 묻고 장례의식을 치름으로써 크레온이 내린 포고령의 정당성 논란과 이를 둘러싼 갈등을 불러온다. 

<안티고네>의 플롯 구성은 매우 치밀하면서도 간결하다. 이해관계가 엇갈리는 인물군을 설정하고 각각의 갈등 상황에서의 행위 기준을 대비시켜 끊임없이 관객과 독자들의 판단을 끌어들여 극에 몰입하게 만들다. 핵심적인 대립의 중심 인물은 안티고네와 크레온이다. 크레온은 섭정으로써 국가의 배신자였던 폴뤼네이케스를 단죄할 책무가 있었다. 

반면 안티고네의 경우 비록 오빠가 국법을 어겼지만, 그의 주검조차 거두지 못하는 것은 인륜을 저버리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특히 혈족으로서의 도리를 다하는 것이야말로 국법을 초월한 ‘신의 법’을 따르는 것이라고 확신했다. 

사실 고대 그리스의 관습에 의하면, 반역자의 시신을 거두지 못하게 한 것 자체는 잘못된 결정이 아니다. 문제는 그 법을 죽은 자의 혈족에게까지 적용하는 것이 인륜의 도리에 부합하는 것이냐의 여부일 것이다. 예외 없는 법의 집행이냐, 아니면 예외를 둘 것이냐가 크레온이 직면한 고뇌였다. 

안티고네도 번민했다. ‘내가 살고자 하면 오빠의 시신은 들짐승과 새들의 밥이 되고, 내가 거두어 장례를 지내면 내가 죽는다.’ 크레온과 안티고네 행위는 각자의 관점에서 모두 옳을 수 있다. 그래서 비극적이다.

<안티고네>는 바로 인생의 결정적인 순간에 저질러진 인간의 고집과 오판이 예기치 못한 비극적인 파멸을 불러 올 수 있음을 잘 보여준다. 아무리 비극적 상황이더라도 운명에만 그 책임을 물을 수 없는 이유다. 

안티고네는 혈족인 오빠를 무덤에 묻어주는 것이 자신의 죽음보다 더 영광스러운 일이라고 믿었다. 크레온은 자신의 포고령을 어긴 안티고네를 차마 돌로 쳐 죽이지는 못하고, 석굴에 가두어 죽게 하는 형벌을 내린다. 

<안티고네>가 보여주는 비극은 질기고 질긴 저주스런 운명의 굴레가 인간의 예지와 윤리관을 거부할 수 없는 힘으로 시험하는 결과물일 수 있다는 점에서 더욱 비극적이다. 

<안티고네>는 크레온과 안티고네의 대립을 통해 무엇이 인간의 삶을 결정하는 정당한 기준이 될 수 있는지에 대해 숙고하게 한다. 엄격한 법의 집행도 중요하지만, 그 법의 정신이 인간의 자연법적인 도리와 신의 섭리와 배치될 때, 인간 사회에 또 다른 갈등과 비극의 씨앗이 될 수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인간이 자신들의 행위를 선택할 때, 법과 규범은 물론 인륜과 신의 섭리를 반추하여 조화를 이룰 수 있도록 하는 겸허한 지혜가 필요함을 절감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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