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나라의 정통성·정체성은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본질의 문제다. 한국사 교과서 大戰은 목숨 걸고 싸워 한쪽의 숨통을 끊어버리고 비정상을 정상으로 되돌려 놓아야 전쟁이 끝난다.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 민주공화국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훈련된’ 민주시민이 필수적이다. 민주시민이 존재하지 않는 곳에서 민주주의가 운영될 수는 없다.
그런데 ‘훈련된’ 민주시민은 절로 탄생되는 것이 아니다. 아이가 태어나는 순간부터 가정에서, 사회에서, 학교에서 교육을 통해 만들어지는 것이다. 이처럼 ‘훈련된’ 민주시민을 길러내는 교육이 민주시민교육이다.
교육 분야의 석학(碩學) 로버트 프리만 버츠는 민주시민교육의 핵심 콘텐츠를 세 가지로 정의했다. 첫째, 그 나라 건국의 역사와 이념을 가르쳐야 한다. 둘째, 헌법의 정체성(즉 법치)를 가르쳐야 한다. 셋째, 시민으로서의 권리와 함께 책임과 의무도 함께 가르쳐야 한다. 이런 교육을 통해 ‘훈련된’ 민주시민을 길러내야만 제대로 된 민주주의가 가능하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이러한 민주시민교육을 제대로 시행하고 있는가? 불행하게도 우리는 ‘검정 교과서’라는 이름이 붙은 한국사 교과서를 통해 로버트 프리만 버츠가 정의한 ‘민주시민교육’과 정반대되는 교육을 학교 현장에서 자행하도록 방치 조장하고 말았다. 말하자면 민주파괴교육을 범국가적으로 실시하고 있는 것이다.
현행 중고등학교의 한국사 교과서, 특히 근현대사 부문을 다룬 교과서가 대한민국을 부정하고 공격하며, 북한 체제에 정당성을 부여하는 내용으로 도배질 되어 있다는 문제가 제기된 것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1990년대 초반부터, 그리고 2005년부터 뜻 있는 우파 진영 인사들이 사태의 심각성을 인식하고 본격적으로 문제를 제기했음에도 불구하고 좌편향적이고, 대한민국의 정통성을 부정하는 한국사 교과서는 지금 이 순간에도 왜곡된 그대로 학교 현장에서 버젓이 살아서 교육이 진행되고 있다.
김영삼 정부 때 ‘좌회전’ 고삐 풀려
우리 아들딸들이 학교에서 배우는 한국사 교과서는 좌편향적이고, 대한민국을 부정하고 공격하며, 북한 정권에 정당성을 부여하는 사관으로 심각하고도 충격적일 정도로 오염되어 있다. 그 오염의 발원지 및 근원을 추적해 보면 우리 사회의 민주화 과정과 그 궤적이 일치한다.
우리 사회에서 민주화 열기가 폭발한 것은 1987년이다. 전두환 정권 말기인 1987년 6월 민주화 대항쟁의 여파로 인해 전두환 정권은 6·29 선언을 통해 국민들의 민주화 요구를 수용했다. 그 결과 6공화국 헌법이 제정되어 명실상부한 민주화 시대가 개막됐다. 그런데 6공화국의 제1기에 해당하는 노태우 정부가 출범한 1988년 한국사 교육과 관련된 중대한 변란이 일어났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드물다.
바로 이 해에 한국역사연구회가 출범한 데 이어 역사교육을 위한 교사모임, 구로역사연구소(현 역사학연구소) 등 민중사학 연구단체가 결성됐다. 이 모임의 구성원들이 국정으로 되어 있는 한국사 교과서가 심각한 문제가 있다고 집요한 공격을 퍼부으며 여론몰이에 나섰다.
그들은 여론몰이에 그친 것이 아니라 민중사관에 입각한 대중용 국사 교과서인 <바로보는 우리역사>, <교실 밖 국사여행> 등을 발간하여 ‘대안 교과서’라는 이름으로 전교조 교사들을 중심으로 교육을 하기 시작했다.
한국사 교과서의 이데올로기 문제라는 불씨에 기름을 부은 것은 김영삼 정부다. 김영삼 정부의 교육문화수석 김정남 등이 중심이 되어 교육부는 1994년 11월 제6차 교육과정 국사교과서 ‘준거안’이란 것을 내놓았다. 바로 이 준거안을 통해 대한민국 현대사 왜곡이라는 핵폭탄이 터지기 시작했다.
당시 문제가 된 준거안 시안의 현대사 부분은 당시 서중석 성균관대 교수(역사문제연구소 이사장)가 썼다. 서 교수는 준거안 시안에서 대구 폭동을 ‘대구 10월 항쟁’으로, ‘제주 4·3 사건’을 ‘제주 4·3 항쟁’으로, ‘여수 순천 반란사건’은 ‘여수 순천 10·19 사건’으로, ‘5·16 군사혁명’은 ‘5·16 군사정변’으로 기술하자고 주장했다.
역사문제연구소 소속 연구원들의 좌편향성
준거안에 대한 명분은 그럴 듯했다. 여수, 순천 지역 주민들이 반란의 주체로 오인될 소지가 있으니 용어를 순화하는 것이 옳다는 의견을 앞세운 것이다. 이 준거안이 발표되자 우파 진영 학자들은 “민중사관에 바탕을 둔 것”이라며 비판을 제기했다.
게다가 준거안 시안에 좌익운동사와 주체사상을 다루도록 한 사실이 알려지면서 격렬한 반대에 부딪친 교육부는 1994년 11월 “정통적 견해를 대폭 수용하여 최종 준거안을 마련하겠다”고 발표하여 사태 수습에 나섰다.
그러나 몇몇 항목을 제외하고 용어 및 역사 해석에서 서중석 교수의 시안이 상당 부분 반영되었다. 그러나 이때까지만 해도 국정체제였기 때문에 일부 기술 외에는 민중사학이 결정적 영향을 끼치지는 못했다.
1997년 교육부는 제7차 교육과정을 고시하여 민중사관에 입각한 교과서가 합법적으로 등장하는 통로를 만들었다. 이때부터 금성출판사의 <한국근현대사> 교과서 같은 노골적인 좌편향 교과서들이 등장하기 시작했다. 7차 근거안도 서중석 교수의 6차 준거안 시안을 거의 그대로 수용하여 ‘민중사관’이 노골화 되었다.
2010년부터 검정을 통과해 2011년부터 교재로 사용되고 있는 현행 6종의 <한국사> 교과서는 거의 대부분의 필진이 좌파들로 구성되어 민중사관에 입각하여 한국사를 기술함으로써 북한의 역사책과 매우 유사한 내용이 되어버렸다.
흥미로운 것은 좌편향 한국사 교과서의 필진 구성이다. 1994년 준거안 파동의 장본인인 서중석 교수는 좌파 성향의 대표적인 역사학자다. 그가 이사장으로 있는 역사문제연구소는 박원순 서울시장이 해방 후 남로당 지도자 박헌영의 아들로 알려진 원경 승려와 함께 설립한 연구소다.
이 연구소에 소속됐었거나 현재도 소속되어 있는 인물들은 강만길 고려대 명예교수, 임헌영 민족문제연구소 소장, 강정구 전 동국대 교수, 박원순 서울시장 등 대부분 좌파 성향이다.
<한국사 교과서 어떻게 편향되었나>라는 책을 펴낸 정경희 교수(영산대)는 심각한 문제가 됐던 7차 교과서의 근현대사 부분 준거안은 방기중 교수와 박찬승 교수가 작성한 것으로 분석했다. 방기중 교수는 내재적 발전론의 선구자인 김용섭 전 연세대 교수의 제자로, 역사문제연구소 소장으로도 활동한 경력이 있다.
박찬승 교수도 한국역사연구회와 역사문제연구소 등에서 활발하게 활동했다. 따라서 우리의 한국사 근현대사 관련 교과서는 거의 대부분 역사문제연구소와 깊은 연관을 맺고 있다는 것이 정 교수의 분석이다.
특히 극도의 좌편향성을 보인 금성출판사의 <한국근현대사> 교과서는 집필자 여섯 명 가운데 두 명이 급진좌파 성향을 보이는 구로역사연구소(현 역사학연구소) 소속이었고, 다른 한 명은 역사문제연구소 연구위원을 지낸 인물이었다.
정상적인 교과서를 ‘친일 교과서’로 낙인
충격을 받은 보수우파 진영은 2005년에 ‘교과서 포럼’을 결성하여 아우성을 쳤지만 이미 때는 늦었다. 이 와중에 2014년부터 학생들이 사용할 <한국사> 교과서가 국정에서 검인정으로 바뀌게 되었다. 우파 진영에서도 2013년 자유민주주의의 관점에 맞게 집필된 한국사 교과서가 필요하다고 공감한 여섯 분이 모여 교과서를 집필했다.
한국학중앙연구원 한국사학 교수로 재임 중인 권희영 교수를 대표 집필자로 이명희 공주대 사범대 역사교육과 교수, 장세옥 부여고 교사, 김남수 대전외고 교사, 김도형 사단법인 통일미래사회연구소 박사, 최희원 서울세종고 교사 등 6인의 필자가 집필하여 교학사에서 발간한 <고등학교 한국사>가 바로 그것이다.
교학사 교과서가 국사편찬위원회 검정 심의를 통과하자 역사학계와 교육계, 정치권, 언론들이 벌떼처럼 들고 일어나 ‘친일 교과서’로 공격해댔다. 그 결과 전국 고등학교 2352개교 중에서 교학사 교과서를 채택한 곳이 단 한 곳뿐이었다. 조선일보의 김대중 주필은 이 상황을 보고 ‘2352 대 0’이라는 칼럼을 쓰기도 했다.
왜 이렇게까지 상황이 악화되었을까. 결론은 간단하다. 교학사 교과서를 채택하면 좌파들은 그 학교와 재단을 친일 학교, 친일 재단으로 낙인찍어 무자비한 테러 공격을 퍼부었기 때문이다.
좌파들은 교학사 교과서를 매도하기 위해 인터넷을 통해 “교학사 교과서는 김구 선생을 테러리스트로, 유관순 열사를 여자깡패로, 5·18을 폭동으로 규정하고 있다”는 괴담을 퍼뜨려 교학사 교과서를 ‘몹쓸 교과서’ ‘친일 교과서’로 주홍글씨를 새기는 데 성공했다.
좌파들에게 ‘친일 프레임’으로 찍히면 어느 누구도 살아남을 수 없는 세상이 되었으니, 이 점에서 좌파들의 공격은 확실하게 성공했고, 우파들은 완벽하게 패배한 셈이다.
대한민국의 정통성을 부정 내지 왜곡, 공격하고 좌파 사관을 퍼뜨리고, 북한 체제를 미화 찬양하는 한국사 교과서가 시대의 주류로 자리 잡게 된 배후를 들여다 볼 필요가 있다.
1980년대 전대협을 중심으로 한 운동권 핵심 세력들은 민주화라는 외피를 뒤집어쓰고 북한의 주체사상을 수용했으며, 북한의 혁명노선을 받아들여 한국 사회를 공산화하기 위해 집요한 투쟁과 공작을 전개했다.
1983년 대학교 운동권에 유포됐던 <예속과 함성>이란 책자는 북한 혁명론을 남한의 학생운동에 소개한 것인데, 이 책자는 1945년 이래 한국은 미국의 식민지이며, 군부독재 정권은 미국에 의해 양성·조종되는 괴뢰정권이라고 주장했다.
비슷한 시기에 ‘강철서신’으로 알려진 김영환은 북한의 ‘구국의 소리’ 방송을 청취한 것을 토대로 민족해방 민중민주주의 혁명론(NLPDR, National Liberation People’s Democracy Revolution)을 본격 제기했다.
김영환 그룹은 북한 방송의 내용 그대로 “19세기 말부터 지금까지의 한반도 근대사 100년은 제국주의 침략의 역사요, 제국주의에 대한 민중의 투쟁 역사다. 한국 사회는 미 제국주의와 그 앞잡이가 파쇼적으로 지배하는 식민지 사회”라고 퍼뜨렸다.
북한 사관 수용하여 한국사 교과서 집필
전대협을 필두로 한 운동권 지도부는 북한의 한국민족민주전선(이하 한민전) 지도하에 북한이 제공하는 투쟁구호 및 투쟁전술을 그대로 받아들여 ‘민주화’라는 외피를 두르고 실제로는 반미 자주화, 반독재 민주화, 조국통일 촉진 투쟁 등 3대 투쟁(실제로는 공산 혁명)을 진행했다.
1980년대 중반 이후 운동권이 반독재 민주화 투쟁을 벌인 것은 ‘민주화’가 아니라 실상은 민족해방 민중민주주의 혁명 투쟁이었다. 바로 이런 목적 하에 좌파들은 교과서 집필진을 구성하여 대한민국의 정통성을 부정하고 북한의 인민민주주의 혁명을 정당화하는 내용의 한국사 교과서를 만들어 전국의 학교에 공급하고 가르치는 시스템을 구축하는 데 성공했다.
학교 현장에서 학생들을 민중사학으로 세뇌할 수 있는 한국사 교과서는 그들이 점령해야 할 중요한 진지였다. 좌파들은 놀라운 조직력을 발휘하여 한국사 교과서를 검인정으로 봉인해제 한 다음, 좌파 친북 논리로 충실하게 무장된 필진을 동원하여 조직적으로 북한 사관을 수용한 교과서를 집필했다.
이처럼 오염된 사상으로 만들어진 교과서를 좌파 권력의 힘과 전교조라는 막강한 조직력을 이용해 학교 현장에 일사불란하게 보급하여 민중사관에 입각한 한국사 교육 시스템 구축에 완벽하게 성공했다.
우리 국민들은 대한민국을 망치는 내용으로 도배질 된 교과서가 권력의 힘을 업고 전광석화처럼 보급되어 교육이 자행되는 것을 눈을 훤히 뜨고 허용해버린 것이다. 이 나라에 교육을 다루는 교육부가 있고, 교육을 책임진 장관이 존재한다.
한국사 교과서 문제에 관한 한 교육부 장관 이하 전 교육부 공무원들은 중립이거나 좌파 동조적인 입장이 분명해 보인다. 한국사 교육에 관한 한 대한민국은 가히 무정부상태다. 박근혜 정부가 한국사 교과서 문제 해결을 위해 칼을 빼든 것은 불행 중 다행이다.
한국사 교과서를 둘러싼 싸움은 1988년부터 시작되었고, 김영삼 정부 시절인 1994년에 일부 문제 제기가 시작됐으며, 2005년부터 폭발하여 좌파가 압승했다. 좌파가 거대한 정치권력과 함께 문화권력, 교육권력, 언론권력을 움켜쥐고 막강한 자본 동원력을 바탕으로 여론 홍보전에서 월등히 우세한 전력을 보유한 탓이다.
이런 전례로 볼 때 한국사 교과서를 둘러싼 30년 전쟁은 대단히 힘들고, 어려우며, 고난에 찬 싸움이며 쉽게 결판이 나지 않을 수 있다는 각오 없이는 승산이 없어 보인다. 그야말로 대한민국이라는 체제를 건 전쟁이 시작된 것이다.
한국사 교과서 전쟁은 ‘프레임 전쟁’이다. 좌파들의 친일 프레임과, 우파들의 종북 프레임의 싸움이다. 좌파들이 정치·문화·교육·언론권력을 장악한 현 상황은 마치 6·25 때 북한 공산군의 기습 남침으로 국군이 낙동강 전선까지 밀려간 상황이 연상될 정도다.
지금 이 순간, 인천상륙작전과 같은 기적적인 대반전이 일어나지 않는 한 한국사 교과서를 둘러싼 전쟁은 좌파들의 완벽한 승리로 끝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지켜야 할 가치가 없는 나라’가 되면?
1975년 베트남이 거지 군대나 다름없는 월맹군에게 허망하게 패하여 공산화 된 것은 군사력이나 경제력이 허약해서가 아니다. 위기가 닥쳤을 때 베트남 군인들은 “이 한 목숨 바쳐 나라를 지켜야 한다”는 절박한 애국심이 말살돼 무기를 내팽개치고 뿔뿔이 흩어졌다.
그 이유는 베트남 사회 곳곳에 침투해 있던 공산 프락치들이 “베트남은 외세의 식민지로서 민족사적 정통성도 없고, 부자와 기득권자들만을 위한 나라이니 지켜야 할 가치조차 없다”라는 것을 끊임없이 선전 선동하여 세뇌시킨 결과다.
역사는 국가의 정통성과 정체성을 교육하여 국민의식을 형성하는 중요한 과목이다. 역사교육, 특히 현대사 교육이 중요한 이유는 바로 국가 정체성 및 정통성과 직결되기 때문이다.
한 나라의 정통성 및 정체성은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본질의 문제다. 때문에 목숨 걸고 싸워 한쪽의 숨통을 끊어버리고 비정상을 정상으로 되돌려 놓아야 전쟁이 끝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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