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마당 죽이는 남한의 對北지원
장마당 죽이는 남한의 對北지원
  • 미래한국
  • 승인 2015.06.10 16: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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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애란의 평양별곡]

남한의 ‘묻지 마’ 식 對北지원은 김정은 체제만 유지시켜줄 뿐

1990년대 초반부터 중반까지 북한에서는 식량난으로 수백만 명이 굶어죽었는데, 이것을 용어 순화하여 ‘고난의 행군’이라 부른다.

북한은 ‘고난의 행군’이 끝난 뒤 사상투쟁회의를 했는데,  ‘고난의 행군’ 시기에 장사를 한 사람들에 대한 비판이 이어졌다고 한다.

그러자 한 사람이 자리에서 일어나 “나는 장마당에서 장사를 했기 때문에 오늘 이 자리에 앉아 있을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장사를 하지 않고 수령님께서 밥을 먹여줄 것이라고 생각하고 가만 앉아 있다가 굶어 죽은 ×××, ○○○ 동무가 더 애국자입니까? 아니면 장사라도 해서 굶어죽지 않고 살아남아 오늘까지도 사회주의를 지키고 있는 내가 애국자입니까?” 라고 발언했다. 


중국 물건과 식량이 북한을 구했다 

순간 회의장은 웃음바다가 되었고 장마당에서 장사를 한 사람들이 저마다 “옳소, 옳소”하며 호응을 했다.

회의를 주재하던 당 비서는 아무 말도 못하고 꿀 먹은 벙어리가 되었다고 하는 실제 있은 해프닝인지, 아니면 유언비어인지 모르는 에피소드가 떠돌아다니고 있단다.

어찌 됐든, 수백만 명이 굶어 죽고 있는 북한에서 계속 핵실험을 하고 미사일을 쏘아대며 난리를 치고, 그 대가로 경제 봉쇄를 당하고 있어도 북한 정권을 지켜주는 가장 큰 원동력은 장마당이었다.

불행인지 다행인지 북한의 압록강, 두만강을 따라 형성된 북·중 국경을 통해 진행된 밀수와 밀무역, 중국산 상품의 대량 유통은 누가 뭐라고 해도 북한 주민들을 먹여 살린 생명선이었다.

그런데 이곳에서 일어나는 모든 경제활동은 불법이었기에 뇌물과 뒷돈이 판을 치고 불법 단속과 불법 압수 등으로 인한 경제적 불평등이 심화되었다.

▲ 그 동안 5·24 조치로 인해 대북 물자지원이 금지되었으나 최근 들어 민간단체의 대북 비료 지원이 승인되었다. 그러나 무분별한 대북 지원은 김정은 체제만 유지시키고, 오히려 북한 주민들의 삶의 터전인 장마당을 위축시킬 뿐이라는 것이 탈북자들의 증언이다.

그 결과 사회주의 평등을 자랑하는 북한에서 빈부격차는 하늘과 땅 차이만큼이나 크게 벌어진 것이 오늘의 현실이다.

북한 주민들 사이에 도는 유행어 중에 “고난의 행군을 하면서 착한 사슴은 다 굶어 죽고 지금은 여우와 승냥이(이리)만 남았다”고 할 정도다.

만약 중국이 지금까지 개혁 개방을 하지 않은 채 사회주의 중국으로 남아 절대 빈곤 상태에 머물러 있었다면 북한 주민 전체가 굶어죽었거나 김 씨 일가가 망해서 지금은 새로운 나라가 되었을 것이다.

그처럼 어려웠던 ‘고난의 행군’은 북·중 국경을 통해 거대한 유통시장을 형성했다. 중국산 쌀과 밀가루, 옥수수는 북한 주민들을 먹여 살리는 식량이 되었고, 중국산 공산품은 북한 주민들의 생활을 유지시켜주는 필수품이 되어 결국 북한 주민들의 생계를 연장시켜 준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처음에 북·중 국경을 통해 거래되는 대부분의 중국산 상품은 모두 불법이었다. 그래서 중국산 상품을 팔고 사다가 들키면 상품을 몽땅 압수당하거나, 심한 경우 감옥에 가기도 하고, 공개 처형을 당하기도 했다.

북한의 각종 단속기관들은 중국산 상품을 단속해서 주민들로부터 고혈(膏血)을 짜냈고 불법을 눈감아주는 대가로 엄청난 뇌물과 뒷돈을 받았는데, 누가 얼마나 더 많이 불법을 눈감아 주느냐에 따라 쌓이는 재산의 높이가 달랐다.

그렇게 엄청난 희생을 감수하며 먹고 살기 위해, 아니, 살아남기 위해 탄생한 것이 북한의 장마당이다.

2009년 화폐개혁 이후 북한 지도층이 장마당을 전면 폐쇄하자 북한 전 지역에서 거대한 반항이 일어났다. 불안을 느낀 김정일은 할 수 없이 장마당을 전면 허용했다.

최근 자료에 따르면 북한에 투자한 중국 기업 가운데 북한 정권을 통하지 않고 북한 주민들을 직접 고용하여 월급을 북한 주민들에게 직접 주는 기업들에서는 종업원들이 돈을 벌기 위해 정말 열심히 일한다고 한다.

북한 주민들의 끈질긴 생명력이 만들어낸 북한 지하경제의 상징인 장마당은 남북교류에 의해 유지되는 것이 아니라 북한 주민들의 끊임없는 삶에 대한 의지 때문에 만들어진 것이다. 


對北지원은 김정은 체제 유지에 도움만 줄 뿐 

그런데 북한 주민들의 애달픈 삶의 의지에 사실상 찬물을 끼얹고 방해를 하는 것은 대한민국 정부의 ‘묻지 마’ 대북(對北)지원이다.

한국의 위정자나 정치인들은 우리 정부의 햇볕정책과 평화번영정책으로 북한에 쏟아 부은 대북지원이 북한 주민들을 살려줬다고 생각하는데, 이것은 큰 착각이다.

북한 주민들은 장마당에 의지하여 스스로 장사를 해서 먹고 살았고, 생존하여 오늘까지 사회주의 체제를 지켜냈다.

김정은은 주민들에게 배급도 주고 통제도 하면서 통치력을 회복하고 싶지만 도저히 뒷감당이 안 되기 때문에 북한의 장마당을 허용하고 장마당에 끌려가고 있는 것이다.

만약 우리 정부가 다시 대북 지원을 활성화하여 그 물자와 식량 등으로 배급제를 부활하여 김정은 체제가 장마당을 통제할 수 있는 여력이 생기면 가차 없이 장마당을 폐쇄할 것이다.

한국은행의 발표에 따르면 김정은 체제 출범 이후 지난 3년 간 북한 주민의 경제 상황은 날로 좋아지는 중이라고 한다.

2010년의 마이너스 성장은 2011년 0.8% 성장, 2012년에 이어 2013년에는 1.3% 성장했다. 전문가들은 북한이 2014년에는 4~5%까지 성장한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이런 결과를 보면 역설적이지만 남한과 국제사회의 대북제재로 인한 북한 정권의 마비상태가 오히려 장마당을 활성화시켜 주민 생활을 호전시키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결론은 간단하다. 남한 정부는 대북지원과 남북교류보다는 북한 주민들이 장마당에서 스스로 일어나 불법 지하경제를 합법적인 북한 경제로 일궈낼 수 있는 전략을 짜야 한다.

박근혜 대통령의 대선(大選) 공약 중에 지하경제 양성화가 들어 있었다. 실제로 북한 주민을 위해 필요한 대선 공약은 무엇일까.

북한 주민들의 생계를 유지시켜주는 지하경제를 합법적인 북한 경제로 양성화하고, 북한 주민들에게 노력한 만큼 부(富)를 소유할 수 있도록 소유권을 인정해주고 마음껏 경제활동을 할 수 있도록 자유를 허락하는 것이다.


이애란 북한전통음식문화원장·미래한국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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